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호

열린우리당, 당 정체성·주도권 놓고 ‘세력재편’ 혈투 임박

‘환호작약’ 열린우리당의 앞날

  • 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4-04-27 1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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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원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해 명실상부한 집권여당의 위상을 갖췄다. 그러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보수성향이 강한 전문가그룹과 진보성향이 강한 개혁그룹이 가세하면서 당내 이념적 스펙트럼이 크게 넓어져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내대표 선거와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때 약속한 ‘원내1당 책임총리제’에 대해 구성원간 해석이 엇갈리면서 첨예한 대립이 예상된다.
    열린우리당, 당 정체성·주도권 놓고 ‘세력재편’ 혈투 임박

    열린우리당사 주차장에 임시로 마련된 상황실에서 4·15총선 개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당 지도부. 맨 앞줄 왼쪽부터 김근태 원내대표, 정동영 의장, 신기남 의원.

    4월15일 17대 총선 투표 마감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오후 5시. 서울 영등포 열린우리당사에는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오후 들어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높아지고 상당수 접전지역에서 열린우리당 우세로 돌아섰다는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 지도부와 당직자들은 긴장을 쉽게 풀지 못했다. 지난 16대 총선에서 방송사 출구조사와 실제 투표결과가 큰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출구조사도 방송사간 다소 차이는 있었지만 20~30석 이상 빗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투표 마감시간이 다가오면서 ‘혹시나’하는 불안감으로 당내 긴장은 더욱 고조됐다.

    오후 6시 정각. ‘우리당 원내 과반의석 확실’이라는 자막이 깔리면서 출구조사결과가 발표되자 당 지도부와 당직자들은 서로 얼싸안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겼다”는 외침은 곧바로 “대통령 살렸다”로 이어졌다. 순간 단식으로 초췌해진 정동영(鄭東泳) 의장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미경(李美卿), 김희선(金希宣) 등 여성의원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 개표 결과 열린우리당은 지역구 130석에 비례대표 22석을 확보해 과반수인 150석에서 2석을 넘긴 152석을 차지했다. 지난해 9월 민주당에서 분당(分黨), 11월11일 창당대회를 통해 잉태된 의석수 49석의 신생정당이 불과 5개월 만에 원내 과반수를 넘는 의석을 차지한 것은 정치사상 초유의 일이다.

    핵심 당직자들은 선거 사흘 전 정 의장의 선대위원장과 비례대표 사퇴를 계기로 일기 시작한 ‘위기론’과 ‘탄핵심판론’의 재점화에 성공한 것을 이번 승리의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했다.



    정 의장의 ‘노인폄훼’ 발언으로 시작된 ‘노풍(老風)’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선전으로 영남권에 이어 수도권으로 확산된 ‘박풍(朴風)’에 마땅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해 위기에 몰렸던 당 지도부는 이번 총선의 승리로 일단 ‘책임론’에서는 자유로워졌다는 게 당 안팎의 평가다. 이에 따라 당 관계자들은 총선 승리의 감동으로 들뜬 분위기 속에 당분간 정동영 의장 중심체제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원내1당을 넘어 ‘거대여당’으로 탄생한 열린우리당의 앞날을 낙관적으로 보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상당수 당직자들이 이번 총선을 통해 원내에 진출한 의원들간의 극명한 노선· 시각차이로 인해 ‘험난한 여정’을 겪는 게 아닐까 우려하고 있다. 총선 전 문성근(文盛瑾), 명계남(明桂男)씨의 분당 발언에 이어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토론과 타협을 통해 당내에서 다수파가 되기 위한 노선경쟁을 벌일 것”이라는 유시민(柳時敏) 의원의 발언으로 당내 노선갈등은 이미 예견돼 온 터다.

    이를 의식한 듯 총선 직후 의원들은 ‘상생과 통합’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고 나섰다.

