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호

제16대 국회 4년 결산과 평가

독립성·자율성은 신장, 갈등은 중첩

  • 글: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의회행정학

    입력2004-04-27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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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5월30일부터 시작한 제16대 국회의 4년 임기가 오는 5월29일로 끝난다. 김대중 정부의 후반부 2년 반과 노무현 정부의 전반부 1년 반. 16대 국회는 사적 권위주의 체제의 끝자락과 새로운 체제를 모색하려는 전환기의 혼란과 무질서 사이에 놓여진 징검다리였다.
    제16대 국회 4년 결산과 평가

    2000년 6월5일 16대 국회개원식에서 의원들이 의원선서를 하고 있다.

    16대 국회는 회기 중 대통령 선거와 권력 이동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권력투쟁적 수요가 크고, 이에 따른 정파간 이견의 조율이나 타협점 도출에 대한 주문이 큰 의회였다.

    그러나 현실정치는 오히려 이런 주문을 외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회 내부구조를 들여다볼 때 지난 4년 동안 협력보다 갈등, 대화보다 투쟁이 우선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경제개발 주도세력과 민주화 투쟁세력 내지는 그 후계 세력 간의 갈등으로 단순 이분화되던 원내의 권력 지형에 우파와 좌파, 수구와 개혁, 부패와 반부패, 친미와 반미, 반통일과 통일 등 실로 다양한 대결구도가 추가되면서 반목의 다층화 내지는 갈등의 중첩 현상을 낳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영호남으로 단순화되던 지역감정도 전북과 전남, 경남과 경북으로 한층 더 세분화하고 그만큼 더 파편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권력의 카르텔을 형성하던 3김 시대의 퇴장과 함께, 우리 정치가 정치권 구성원간의 수평적 연대력이 생성되기도 전에 파편적 분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그만큼 조정과 타협을 이루기가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일원주의적 권위구조의 파편적 분화가 우리 국회에 역진적 현상만을 가져왔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16대 국회에서는 국회의 대외적 독립성과 대내적 자율성이 크게 신장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사상 초유의 거대 야당이 등장한 데 따른 결과다.

    16대 국회의 최초 원 구성 당시 의석분포를 보면 한나라당 133석, 민주당 115석, 자민련 17석, 기타 정당과 무소속 12석이었다. 제1당인 한나라당은 총 의석수 273석의 과반수에서 단 4석이 모자랐다. 이런 여소야대 현상이 16대 국회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거대 여당에 의해 주도되기 마련이었던 과거 국회의 1.5당제(여1.5 대 야0.5, 과거 거대 여당 중심체제를 지칭하는 정치학 용어)적 현상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16대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한나라당의 의석 규모는 더 커졌다. 열린우리당이 창당되면서 사실상의 여당인 열린우리당(43석)과 제1야당 한나라당(149석) 간의 의석수 격차가 무려 106석에 이르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제3당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전체 의석수의 17.3%만을 점유하는 극소수 여당 시대를 열었다. 이는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대통령이 민주당을 탈당하면서 시작된 법률적 여당 부재 사태의 장기화 현상도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런 요인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대통령을 위시한 행정부의 국회에 대한 통제력이 급속히 감소했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회의 대외적인 독립성과 대내적인 자율성이 크게 회복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극점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임기 만료 2개월여를 남겨두고 발생한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다. 전통적으로 행정부 내지는 대통령의 시녀로 평가되던 국회가 단순히 외부 통제력으로부터 자신의 기관 독자성을 확보하는 단계를 넘어, 오히려 행정부를 압도하는 국가 권력구조상의 실질관계 재편 시도에 나섰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16대 국회는 역대 국회 중 행정부와의 관계에서 가장 권력적 우위를 누린 국회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미 후반기 국회의장선거에서 예견됐다. 제6대 국회 이래 사실상 처음으로 국회의장이 국회의원들의 자주적이고 자율적인 선택에 의해 선출됐던 것이다. 과거의 국회의장이 외형적으로는 원내 국회의원의 투표에 의해 선출되면서도 실제로는 원외의 대통령에 의해 내정되거나 지명 차출돼 왔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이는 매우 획기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결과 야당 출신 국회의장이 등장하는 변화가 나타났다.

