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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논란, 비상 걸린 공정거래위

규제 집착 ‘고무줄 잣대’로 불공정 시비 자충수

  • 글: 송성훈 매일경제 경제부 기자 ssotto@mk.co.kr

정체성 논란, 비상 걸린 공정거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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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보니 공정위 조사에서 위법행위가 적발된 기업으로선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조사과정과 조사결과 발표과정에 이미 여러 차례 기업 이름이 거론되는 바람에 소비자와 투자자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데다 소송으로 인해 수년에 걸쳐 쏟아부은 시간적·물리적 피해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당한 근거를 확보하지 못한 공정위의 결정이 늘어날수록 그 피해는 당사자인 기업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덩달아 공정위 내부의 위기의식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 내부에서는 최근 결정에 대한 자성보다는 과거 공정위 정책에 대한 비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오락가락한 과거 공정위의 결정들이 지금 와서 정당한 제재조치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공정위의 원죄로 인해 일어나는 일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지적처럼 최근 공정위 결정에 힘이 실리지 않는 것은 공정위가 자초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른바 ‘원죄’와 관련해서는 우선 1999년 현대자동차의 기아차 인수와 2000년에 이뤄진 SK텔레콤의 신세기이동통신 합병을 예로 들 수 있다. 당시 현대자동차가 기아차를 인수하면 시장점유율이 70%를 웃돌게 되고, SK텔레콤도 신세기통신을 합병하면서 시장점유율이 사실상 50%를 웃도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결과적으로 공정위는 이 두 건의 인수합병에 대해선 모두 허가를 내줬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인수합병을 통해 업계 1위가 되는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50%를 웃돌거나 상위 3개사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70%를 넘을 경우에는 공정위에서 이를 제한할 수 있다. 공정위가 합병에 제동을 건 삼익악기와 영창악기의 사례는 전자에 해당하고, INI스틸의 한보철강 인수합병은 후자의 경우가 된다.

다시 현대차와 SK텔레콤 사례로 돌아가보자. 당시 공정위는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현대자동차에 3년간 트럭 부문에 대해서만 규제했을 뿐 시장점유율이 사실상 70%를 넘어도 인수합병을 허가해주었다. 또한 신세기통신을 인수해 시장점유율이 50%를 넘어선 SK텔레콤에 대해 공정위는 ‘1년간 시장점유율을 50% 미만으로 유지할 것’을 명령했을 뿐 인수를 불허하지는 않았다.

당시 공정위는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를 허가하면서 산업합리화 규정에 따른 예외인정 조항을 근거로 내세웠다.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해도 괜찮다는 논리였다.

또 SK텔레콤은 신세기통신을 인수하더라도 KTF LG텔레콤 등 경쟁업체 3개사가 있어 경쟁구조를 유지하는 게 가능하다며 인수합병을 허가했다. 또 비슷한 시기에 삼미특수강 주식을 취득한 인천제철도 2000년 9월 공정위로부터 3년간 냉연강판 가격규제 조치를 받았을 뿐 별다른 제재조치를 받지 않았다.

기업들이 공정위의 결정을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렇게 업체별로 시정조치의 강도가 다르다는 점에 있다. 일부에서는 노골적으로 ‘고무줄 잣대’라는 표현까지 사용한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2002년 12월, 고합을 인수한 코오롱은 생산설비 일부를 매각하는 조건으로 공정위의 허가를 받았으며, 지난해 8월 LG화학과 호남석유화학은 대산공장 설비를 분할해 인수하는 방식으로 현대정유 주식을 취득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공정위는 무학소주의 대선주조 인수는 아예 허가하지 않았다. 최근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인수를 불허한 것도 비슷한 사례. 공정위가 가격 또는 생산량 조절 등의 규제보다는 인수합병을 원천적으로 막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인철 연구위원은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는 누가 보더라도 사실상 독점인데도 공정위가 이를 허가해준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산업합리화 규정에 따른 예외인정 조항이 1999년 4월에 폐지되는 바람에 삼익악기에는 이 규정을 적용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쟁정책을 전공한 경제학자들은 물론 공정위 관계자들도 속셈을 털어놓을 때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공정위 관계자는 “사실 비판받아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에서도 과연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하면 국제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냐를 놓고 의견이 엇갈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 역시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인수조치를 불허한 것은 옳은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개발연구원 임원혁 박사도 “삼익악기 건은 여러 정황을 보더라도 인수합병을 허가하지 않는 게 맞다”고 견해를 밝히면서도 “현대차 SK텔레콤 등의 사례에서 보듯 과거 공정위가 인수합병을 (무리하게) 허가해준 결정 때문에 기업들이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 연구소 전문가는 “과거의 ‘원죄’를 떠안고 있는 공정위가 이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인수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바람에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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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성훈 매일경제 경제부 기자 ssotto@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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