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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칼럼

동호인구 300만, 한국인은 왜 배드민턴에 미치나

감미로운 긴장감, 터질 듯한 충만감, 새와 검객의 숨가쁜 변주곡

  • 글: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부장 mars@donga.com

동호인구 300만, 한국인은 왜 배드민턴에 미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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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은 눈(머리)-발-손목의 삼위일체 운동이다. 눈이 밝아야 상대의 빈 곳을 잘 볼 수 있다. 머리가 좋아야 길을 읽을 수 있다. 발이 빨라야 총알 같은 셔틀콕을 받아낼 수 있다. 손목의 힘이 강하고 부드러워야 셔틀콕이 바닥에 닿기 2~3cm 전에도 강하고 빠르게 상대 코트 후방으로 깊숙이 쳐 보낼 수 있다. 또한 아무리 강한 상대의 셔틀콕이라도 살짝 죽여(헤어 핀) 네트 위에 걸쳐 넘길 수가 있다.

눈은 하루아침에 좋아지지 않는다. 상대 셔틀콕을 보고 움직이면 이미 늦다.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수없이 분석하고 연구해야 상대 셔틀콕이 다니는 길이 보인다. 많이 깨져봐야 ‘눈 푸른 납자(衲子)’가 된다. 깨지고 또 깨져 밑바닥에 떨어져봐야 비로소 그 길이 보이는 것이다.

‘셔틀콕의 황제’ 박주봉은 머리가 좋은 선수로 유명하다. 지능지수(IQ)가 아니라 두뇌 플레이가 빼어나다는 말이다. 그는 경기 전 이미 상대 셔틀콕의 길을 훤히 꿰뚫는다. 경기 전 최소 30분 이상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상대와 숨 막히는 ‘가상경기’를 펼치는 것이다. 상대가 후위에서 강한 스매시를 할 땐 짧게 네트 앞에 떨어뜨려주고 상대가 강하고 빠른 드라이브를 걸어올 땐 맞드라이브보다는 강약을 적절히 조절해 상대의 리듬을 끊는 등 머릿속으로 이미 한판 승부를 끝내고 코트에 들어선다.

박주봉은 말한다.

“경기 전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싸울 상대와 실제 경기하는 것처럼 온갖 수비와 공격을 해본다. 그러면 상대 선수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오고 여기저기 빈 곳이 보인다.”



조훈현의 바둑처럼 빠르고 경쾌하게

박주봉(40)은 1996년 ‘배드민턴의 노벨상’ 허버트 스칠 트로피를 받았다. 이 상은 1934년 국제배드민턴협회(IBF) 창립 이래 11명에게만 주어진 최고의 상. 2001년엔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다(그의 짝인 김문수도 2002년에 오름).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남자복식(김문수) 금메달,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혼합복식(나경민) 은메달, 세계선수권대회 5회 우승, 국제대회 71회 우승, 86아시아경기 3관왕…. 우승을 밥 먹듯이 해 기네스북에까지 올랐다.

도대체 박주봉은 뭐가 그리 뛰어날까. 우선 팔 다리가 긴 데다 182cm 67kg의 체격 조건이 배드민턴에 안성맞춤이다. 두뇌회전이 빨라 상대에 따라 유연하게 작전을 바꾼다. 그는 복싱선수의 쇼트 펀치처럼 힘 안들이고 짧게 툭툭 끊어 친다. 그의 스트로크는 예리한 단검이다. 소리 없이 상대 옆구리를 파고든다. 강스매시를 자주 날리지는 않지만 때론 전광석화 같은 드라이브를 속사포처럼 쏘아대기도 하고, 때론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는 드롭 샷을 하늘거린다. 그러다가 상대 몸쪽으로 섬광 같은 푸시를 날린다. 네트를 타고 흐르는 헤어핀(네트 인)을 섞는다.

그의 배드민턴은 변화무쌍하다. 수천수만의 꽃송이가 일제히 피어났다가도 갑자기 일진광풍의 돌개바람이 자욱한 먼지를 날린다. 조훈현의 바둑처럼 재빠르고 경쾌하다. 제비처럼 날렵해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가 네트 앞에 서 있으면 상대는 그 자체로 주눅이 든다.

1980년부터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까지 그는 그렇게 세계 남자복식을 휩쓸었다. 처음엔 이은구 성한국 이상복 안재창과 호흡을 맞추다가 1983년부터 김문수와 짝을 이뤄 10년 동안 강호를 주름잡았다. 180cm 75kg의 김문수는 박주봉을 전위에 놓고 후위에서 마음껏 강스매시를 날렸다. 더구나 그는 왼손잡이라 더욱 유리했다.

당시 세계 배드민턴 남자복식 4강은 박주봉-김문수 조, 리융보-티안빙이 조(중국), 구나완-하루토노 조(인도네시아), 라지프 시덱-잘라니 시덱 형제 조(말레이시아).

이중에서도 가장 껄끄러운 상대는 중국선수들이었다. 이들은 공격력이 강한 데다 스피드가 엄청나게 빨랐다.

“이들은 빨랐다. 특히 드라이브는 너무나 빠른 데다 강력해서 랠리가 되면 무척 힘들었다. 이들은 우리가 스매시 공격을 하면 드라이브로 반격하고 우리가 드라이브를 하면 더욱 강력한 드라이브로 맞받아쳤다. 드라이브는 빠르고 짧게 되돌아오는 스트로크라 한번에 큰 동작으로 강한 드라이브를 치면 다음 준비자세에서 빈틈을 보이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짧고 간결한 스윙동작에 강한 손목 힘으로 전광석화 같은 드라이브를 해왔다. 우리는 이들의 드라이브에 맞서 빠름과 느림, 강함과 약함을 적절히 섞어 타이밍을 뺏어 이기곤 했다.”

박주봉의 회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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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부장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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