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6월5일 16대 국회개원식에서 의원들이 의원선서를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정치는 오히려 이런 주문을 외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회 내부구조를 들여다볼 때 지난 4년 동안 협력보다 갈등, 대화보다 투쟁이 우선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경제개발 주도세력과 민주화 투쟁세력 내지는 그 후계 세력 간의 갈등으로 단순 이분화되던 원내의 권력 지형에 우파와 좌파, 수구와 개혁, 부패와 반부패, 친미와 반미, 반통일과 통일 등 실로 다양한 대결구도가 추가되면서 반목의 다층화 내지는 갈등의 중첩 현상을 낳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영호남으로 단순화되던 지역감정도 전북과 전남, 경남과 경북으로 한층 더 세분화하고 그만큼 더 파편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권력의 카르텔을 형성하던 3김 시대의 퇴장과 함께, 우리 정치가 정치권 구성원간의 수평적 연대력이 생성되기도 전에 파편적 분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그만큼 조정과 타협을 이루기가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일원주의적 권위구조의 파편적 분화가 우리 국회에 역진적 현상만을 가져왔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16대 국회에서는 국회의 대외적 독립성과 대내적 자율성이 크게 신장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사상 초유의 거대 야당이 등장한 데 따른 결과다.
16대 국회의 최초 원 구성 당시 의석분포를 보면 한나라당 133석, 민주당 115석, 자민련 17석, 기타 정당과 무소속 12석이었다. 제1당인 한나라당은 총 의석수 273석의 과반수에서 단 4석이 모자랐다. 이런 여소야대 현상이 16대 국회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거대 여당에 의해 주도되기 마련이었던 과거 국회의 1.5당제(여1.5 대 야0.5, 과거 거대 여당 중심체제를 지칭하는 정치학 용어)적 현상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16대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한나라당의 의석 규모는 더 커졌다. 열린우리당이 창당되면서 사실상의 여당인 열린우리당(43석)과 제1야당 한나라당(149석) 간의 의석수 격차가 무려 106석에 이르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제3당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전체 의석수의 17.3%만을 점유하는 극소수 여당 시대를 열었다. 이는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대통령이 민주당을 탈당하면서 시작된 법률적 여당 부재 사태의 장기화 현상도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런 요인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대통령을 위시한 행정부의 국회에 대한 통제력이 급속히 감소했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회의 대외적인 독립성과 대내적인 자율성이 크게 회복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극점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임기 만료 2개월여를 남겨두고 발생한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다. 전통적으로 행정부 내지는 대통령의 시녀로 평가되던 국회가 단순히 외부 통제력으로부터 자신의 기관 독자성을 확보하는 단계를 넘어, 오히려 행정부를 압도하는 국가 권력구조상의 실질관계 재편 시도에 나섰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16대 국회는 역대 국회 중 행정부와의 관계에서 가장 권력적 우위를 누린 국회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미 후반기 국회의장선거에서 예견됐다. 제6대 국회 이래 사실상 처음으로 국회의장이 국회의원들의 자주적이고 자율적인 선택에 의해 선출됐던 것이다. 과거의 국회의장이 외형적으로는 원내 국회의원의 투표에 의해 선출되면서도 실제로는 원외의 대통령에 의해 내정되거나 지명 차출돼 왔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이는 매우 획기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결과 야당 출신 국회의장이 등장하는 변화가 나타났다.
국회의장의 원내 지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과거에는 국회 운영의 기본 틀이 원내총무간 합의된 사항이 국회의장에게 통고되는 형태로 짜여졌으나, 이제는 국회의장이 총무회담의 주재자로 나서 국회운영의 기본방향을 주도하는 일이 잦아졌다. 소극적, 상징적 관리자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조정자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이런 국회 운영양식상의 변화는 정당 소속의 원내총무에 대한 국회의장의 통제권이 신장됐다는 점에서 볼 때 기관으로서의 국회가 갖는 ‘대(對) 정당 독자성의 제고’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행정부 통제장치 인사청문회
이처럼 국회가 독립적인 위상을 정립해나가기 시작한 현상은 16대 국회가 처음으로 도입한 ‘인사청문회’라는 대 행정부 통제장치에 의해 배가된 측면이 있다.
2000년 6월부터 도입된 인사청문회 제도는 임명과정에서 국회의 동의를 구하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는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및 대법관과 국회에서 선출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등에 대해 국회가 임명동의나 선출의 전제조건으로 청문회를 실시하도록 했다. 2003년 2월에는 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후보자로 그 대상이 확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