    김한길(金한길) 중앙선대위 총선기획본부장은 “(언론이) 큰 오해를 하고 있다. ‘보수냐, 진보냐’ 이념적으로 편가름하면서 자꾸 분파를 조성하고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시대적으로나, 세계적인 조류로 보나 이미 그런 분파적 편가름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출한 김현미(金賢美) 총선기획부단장은 “당은 현재의 정동영 의장 체제와 노선 그대로 별다른 변화 없이 안정을 찾아가고, 청와대와는 보다 긴밀하고 협조적인 관계를 만들어갈 것”이라며 “당내 (노선)갈등은 오히려 언론에서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고 불만을 나타냈다.

    상임중앙위원인 이미경 의원도 열린우리당의 정통성과 관련 “민주주의와 개혁과 평화통일의 정통성을 찾아야 한다”면서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金槿泰) 원내대표간에 이념적으로 약간의 편차는 있겠지만, 그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그러나 “국가보안법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조성태(趙成台) 전 국방부 장관 등 정 의장에 의해 영입된 보수적인 전문가그룹과 김 대표 등 민주화세력, 유시민 의원 등 개혁당 출신간에 극명한 입장차이가 있지 않겠냐”는 질문에는 “아무래도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결국 당내 노선 갈등 가능성을 전면 부정하지는 못한 것.

    당권파와 전문가는 중도보수?

    열린우리당은 이번 총선을 통해 정 의장과 천정배(千正培), 신기남(辛基南) 의원 등 당권파와 새롭게 영입된 전문가그룹이 중심축을 형성한 모습이다. 그 한편에 김근태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재야운동권 및 386 운동권출신그룹과 김원기(金元基) 임채정(林采正) 이해찬(李海瓚) 의원 등 민주당 출신 중진급 의원들이 일정한 연대감 속에 한 축을 이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개혁당을 포함한 개혁신당세력과 청와대 직계 등 친노그룹이 원내에 진출, 당내에 새로운 세(勢)를 만들 조짐도 보인다. 나머지 행정관료 및 지역조직을 기반으로 원내 진출한 신진인사들은 아직 별도의 세력으로 분류되기에는 미흡한 단계. 이들은 조만간 이해관계에 따라 기존의 특정세력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열린우리당은 ‘당권파 및 전문가그룹’과 ‘정통재야세력’ ‘친노세력’ 등 크게 세 그룹으로 분류된다. 다만 이들 제 세력의 결집도는 아직 그다지 끈끈하지 못한 상황. 같은 그룹으로 분류되는 의원들 간에도 세대와 노선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은 까닭이다. 따라서 이들 그룹은 큰 틀을 유지한 채 사안별로 충돌하거나 일정한 연대를 형성하면서 세대별, 정치적 노선별로 재편될 것이라는 게 당내 중론이다.

    실제 당의 정체성을 놓고 예상되는 당내 그룹간 노선갈등 구도를 보면 기존의 틀로는 정확한 ‘편 가르기’가 어렵다.

    정 의장은 지난 3월14일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는 개혁세력이 주축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가야할 방향은 ‘우향우’다. 중간을 향해서 가는 것이다. 안정을 희구하는 중간층, 한나라당에 실망한 보수층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의 정체성을 ‘중도보수’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정 의장의 의중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의 의중은 이번 총선 비례대표 및 지역구 공천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조성태 전 장관과 이근식(李根植) 전 행자부 장관, 서재관(徐載寬) 전 해양경찰청장, 이계안(李啓安) 전 현대캐피탈 사장 등 보수성향 인사들을 영입해 원내진출을 도왔다. 일각에서는 정 의장이 보수성향이 강한 전문가그룹을 영입한 것은 결국 개혁세력이 주축을 이루고 있던 당내에 향후 자신의 지지기반을 다지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당내 새로운 흐름 ‘제3의 길’

    당권파의 핵심은 정 의장과 함께 소위 ‘천신정’으로 불리는 천정배, 신기남 의원이다. ‘정치적 동지이자 친구’로 분류되는 이들이지만 당 정체성 문제에서만큼은 정 의장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특히 천 의원은 1년여 전부터 여의도 모처에 ‘동북아전략연구소’를 만들어놓고 정치, 경제, 사회, 외교, 통일 등 각 분야에 대한 연구를 해오고 있다. 이 연구소는 천 의원의 정치적 판단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천 의원측 한 핵심관계자는 향후 당의 정체성과 관련 “최근 유럽에서는 ‘제3의 길’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색중이고, 이것이 세계적인 추세다”라며 “진보도 보수도 아닌, 진정한 ‘중도개혁’ 방향으로 당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천 의원의 시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을 ‘제3의 길’에서 찾으려는 노력은 이번 총선을 통해 새롭게 원내에 진출한 신진개혁세력으로부터도 호응을 얻을 전망이다.

