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호

문학상 제도의 빛과 그늘

주기도 받기도 어려운 상

  • 글: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4-04-30 15: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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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상 제도의 빛과 그늘

    ‘작가와 비평’ 창간호 / 화남 /410쪽 / 1만원

    지난해 2월 타계한 소설가 이문구 선생은 “내 이름을 내건 어떤 문학상도 만들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내 무덤에 비석도 문학비도 세우지 말라”고도 했다 한다.

    이렇게 훌훌 털고 저 세상으로 떠난 그였지만 생전에는 ‘상’에 대한 미련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2000년 소설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가 조선일보 주최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자 그가 이사장직을 맡고 있던 민족문학작가회의 등 진보 성향의 문인들이 크게 반발했다. 동인문학상 후보작 지명조차 거부했던 황석영과 비교해 실망과 배신감을 토로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수상소감은 자축과 감사보다 해명에 가까웠다. “김동인 선생을 친일문인의 범주에 넣고 그 이름으로 된 상을 받을 수가 있느냐고 하는 이도 있었다. 나는 애시당초 독립운동가의 자제가 아닐 뿐 아니라 일제 때 마키무라로 창씨개명했던 보통사람의 자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뿐더러 ‘진정한 의미의 친일문인은 춘원 하나뿐’이라고 한 스승의 견해를 전적으로 믿는다는 말도 덧붙였다.”(2000년 11월24일자 조선일보)

    이것으로도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그는 읊조리듯 ‘상을 위한 변명’을 했다.

    “상은 본질이 무엇이든 간에 수상자에게는 일종의 청량제요 원기회복제 노릇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상이 낯설고 상금도 시늉뿐인 오죽잖은 상이라도 거의가 기꺼이 받고 마냥 흐뭇해하는 것을 보면 상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나름대로 어림할 수가 있는 것이다.”(심심풀이 문학상 이야기, 유고 산문집 ‘까치둥지가 보이는 동네’ 중에서).



    연간 270여개의 문학상 시상

    어떤 상이든 받는 것 자체로 즐겁다는 그의 말이 거꾸로 누가 상을 준다 해도 넙죽 받기가 어렵다는 푸념처럼 들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흔히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외에 ‘황순원문학상’ ‘미당문학상’ ‘오늘의 작가상’ ‘이수문학상’ ‘한겨레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문학상’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등 이런저런 문인단체, 언론사, 잡지사 등에서 내건 문학상이 270여개나 되는 현실에서, 상의 의미라도 제대로 알고 받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30대 소장 비평가들이 중심이 돼 창간한 반연간지 ‘작가와 비평’ 1호가 ‘한국의 문학상 제도’를 샅샅이 해부했다. ‘문학상 제도의 빛과 그늘’이라는 특집으로 꾸린 6편의 글은 각 문학상의 비합리적인 운영 실태를 고발한다. 최강민은 ‘노년의 현대문학상, 사망과 회춘의 기로에서’라는 글로 49년 전통의 현대문학상이 어떻게 기득권을 유지해왔는지 지적했고, 하상일은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에서 동인문학상과 조선일보를, 고봉준은 이상문학상, 정혜경은 오늘의 작가상, 이경수는 김수영문학상과 소월시문학상, 고명철은 ‘추문과 풍문으로 얼룩진 비평상’을 타깃으로 삼았다. 이렇게 각 문학상을 해부한 결과 출판상업주의, 패거리주의, 정실주의, 한탕주의의 악취가 진동한다.

    사실 이런 악취는 어제 오늘 시작된 건 아니다. 2000년 이명원이 평론집 ‘타는 혀’로 문학권력을 향해 포문을 연 이래 강준만·권상우의 ‘문학권력’, 9명의 소장 평론가들이 펴낸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 등이 집요하게 문단의 패거리주의와 출판 상업주의를 비판해왔다.

    하지만 늘 문제제기 수준에 머물러 문단의 견고한 침묵의 카르텔을 깨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이번 문학상 제도에 대한 ‘작가와 비평’팀의 의욕적이고 날카로운 지적이 독자들에게 문학에 대한 혐오감만 키우고, 상 받는 이들의 뒤통수를 간질이는 데만 그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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