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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취재

1992년 인수 ‘주한미군 송유관’, 감지덕지 받은 떡이 ‘폭탄’

철거·환경복구비만 최소 700억!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1992년 인수 ‘주한미군 송유관’, 감지덕지 받은 떡이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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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국방부가 1996년 미국의 전문회사에 용역을 맡겨 송유관의 상태를 조사한 결과 부식상태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관 두께의 20% 이상 부식된 것만 727군데(환경부 주장은 633군데), 51~60% 부식된 것이 21군데, 61% 이상 부식된 것이 9군데에 80%의 부식도를 보인 곳도 2군데 있었다는 것이다. 2002년 한미 양국이 송유관 대부분을 폐쇄하기로 합의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40% 이상 부식된 77개소는 1998년까지 보수를 끝냈고 나머지는 관리업체인 대한송유관공사가 지속적으로 관리, 보수하고 있으므로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철거과정에서 환경오염이 확인된다 해도 대한송유관공사가 보험에 가입했기 때문에 국가예산이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고, 1992년 이전에 발생한 오염은 한미행정협정(SOFA)의 환경관련 규정에 따라 미군에 복구비용 분담을 요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환경오염이 1992년 이전에 발생한 것인지를 확인하는 일이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는 데에 정부 관계자들도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돈이 들어갈 곳은 또 있다. TKP 공여지에 관한 손해배상 비용이다. 1970년 건설 당시 송유관 양쪽으로 2m씩 총 162만평에 달하는 부지가 미군에 공여됐지만, 정부는 이 가운데 87만평에 달하는 사유지 지주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 졸지에 토지사용권을 제한당한 토지 소유주들은 한국이 소유권을 넘겨받은 1992년 이래 총 34건의 소송을 제기했고, 정부는 23억원을 국가예산으로 배상해야 했다.

이번에 폐쇄되는 70만평에 대해서도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9월 이후 TKP 문제가 시끄러워지면서 민원이 부쩍 늘었으며 민원 중 상당수는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2002년 정부가 실시한 감정평가 자료에 따르면 그간 사유토지 사용료를 합친 돈만 220억원이다. 여기에 폐쇄되지 않은 구간에 대해 정부가 매입 등의 방식으로 합법적인 사용권을 확보하려면 그 비용도 400억원(매년 보상할 경우에는 2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앞서의 감정평가는 결론지었다.



1992년 합의는 따지지 못했다

정리해보자. 최소한 500억원의 철거비용은 반드시 들어갈 돈이다. 토지소유주 가운데 절반만 민원을 제기한다 해도 100억원이 지출된다. 이번에 폐쇄되지 않은 구간을 앞으로 5년간 유지할 경우 그 토지사용권 보상비용도 100억원 규모. 환경복구비용은 실사를 거쳐야 구체적 추산이 가능하겠지만, 금호강처럼 기름유출로 오염된 곳이 세 군데만 있어도 100억원을 넘을 것이다. 정부예산만 700억원+α에 대한송유관공사(정확하게는 보험회사)가 지급해야 할 돈은 또 얼마가 될지 추산하기도 어렵다.

불과 12년 만에 이렇듯 엄청난 비용부담을 안겨줄 송유관을 정부는 왜 인수한 것일까. 무슨 복안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러나 1992년 인수합의 당시 국방부는 처리비용에 관한 문제를 합의서에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그렇게 소유권이 한국으로 넘어왔으므로 처리비용도 고스란히 한국이 떠안게 된 것이다.

다만 ‘송유관 폐쇄’ 등 향후 발생할 상황에 관한 조항은 합의서에 있다. 다시 말해 협상 당시에도 폐쇄 이후의 상황을 충분히 예상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관련 조항은 전적으로 ‘TKP가 폐쇄돼도 미군의 유류수송은 안정적으로 보장한다’는 내용 뿐이다.

1992년 합의서를 체결한 당사자인 윤종호 예비역소장(당시 국방부 군수국장·SOFA 합동위원회 시설 및 구역 소위원회 한국측 의장)은 “오래 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철거비용에 관해 검토하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이 유상으로 인수하라는 것을 무상으로 돌렸으니 성공적인 협상이라 생각했고 담당자들은 포상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외무부, 동력자원부 등 관계부처와 실무위원회를 만들어 함께 검토했지만 추후 처리비용에 관한 지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수명이 다된 중고차를 넘겨받으면서 폐차비용을 생각하지 않은 셈이다.

그는 또 “당시 ‘한국이 송유관을 인수하지 않으면 폐쇄하는 길밖에 없다’는 게 미국측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인수를 거부할 경우 그때까지 이용해온 민간기업이 유조트럭을 사용해야 하는 등 부담이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다. “12년 전의 일을 현재의 잣대로 평가하면 안 된다. 시대마다 상황이 다른 법인데 그런 식으로 옛일을 캐면 어느 공무원이 제대로 일할 수 있겠느냐”는 반문도 있었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은 예상했을까. ‘신동아’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당시 국방부는 TKP 인수의 경제적 손익을 따지기 위해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검토를 의뢰했다. 1990년 KIDA 군수관리연구실에서 작성한 ‘한국횡단(‘종단’의 오기인 듯)송유관 인수에 대한 타당성평가’라는 보고서가 그것이다.

‘신동아’가 이목희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국방부의 ‘업무보고’ 문서(1991년 작성)에 따르면 이 보고서는 ‘TKP의 향후 수명을 10년으로 볼 때 한국측은 타수송수단 대비 2847만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고 평가했고, 이는 청와대에도 보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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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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