    지난해 9월 ‘신동아’는 386 재야세력들이 현대자동차의 재정지원을 받아 ‘유럽의 신좌파정당과 제3의 길에 대한 연구’라는 주제로 연수를 다녀온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386 재야운동권의 대표적인 인물인 조혁씨가 설립한 ‘코리아비전센터’ 주최로 이뤄진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연수 참가자 가운데 이철우(李哲禹) 북부비전21 공동대표와 강기정(姜琪正) 개혁국민정당 광주북갑지구당 위원장, 김두수(金斗守) 민주당 개혁특위위원 등이 이번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이 대표와 강 위원장이 원내진출에 성공했다. 경기도 동두천·양주에서 당선된 정성호(鄭成湖) 변호사도 이 대표와 함께 북부비전21 공동대표를 맡았던 인물. 연수에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천 의원과 이들 신진재야운동권 출신을 중심으로 ‘제3의 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당의 정체성 논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제3의 길’은 김근태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재야출신 중진들과 임종석(任鍾晳), 우상호(禹相虎), 이인영(李仁榮), 오영식(吳泳食) 등 386그룹이 견지해 온 ‘중도개혁’ 노선과도 큰 차이가 없다.

    ‘제3의 길’은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 교수가 ‘사회주의의 경직성과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극복하려는 새로운 정치이념 모델을 제시해 주목을 받았던 책 제목에서 유래된 것. 기든스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중도좌파의 입장에서 ‘제3의 길’을 현대 사회민주주의의 복원과 성공에 이르는 길로 규정했다. 단순히 좌우이념의 타협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변화라는 현실에 요구되는 적극적인 방법이라는 주장이다.

    이 새로운 정치이념은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와 독일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등 유럽 중도좌파 정치가들의 이론적 배경이 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됐다. 이는 기존 재야운동권의 이념모델이던 ‘중도개혁’에서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려는 시도다.

    열린우리당은 당 정체성을 놓고 이처럼 크게 ‘중도보수’와 ‘중도개혁’으로 양분되거나 ‘제3의 길’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중도개혁’과 차별화되면서 삼분될 가능성이 크다. 기존의 ‘당권파’와 ‘정통재야세력’의 양대 구도가 아닌 새로운 갈등구도로의 재편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 노무현 대통령 직계그룹과 보다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개혁당’ 출신의 선택이 당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 주요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당내 갈등은 원내대표 선출과정에서 본격화될 전망이다. 원내중심정당을 표방한 만큼 총선 이후 당의 실권이 당의장에서 원내대표로 이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 이후 당의장은 사실상 명예직에 불과하게 된다.

    현재 당내에서는 ‘정통재야세력’의 중심에 서 있는 김근태 원내대표가 재도전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당권파’ 천정배 의원이 원내대표에 도전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양 세력간 대결은 그 어느 때보다 피 튀기는 ‘혈전’이 예상된다.

    이번 총선을 치르면서 김 대표는 정 의장 등 당권파에 대한 감정이 악화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대표측은 이번 총선을 “형식적으로는 ‘성공한 선거’였는지 모르지만 내용면에서는 ‘실패한 선거’였다”고 혹평하고 있다. 정 의장의 ‘독주’ ‘독선’으로 망친 선거를 막판에 가까스로 회복시켰다는 것이다.

