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호

신분 세탁, 청부살인, 臟器 매매…불법 브로커 판치는 온라인 채팅방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04-04-27 14: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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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보의 바다’ 인터넷이 불법거래의 온상이 되고 있다. 점심값 모자라면 주민등록번호 팔고, 자격증 빌려주며 용돈 챙기고, 목돈 필요할 때는 장기매매, 신용불량자가 되면 아예 신분 세탁해 해외로 뜬다. 도덕 불감증에 걸린 매매자와 이들을 노리는 브로커들이 활개 치는 사이트들. 1000만원이면 살인도 해준다는데….
    신분 세탁, 청부살인, 臟器 매매…불법 브로커 판치는 온라인 채팅방
    “800만원이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100만원 부르던데.” “그건 사진만 박는 거죠. 우리가 하는 건 확실히 달라요. 귀신 하나 만드는 거예요. 돈은 일이 진행되는 걸 확인하는 대로 주시면 됩니다. 계좌로 먼저 돈을 부치라고 하는 곳은 절대로 믿지 마세요. 다 사기니까.”

    자신은 진짜라고 주장하는 브로커 김모씨와 만난 것은 온라인상이었다. 김씨는 “위조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주겠다”고 접근했고 상당히 친절하게 상담을 해줬다. 물론 인터넷 채팅을 통해서다.

    “님을 중국인으로 만든 후 한국인으로 귀화시키는 겁니다. 한국 남자와 결혼해 3년 동안 산 후 귀화시험에 합격한 것처럼 서류를 위조하는 거죠. 그래서 돈이 많이 들지만 님은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예요. 작업은 15일 정도 걸리고요. 저 같은 브로커가 아닌 대한민국 정부가 님에게 주민등록증을 보내줄 겁니다. 그러면 여권을 위조할 필요가 없어요. 님이 당당하게 직접 만들면 되니까. 크크.”

    기자가 인터넷 불법거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채팅 도중 날아든 쪽지 때문이었다. 취재를 위해 모 채팅사이트에 접속했는데 엄청나게 많은 쪽지가 날아들었다. 대다수가 번섹(번개섹스·성관계를 위해 즉석만남을 가지는 것)을 원한다거나 ‘조건만남(인터넷을 통한 성매매)을 하겠냐’는 것이었지만, 몇몇 쪽지의 내용은 달랐다. 최음제나 불법 다이어트 식품에 마약류를 판다는 사람,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팔겠냐고 묻는 사람, 반자와 완자가 있는데 헐값에 팔겠다는 사람,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주겠다’며 위조 주민등록증을 파는 사람, 심지어 급히 목돈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장기매매 알선을 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온라인에서 온갖 불법거래가 횡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온라인의 특성상 대부분 장난이고 실거래는 10%에 불과하다 해도 상황은 심각했다. 그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불법거래를 주도하는 온라인 브로커와 접촉을 시도했는데 모 채팅사이트에서 만난 김씨는 ‘신분 세탁’ 전문가였다.

    기자는 빚이 5000만원인 20대 중반 신용불량자로 가장하고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김씨를 만났다. 사정을 들은 김씨는 기자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주민등록증을 위조할 게 아니라 외국으로 도망가라는 거였다.



    “서류위조는 무엇이든 가능해요. 위조한 재직증명서랑 갑근세 납부 증명서, 그리고 미국 등지의 학원이나 학교에서 발급한 입학허가서(I-20)를 대사관에 제출해 학생비자를 받는 것이죠. 입학허가서의 경우 위조가 불가능하지만 저희가 잘 아는 곳이 있기 때문에 학원료만 내면 쉽게 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미국의 경우 관광비자보다 학생비자 받는 게 훨씬 쉬워요. 그리고 외국에서 현지 남자 만나서 결혼하면 되는 거죠. 괜히 돈 갚으려 하지 말고 그 돈 모아서 정착자금으로 사용하세요. 그렇게 하는 데 400만원밖에 안 들어요.”

    채팅방은 신분증 위조방

    김씨가 속한 조직은 주민등록증 및 면허증 위조, 여권 위조, 자격증 위조, 불법 밀입국 등 신분세탁과 관련한 모든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중 김씨의 임무는 주로 수요자를 만나 알선하는 것이고 서류 위조, 주민등록증 제조 등 전문분야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조직에 대해 더 자세히 물어보았다.

