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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方外之士 ⑭

역사서 전문 문필가 이덕일

서기묵향(書氣墨香) 밴 광야에 자유롭게 갇혀 쓰다

  •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역사서 전문 문필가 이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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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酉)도 문곡성(文曲星)이다. 문곡성도 문창성과 마찬가지로 학문을 관장하는 별이다. 이 사주에는 문곡성이 2개나 들어 있다. 문창성이 생전에 학문으로 빛을 보는 별이라면, 문곡성은 죽은 이후 이름이 나는 별이다. 어찌 되었든 문장, 학문과 연관이 깊은 팔자인 것이다. 이런 정도 사주를 타고나려면 선대에 명당을 하나 썼어야 했다. 확률적으로 조부나 증조부 묘가 문필봉 앞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문장가를 만나면 그 집안의 조상 묘를 답사해보는 버릇이 있다. 명당이 아니면 그 집안의 친가나 외가 쪽 조상 가운데 문장에 능통했던 사람이 있을 확률이 높다. 후손은 조상의 ‘리바이벌’인 경우가 많다.

-이제까지 쓴 책이 총 몇 권이나 되는가.

“27권이다. 첫 책이 1997년에 나온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다. 이 때가 숭실대 사학과 대학원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던 해로 나이는 37세였다. 그 이후로 계속 썼다. ‘사도세자의 고백’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3권) ‘운부’(3권) ‘이회영과 젊은 그들’ ‘역사에게 길을 묻다’ ‘오국사기(五國史記)’(3권) ‘누가 왕을 죽였는가’ ‘여인열전’ ‘살아있는 한국사’(3권) 등이다. 최근에 낸 책이 2004년 5월에 나온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2권)이다.”

-8년 동안 27권을 저술했으니 1년에 평균 3권씩 쓴 셈이다. 1권의 원고지 평균매수를 1200매라 하면 1년에 3600매를 쓴 것이고 이것을 다시 365일로 나누면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원고지 10매씩은 썼다는 애기다. 대단한 중노동인데, 체력에는 문제가 없는가.

“단행본 저술 외에 잡지나 신문에 기고한 원고까지 포함하면 하루 10매가 넘는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렇게 쓰게 될 줄 몰랐다. 쓰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다. 많은 분량을 쓸 수 있었던 데는 컴퓨터의 효능이 뒷받침됐다. 옛날처럼 펜으로 종이 원고지에 직접 눌러쓰는 시스템으로는 이만한 분량을 쓰기 어렵다. 컴퓨터는 2대를 번갈아 사용한다. 집에서는 노트북을 사용하고 집필실에서는 데스크톱을 쓴다. 장시간 작업에는 노트북이 피로가 덜하다. 단시간에는 데스크 톱이 맞다.



체력관리는 등산으로 한다. 일주일에 1∼2회 서울 근교의 산을 오른다. 집필을 하려면 아무래도 앉아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하체 보강운동이 필요하다. 하체 보강과 기분전환에는 등산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1인 기업가인데, 출퇴근 시간은 어떻게 정해놓았나.

“보통 9시에는 상계동에 있는 집에서 나와 수유리 집필실에 도착한다. 전철로 40분 거리다. 퇴근시간은 일정하지 않다. 저녁에 술 약속이 있으면 6시이고 그렇지 않으면 8∼9시가 된다.”

-자기 마음대로 조정하는 출퇴근이라서 좋겠다. 얼마나 자유스러운가.

“마냥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자료에 갇혀 산다. 끊임없이 자료를 검토해야 한다. 원고매수와 마감시간에 갇혀 산다. 마감기일을 지키는 게 프로다. 인생사에서 제약을 완전히 벗어나는 삶은 불가능한 것 아닌가.”

-문필가에겐 결국 아이템이 관건일 텐데, 아이템 구상은 어떻게 하나.

“사관(史觀)이 가장 큰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소설가가 아니다. 그렇다고 철학자도 아니다. 문사철(文史哲) 가운데 사(史)를 가지고 책을 쓰는 직업이다. 역사에서 가장 큰 주제이자 골격은 역시 사관이다. 저술의 전체적인 방향은 물론이고 내가 설정한 사관에 바탕해 집필한다. 사관이야말로 나의 마르지 않는 아이템인 셈이다.”

역사 축소하는 실증주의 사관

-그렇다면 이 선생의 사관은 무엇인가. 기존의 사관과는 어떻게 다른가.

“이제까지 역사학계의 주류를 형성해온 사관은 실증주의 사관이다. 모든 역사를 실증할 수 있는 자료에 바탕을 둔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증은 역사학의 기본적인 방법론이지, 그 자체가 이념이나 주의, 즉 지향점이 될 수는 없다. 여기에 우리 역사학의 비극이 있다. 일제 식민주의 사학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서문에는 일제 식민사학을 벗어났다고 주장하지만 막상 서술한 것을 보면 식민사학의 아류인 책이 많다. 역사가에게 실증은 기본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실증에만 매달리면 한계에 봉착한다.

실증주의 사관에 기반한 식민사관이 지닌 문제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공간이 축소되는 문제고 둘째는 시간이 축소되는 문제다. 나는 이것을 돌파하고 싶다. 이런 도전이 곧 나의 사관이기도 하다.”

그가 주장하는 공간과 시간의 축소 문제를 설명하면 이렇다. 먼저 공간이 축소된다는 것은 우리 역사가 한반도 내에 한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민족의 본래 무대는 대륙이다. 식민사관은 이 대륙을 우리 역사에서 지워버렸다. 한국의 고대사는 대륙과 해양을 아울러 보아야 한다. 만주대륙에서 일본열도까지 우리의 무대였으므로 이쪽까지 모두 포괄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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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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