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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눈으로 본 정치

참여정부 인사시스템의 명암

투명해진 인사절차, 그러나 아직 엉성한 ‘그물망’

  • 김정훈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nghn@donga.com

참여정부 인사시스템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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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인사 검증 업무는 민정수석비서관실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맡아왔고, 실제 검증은 국가정보원의 사정팀이나 국세청, 경찰 등 사정기관을 손발로 활용해왔다.

노무현 정부가 도입해 실험중인 인사시스템은 대체로 미국 백악관의 시스템을 차용한 것이다. 요직 인선 때 노 대통령이 직접 후보자를 면접하는 것도 백악관의 시스템과 별 다를 바 없다.

대표적으로 노 대통령은 2003년 가을부터 연세대 김우식 총장을 세 차례나 청와대 관저로 초청해 사실상의 면접을 봤다. 김 총장이 끝까지 결단을 내리지 못하자 세 번째는 부부동반으로 관저에서 식사를 하면서 비서실장직 수락을 청했다고 한다. 당시 노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 뒤편의 구중심처에 있는 관저 앞까지 배웅을 나오면서 “여기도 사람이 살 만한 곳입니다”고 호소했고, 결국 김 실장은 대통령의 청을 받아들였다.

김성호 부패방지위원회 사무처장(차관급)도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경우다. 2004년 1월 대구지검장으로 재임하던 김 처장은 청와대로 불려가 노 대통령이 면전에서 자리를 맡아달라고 하자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수락했다. 김 처장이 다시 대구로 내려가기 위해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 라디오에서는 김 처장 내정발표 뉴스가 나왔다. 혹시라도 마음이 바뀔까 봐 곧바로 발표해버린 것이다.

청와대는 이밖에도 비서관급 이상은 1명씩 공직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게 제도화했다. 과거 청와대에서 사적인 라인을 통해 인사 추천이 이루어져 그로 인해 누가 누구를 밀었다, 누가 누구를 떨어뜨렸다는 식의 뒷말이 나오던 것을 아예 양성화한 것이다. 과거 정권에서 권력 실세를 중심으로 여러 갈래의 비선(秘線)이 복잡하게 얽혀 있던 인사 추천 라인을 공식적인 인사추천 시스템으로 모두 끌어들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현 정부에서는 인사 로비가 매우 어려워졌다는 것이 공직 예비후보들의 하소연이다. 청와대 인사추천회의의 경우 대통령비서실장, 대통령정책실장, 시민사회·민정·홍보·인사수석비서관 6명으로 구성돼 있고 따라서 청탁을 하더라도 수석비서관 한두 명에게 부탁해서 성사될 것으로 확신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정찬용 인사수석의 ‘한숨’ 사건

정찬용 전 인사수석비서관의 ‘한숨’ 사건은 인사 결정 시스템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다.

2003년 가을쯤 정 수석의 절친한 친구가 어느 공기업 사장 후보에 올랐고, 정 수석의 친구들은 “찬용이가 인사수석인데, 이건 다 된 거나 마찬가지”라며 인사추천회의가 열리는 날에 맞춰 미리 축하연을 준비해놓았다. 그러나 막상 회의에서는 대다수가 “사람은 훌륭하지만 그 자리의 적임자는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냈고, 다른 사람으로 결정이 나고 말았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인사추천회의 의장인 문희상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정 수석이 어두운 표정으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문 실장이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느냐”고 묻자 정 수석은 “이제 나는 친구들한테 맞아죽게 생겼습니다. 지금 내 친구들은 축하연을 한다고 다들 기다리고 있는데, 가서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난감합니다”라고 했다. 문 실장이 “그럼 진작에 얘기를 하지, 회의가 다 끝났는데 이제 와서 그 얘기를 합니까. 재고해볼까요?”라고 물었지만, 회의 결과를 뒤집기는 어려웠다.

정 전 수석비서관은 나중에 “회의가 끝난 뒤에 친구 얘기를 꺼낸 것은 다른 참석자들에게 일종의 경계의 뜻으로 했던 것이다. 누구라도 친구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과연 노 대통령은 인사추천회의 결과에 어느 정도 개입할까. 노 대통령은 장관급 이상의 요직에 대해선 직접 인선 기준에 관한 지침을 내리고 있지만, 대통령이 임면권을 가진 458개 직위의 대부분은 인사추천회의의 결론을 따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전 수석에 따르면 한번은 인사추천회의가 끝난 뒤 노 대통령에게 “A라는 사람이 가장 낫다는 결론이 났다”고 보고했고, 노 대통령은 한참 뜸을 들이더니 “알았다”고 답했다. 정 전 수석은 곧바로 인선결과를 언론에 발표했다. 다음날 수석비서관 회의가 끝나자마자 노 대통령이 “정 수석, 좀 봅시다” 하며 집무실로 따로 불렀다. 노 대통령은 정 전 수석을 보자마자 “어제 그거 왜 발표했어요?”라고 따져 물었다. 정 전 수석이 “재가하신 거 아닙니까?”라고 하자 노 대통령은 “알았다고 했지, 오케이한 겁니까? 다시 생각해보자는 뜻이었는데, 하여튼 알았어요”라고 했다. 정 전 수석은 “나중에 알아보니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후보에 들어 있었다고 하더라. 하지만 대통령도 그 정도 얘기만 할 뿐 더 깊이 관여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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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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