    “홀로그램 기술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 주민등록증 제조를 담당합니다. 세무서에서 갑근세 서류를 위조해주는 사람도 따로 있고. 다 전문가들이 맡아서 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중간과정을 알려고 하지 마세요. 00씨는 그냥 결과물만 받으면 됩니다”며 말을 돌렸다. 김씨는 인터넷 덕분에 실수요자와 만나는 일이 쉬워졌다고 했다. 웬만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주민등록증, 면허증, 여권 팝니다”라고 글을 올려놓기만 해도 고객이 먼저 연락을 한다. 또 채팅방에 신분증, 자격증이라는 제목으로 방을 개설한 네티즌에게 접근해 보면 십중팔구 위조 신분증이나 자격증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경찰 단속이 심해져 다소 주춤하지만 한때는 개설된 채팅방의 10% 정도가 신분증, 자격증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지금까지 10명에게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줬고 5명은 외국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줬는데 그 중 반 이상을 인터넷에서 만났다고 했다.

    “예전에는 저희도 수요자를 만나기 어려웠고, 수요자 역시 저희 같은 조직을 만나기 어려웠겠죠.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생긴 후 더 쉽게, 더 많은 수요자들과 만날 수 있어요. 사실 저희도 놀라워요. 위조 신분증을 원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00씨처럼 신용불량자가 된 20대도 있고, 사업에 실패한 중년남성에 범죄자들까지…. 하지만 우리는 만들어만 주면 되는 거니까 그 주민등록증이 어떻게 쓰일지는 신경 쓰지 않아요.”

    착수금으로 100만원을 달라는 김씨에게 기자는 “생각해본 후 연락을 주겠다”며 자리를 떴다.

    유명 포털사이트의 게시판에는 위조 신분증을 매매한다는 글이 널려 있다. 이번에는 채팅사이트에 ‘주민등록증’이라는 방을 만들어놓고 기다리자 1시간 만에 20여명이 들어왔다. 온라인 브로커들이 부르는 가격은 20만원에서부터 800만원까지 천차만별이었다. 또 주민등록번호 생성기로 만든 가짜 번호에 의뢰자의 사진을 입혀 만드는 조잡한 것에서 실제 존재하는 주민등록번호로 만드는 경우, 앞에서 언급했듯 외국인을 한국인으로 귀화시키는 방식까지 위조 방법도 다양했다.

    한 브로커는 “바지(주민등록증의 원래 소유자)가 직접 동사무소에서 재발급 받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의뢰하신 분과 얼굴이 비슷한 사람으로 골라 절묘하게 합성, 작업하죠. 저희는 바지만 150명 정도 보유하고 있어요. 현재도 회원을 모집하고 있으니까 조만간 모든 연령대 주민증 위조가 가능할 겁니다”라고 자랑스레 말하기도 했다.

    주민등록번호 건당 1만원

    실제로 인터넷 게시판이나 채팅방에서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팔겠다는 이가 꽤 많다. 보통 1만원에 거래된다. 인터넷 채팅방에서 만난 20대 초반의 A양은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5명에게 팔았다고 했다.

    “주민등록번호와 이름만 말해주고 1만원씩 받는 걸요. 보통 주민등록증을 복사해 팩스로 넣어달라고 해요. 또 몇몇 사람들은 특정 나이의 주민등록번호를 원하기도 하죠. 그래서 아는 언니의 주민등록증을 몰래 복사해 보내준 적도 있어요.”

    이렇게 제공한 자신의 명의로 어떤 범죄가 일어난다 해도 이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현행 주민등록법 제21조는 타인의 주민등록증이나 번호를 부정하게 사용한 사람은 처벌하나 제공한 사람의 경우 채무이행의 확보 등의 수단으로 직접 제공한 것이 아니라면 처벌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즉 주민등록증이나 번호를 준 적이 없는데 어떻게 유출됐는지 모르겠다고 발뺌하면 처벌할 방도가 없는 것. 그래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자신의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팔겠다는 사람이 늘고, 이 정보를 모아 되팔거나 이를 바탕으로 위조 신분증을 만드는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게 되는 것이다.

