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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누명 쓰고 혹독한 고문받은 두 여인의 ‘잃어버린 30년’

“벗겨진 가슴 막대기로 찔러대며 ‘이북 갔다왔다고 하면 옷 주지’…”

  • 글: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간첩 누명 쓰고 혹독한 고문받은 두 여인의 ‘잃어버린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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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화정면사무소에서 부면장으로 근무하던 김익환(75)씨는 집안 식구들이 고정간첩 누명을 쓰게 된 것은 자기집 머슴이었던 이기철(가명·당시 나이 30대 중후반으로 추측)씨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한국전쟁 당시 마을 인민위원회에서 부역자로 일하다 전쟁이 끝나자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강씨는 “내가 시집왔을 때 이씨는 없었다. 집안 사람들 얘기를 통해서만 이씨를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사람이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저고리 한 감을 끊어들고 시숙 집을 찾아왔다. 그때 일이 빌미가 돼서 간첩질했다는 소리를 들을 줄 누가 알았겠냐”며 한숨을 쉬었다.

“‘이기철에게 밥을 해줬나’ ‘이기철이 잘 방을 닦아주고 이부자리까지 펴줬지’ ‘보리밭 매러 가서 이기철이 간첩이라는 소릴 한 적 있지’라고 말하면서 몽둥이로 패고 발로 차고 닦달을 해대는데 그 고초를 어찌 말로 다하겠나. ‘간첩에게 밥해먹이고 재워줬으니 그간 얼마나 통간을 하고 살았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머리채를 잡고 책상에 처박는데 몇 번을 까무러쳤는지 모른다.

또 ‘황○○를 아느냐’고 묻고는 ‘황○○이 말하기를 네가 보리밭에서 이기철은 간첩이라고 했다더라. 그래서 너를 잡아다 취조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낯선 남자들이 시숙 집을 뒤질 때 황○○ 아버지가 손자 손을 잡고 담 너머로 우리집 안을 살피던 일이 기억났다. 그 시간이면 사람들이 다 논으로 밭으로 일하러 나가서 동네가 텅 비는데,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내가 그놈들한테 끌려갈 때도 동네사람은 하나도 안 보였다.”

원래 황○○(62)씨 집과 강씨 집은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었는데, 두 집안은 자주 왕래하며 가족처럼 지내던 사이였다. 당시 황씨는 여수에서 살고 있었다.



머리채 패대기치며 알몸 고문

강씨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가만히 듣고만 있던 김정례씨가 한참을 망설인 끝에 겨우 말문을 열었다.

“작은어머니보다 하루 먼저 서너 명의 남자한테 끌려갔다. ‘네가 김정순이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다짜고짜 남자 두 명이 양쪽 팔을 잡고 질질 끌고 갔다.”

어릴 적부터 ‘정순’으로 불리던 김씨는 조사관들에 의해 자신의 호적 이름이 ‘정례’인 것을 처음 알았다고 했다.

“배에서 내려 차를 타고 한참을 가다 멈췄다. 눈을 가린 천을 풀어줘 주위를 살펴봤더니 책상 하나가 놓여 있는 조그만 방이더라. 천장에 매달린 전구에 불이 켜져 있었고 남자 한 명이 책상에 앉아 있었다.”

영문을 모른 채 끌려온 김씨는 공포심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책상 앞에 앉았다.

“‘이기철과 붙어다니면서 일본과 이북을 몇 번 드나들었는지 불라’고 하는데 기가 막혔다. ‘그런 적 없다’고 했더니 대뜸 머리채를 잡아 방바닥에 패대기치면서 고문을 했다.”

밥을 먹은 기억도 없고 24시간 켜져 있는 전구 불 때문에 밤인지 낮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는 김씨. 그때 일을 다시 겪기라도 하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던 그가 갑자기 가슴께 옷자락을 움켜쥐더니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그는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던 김씨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고문당하는 동안 수십 번도 더 까무러쳤다. 어느 날은 깨보니까 알몸인 채로 방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않았다. 팬티까지도. 조사관이 다가오더니 막대기로 양쪽 가슴을 쿡쿡 찌르면서 히죽거렸다. ‘이기철이 간첩이라고 하면 옷 주지’ ‘이북 갔다왔다고 불면 몸 가리게 수건이라도 한 장 줄텐데’라면서.”

김씨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한참 후 다시 이어진 대화에서 김씨가 옮긴 조사관의 말은 잔혹하기 짝이 없다.

“네가 그러고도 살아서 나갈 것 같으냐? 그깟 몸뚱이 발가벗겨진 게 뭐 그리 대단하냐. 이북 몇 번 갔다왔어? 말 안 해? 작대기로 밑구멍을 쑤셔 목구멍으로 빼낼 년아. 바른대로 불지 못해? 이 젖통을 도려낼 년. 여기서 너 하나 죽이는 건 쥐새끼를 죽여 없애는 것보다 쉬워.”

일주일 넘게 온갖 회유와 협박, 고문이 이어졌지만 김씨는 끝내 간첩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땐 순진해서 거짓말도 할 줄 몰랐다고 했다.

발설 않겠다는 각서 쓰고 풀려나

김씨와 강씨에 이어 김익환씨가 관사로 끌려왔다. 그는 출장에서 돌아온 지 며칠 안 돼 면사무소에서 연락을 받고 급히 여천군청 군수실로 갔다.

“군수실로 올라가니까 군수와 군청 내무과장인 이교상, 행정계장 임신택 이렇게 세 사람이 모여 있었다. 또 강성준(가명)과 차아무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두 사람과 함께 군청 관사로 갔다. 강성준은 경찰관이었는데 아마도 정보원이었던 것 같다. 차씨는 조사받을 때 함께 있었는데 잘 모르는 인물이었다. 당시 군수실에 있던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틀 뒤 내무과장과 행정계장이 관사로 찾아와서 조사관들에게 ‘김익환은 대한민국 모범공무원으로 상도 받은 사람이니까 좀 봐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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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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