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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며느리의 7년 치매 간병 일기

  • 글: 문영숙

어느 며느리의 7년 치매 간병 일기

3/15
어느 날이었다. 새벽에 시어머님이 밥을 빨리 해야 한다며 10여분 간격으로 나를 부르는데 그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얼굴은 붉게 상기되고 눈동자가 튀어 나온 형상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이 놀라 나에게 청심환을 먹이는 등 한바탕 난리를 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화가 치밀어서 일어나는 증상이라 했다. 또 그런 증상이 나타날까 겁이 났다. 의사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시어머님을 그냥 무조건 재워달라고 애원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제대로 학교생활을 해야 하는데, 가뜩이나 수면이 부족한데 밤잠까지 설치니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고.

그 즈음부터 내 신경질도 늘어갔다. 시어머님과 실랑이를 하고 나면 식은땀이 버적버적 솟곤 했다.

여러 명의 선옥엄마

그 무렵 시어머님은 나를 여러 사람으로 착각하기 시작했다. 며느리인 선옥엄마가 여럿이어서 도대체 누가 진짜 며느리인지 분간이 안간다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아들보고 왜 애초에 선옥엄마만 데리고 살지 이 여자 저 여자를 데리고 사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시어머님이 그냥 횡설수설하시나보다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큰 소리를 내고 화를 낼 때는 시어머님 생각에 본래의 며느리가 아닌 다른 사람 같았으리라.

그렇게 시어머님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면서 나는 또 내 모습과 내 행동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성격이 거칠어지고 말을 안 듣는 시어머님을 억지로 목욕시키는 과정에서 시어머님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고 가슴이 아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닌데…, 내가 나를 다루기도 점점 버거워졌다.



특히 아이들 앞에서 시어머님과 실랑이를 벌일 때 더 난감했다. 아들애가 그무렵 사춘기에 들었는데 그때 시어머님의 착각증세가 악화돼 사소한 일에도 시어머님에게 큰 소리를 내야 할 때가 많았다. 어느 날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켰는데 아이가 아주 불손한 태도를 보이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그래서 내가 화를 내며 “너, 이 녀석 지금 엄마한테 무슨 행동이 그래” 하고 야단을 쳤더니 아이는 대뜸 나보고 “엄마도 할머니한테 큰 소리 내잖아” 그러면서 대꾸를 하는데 그때처럼 당황스러운 적도 없었다. 바로 그런 면들이 시어머님을 모시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었다.

부모보다는 자식이 앞서는 경우라 할까. 시어머님께 평소보다 많은 안정제를 투여해 주로 잠을 재웠다. 마음 한 쪽에 죄스러움이 움텄지만 솔직히 내게는 시어머님보다는 아이들이 우선이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비쳐지는 내 모습 때문에 많이 괴로웠다.

약물과용으로 인한 체력감소

약을 시간별로 조절해서 밤에는 무조건 잘 수 있게 평소의 약에 반 알을 더 드렸다. 덕분에 새벽마다 되풀이되던 ‘잠 깨우기 전쟁’은 두어 달 만에 사라졌다. 낮에도 주로 잠을 자 황당한 요구가 줄어들어 나로서는 훨씬 편했다. 대소변을 볼 때 거들고 식사시간만 맞춰 드리면 그 외 시간은 대개 주무셨다. 한번 잠이 들면 세상 모르고 몇 시간씩 주무셨기 때문에 나는 아주 오랜만에 휴식을 맛보았다. 비로소 시어머님이 잠자는 시간을 통해서나마 내 시간도 조금씩 가질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그런 시간이 한 3개월 정도 지속된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별 일 없으신가 하고 시어머님 방에 갔더니 소변으로 요가 흥건했다. 잠에 너무 깊이 취해서 그랬나 보다 하고 옷을 갈아입히고 요를 빨았다. 새 요를 깔아드리고 아침을 준비해서 식사를 시키려다 보니 또 요가 축축히 젖어 있었다.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소변보는 것을 모르겠느냐 물으니 자신도 모르게 나왔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내 일신의 편안함을 위해 무리하게 재운 탓에 몸에 무리가 온 것이 틀림없었다. 그 날 하루 종일 시어머님 곁에서 대소변을 가려 드리려 해도 상황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 날부터 약 일체를 끊었다. 우황청심환을 드시게 하고 비로소 몸을 일으켜 운동을 시키려 하니 몸이 많이 야위고 힘도 빠져 있었다. 몇 개월 동안 주로 잠만 잤으니 근육이 퇴화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말도 어눌해졌고 일으켜 앉히면 금방 어지러워했다. 무엇보다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니 큰일이었다.

근 일주일 동안 시어머님과 같이 자면서 조금씩 운동도 시켜드리고 시간 맞춰 대소변을 보게 해 드렸지만 소변은 잠깐 사이에 흘러 일일이 요를 빨아댈 수가 없었다. 결국 환자용 기저귀를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물불을 안 가리고 무조건 밖에 나갈 때는 제발 다리에 힘이라도 빠져 누워계시기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게 되고 보니 마음이 또 착잡했다. 사람 마음이란 이렇게 간사하고 변화무쌍한 것인지 측은한 연민에 혼자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치매가 시작된 지 5년째 접어들면서 시어머님의 신체는 조금씩 중환자로 변해갔다. 운동을 하지 않은 근육은 점점 쇠약해지고 곁에서 부축하지 않으면 거동하기도 쉽지 않았다. 때문에 다릿심도 없고 목욕을 시켜 드리려 해도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웠다.

혼자 계실 때 보면 틀니도 잇몸에 제대로 끼워져 있지 않고 입안에 위험하게 들어가 있어 혹 기도라도 막히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앞섰다. 차고 있는 기저귀 안으로 손을 자꾸 집어넣는 바람에 손과 끼고 있던 반지에 오물이 묻기 일쑤였다. 늘상 끼고 계시는 반지는 살이 점점 빠지면서 헐거워져 분실위험도 있었지만 시어머님은 절대 손에서 빼는 것을 허락지 않아 그 반지에 신경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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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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