    지난 3월25일 인터넷에서 개인정보나 신분증을 거래한 사례가 공식적으로 처음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 수사대는 포털사이트에서 구한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로 인터넷 신용카드를 충전해 물건을 샀다 되파는 형식으로 1000만원을 챙긴 혐의로 이모씨 등 4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포털사이트에 개설한 카페를 통해 주민등록번호와 신용카드번호 등 개인정보와 주민등록증 50여장과 운전면허증 20여장을 구입했다고 한다. 경찰에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이런 식의 개인정보 및 신분증 거래는 인터넷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의 양근원 계장은 “가장 돈이 되는 거래가 가장 활발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금지 약물이나 포르노 등을 매매하거나 중간에서 알선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우선 물건을 구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개인정보나 신분증 등은 구하기가 쉽고 또 원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거래가 활발할 수밖에 없죠.”

    문제는 이렇게 거래된 개인정보와 신분증이 범죄에 이용된다는 데 있다. 특히 범죄에서 필수품처럼 돼버린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만드는 데 주로 쓰인다. 대포폰과 대포통장은 타인명의의 휴대전화와 통장을 일컫는 말로 대다수 거래가 온라인 상에서 이뤄진다.

    대포폰, 선불폰, 막폰

    “선불폰+통장셋트(22만원)! 명의 필요 없는 선불폰입니다. 경인지역은 직거래하고요. 지방은 당일 고속버스로 보내 드립니다. 가격은 12만원부터입니다. 다음으로 통장입니다. 통장+카드=10만원, 통장+카드+텔레뱅킹=12만원입니다. 세트로 하시면 22만원에 드리겠습니다. 전화주세요.”

    한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선불폰’을 입력하자 무려 295건의 문서가 검색됐다. 내용은 앞의 인용문구와 대동소이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포폰과 대포통장이라고 치면 ‘금칙어’에 걸려 검색이 안 되지만 비슷한 의미인 ‘선불폰’으로는 검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판매업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선불폰 명의는 하나에 1만원씩 주고 사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 명의로 휴대전화가 개설됐는지도 몰라요. 별다른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1년 이상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국제전화 많이 할 일 없으면 쓰고 버려야 하는 ‘막폰’보다 ‘선불폰’이 훨씬 좋습니다.”

    신분 세탁, 청부살인, 臟器 매매…불법 브로커 판치는 온라인 채팅방

    인터넷 게시판에 각종 브로커들이 올린 글들. 위조 신분증 판매에서 장기매매까지 온라인 거래에 브로커들이 활개치고 있다.

    대포폰은 신용불량자들과 채권자, 불법체류자 그리고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데, 선불폰과 막폰이 있다. 선불폰은 일정액을 미리 지불하고 그만큼 전화를 사용하는 방식이고, 막폰은 명의만 도용하는 게 아니라 그 명의를 가진 사람에게 전화요금까지 청구된다. 따라서 전화요금이 청구되면 명의를 도용당한 사람이 전화를 해지하기 때문에 보통 한 달여밖에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처음 한 달 동안은 무한정 전화를 쓸 수 있다.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이 많이 이용하며 요금도 35만~60만원으로 10만~25만원대인 선불폰보다 비싼 편이다.

    기자와 연결된 판매업자는 개인정보 매매 업자에게서 다수의 명의를 산 후 그 명의로 이동통신 대리점에서 선불폰을 개설했다고 밝혔다. “대리점에서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느냐”고 묻자 “주로 거래하는 곳에서는 주민등록번호와 이름만 대면 그냥 다 해준다”고 대답했다. 이동통신 대리점과 연계해 조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통화한 지 1시간 만에 서울 종로에서 판매업자와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선불폰과 대포통장을 같이 하면 20만원에 맞춰주겠다고 말했다.

    “통장은 바지(통장의 원래 소유자)가 직접 개설하는데, 신용불량자는 절대 쓰지 않는 등 확실히 관리하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통장은 12만원인데, 싸게 해드릴게요. 전혀 문제가 없는 깨끗한 통장입니다.”