    국회의장의 원내 지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과거에는 국회 운영의 기본 틀이 원내총무간 합의된 사항이 국회의장에게 통고되는 형태로 짜여졌으나, 이제는 국회의장이 총무회담의 주재자로 나서 국회운영의 기본방향을 주도하는 일이 잦아졌다. 소극적, 상징적 관리자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조정자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이런 국회 운영양식상의 변화는 정당 소속의 원내총무에 대한 국회의장의 통제권이 신장됐다는 점에서 볼 때 기관으로서의 국회가 갖는 ‘대(對) 정당 독자성의 제고’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행정부 통제장치 인사청문회

    이처럼 국회가 독립적인 위상을 정립해나가기 시작한 현상은 16대 국회가 처음으로 도입한 ‘인사청문회’라는 대 행정부 통제장치에 의해 배가된 측면이 있다.

    2000년 6월부터 도입된 인사청문회 제도는 임명과정에서 국회의 동의를 구하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는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및 대법관과 국회에서 선출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등에 대해 국회가 임명동의나 선출의 전제조건으로 청문회를 실시하도록 했다. 2003년 2월에는 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후보자로 그 대상이 확대됐다.

    그 결과 16대 국회는 모두 23명에 대해 인사청문을 실시했다. 이 가운데 장상 국무총리 피지명자, 장대환 국무총리 피지명자, 윤성식 감사원장 피지명자, 고영구 국정원장 피지명자 등에 대해서는 국회가 임명동의를 하지 않거나 부적격자로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행정수반의 인사권 행사에 강력한 제동을 걸었다. 특히 고영구 국정원장 피지명자에 대한 국회 정보위원회의 부적격 의견 제시는 정보위원회가 당시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장악한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현상이었다.

    국회가 대 행정부 통제권을 강화하는 현상은 2003년 12월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안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데 대해서 국회가 이를 재의 끝에 재가결, 확정시킴으로써 절정을 이루게 된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국회가 다시 거부하고 재확정한 일은 1961년 4월 제5대 국회에서 재의요구 법안을 법률로 확정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원내 안건 심사과정에서도 같은 현상이 목격됐다. 과거 정부제출 의안이 거의 무수정 통과되던 것과는 달리 제16대 국회에서는 정부제출 의안 대부분이 국회에 의해 가감첨삭된 후에야 통과 또는 부결된 것. 더 이상 국회가 무수정 통과를 일삼는 통법부(通法部)이기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법안실명제의 허실

    그렇다고 해서 국회의 입법권이 대 행정부와의 관계에서 완전히 회복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법률안 확정률을 보면 의원발의안보다 정부제출안이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의원발의안의 경우 총 1907건 가운데 491건이 통과됨으로써 26.0%의 법안 확정률을 보였다. 반면 정부제출안의 경우에는 모두 595건의 법률안 가운데 424건이 가결됨으로써 71.3%의 법안 확정률을 기록했다. 법안의 충실도 면에서 볼 때 국회는 여전히 행정부에 의해 압도당하고 있다는 의미다. 주요 의제의 선점력에 있어서도 여전히 행정부가 국회를 앞섰다. 이런 현상은 16대 국회의원 중 시민사회단체에 의해 의정활동 최우수 의원으로 선정된 한 의원이 700여건의 안건을 제안했지만 그중 법률로 확정된 것은 단 1건에 지나지 않았다는 극단적 사례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다만 법률안의 제안자 비율 면에서 의원발의 법률안이 정부제출 법률안을 크게 상회했다는 사실은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의원발의 법률안이 1907건인 데 비해 정부제출 법률안은 595건. 정부제출안은 의원발의안 대비 31.2%에 지나지 않았다. 의원발의 법안 수가 정부제출 법안 수를 크게 상회한 것은 제6대 국회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그만큼 국회의 의제 설정력이 급속히 신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의제 설정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의원 명의로 제안된 법률안이라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것이 의원에 의해서 처음부터 발안된 것인지에 대해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나 이익단체가 성안한 내용을 의원 명의를 빌어 제안하거나, 국회가 4당 체제로 전환되면서 정파간의 정략적 접근으로 인해 상대당이 제안한 법안을 거의 그대로 도용한 경우도 적지 않은 까닭이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이를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원입법안 발의 건수가 왜 이처럼 크게 증가한 것일까. 그건 이번 국회에서 처음 도입된 법안실명제 때문이다. 국회는 국회의원의 원내 활동에 대한 투명성과 공개성을 제고하고 그 결과 국회의원에 대한 유권자의 통제권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할 때에는 그 법률안의 부제로 대표 발의의원의 성명을 기재하도록 했다. 그 결과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이 촉진되었고, 그 영향으로 국회의 의제설정권이 정부를 압도하는 현상으로 나타난 측면이 있다.