    김 대표측에서 이처럼 불만을 내비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김 대표는 공동선대위원장임에도 지역구 및 비례대표 공천과정뿐만 아니라 총선전략을 세우는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 지도부는 비례대표 40명 중 13명의 전략후보를 결정하는 상임중앙위 회의에 원내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김 대표에게 후보명단조차 보여주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 대표는 회의석상에서 “명단도 보여주지 않고 무슨 회의냐”며 수차례 전략후보 명단을 요구했지만 ‘대외비’라는 이유로 결국 거절당했다는 후문.

    상임중앙위는 신기남 이부영(李富榮) 김정길(金正吉) 이미경 의원과 김혁규(金爀珪) 전 경남도지사 등 5명으로 친(親) 정동영 성향의 의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상임중앙위에서 결정한 전략후보 13명 가운데 12명이 정 의장이 영입했거나 정 의장과 절친한 인사들로 결정지어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당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총선 전략도 정 의장의 측근들로 구성된 ‘이너서클’에서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선대본부 조직내부에서조차 불만이 제기됐다. 선대본부 일정도 이들이 좌우했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중앙상임위 회의소집 연락을 받고 바쁜 선거유세 일정을 조정해 당사에 나갔다가 뒤늦게 취소된 사실을 접하고 ‘허탕’친 어이없는 일도 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또 당내 지역구 후보공천 및 비례대표 후보선정을 앞두고 각 후보별 여론조사 분석결과를 정세분석실에 요청했다가 실무자로부터 ‘대외비’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의 원내대표이자 선대본부장으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던 것. 이같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김 대표는 총선 승리를 위해 정 의장의 ‘실언(失言)’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묵묵히 유세장을 돌았다. 그러나 결국 모든 ‘공(功)’은 정 의장에게 돌아간 모습이다. 이런 전후 상황을 고려할 때 김 대표가 원내대표 자리마저 당권파에게 내주기에는 쉽게 마음이 허락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천정배, 김근태 원내대표에 도전장

    김 대표가 원내대표로 재임한 기간은 고작 6개월 남짓. 본인의 희망이던 원내정당중심의 정치를 제대로 꽃 피워보지도 못한 채 그만두기에도 못내 아쉬울 법하다.

    김 대표측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면서도 “지난 6개월은 초기 실험단계였다. 아직 원내대표제도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상태다. 이제 원내의석 수도 과반 이상을 차지한 만큼 새 국회에서 제도를 정착시키고, 제대로 운영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 않겠느냐”고 김 대표의 원내대표 출마가능성을 열어놨다.

    반면 천정배 의원측은 원내대표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천 의원은 원내총무에 출마했다가 한 차례 낙선한 경험이 있다.

    천 의원측은 “지난 중앙위원선거 때 기존 현역의원들이 나서지 않아 개혁당 출신이 많이 진출했고, 이후 상당히 조직적으로 움직여 수에 비해 영향력이 크게 비쳐진 측면이 있는데 이런 점을 잘 조정해야 한다”면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개혁당 세력을) 불안정한 세력이라고 공격하고 있는데 잘 관리되지 않으면 사실과 다르게 확대 해석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천 의원측은 “이처럼 중차대한 정국에서 천 의원처럼 내공이 있는 사람이 맡아서 이끌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시각이 있다”고 전하고 “그동안 공부와 준비를 많이 했고 많은 분이 인정하고 있는 만큼 천 의원도 당연히 출마하고 싶고, 내부에서도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김 대표와 천 의원간에 세 싸움은 불가피하다는 이야기. 천 의원측은 “이미 열린우리당 창당 초기 재야파의 리더십과 정체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개혁당과 친노그룹이 ‘천신정’과 함께 가려고 하지 않겠느냐”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번 총선과정에서 각 계파별 친소(親疏)관계가 상당히 복잡해져 천 의원측으로서는 장담키 어려운 상태다. 친 김근태계로 분류되는 세력은 재야 및 당 중진그룹과 이번 총선에서 약진한 386출신그룹이다. 반면 친‘천신정’에는 정 의장이 영입한 전문가그룹, 한나라당 탈당파 6명 중 이번 총선에서 살아남은 김부겸(金富謙), 김영춘(金榮春), 안영근(安泳根) 의원이 가세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개혁당과 친노직계 그룹은 자신들의 지지향배에 따라 원내대표 선거판세가 좌우될 경우 사실상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 각자의 성향을 보면 하나의 세를 형성하기에는 다소 미흡하다.