    그는 통장과 현금카드, 비밀번호를 함께 건넸다. 입출금이 가능한 정상 통장이었다. ‘바지’가 통장 하나를 개설해주면서 받는 돈은 2만~3만5000원 선이다. 한 사람 명의로 10~20개의 통장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또 “우리에게 돈을 빌린 후 갚지 못하고 포기각서를 쓴 채무자 명의로 만든 것도 있다”고 덧붙였다. 대포통장 매매업자들이 사채업과 연관이 있고 상당수 명의가 빚에 몰린 채무자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인터넷 사기 필수품 된 ‘대포’

    2월12일 서울 양천경찰서는 위조주민증 및 대포폰 판매 조직 일당 9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카드사 직원에게서 고객의 개인정보를 받아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을 위조하고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수요자들에게 개당 150만~200만원을 받고 판매했다. 또 위조신분증으로 휴대전화를 구입, 대포폰을 만들어 판매하고 중국에 밀수출하는 방법으로 1억5000만원의 이익을 챙겼다.

    앙천경찰서 박미옥 형사는 “이동통신 대리점 직원이 신분증이 이상하다며 신고해와 추적한 끝에 검거할 수 있었다”면서 “위조신분증과 대포폰 등으로 인한 범죄가 심각하지만 실제로 추적하기가 어려워 단속이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대포통장의 경우 아예 단속 규정도 없다. 금융감독원 양현근 팀장은 “대포통장 매매행위에 대한 관련법규가 없어 단속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법 제정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6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부겸 의원은 대포통장이 범죄행위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기 실명을 타인에게 제공한 자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규정을 신설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여야 의원 28명과 공동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김 의원은 “최근 노숙자나 신용불량자 등 타인 명의로 개설한 통장이 사기·횡령·협박 등 범죄에 활용되면서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으나 명의나 계좌를 빌려주고도 ‘몰랐다’고 변명하면 처벌할 수 없어 이를 근절하기 위해 개정안을 냈다”고 말했다. 이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중인데 16대 국회가 끝나는 대로 자동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불법으로 만들어진 대포폰과 대포통장은 또다시 범죄에 악용된다. 서울 서초경찰서 김남형 형사는 “대포폰, 대포통장을 이용한 범죄가 너무 많아 집계조차 못할 지경”이라며 “특히 인터넷 사기사건의 90% 이상은 대포폰, 대포통장을 이용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28세 직장여성 이모씨는 인터넷 채팅을 하다 다이어트 약품을 판매하겠다는 업자와 접속했다. 한 달치 약이 5만원이라는 말에 그는 업자가 알려주는 은행계좌로 돈을 입금했다. 하지만 물품은 오지 않았고 업자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경찰에 의뢰해 알아봤더니 이미 끊어진 전화는 대포폰이고 은행계좌 역시 대포통장 번호였다. 더 추적할 방법이 없었다.

    김 형사는 이는 온라인 사기사건의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는 ‘선불폰 구별하는 법’ ‘대포통장 식별하는 법’이라는 글이 떠돌고 있을 정도다. 그리고 글에는 통신회사별 선불폰 국번이 모조리 적혀 있다. 선불폰의 경우 국번이 따로 정해져 있어, 그 국번을 사용하는 사람은 한번쯤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

    “온라인 거래를 할 때 상대방에게 ‘어디 사느냐’고 물어보세요. 대개 얼떨결에 자기가 살고 있거나 연고가 있는 곳을 말합니다. 그리고 통장이 어디서 개설됐는지 알아보세요. 114 안내전화를 통해 은행 콜센터로 전화해 계좌를 불러주면 개설된 지점을 알려줍니다. 만약 상대방이 서울에 산다고 했는데, 계좌는 대구에서 개설됐다면 일단 의심해 봐야겠죠. 그리고 계좌개설지점에 계좌가 출금정지되어 있는지, 수사기관에서 압수수색영장이 신청된 상태는 아닌지, 문의전화가 많이 오는 계좌인지 물어보세요. 그러면 웬만한 피해는 막을 수 있습니다.”

    ‘대포통장 식별하는 법’이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김 형사의 이야기다.

