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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①|지리산 중산리에서 성삼재까지

바람, 雲海, 심산계곡 ‘달력속의 풍경’

  • 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바람, 雲海, 심산계곡 ‘달력속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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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계장의 얘기를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지리산에 사는 기인들이며 지리산에 미친 사람들에 대한 무용담을 끝없이 풀어놓기 때문이다. 필자도 지리산이라면 수십 번 들락거리며 웬만한 코스는 다 밟아보았지만, 주계장 앞에서는 입을 다문다. 그에 따르면 “계절마다 시간마다 산의 모습이 다르고,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의 느낌이 다르니, 다니고 다녀도 모르는 게 지리산”이라는 거다. 이런 까닭에 지리산에 깊이 취한 사람일수록 말을 아끼는지도 모를 일이다.

10월4일. 일찌감치 민박집을 나섰다. 새벽 하늘엔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다. 중산리 매표소 앞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지리산국립공원으로 들어섰다. 산악회에서 단체로 온 듯 싶은 수십 명의 등산객들이 랜턴을 비추며 내 앞을 지나쳐갔다. 뒤를 돌아다보니 그보다 더 긴 행렬이 바쁜 걸음으로 따라붙고 있었다.

중산리에서 천왕봉(해발 1915m)에 오르는 코스는 크게 세 갈래. 가장 긴 길이 대원사에서 치발목을 거쳐 써리봉 중봉을 밟는 코스이고, 중간 길이 순두류 아지트를 경유하는 코스이다. 가장 짧은 길은 칼바위를 지나 직접 정상으로 가는 코스다. 나는 이 가운데 최단거리를 택했다. 해가 저물기 전에 막차를 타려면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다.

아침 9시. 산행을 시작한 지 2시간 30분 만에 천왕봉에 도착했다. 예정보다 30분 정도 빠른 속도였다. 앞서 가던 산악회원들이 워낙 빨리 걸어서 거기에 보조를 맞추다 보니 당초 계획보다 일찍 정상에 오른 것이다.

사람들은 천왕봉 하면 일출에 대한 감회와 기대를 앞세운다. 그 중 압권은 역시 “3대가 공을 쌓아야만 천왕봉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만큼 지리산에서 맑은 일출을 보기가 어렵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지리산 천왕봉을 단지 일출만으로 평가한다면 이는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바라보는 격이라 할 수 있다. 비 개인 오후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운해와, 눈보라 날리는 천왕봉에서 굽어보는 조망도 기막힌 절경이다. 어디 그뿐이랴. 천왕봉은 흐리면 흐린 대로 궂으면 궂은 대로 나름의 풍모를 보여준다. 단언컨대 천왕봉은 일단 오르기만 하면 본전 이상을 건질 수 있는 곳이다.



천왕봉에서 장터목으로 가는 길은 겨울에 걸어야 제 맛이다. 머리 위로는 눈 터널이고, 허리 아래로는 무릎까지 빠지는 눈밭이다. 필자는 친구들에게 이 길을 가리켜 ‘달력 속의 풍경’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앞서 걷는 사람이 눈 속으로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장면이 수없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달력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거든, 겨울에 이 코스를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9시40분. 장터목 산장은 수백 명의 인파로 북적였다. 해가 중천에 떴는 데도 땅바닥에 비닐을 깔고 누워 비박(야숙)을 하고 있는 청년들이 보인다. 산에 처음 오른 사람들은 비박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기도 하지만, 정말 산에 미친 사람들은 산장에 자리가 나도 비박을 고집하곤 한다. 다만 비박은 늘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안전한 장소, 철저한 장비, 튼튼한 체력 등이 갖춰지지 않았다면, 비박은 절대 금물이다.

장터목에서 세석산장으로 가는 길에선 무엇보다 바람을 즐겨야 한다. 아마도 지리산 종주 능선 가운데 이 코스의 바람이 가장 맵고 사나울 것이다. 필자의 친구는 언젠가 이 길을 걸으면서 “돌멩이가 날아다닌다”고 말한 일도 있는데, 정말 어떤 때는 몸이 날아갈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세석산장을 코앞에 두고 가파르게 올라서면 촛대봉(해발 1703m)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지리산의 주능선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지리산 공비토벌 루트 안내도’

최근 몇 년 사이 지리산 주변 지방자치단체들은 경쟁적으로 빨치산 상품화 작업에 나섰다. 이런 탓에 지리산 입구마다 당시 빨치산 들이 쓰던 장비가 진열돼 있는가 하면, 수많은 공비토벌 루트 안내판이 들어섰다. 이 가운데 중산리 입구의 기념관이 가장 두드러지는데, 승자의 역사만을 일면적으로 기록해놓은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나마 역사의 객관성을 감안한 ‘물건’을 하나 고르자면, 바로 벽소령의 ‘입간판’이 아닌가 한다.

‘지리산은 우리 민족의 기상과 혼, 애환이 담긴 명산이다. 해방 이후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빨치산의 의미를 되새기며, 분단의 아픈 현실과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빨치산과 토벌대의 투쟁현장을 함께 찾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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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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