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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립 시인의 시드니 통신

박수근 화가 3代가 부르는 무구(無垢)의 노래

“가난은 예술가의 원동력, 선함과 정직함만 소처럼 그릴 테요”

  • 윤필립 在호주 시인 philipsyd@naver.com

박수근 화가 3代가 부르는 무구(無垢)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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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화가 3代가 부르는 무구(無垢)의 노래

자신의 작품 앞에 선 박성남 화백.

박성남을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나는 것은 고사하고 연락처를 얻는 일도 만만치가 않았다. 한두 단계만 거치면 모두 아는 사이가 되는 시드니 한인사회에서 그의 전화번호를 얻는 데만 세 단계를 거쳤다. 그것도 보름 가까이 수소문해서 얻은 결과였다.

아주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은둔하며 지내는 사람들은 대체로 언론 인터뷰를 극도로 꺼린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는 “할 말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는 무심한 답변으로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그렇다고 그의 전화응대가 냉랭하거나 무례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의 음성에서 어떤 상처 같은 것이 느껴졌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쳐버린 삶에서 비롯된 외로움인 것 같았다. 삶의 디테일에서 묻어나는 크고 작은 얼룩들….

그의 말을 한참 듣다 보니, 그의 음성에 높낮이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마치 독백을 하듯 담담하게 지난날을 들려주었다. 문득 모노크롬(단색화)에 가까운 박수근의 그림이 떠올랐다.

한국의 밀레를 꿈꾼 박수근



필자는 박수근을 모른다. 그를 만난 적이 없으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 그러나 그를 붕어빵처럼 닮은 장남 박성남을 만나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책 속에 쓰인 박수근의 생애가 다큐멘터리 영상처럼 재생됐다.

두 부자의 사진을 보면 모든 걸 금방 알 수 있다. 세상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억울하다”고 소리치지 않고, 순한 사슴처럼 눈만 끔뻑이는 박수근과 박성남. 이 두 사람을 만나본 소설가 박완서는 박성남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박성남씨를) 처음 만났을 때 아버지를 빼닮은 융숭 깊은 인상 때문에, 그 후에도 종종 떠올릴 때마다 박수근 화백이 남기신 어떤 작품보다도 큰 기쁨과 위안을 느낍니다.

생김새뿐만이 아니다. 아무리 두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라지만 살아가는 방식과 예술에 대한 견해가 어쩌면 그렇게까지 일치하는지. 마치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 윌리엄 브레이크가 그의 시 ‘무구의 노래(Songs of Innocence)’에 담아낸 순진무구처럼, 자연 그대로의 순박함을 그리는 것이다. 다음은 박수근의 말이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들의 이미지(像)를 가장 즐겨 그린다.

이 말이 담고 있는 박수근의 작가정신은 장남 박성남의 그것과 아주 흡사하다. 특히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린다’는 부분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다. 그는 타계하기 몇 해 전 한 잡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은 회고를 남겼는데, 여기에서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 드러난다.

아버님 사업이 실패하고 어머님은 신병으로 돌아가시니, 공부는커녕 어머님을 대신해서 아버님을 돕고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우물에 가서 물동이로 물을 길어와야 했고 망(맷돌)에 밀을 갈아 수제비를 끓여야 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혼자서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드리면서 그림 그리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빚으로 한 채 남은 집마저 팔아버리고 온 식구가 뿔뿔이 헤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춘천으로, 평양으로 봉급생활을 하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박성남의 삶도 마찬가지다. 1986년, 보다 나은 삶을 꿈꾸며 혼자 호주로 이주했지만 영주권 문제로 가족들과 헤어져 살아야 했다. 더욱이 장남과 차남이 인도로 유학을 떠나는 바람에 가족들은 한국, 호주, 인도에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그는 시드니에서 청소원으로 일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혼자 외롭게 살면서 죽기 살기로 그림에만 매달렸다. 26세의 새신랑 박수근도 직장생활 때문에 평양에 혼자 살면서 그림을 그렸다.

다만 박수근은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나 박성남은 “아버지 같은 화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아버지의 화풍을 닮고 싶다기보다 화가로서의 투철한 작가정신과 성실한 삶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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