    ‘반자’ 사실래요? ‘완자’ 사실래요?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불법거래는 이밖에도 많다. 지난해까지는 개인의 예금통장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등 신용정보를 거래하는 브로커들이 활개를 쳤다. 개인의 신용정보는 속칭 ‘반자’와 ‘완자’로 나뉜다. ‘반자’는 비밀번호가 빠진 정보이고 ‘완자’는 비밀번호가 포함된 정보다.

    지난해 6월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인터넷을 통해 신용정보를 매매한 4명을 검거했다. 2년 전 부도난 회사의 종업원이 가지고 있는 신용정보가 포함된 회원가입 신청서 2355매를 우연히 구한 우모씨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카페를 통해 정모씨를 비롯한 10여명에게 카드당 한도액의 20~40%를 받는 조건으로 신용정보를 판매했다. 이중 80개 정보의 경우 신청서에 적혀 있는 휴대전화번호 뒷자리를 ARS에 대입해 확인하는 방법으로 비밀번호를 알아내 ‘완자’로 만들어 판매했다. 신용정보를 입수한 정씨 등은 인터넷 경매사이트에서 순금, 노트북, 디지털카메라 등을 유출된 신용카드를 이용해 결제한 후 수령하고, 이를 되파는 수법으로 현금화해 1억5000여만원의 부당이익을 얻었다.

    이런 신용정보 거래는 상당수 인터넷 쇼핑몰들이 ISP 결제방식을 채택하면서 현재는 다소 주춤해진 상태다. ISP 결제방식은 결제시 카드번호, 유효기한, 비밀번호 등을 입력하지 않고 개인이 인터넷을 통해 직접 등록한 ISP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방식. 하지만 이런 불법거래가 근절된 것은 아니다. 모든 카드와 쇼핑몰이 ISP 결제방식을 채택한 것이 아닐 뿐더러 아직도 개인의 신용정보는 큰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

    불법으로 수집한 개인의 이메일 주소와 휴대전화번호도 버젓이 거래되고 있다. 이는 개인보다도 불특정 다수에게 스팸메일이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야 하는 ‘회사’를 상대로 거래된다. 지난 2월12일 사이버테러대응센터 단속반이 검거한 한 벤처기업 이사의 경우 자체 제작한 메일수집 프로그램 등을 통해 무려 22억개의 이메일 주소를 수집, 판매한 것으로 밝혀졌다.

    청부살인 마다않는 해결사

    한편 성매매, 음란물 판매, 자격증 대여, 마약 등 불법 약물 판매, 장기(臟器)매매, 흥신소와 같은 심부름센터 등 전통적 의미의 불법거래를 알선하는 브로커들도 온라인으로 자리를 옮겨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광주경찰서는 인터넷을 통해 해결사를 고용, 정부(情夫)를 살해하려고 했던 이모씨와 청부해결사 2명을 살인미수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정부 신모씨와 5년 간 맺어온 불륜 사실이 남편에게 알려질 것을 우려하던 중 인터넷 심부름센터에서 알게 된 해결사에게 1000만원을 주고 살인을 의뢰했다. 해결사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신씨를 흉기로 찔러 중태에 빠뜨렸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심부름센터’ ‘해결사’ 등의 검색어를 치면 꽤 많은 관련 카페들이 나온다. 카페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든 해결해준다’는 말로 네티즌들을 유혹하고 있다. 카페에 적힌 이메일로 상담신청을 했더니 다음날 전화가 왔다. 이 해결사는 살인 1000만원 이상, 불구로 만드는 데 600만~700만원, 단순 폭력에 300만원 이상을 요구했다. 살인의 경우 사고사를 가장해 증거를 남기지 않겠다고 덧붙이면서 의뢰 후 처리까지 10일을 넘기지 않는다는 신속성을 강조했다.

    이 업자에 의하면 살인과 같이 극단적인 의뢰보다는 떼인 돈을 받아준다거나 미행을 한다거나 불륜현장을 급습해달라는 의뢰가 훨씬 많다고 한다. 또 의뢰인이 급히 목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장기매매 등을 알선한다고.

