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옹진군이 올해부터 신규 허가를 내주지 않기로 하면서 이 지역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바닷모래 채취가 이뤄져온 곳이다. 그러나 이날로서 ‘합법 채취’도 막을 내리게 됐다. 태안군도 앞으로 신규 허가를 내주지 않기로 하고, 3월 말까지 지난해 허가한 양만큼의 모래 채취를 끝마치도록 못박았기 때문이다.
성난 민심을 의식한 듯 태안해경 경비정이 자못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조업중인 바지선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를 통해 바지선이 허가구역 경계선 바로 위에 서 있음이 확인됐다. 경비정의 조성일 선장(태안군청 해양수산과)은 “허가구역에 모래가 별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바지선들이 허가구역을 이탈하는 일이 잦다. 경계선을 넘어가는 순간 해경이 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선장은 뱃머리를 북쪽의 장안사퇴 쪽으로 돌렸다. 거대한 모래 퇴적지역인 장안사퇴는 썰물 때면 해수면 위로 떠오르는 바다의 숨은 섬이다. 꽃게, 넙치 등 해양생물의 서식지이자 산란지이기 때문에 어민들에게는 삶의 터전과도 같은 곳. 조 선장은 “모래가 풍부하고 수심이 낮은 장안사퇴 주변이 불법 채취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동승한 태안군청 건설과 허구복씨는 “군청은 어민들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육지에서 40∼50km 떨어진 먼바다에서 골재용으로 적합한 모래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모래 채취로 벌어들이는 100억원 정도의 세수(稅收)는 빠듯한 군 재정에서 무시 못할 존재”라고 귀띔했다.
12년간 63빌딩 710개 분량 퍼내
바닷모래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옹진군과 태안군 등 바닷모래 채취 허가권을 쥔 지방자치단체들이 올해부터 신규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건설업계에 ‘모래 비상’이 걸린 것. 모래는 레미콘 재료의 60%를 차지하기 때문에 모래 없이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옹진군에서 채취되는 바닷모래는 수도권 골재용 모래 수요의 70%를 차지한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부터 바다에서 모래를 채취하기 시작했다. 1992년 이후 퍼올린 모래만 해도 총 2억8000만 루베(㎥). 이는 63빌딩 710개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이다. 강모래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바닷모래가 전체 모래 공급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1992년 15%에 머물던 바닷모래의 비중은 2003년 33%로 크게 늘었다.
옹진군은 해안선 유실, 해양생태계 파괴, 어획량 급감 등을 이유로 모래 채취를 중단시켰다. 지난 20여년 동안 옹진군 일대에서 퍼올린 모래만 해도 무려 2억3000만루베에 달한다. 이 같은 사정은 옹진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심이 얕고 모래 퇴적층이 발달한 서해에서 주로 모래 채취가 이뤄져왔기에 서해안을 끼고 있는 지자체들은 모래 채취로 인한 해양환경 파괴를 겪어왔다. 특히 최근까지 활발하게 모래 채취가 이뤄져온 충남 태안군과 전남 신안군, 진도군이 그 대표적인 지역이다.
“겨울철 북서풍에 실려온 모래가 도로에 넘칠 정도로 쌓여서 차가 지나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지금은 모래가 없다시피 하잖아요. 2∼3년 전부터 이런 식으로 모래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4월1일 오전, 태안군 만리포해수욕장에서 만난 소원면 주민 권호선씨는 해변에서 20m 떨어진 해변도로를 가리켰다. 이맘때쯤이면 도로에 넘칠 정도로 쌓여있어야 할 모래는 없고 대신 여름 피서철을 대비해 사왔다는 ‘외부 모래’가 해변가 한쪽에 쌓여있다. 권씨는 만리포해수욕장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권씨와 함께 파도리, 의항리, 구름포 해수욕장 등을 돌았다. 이들 해수욕장은 바다 쪽으로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어 모래 유실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특히 파도리 해수욕장에는 해변 전체에 깔려있던 옥돌이 거의 다 쓸려 내려갔고, 구름포 해수욕장에는 2m 정도의 모래 절벽이 형성되어 있었다.
태안군은 옹진군 다음으로 모래가 채취량이 많다. 1990년대 초반 연간 200만루베 정도이던 채취량은 2∼3년 전부터 급증해 지난해에는 1400만루베(옹진군은 1900만루베)가 건설현장으로 팔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