    강화된 국회 예·결산 심의기능

    16대 국회는 또 예산 및 결산의 심의 과정 개선과 지원체제의 강화를 통해 국회의 대행정부 통제력을 확장하고, 국회의 대외적 독립성을 제고하는 변화도 보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16대 국회가 역대 국회 중 예산 및 결산 심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가장 높은 국회였다고도 할 수 있다.

    먼저 예산안 심의에 있어서 상임위원회 단계의 예비심사에서 예산이 감액되는 경우에는 예결위원회의 본심사에서 이를 증액할 수 없도록 규정함으로써, 상임위원회의 예비심사가 허술해지는 현상을 미연에 방지하고 국회의 예산 심사과정이 지니는 정치적 비중을 강화했다. 과거에는 상임위원회의 예산안 심의 결과와 관계없이 예결위원회의 계수조정소위원회 결정에 따라 실질적인 예결산 심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 결과 상임위원회의 예산안 심의에 대해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16대 국회 이후에는 상임위원회의 예비심사에 내재돼 있는 소극적 제어력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제16대 국회 4년 결산과 평가

    개원한 지 두 달도 채 안 된 2000년 7월24일, 국회 운영위에서 날치기 파동이 빚어지면서 의원들이 의사봉을 놓고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는 결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6대 국회는 조기결산심사제도를 도입해 결산에 대한 국회의 심의가 정기국회 전까지 완료될 수 있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정기국회가 개회되는 시점인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에 결산서를 국회에 제출하도록 했기 때문에 국회로서는 방대한 결산서를 제대로 심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결산 심사가 졸속으로 처리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결산서 심사와 예산안 심의가 거의 같은 시기에 진행됨으로써 결산의 결과를 예산안 심의에 반영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조기결산심사제도가 도입돼 감사원의 감사를 거친 결산과 기금결산을 회계연도마다 매년 5월31일까지 제출토록 정부에 요구하고, 결산에 대한 국회의 심의를 정기국회 전까지 완료하도록 함으로써 결산의 결과를 예산안 심의에 반영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 제도는 2004년도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이런 법률적 토대가 16대 국회에서 마련됐다는 점에서 16대 국회의 예·결산에 대한 인식의 정도와 나아가서는 대행정부 통제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게 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16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예·결산 지원업무 전담 기구가 설립됐다는 점이다. 국회는 예산정책처를 신설하고 이를 통해 법률안 비용추계, 예산결산의 분석과 지원, 경제동향 측정과 전망, 주요사업의 진단과 평가를 수행해나가기로 했다. 지금까지 국회는 국회 전속의 독자적인 예결산 관련 정보수집 및 평가 장치가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행정부의 예산안 편성 의도나 결산서 작성 지침의 범위를 벗어나 독자적으로 예산안이나 결산안을 심의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예산정책처가 설립돼 앞으로는 예·결산과 관련해 행정부 의존적인 심사양식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없게 된 것이다. 사업평가나 법률안 비용추계 등도 국회의 입법능력을 질적으로 신장시켜주는 것은 물론이고 국회의 대행정부 독립성과 기관 독자성을 높이는 일에 기여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같은 맥락에서 16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감사원에 대한 감사청구제도도 국회의 대행정부 통제력을 강화하는 장치다. 이 제도로 인해 국회는 감사원이 감사원법에 의해 수행하는 통상적인 감사행위 중 사안을 특정해 감사를 주문하고 그 결과를 보고받게 됨으로써, 보다 객관적이고 실효성 있는 감사관련 정보를 획득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국회가 감사원을 통해 간접 감사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그 결과를 토대로 국회의 대행정부 통제활동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회의 기관 독자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 틀림없다. 국회가 이런 권한을 추가했다는 사실 자체가 간접 통제효과를 동반하는 것도 물론이다.

