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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며느리의 7년 치매 간병 일기

  • 글: 문영숙

어느 며느리의 7년 치매 간병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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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기 시어머님은 당신이 필요한 만큼 재력을 갖고 있었다. 또한 시아버님이 대령으로 예편하면서 연금수급자였기에 배우자 몫으로 나오는 연금은 시어머님 혼자 용돈으로 쓰시기에 충분했다.

당시 살림은 자연히 내가 맡았고 시어머님은 살림에 대해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시아버님이 돌아가심과 동시에 며느리인 나에게 살림까지 내주고 나서 집안에서 당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 없어졌다는 허탈감도 치매와 관계없이 우울증의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집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아무것도 없다는 극도의 상실감이 할퀸 상처를 그때 나는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주위에서도 착한 며느리에, 손자 손녀에, 살림걱정할 필요도 없고, 무엇이 힘드냐며 늘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는 시어머님을 비정상인 것처럼 몰고 간 점도 있었지 싶다. 만약 그때 살림을 더 하시게 하든지 시어머님이 아니면 안 되는 한 가지 짐이라도 지워드렸다면 그 긴장감에 그렇게 쉽게 심신이 허물어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아무 할 일이 없어 ‘나는 필요없는 인간’이라는 자포자기 상태로 발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젊은 사람들이 어른을 잘 모신다고 생각하여 아무 일도 못하게 하고 그냥 편히 쉬라는 것은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이제 당신이 우리를 위해 해줄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지금 95세 되신 친정어머니가 생존해 계신다. 친정어머니를 옆에서 지켜보면 작고 하찮은 일이라도 자식을 위해 무엇인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할 때 아주 행복해 하신다. 그걸 보면서 시어머님이 한꺼번에 살림을 놓게 한 것은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우울증과 함께 온 불면증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우울증으로 인해 힘들어하던 시어머님은 잠이 오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단골 한의원에서 보약을 지어먹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영양주사를 맞는 등 당신 스스로 지극히 건강을 챙기면서도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머지않아 죽을 것 같다며 두려워했다.

시어머님은 낮에는 코까지 골며 잘 주무셨다. 밤이면 낮에 잔 분량만큼 잠이 없을 것이었지만, 본인은 늘 한잠도 못 잤다고 주위 사람에게 하소연했다. 일 없는 시어머님을 위해 마당에 탁구대를 놓고 공을 주고받기도 하고 함께 산책을 하기도 했지만 잠을 못 잔다는, 시어머님의 강박관념은 점점 더 심해져갔다. 심지어 이웃 사람에게 ‘지금 몇 달째 한잠도 못 잤다’고 하는가 하면 ‘이러다가 며칠 못 가서 죽을 것 같다’느니 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잠에 대해 하소연했다.

시어머님은 그런 상태에서도 아침이면 언제나 교회로 전도를 나갔다. 하루는 같은 교회의 교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시어머님의 옷차림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그 날은 시어머님이 외출할 때 집안일을 보고 있어서 시어머님의 옷차림새를 눈여겨보지 못했는데 긴 팔 옷의 겉에 짧은 소매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때가 이른 봄이어서 블라우스만 입을 철도 아닌데 겉옷 위에 짧은 반소매의 여름 블라우스를 입고 나왔다며 나에게 집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냐고 물었다. 또 예전과 달리 전도를 하는 도중 뭔가에 쫓기는 것처럼 금방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면서 자주 허둥지둥 한다고 했다. 그날 이후로 나도 시어머님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요즈음 젊은 세대는 옷을 입을 때 자유롭게 자기취향대로 형식을 무시하고 입는다지만 시어머님의 옷차림은 나이 든 어른의 모습으로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정상이 아니었다. 그 일을 계기로 비로소 정신과 진료가 필요함을 느끼고 시어머님을 설득해 정신과를 찾게 되었다.

병원에 가기로 한 날, 집에서 가까운 종합병원을 두고 시어머님은 다니는 교회의 아는 사람이 모 부서 과장으로 있다는, B병원으로 가기를 원했다. 가뜩이나 병원에 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일단은 정신과 진료를 받을 요량으로 집에서 차로 한 시간 이상 걸리는 B병원을 찾아갔다.

외래 진료를 하는 동안에도 시어머님은 잠을 못 잤다면서 안절부절못했다. 의사의 문진을 받고 기초검사와 뇌 단층촬영을 했다. 모든 검사가 끝난 뒤 의사는 환자와 가장 가까운 보호자와 상담을 원했다. 한집에서 살며 늘 곁에서 모시는 내가 적임자였기에 내가 의사와 만났다.

의사는 시어머님의 뇌 사진을 보여주면서 뇌가 많이 위축되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함께 살아오면서 시어머님에게 느꼈던 점들을 소상히 말하라 했다. 나는 숨김없이 그동안 겪어온 일들을 차근차근 말했다. 내 말을 다 듣고 난 의사는 시어머님의 병명을 ‘기질성 우울증 및 노인성 치매’라고 진단을 내렸다.

기질성이란, 즉 젊어서부터 아무도 믿지 않으려는 심한 의심,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으려는 편집증을 동반한다고 했다. 체력이 좋을 때는 그런 증상들을 몸 스스로 제어할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약해지면 점차적으로 정신이 몸을 컨트롤하지 못하게 되고 치매증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살아오면서 내가 느낀 황당했던 일들도, 또는 약간은 불편했던 점들도 사실은 치매의 시초 증상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의사의 말을 들은 후에야 비로소 그동안 섭섭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을 되돌아보며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시어머님으로서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으며, 이제 병자인 시어머님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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