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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에세이

내 일생의 타이틀

내 일생의 타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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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음악에는 ‘모든 것을 바쳤다’는 표현을 쓸 수 있다. ‘모든’이란 시간과 돈을 의미한다. 중학교 시절 이래 정말 많은 음반을 사들였고, 수없이 오디오를 교체했다. 최근에는 작업실에 있는 음반 전부를 집으로 옮기는 대역사를 감행했는데, 그동안 2만장으로 추산했던 음반이 인부들의 계산으로 그보다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내 귀는 흡사 자석과도 같아서 음반가게에서 전화가 걸려오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달려가야 한다. 지금도 음반가게에서는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온다.

지난 연말부터 여러 일로 수입이 꽤 늘어나게 됐다. 처음으로 통장에 잔고가 쌓이기 시작해서 심지어는 땅을 살까, 아파트를 살까 하는 삿된 마음까지 품게 됐다.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호탕하게 계산을 치르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부터였다. 하지만 그런 여유도 잠시였다. 최근 두 달에 걸쳐 나는 네 조의 스피커, 다섯 대의 앰프, 그리고 대략 1000여장의 LP를 새로 구입했다. 세운상가를 서성대다 불심 검문에 걸린 것도 대개 그런 연유였다.

고교시절을 온통 채웠던 무교동 ‘르네쌍스’의 바로 그 스피커 ‘하츠필드’ 오리지널이 들어왔고, 알텍 발렌시아, JBL 에베레스트, 알텍-웨스턴 풀레인지 755A 스피커가 작업실과 거실을 그득 채웠다. 300B, EL 34, 6550 등의 화려한 진공관 불빛이 밤하늘의 별처럼 스피커 주위를 빛낸다. 훌륭한 사람이었다면 이웃돕기성금에 희사했겠지만, 나는 처음 가져본 여유로 한풀이를 한 셈이다. 하지만 기자가 내 원고에 ‘음악평론가’라고 붙이면 나는 기를 쓰고 고쳐달란다. 평론가는 무슨…. ‘음악애호가’가 적절할 텐데. 그렇게 승강이하다 타협한 게 ‘음악칼럼니스트’란 직함이다. 작년부터는 한 신문사의 객원기자가 되어 음악회 리뷰를 담당하고 있으니, ‘기자’란 타이틀 하나를 더 얻은 셈이다.

대여섯 개 타이틀로 살아가는 내 삶에 자조도 자부도 하지 않으련다. 살다 보니 그렇게 돼버린 것이니까. 다만 취향과 기질로 먹고 산다는 게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공통점은 없을까. 돌이켜보니 나는 꽤나 집요했다.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오디오 세팅으로 며칠 밤을 새우기 일쑤였고, 황당한 원고청탁을 받고도 어떻게든 써냈다. 거의 원수처럼 마음 맞지 않는 PD와도 이 악물고 버티며 일했다.

이제는 10년 후가 궁금하다. 그때도 지금처럼 종잡을 수 없는 여러 개의 타이틀과 더불어 살고 있을까?





신동아 200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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