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호

천하장사 이만기의 샤브샤브

‘살짝살짝’ 감질나는 천연의 맛과 영양

  • 글: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사진: 김용해 기자 sun@donga.com

    입력2003-11-28 17: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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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하장사 이만기의 샤브샤브
    “진 정한 사나이의 기상과 정신이 배어 있는 매력적인 운동이 바로 씨름입니다. 조상이 만든 가장 과학적인 운동이죠.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 장군도 씨름으로 병사들의 무예를 연마시켰습니다.”

    영원한 천하장사 이만기(李萬基·40)씨에게 씨름은 곧 그의 인생이다. 고향인 경남 의령 곡소마을에서의 어린 시절 그는 매일 아침 6시면 소 두 마리를 끌고 뒷산에 올라 꼴을 먹이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되던 해 마산의 무학초등학교로 전학을 하면서 그의 인생은 새롭게 시작된다. 특별활동반으로 선택한 게 바로 씨름반이었는데, 거기서 황경수 감독을 만나게 되었던 것. 황감독은 이씨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봤고 그와의 인연은 중·고교를 거쳐 민속씨름 선수 때까지 이어졌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씨름을 시작한 걸 뒤늦게 알고 공부해야 한다며 반대를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몸이 왜소했거든요. 그런데 황감독이 씨름에 소질도 있고, 몸은 나중에 크는 아이도 있다며 부모님을 설득했죠.”

    중학교 1학년 때 이씨의 번호는 8번. 66명 중 8번째로 작은 학생이었다. 신체조건상 그는 기술을 이용해 상대를 쓰러뜨리는 ‘낮춤씨름(변칙기술)’을 익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고교에 진학하면서 이씨의 키와 몸무게는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1년에 10cm씩 키가 크고, 10kg씩 몸무게가 불었다. 고3이 되면서 그는 힘으로 상대를 들어올려 제압하는 ‘큰씨름(들기술)’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1983년 제1회 전국 천하장사대회. 경남대 체육학과 2학년생 ‘이만기’를 주목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까지 이씨는 단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는 신출내기 선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4강에서 만난 선수는 당시 씨름계를 주름잡던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였다. 결과는 2대1로 이만기의 극적인 승리. 이변이었다. 이씨는 내쳐 달려, 전날 한라급 경기에서 무릎을 꿇었던 최욱진을 결승에서 다시 만나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영원한 천하장사 이만기의 시대’를 연 순간이었다. 그 후 1991년 은퇴하기까지 천하장사 10회, 백두장사 18회, 한라장사 7회 등 통산 49회의 우승을 차지하며 씨름계를 평정했다. 그의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천하장사 이만기의 샤브샤브

    불혹의 나이 40. 뜻이 아니고, 길이 아니라면 가지 않을 생각이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이씨는 인제대 사회체육학과 교수이자 KBS 씨름해설위원, 한국씨름연맹 이사, 경남김해배드민턴협회장 등 ‘문무를 겸비한’ 체육계 인사로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열린우리당 체육진흥특위 위원장을 맡았다. 그런 그이지만 털털함과 시골스러움은 여전하다. 그의 오리지널 경상도 사투리에서는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애틋함과 겸손함이 흠뻑 묻어난다. 음식 만들기도 그에게는 추억이다. 배고프고 힘들게 훈련하던 씨름부 합숙훈련시절, 직접 식사를 해결하면서 터득한 것이기 때문이다.

    “샤브샤브는 오래 전에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먹어봤는데 참 맛있더라고요. 그 뒤 가끔 직접 해먹었죠. 그런데 결혼하면서 아내에게 전수하곤 별로 안 해봐서 제대로 할지 모르겠네요”라며 부엌칼을 잡는 그의 손놀림은 그러나 예사롭지 않다.

    샤브샤브는 육수에 갖은 야채와 얇게 썬 고기를 살짝 익혀 먹는 음식. 준비물은 배추와 버섯(송이 표고 팽이), 대파, 깻잎, 쑥갓 등 야채와 얇게 썬 쇠고기다. 먼저 배추는 적당히 썰어 물에 잘 씻고, 쑥갓은 굵은 줄기를 잘라낸 후 적당한 크기로 2∼3등분한다. 깻잎은 꼭지 부위를 잘라낸 후 2등분하는 것이 먹기에 편하다. 쇠고기는 안창살이나 제비추리살 등 기름기 적은 부위가 좋다.

    야채와 고기가 준비되면 육수를 만든다. 육수는 내장을 뺀 멸치와 다시마를 우려내는 것이 기본이다. 멸치에서 내장을 빼는 것은 쓴맛을 없애기 위해서다. 우려낸 멸치와 다시마는 다 건져내고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육수도 중요하지만 샤브샤브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다름아닌 소스. 이씨가 가장 즐기는 소스는 진간장에 레몬즙을 약간 넣고, 땅콩가루를 넣어 섞은 땅콩소스다. 끓는 육수에 준비된 야채와 고기를 살짝 익혀 소스에 찍어 먹으면 레몬의 상큼함과 땅콩의 담백함이 가미된 맛이 가히 일품이다. 야채 중에서는 깻잎과 쇠고기가 가장 궁합이 잘 맞는다.

    야채와 고기를 다 먹은 후에는 남은 국물에 보통 칼국수를 끓여 먹는데, 이씨는 생생우동을 강력 추천한다. 칼국수는 쉽게 퍼지는 반면 생생우동은 쫄깃쫄깃한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국물도 걸쭉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씨는 만능스포츠맨이다. 프로 못지않은 골프실력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배드민턴도 선수급이다. 몸이 빨라진다는 주변의 권유로 중학교 때 배드민턴 라켓을 잡았는데 지금은 경남의 아마추어 대표선수로 꼽힐 정도다.

    요즘 그는 정치판 언저리에 서서 고민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체육진흥위원장을 맡으면서 그의 내년 총선출마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결정한 게 없다. 최근 당내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정치 참여에 회의적이다.

    “오늘 회의에 다녀왔는데, 김원기 의원측과 정동영 의원측이 의장선출방식을 둘러싸고 간선제니, 직선제니 옥신각신 싸우는 것을 보고 무척 실망했습니다. 구 정치인과 다를 게 뭐가 있습니까. ‘정치를 바꿔보자고 모인 사람들이면 국민에게 신명을 주는 정치를 해야지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한바탕 쏘아붙이고 싶었는데 꾹 참았습니다. 조금 더 지켜보다가 뜻이 아니고 길이 아니라면 과감히 접을 생각입니다. 생활체육도 있고, 국민에게 다가가서 봉사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씨름과 함께 국민으로부터 받은 박수와 갈채를 이제 국민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게 그의 진정한 바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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