    또 과거의 국회와 크게 달라진 점을 찾자면 물리적 충돌이나 대치가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상대당을 겨냥한 의원들의 이벤트성 집회나 시위는 여전했지만 최소한 물리적 강제력을 통해 위법한 양식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날치기 사태는 크게 줄어들었다.

    3김 시대의 종언과 함께 정당 내부의 권력구조도 과거와 달리 크게 수평화됐다. 이러한 변화는 정당 내부 의사결정권의 중추가 다핵화 하는 결과를 낳았다. 자연 다양한 의사결정의 주체들이 서로 접촉하는 가운데 대화의 통로가 확장됐고, 정당 내부의 경직된 의사결정구조도 완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파싸움에 놀아난 국회

    이런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16대 국회가 악화시킨 것으로 평가되는 문제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국회가 정당으로부터 독립하는 일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정파간의 대립과 갈등이 그대로 국회에 전이되면서 국회 본연의 업무보다는 당리당략적인 차원의 과제 수행에 우선적인 목표를 두게 됐다. 당파간의 첨예한 대립이 국회의 운영양식을 왜곡하는 일도 일상화됐고 원 구성조차 정파간의 이해관계 대립으로 제때 이루어지지 못했다. 전반기 국회가 2000년 6월2일, 후반기 국회가 2002년 7월8일에 구성됨으로써 임기 개시일을 길게는 한 달 이상 넘기는 사태를 빚기도 했던 것.

    전반기 국회가 제15대 대통령선거의 유재 청산에 발목을 잡혀 안풍, 병풍, 세풍 등으로 정파간 갈등의 파장을 높였는가 하면, 후반기 국회에서는 제16대 대통령선거와 관련한 불법대선자금, 불법경선자금, 각종 대가성 금품 수수 등의 비리 혐의로 국회의원이 체포되거나 체포동의안이 제출되는 사례가 속출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각종 비리나 부정사건에 연루된 국회의원을 보호하려는 정당 수뇌부의 욕심이 국회 소집을 남발케 했다. 소위 방탄 국회의 상시화 현상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여하튼 국회의 개회 일수는 크게 늘어나 거의 상설화되다시피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작 정책과제를 다루는 회의 일수는 그에 비례해 증가하지 못했다. 정당법, 선거법, 정치자금법 등의 개정 문제가 정치개혁 차원에서 주문된 지 오래지만 정파간의 이해관계 대립으로 인해 임기 말에야 이를 다루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를 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정개특위는 소속 정당의 당파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위원들간 입장 차이로 인해 4차례나 활동시한을 넘기고서야 겨우 개혁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특히 국회의원 정수와 선거구 획정 문제는 17대 국회의원 선거일을 한 달여 앞두고서야 가까스로 합의를 이뤄냈다. 예산안 심의에 있어서도 당파간 이견 조정의 실패는 여전했다.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2002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예산안 심의가 법정시한을 넘기고서야 겨우 처리되는 사태가 계속됐다.

    결국 국회가 정파간 이견을 조정하고 타협을 촉진하는 대화와 협상의 공간이었다기보다는 당파적 갈등과 대결을 증폭시키는 기제로 작용했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국회의 기관운영 차원에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규범이나 질서를 파괴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국회에 의한 대통령의 탄핵이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제16대 국회는 역대 국회 중 기관으로서의 국회에 대한 사회적인 신뢰수준이 가장 낮았던 국회라고까지 말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무엇보다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이 국민의 정치적 판단이나 주문과는 상당한 괴리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국회의 대의기능 수행능력에 심각한 장애가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촛불광장의 민의’와 여의도 의사당 내부에서 포착되는 민의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있었던 것이다.

