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정 차관은 공안 업무를 다루는 법무부 검찰3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으나 모르기는 3과장도 마찬가지였다. 사전에 검찰로부터 아무런 언질을 받지 못했던 3과장은 부랴부랴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로 전화해 그 사실을 확인했다. 그 와중에 대검 공안부에서 전화로 그 사실을 알려왔다. 3과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강 장관은 매우 당황해했다.
‘촛불 체포영장’ 청구 전날 정례회식
체포영장 청구의 적절성 여부와 별개로 이 사건이 화제가 된 것은 검찰이 ‘중대한 시국사건’의 경우 법무부에 사전보고해온 관행을 깨고 독자적으로 일을 처리했기 때문이다. 강 장관은 법리적 다툼을 떠나 이 일로 송 총장에 대해 ‘배신감’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체포영장 청구 전날이자 검찰이 경찰에 영장 청구를 지시한 날인 3월25일 두 사람은 각자 휘하 간부들을 대동하고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일종의 정례회동이었다. 분위기도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송 총장은 당시 가장 큰 현안이었던 촛불집회 체포영장 청구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기정사실화된 강 장관과 송 총장의 갈등에 대해 대검의 한 간부는 “두 분 모두 자존심을 굽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두 분의 생각이, 특히 시국관에서 차이가 큰 게 사실”이라며 두 사람의 갈등이 필연적인 것임을 시사했다.
“송 총장은 보수적인 검찰 조직에 오랫동안 몸담아온 분이고 민변 출신인 강 장관은 어찌 보면 그 반대편에 섰던 분이다. 강 장관이 처음 부임했을 때의 충격은 많이 해소됐고 극단적인 거부감도 사라졌다. 하지만 근본적인 시각 차이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공안부서 검사들과는.”
촛불집회 체포영장 사건을 두고 검찰 안팎에서는 ‘대검이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일고 있다. 이 사건을 비롯해 최근 대검의 행보나 대검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들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우려의 본질은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국민적 신망을 얻은 검찰이, 정치적 독립 등 위상 강화에만 치중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개혁적인 검찰상 확립에는 소극적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런 문제 제기는 특히 검찰 개혁을 주도하는 법무부에 대검이 맞서는 듯한 양상을 보이면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법조계에서 거론되는 검찰 또는 대검 비판론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촛불집회 체포영장 청구과정에서 드러났듯 공안사건에 대한 경직된 대응방식이다. 대검은 이 사건을 통해 검찰의 시국관이 과거 공안정국 시절과 비교해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줘 촛불집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수많은 시민을 놀라게 했다. 뒤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는 단순히 ‘민의가 반영된 평화로운’ 촛불집회에 제동을 걸었다는 ‘감성적인’ 이유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법논리로만 따져도 논란이 될 소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민의가 반영됐다’는 표현은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드러난 압도적인 탄핵반대 여론을 감안하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둘째는 정기인사 연기에 대한 논란이다. 강 장관은 지난 2월 정기 인사철을 맞아 자신의 검찰개혁 구상을 뒷받침하는 대규모 인사를 계획했으나 송 총장의 결사반대와 이를 수용한 청와대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에 따라 검찰 간부 인사는 총선 이후로 연기된 상태다. 인사 반대의 주요 명분은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중이라는 것과 총선에 대한 총력대응이었다.
그러나 이 논리는 검사들로부터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 연기방침에 일선 검사들은 크게 동요했고 곳곳에서 불만이 표출됐다. 인사를 총선과 연계시킨 것에 대해 ‘검찰의 독립성 확보를 내세워 법무부에 맞서는 대검이 오히려 정치적 행보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이처럼 불만이 고조되자 송 총장은 대검 확대간부회의에서 인사 연기의 취지를 설명하고 검사들의 양해를 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셋째는 수사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다. 먼저 잦은 영장 기각. 검찰 밖에서는 물론 내부에서도 말이 나오고 있다. 수사에 대한 열정과 의욕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무리한 인신구속 시도는 증거제일주의에도 반하는 것이거니와 시대 흐름인 인권우선주의에도 거슬리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수사과정에 자꾸 자살하는 사람이 생기는 사태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피의자가 ‘불명예’를 감당하지 못해 자살한 것을 수사기관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도의적 책임은 피할 수 없으며 수사방식에 대한 자성 또는 점검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