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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스포츠 악연 다시 보기

한국 프로복서 美서 26연패, 美 ‘장난’에 4강 내준 LA올림픽 남자배구, 시드니올림픽 야구팀 울린 결정적 오심…

  • 기영로 스포츠 평론가 younglo54@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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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구가 맨시니 선수에게 무수히 얻어맞은 뒤 끝내 14회에 숨지자 WBA는 15회까지 치르던 세계타이틀 매치를 12회로 줄였다. 이후 WBC도 WBA를 따라갔고, 지금은 WBO, IBF, IBA를 포함한 모든 세계타이틀 매치가 12회전으로 치러지고 있다.

김득구는 해외원정에 나선 국내 복서 중 처음으로 사망하는 기록을 남겼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 복싱의 본거지인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해 그 첫 경기에서 허무하게 불귀의 객이 된 것이다.

4전5기의 대명사 홍수환도 미국 징크스의 희생자였다. 홍수환은 국군수도경비사령부 병장이던 1974년 7월3일 멀리 남아프리카 더반까지 날아가 당시 WBA 밴텀급 챔피언이던 아널드 테일러를 4차례나 다운시키며 15회 판정승을 거두어 김기수에 이어 두 번째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28일 필리핀의 카바렐라에 판정승을 거두고 타이틀 1차 방어에 성공했다.

그런데 2차 방어지가 미국 LA였던 것이 화근이었다. 도전자는 멕시코의 알폰소 사모라. 당시 20연속 KO승 행진을 하던 강 펀처였다. 물론 국내외 복싱 전문가들은 키가 10cm 더 큰 홍수환(1m72cm)의 노련미가 알폰소 사모라(1m63cm)의 파워를 잠재울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1975년 3월15일 LA에서 벌어진 2차 방어전에서 홍수환은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알폰소 사모라에 4회 KO패를 당했다. 링 주위를 꽉 메웠던 멕시코계 관중들의 열화 같은 응원과 처음 접해보는 낯선 링, 그리고 심판의 눈에 보이지 않는 편파 진행에 기가 센 홍수환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LA올림픽과 미국의 ‘금메달 음모’

돌주먹 김태식도 미국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했다. 51kg 이하의 플라이급 선수로 활약했던 김태식은 한국 경량급 사상 최강의 주먹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태식은 1980년 2월17일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진 WBA 플라이급 세계타이틀 매치에서 챔피언 파나마의 루이스 이바라에게 2회 KO로 이길 때까지 200여개의 무서운 펀치를 퍼부어 보는 사람을 경악케 했다.

하지만 강 펀처 김태식도 부상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김태식은 1980년 12월1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벌어진 피터 마테블라와의 WBA 플라이급 세계타이틀 2차 방어전에 앞서 손목 부상을 당해 결국 주먹 한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15회 판정패를 당했다.

김태식은 경기가 끝난 후 “복싱을 시작한 지 10여년 됐지만 손목을 다친 것은 처음이다. 불가항력이었다”며 아쉬워했다.

미국 징크스는 아마추어 복싱도 마찬가지였다. 1984년 LA올림픽은 한국스포츠계가 모처럼 맞은 호기였다. 그보다 8년 앞선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한국은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딴 바 있다.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였다. 이후 경기력 향상에 가속도가 붙는 듯했지만,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때 미국 일본 캐나다 서독 등 자유진영 국가들과 함께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는 뜻으로 출전하지 않는 바람에 금메달 열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1984년 LA올림픽 때는 3년 전 들어선 군사정부가 프로야구 프로축구 민속씨름 등 프로스포츠를 잇달아 창단하는 등 ‘스포츠 장려책’을 편 덕분에 경기력이 크게 향상됐다.

더구나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때 미국을 비롯한 자유진영 국가가 불참한 데 맞서 소련 쿠바 동독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출전하지 않는 바람에 이들 나라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일부 종목에서 메달을 딸 기회가 많아졌다.

소련 쿠바 등이 강세를 보이던 복싱도 그 가운데 한 종목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미국의 음모가 개입할 줄은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과 소련은 각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국가였기 때문에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치열한 헤게모니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당연히 올림픽 무대에서도 자존심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소련은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 미국 일본 등 스포츠 강국들이 참가하지 않은 틈을 타 메달을 주워담다시피 해 무려 80개의 금메달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역대 올림픽 가운데 한 대회에서 한 나라가 따낸 최다 금메달이었다.

미국은 4년 뒤 자국에서 열린 LA올림픽에서 종합 1위는 물론 금메달 수에 있어서도 지난 대회에서 소련이 따낸 80개보다 1개라도 더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그에 따라 객관적인 수치로 순위가 정해지게 마련인 육상 수영 사격 등 기록종목보다는 심판들의 재량으로 경기결과가 뒤집힐 수 있는 격투기 종목을 집중 공략대상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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