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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세탁, 청부살인, 臟器 매매…불법 브로커 판치는 온라인 채팅방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신분 세탁, 청부살인, 臟器 매매…불법 브로커 판치는 온라인 채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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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보의 바다’ 인터넷이 불법거래의 온상이 되고 있다. 점심값 모자라면 주민등록번호 팔고, 자격증 빌려주며 용돈 챙기고, 목돈 필요할 때는 장기매매, 신용불량자가 되면 아예 신분 세탁해 해외로 뜬다. 도덕 불감증에 걸린 매매자와 이들을 노리는 브로커들이 활개 치는 사이트들. 1000만원이면 살인도 해준다는데….
신분 세탁, 청부살인, 臟器 매매…불법 브로커 판치는 온라인 채팅방
“800만원이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100만원 부르던데.” “그건 사진만 박는 거죠. 우리가 하는 건 확실히 달라요. 귀신 하나 만드는 거예요. 돈은 일이 진행되는 걸 확인하는 대로 주시면 됩니다. 계좌로 먼저 돈을 부치라고 하는 곳은 절대로 믿지 마세요. 다 사기니까.”

자신은 진짜라고 주장하는 브로커 김모씨와 만난 것은 온라인상이었다. 김씨는 “위조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주겠다”고 접근했고 상당히 친절하게 상담을 해줬다. 물론 인터넷 채팅을 통해서다.

“님을 중국인으로 만든 후 한국인으로 귀화시키는 겁니다. 한국 남자와 결혼해 3년 동안 산 후 귀화시험에 합격한 것처럼 서류를 위조하는 거죠. 그래서 돈이 많이 들지만 님은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예요. 작업은 15일 정도 걸리고요. 저 같은 브로커가 아닌 대한민국 정부가 님에게 주민등록증을 보내줄 겁니다. 그러면 여권을 위조할 필요가 없어요. 님이 당당하게 직접 만들면 되니까. 크크.”

기자가 인터넷 불법거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채팅 도중 날아든 쪽지 때문이었다. 취재를 위해 모 채팅사이트에 접속했는데 엄청나게 많은 쪽지가 날아들었다. 대다수가 번섹(번개섹스·성관계를 위해 즉석만남을 가지는 것)을 원한다거나 ‘조건만남(인터넷을 통한 성매매)을 하겠냐’는 것이었지만, 몇몇 쪽지의 내용은 달랐다. 최음제나 불법 다이어트 식품에 마약류를 판다는 사람,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팔겠냐고 묻는 사람, 반자와 완자가 있는데 헐값에 팔겠다는 사람,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주겠다’며 위조 주민등록증을 파는 사람, 심지어 급히 목돈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장기매매 알선을 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온라인에서 온갖 불법거래가 횡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온라인의 특성상 대부분 장난이고 실거래는 10%에 불과하다 해도 상황은 심각했다. 그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불법거래를 주도하는 온라인 브로커와 접촉을 시도했는데 모 채팅사이트에서 만난 김씨는 ‘신분 세탁’ 전문가였다.

기자는 빚이 5000만원인 20대 중반 신용불량자로 가장하고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김씨를 만났다. 사정을 들은 김씨는 기자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주민등록증을 위조할 게 아니라 외국으로 도망가라는 거였다.



“서류위조는 무엇이든 가능해요. 위조한 재직증명서랑 갑근세 납부 증명서, 그리고 미국 등지의 학원이나 학교에서 발급한 입학허가서(I-20)를 대사관에 제출해 학생비자를 받는 것이죠. 입학허가서의 경우 위조가 불가능하지만 저희가 잘 아는 곳이 있기 때문에 학원료만 내면 쉽게 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미국의 경우 관광비자보다 학생비자 받는 게 훨씬 쉬워요. 그리고 외국에서 현지 남자 만나서 결혼하면 되는 거죠. 괜히 돈 갚으려 하지 말고 그 돈 모아서 정착자금으로 사용하세요. 그렇게 하는 데 400만원밖에 안 들어요.”

채팅방은 신분증 위조방

김씨가 속한 조직은 주민등록증 및 면허증 위조, 여권 위조, 자격증 위조, 불법 밀입국 등 신분세탁과 관련한 모든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중 김씨의 임무는 주로 수요자를 만나 알선하는 것이고 서류 위조, 주민등록증 제조 등 전문분야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조직에 대해 더 자세히 물어보았다.

“홀로그램 기술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 주민등록증 제조를 담당합니다. 세무서에서 갑근세 서류를 위조해주는 사람도 따로 있고. 다 전문가들이 맡아서 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중간과정을 알려고 하지 마세요. 00씨는 그냥 결과물만 받으면 됩니다”며 말을 돌렸다. 김씨는 인터넷 덕분에 실수요자와 만나는 일이 쉬워졌다고 했다. 웬만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주민등록증, 면허증, 여권 팝니다”라고 글을 올려놓기만 해도 고객이 먼저 연락을 한다. 또 채팅방에 신분증, 자격증이라는 제목으로 방을 개설한 네티즌에게 접근해 보면 십중팔구 위조 신분증이나 자격증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경찰 단속이 심해져 다소 주춤하지만 한때는 개설된 채팅방의 10% 정도가 신분증, 자격증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지금까지 10명에게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줬고 5명은 외국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줬는데 그 중 반 이상을 인터넷에서 만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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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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