    개혁당 그룹의 경우 기존 유시민 김원웅(金元雄) 의원에 이번 총선에서 유기홍(柳基洪), 김태년(金太年), 안민석(安敏錫), 이광철(李光喆) 등 6명이 추가로 원내에 진입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유기홍씨는 과거 민청에서 김근태 대표와 함께 일했던 경험이 있고, 김태년씨는 전대협 출신으로 기존 386그룹과 친밀한 사이다. 또 지역 재야정당인 출신인 이광철씨와 중앙대 사회체육학부 교수출신인 안민석씨도 유 의원이 주도하는 개혁당의 색깔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인물들.

    원내1당 총리제, 탄핵까지는 잠복기

    친노직계 그룹간에도 ‘천신정’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서갑원(徐甲源) 전 의전비서관과 염동연(廉東淵) 전 특보 등 일부는 ‘천신정’에 비교적 우호적인 반면 문희상(文喜相) 비서실장과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 이광재(李光宰) 국정상황실장 등 전 청와대 참모진은 지난해 천 의원의 끊임없는 ‘쇄신요구’에 시달린 전력이 있어 상당히 비판적이라는 것.

    이들은 특히 이번 총선을 계기로 ‘천신정’측과의 거리가 더욱 멀어졌다고 한다. ‘노풍(老風)’으로 인해 부산·대구·경남북 등 이들이 주력했던 지역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라는 게 한 관계자의 설명. 그나마 정 의장과 가까웠던 이강철(李康哲) 영입추진단장도 총선 전부터 정 의장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는데, 결국 낙선의 고배를 마시면서 그 불만이 더 커졌다는 전언.

    친노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 단장은 당초 비례대표를 약속받고 중앙당 차원의 선거운동에 나서고 싶어 했으나 결국 좌절돼 지역구로 출마하게 된 것”이라면서 “그런데 정 의장은 선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노풍’으로 상황을 악화시키면서 비례대표를 통해 자기사람만 챙긴 것처럼 오해를 살 여지를 남겼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친노그룹이 김 대표측과 가까운 것은 아니다. 이 관계자는 “원내대표 선거가 있다 하더라도 친노그룹이 단일대오를 형성하기는 어렵고, 사람에 따라, 친소에 따라 편이 갈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지난 대선에서 노 대통령이 공약한 ‘원내1당 책임총리제’에 대한 논란은 탄핵정국이 끝날 때까지는 당분간 수면 위로 부상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또한 당내 갈등요소.

    이미경 의원은 노 대통령의 ‘원내1당 총리약속’과 관련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당에서 총리가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신기남 의원측은 “노 대통령이 약속을 지킬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 공약에는 전제가 있다. ‘상생의 정치를 하자’ ‘여당에 대한 권한을 내놓을 테니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자’ 그러면 줄 수 있다는 전제였다. 그런데 야당은 대통령을 탄핵했다. 전제가 송두리째 지켜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 공약은 백지화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열린우리당은 이처럼 사안별로 매우 다양한 의견 속에서 다양한 그룹으로 재편될 개연성이 높은 상황이다.

    정동영 측근, 의장직 사퇴 시사

    총선 이후 대통령 탄핵국면이 끝날 때까지 남은 변수 중의 하나가 정 의장의 의장직 사퇴여부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정 의장의 총리 또는 통일부총리 기용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정 의장측에서는 이후 정국상황을 봐가며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반응이다.

    한 측근은 “잠시 정치권을 떠나서 시간을 갖고 공부를 하면서 앞으로 더 큰 일을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총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의장직 사퇴를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만일 정 의장이 사퇴할 경우 임시전당대회 시기 및 의장직을 둘러싸고 각 계파간 합종연횡과 미묘한 대립도 예상된다.

    열린우리당은 순식간에 비대해진 몸집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한동안 내홍에 시달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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