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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빈자(貧者)의 미학’ 설파하는 건축가 승효상

“건축의 제자리는 기술도 예술도 아닌 인문학이더라”

  •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빈자(貧者)의 미학’ 설파하는 건축가 승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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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집구경을 했을 뿐 건축에 대해 무지한 내가 승효상을 감히 ‘우리시대 최고의 건축가’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그가 지은 집보다 그가 쓴 책에서 설득당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좋지 않은 건축가가 논리적이고 창조적인 글을 쓰기는 그가 좋은 집을 짓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어렵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시대 최고의 건축가’라는 말에 그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그런 국기기밀을 누설하면 처벌받을지 모릅니다”라고 웃으며 경고했다. 그러나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말을 쓰고야 만다.

그는 몇 달 전 베이징 차오웨이 소호에 지은 연건평 4만5000평 규모의 오피스텔 설계안 공모에 당선됐다. 공모에 당선됐기 때문에 최고의 건축가라는 게 아니다. 지금 천지개벽중인 베이징엔 세계의 내로라하는 건축가가 모여들고 있는데다 하루가 다르게 큼직한 집들이 들어서고 있다. 그런만큼 경쟁이 뜨겁고 온갖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중국 고유한 삶의 방식과 공동체 의식을 존중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그의 작품에 현지인들은 깊이 감동하고 매혹되었다.

그 소호 앞에 한국 기업이 진출해 사옥을 짓고 있는데 공사를 맡은 이는 미국 건축가였다. 순진한 중국인들은 진심으로 “저 사람들은 한국에 당신이 있다는 것을 모르나요?” 하고 묻더란다. 베이징 한복판에 한국의 정신과 미를, 반영구적으로 우뚝 세울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 너무 애통해서 절로 그런 말이 나온 것이다.

그런 안타까움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각국 대사관 건물은 그 나라의 상징이다. 베를린에 한국대사관을 새로 짓는데 우리 정체성을 보여줘야 할 그 건물의 설계자로 선택된 이는 독일인이었다. 자국 건축가는 아예 그 마당에 끼여들지도 못하게 판이 짜여 있다 한다.



정직한 ‘시멘트 벽돌’의 힘

흥분을 거두고 다시 방 이야기를 좀더 해야겠다. 그의 방엔 시멘트 벽돌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천장도 시멘트 마감 그대로다. 이른바 내장이라는 것을 전혀 하지 않은 방이다. 문외한이 전문가로부터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그저 종횡무진, 좌충우돌 질문을 던지는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 내 경험이다.

“저런 마감은 너무 거친 게 아닌가요?”

“처음 보면 거칠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거칠다고 ‘뷰티풀’하지 않은 건 아니지요. 시멘트는 ‘스위트’하지는 않아도 ‘뷰티풀’한 재료입니다. 스위트한 건 금방 싫증나도 뷰티풀한 건 오래가거든요.”

무례한 질문으로 나는 많은 것을 얻어 듣는다. 그는 모든 걸 감춰버리는 페인트를 싫어하고 자재를 그대로 드러내는 정직을 좋아한다. 주렁주렁 매다는 장식을 싫어하고 화장기 없는 맨얼굴을 선호한다. 이로재의 살림집에 올라갔을 때 흔한 그림 하나 걸리지 않은 채 완벽하게 비워진 흰 벽을 봤다. 아마도 그는 음식의 단맛조차 싫어할 것이다.

“저 시멘트 블록은 가로 40, 세로 20으로 개수를 세기만 하면 벽의 사이즈가 정확하게 나와요. 정직하죠. 저렇게 블록을 그냥 드러내면 건축비도 훨씬 적게 듭니다.”

“녹슨 철판을 선호하는 이유는 뭡니까.”

“저건 원래 건축 재료가 아니었어요. 토목용이지요. 강이나 바다에 교량을 설치하면 페인트를 칠할 수 없으니까 남아있는 철을 영구보존하기 위해 특수 합금한 내후성 강판입니다. 시간이 가면서 산화하다 몇 년 지나면 암적색이 그대로 유지되어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려들어요. 쇠는 기본적으로 땅의 산물이고 산소와 결합해 자연스러운 색이 형성되거든요. 번쩍거리는 것을 싫어하는 내 구미에 맞고 금방 지어도 새 건물처럼 보이지 않는 이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값도 싸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요즈음은 하도 많이 써서 값이 잔뜩 올랐어요. 재료마다 물성이 다 다릅니다. 그 성질을 파악해 정직하게 드러내는 일이 흥미진진합니다. 요즘은 다시 돌의 물성을 들여다보는 중입니다.”

그의 작업실 한켠은 첩첩한 서가다. “도서관 규모의 책이로군요” 감탄하자 “저 안에 바(bar)도 있습니다”며 천진한 웃음을 짓는다. 그는 소문난 술꾼이기도 하다. 좋은 일 있으면 일쑤 진탕 마시고 울분과 갈등도 술로 희석할 때가 많다.

작업대 맞은편엔 지금은 문화재청장이 된 유홍준이 학동 수졸당을 지어준 보답으로 넘겨줬다는 ‘이로재’ 현판이 걸렸다. 경남 산청 어딘가의 고가가 헐리면서 인연 따라 여기까지 흘러온 현판인데 고졸하고 온화하게 주인을 건너다보고 있다.

“장자에 나오는 구절로 (가난한 선비가) 새벽이슬을 맞는다는 뜻이랍니다. 직원들이 만날 야근하는 우리 연구소에 딱 맞는 이름이라고들 말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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