    이는 국회에 참여능력이 미처 마련돼 있지 못한 탓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메일이나 휴대전화 등과 같은 정보통신장치를 통해 형성되고 촉진되는 여론의 소재를 추적하고 대응해나가기에는 우리의 정당체제나 대의구조가 너무 낙후되어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대의체제로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정치구조적 특성과 수요에 조응해나갈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만든 것도 바로 제16대 국회인 셈이다. 이 모두가 국회를 당파간의 권력 투쟁장으로 인식한 결과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정당으로부터의 독립이 관건

    이제 남은 과제는 국회가 정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다. 국회는 또 본질적으로 유권자와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 국회가 행정부나 정당으로부터 독립해 자율권을 유지해나가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국회에 대한 유권자들의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회의 자기 성찰력과 제어력을 담보하기 위해서도 유권자의 감시와 감독, 그리고 지지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16대 국회가 유권자와의 관계개선에 유의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이번 국회에서는 상임위원회의 안건 심의과정에서 청문회를 개최하거나, 개별 국회의원 차원에서 다양한 사회 전문가 집단이나 여론 선도층과 접촉하려는 노력이 크게 늘었다. 이는 과거 국회와 비교할 때 괄목할 만한 변화다. 또 국회방송국의 설립은 국회가 유권자와의 접촉면을 넓히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오는 5월부터는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이 전용채널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된다.

    인터넷상의 웹캐스팅을 통해 의정중계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도 국회가 자신의 활동을 보다 더 개방하고 투명화함으로써 유권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국회와 국회의원의 홈페이지가 기능적인 개선을 거듭하고 있으며 전자우편을 통한 유권자와의 대화가 일상화 됐다는 점도 큰 변화다. 현재 국회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홈페이지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물론 아직 한계는 있다. 국회의원이 원하는 정보를 유권자에게 배포하거나 유권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일에는 홈페이지를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화와 참여의 공간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인 것. 전자우편의 경우도 형편은 비슷하다. 정책적 요구를 전달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등 전자우편이 정책결정체계의 중요 구성인자로 자리 매김하기에는 아직 이른 단계라는 평가다.

    16대 국회는 참여민주주의 준비과정

    다행인 점은 국회가 기관 차원에서 전자의회를 운영하고 그 기능을 고도화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전자국회의 웹사이트를 통해 정책이 창안되고 여론이 조성되며 진정과 청원이 활성화되는 유권자 참여의 공간으로 진화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이버 공간을 통해 국회와 유권자가 직결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차원의 시민사회가 국회의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작업이 필요하다. 따라서 전담부서를 설치하는 일이 마땅하다. 영국의 스코틀랜드 의회는 시민사회단체와 네트워크를 형성해 이를 통해 전달되는 정책과제나 대안을 입법과정에 반영하는 전담부서를 따로 두어 운영하고 있다. 타석지석으로 삼아볼 만한 일이다.

    유권자의 참여공간을 혁신적으로 확장하고 질적인 내용을 개선하는 것, 이는 단순히 대의민주주의를 정상화하자는 차원에서 접근할 과제가 아니다. 대의민주주의의 내재적 한계를 보완하고 참여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국회의 최우선 과제인 것이다. 이를 위해 전자의회의 구성과 운영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시민사회단체와의 연결망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전문가 집단의 활용을 제도화 하는 일도 다음 국회가 필수적으로 다루어야 할 과제다.



    이 모든 일의 효율적인 집행을 위해 국회 내부의 자기 제어력과 도덕적 규범을 정립하는 일이 선결돼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16대 국회는 단순히 권위주의 시대를 완결하고 민주화 시대를 여는 도약대 이상의 것이며,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수요를 포착하고 이를 준비하는 요람으로서의 의미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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