    29세의 강모씨는 지난 3월초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장기기증을 원한다’는 글을 올렸다. 사기를 당한 후 채무자들에게 시달리던 끝에 장기를 팔아 목돈을 마련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연락처를 남기자 4, 5명의 브로커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3000만원이 급하게 필요하다고 하니 신장을 팔라고 하더군요. 장기를 팔겠다는 사람들은 오죽 급했으면 그런 짓을 하겠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도 사기를 치는 나쁜 사람들이 있더군요. 제게 접촉한 브로커 한 명은 조직검사를 하려면 80만원 가량이 필요하니 우선 입금부터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바로 연락이 끊어져버렸어요.”

    기자 역시 인터넷 채팅사이트에 ‘장기기증’이라는 방을 만들어놓고 기다리자 10명 가량이 말을 걸어왔다. 그 중 진짜 장기매매 알선자로 짐작되는 사람을 골라 직접 만났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화장이 ‘직업여성’답지 않네요. ‘직업여성’들은 술과 담배를 많이 해 제 값을 받지 못해요”라고 했다. 또 “30대 후반 신부전증을 앓는 여성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신장을 파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조직이 맞아 수술에 들어가면 바로 250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반은 수술 전, 반은 수술 후에 주는 것이 관행’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자신이 알선비를 거의 받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강씨는 “브로커에게 돌아가는 돈이 보통 1500만원”이라며 “이왕 팔거라면 브로커 없이 직거래 하길 원한다”고 했다.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 이창래 부장검사는 “오프라인에서는 중간 알선이라는 브로커 개념이 중요했지만 온라인 에서는 인터넷 자체가 브로커 역할을 하기 때문에 수요자와 공급자의 직거래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량리 사창가의 속칭 ‘삼촌’으로 통하는 박모씨도 요즘엔 소개업소를 통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직접 ‘아가씨’를 구한다고 했다.

    “인터넷에 ‘돈 벌고 싶은 여성분’이라는 채팅방을 열어놓으면 관심을 갖는 젊은 여성이 무척 많아요. 저희가 면접 봐서 얼굴 예쁘고 몸매 좋은 애들만 뽑을 수 있는데 왜 알선 브로커에게 돈을 줘가며 아가씨를 사겠어요?”

    어떤 거래를 하든 아예 대놓고 “중간 브로커가 아닌 직거래 원함”이라고 적어놓은 게시판 글도 많고 채팅 사이트에서도 “브로커가 아닙니다. 제가 직접 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상당수였다.

    한편 인터넷의 특성상 실제 거래는 이뤄지지 않고 수고비만 챙기는 사기꾼이 50% 이상이다. 기자가 취재중 만난 브로커의 상당수도 착수금이 들어와야만 일을 시작할 수 있다며 먼저 계좌로 돈을 부치라고 했다. 진짜 브로커들이 “직접 만나지 않고 계좌부터 알려주며 선불을 부치라고 하는 건 100% 사기”라고 ‘충고’할 정도다.

    심지어 PD자격증, 기자자격증 등 존재하지도 않는 자격증이나, 위조가 불가능한 토플 성적표를 만들어준다며 접근하는 이도 많았다. 또 여성에게는 알선의 대가로 성관계를 요구하기도 했다. 자칫하다간 브로커에게 성폭행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관련 업체나 정부가 아무리 제재를 가한다고 해도 불법 브로커들은 그 틈새를 타고 성행하기 마련이다. 전문가들은 네티즌 스스로 자정노력을 하지 않는 한 이런 온라인 범죄는 근절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온라인은 오프라인의 거울과 같다. 오프라인의 모든 범죄가 온라인으로 옮겨와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것. 특히 온라인 범죄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어 별다른 죄의식 없이 자행된다.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단돈 1만원에 팔고, 매달 일정액을 받고 자격증을 대여하며, 목돈 마련을 위해 자신의 장기를 시장에 내놓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오프라인에서는 브로커를 만나는 것 자체가 힘들지만 온라인에서는 클릭 몇 번만 하면 브로커와 만날 수 있죠. 그리고 원하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어요. 온라인에서.”

    양심과 윤리를 저버린 ‘욕망의 포로’들로 인해 ‘정보의 바다’ 인터넷은 ‘범죄의 바다’로 변질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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