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당에서 솔잎을 다듬는 권숙자씨.
점심 무렵 약돌을 갈아서 먹인 돼지고기 음식점에 들어갔다. 호산춘(湖山春)이 나왔다. 명성은 익히 들어왔지만 대면하기는 처음이었다. 누군가 한국의 3대 명주로 경주교동법주, 소곡주 그리고 호산춘을 꼽은 적이 있다.
경주교동법주는 국가지정문화재이고, 소곡주는 2004년에 ‘전통식품베스트 5’ 선발대회에서 최고 명주로 꼽힌 술이다. 초면인 호산춘이 그 술에 비해 밀리지 않는 것은 춘주라는 명칭 때문이리라.
호산춘 두 병이 밥상에 올랐다. 하나는 유리병이라 투명하게 속이 들여다보였다. 술색은 빛나는 구릿빛인데, 세월의 무게가 감지될 만큼 그 색이 진하다. 가격은 700ml에 9000원. 다른 하나는 도자기병으로 주둥이가 넓어 옛 주병을 연상시킨다. 900ml에 1만4000원이니, 도자기병 값으로 5000원이 추가된 셈이다. 물론 술의 양은 200ml 늘었다. 술값이 불안할 만큼 저렴하다. 언제부터인가 술값이 싸면 불안하다. 재료비가 나올까, 혹 재료비가 안 나와 값싼 재료를 쓰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어서다.
호산춘 한 잔을 들이켰다. 술맛은 달지만 뒷맛이 끈적거리지 않았다. 진하지 않다는 얘기다. 누룩내가 스치지만 코끝에 오래 머물지도, 입안에 오래 남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오래 되고 노련한 풍미가 있다. 마치 아귀가 잘 맞는 성벽을 더듬는 느낌이다. 술맛은 짱짱하고, 도수도 제법 세다. 알코올 도수를 보니 소주보다 3%포인트 낮은 18%다. 백세주가 13%니, 약주로는 센 편이다. 한산 소곡주와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가장 센 발효약주다.
음식점을 나오려는데 술이 남았다. 술이 남으면 아깝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생명체 같아, 차마 팽개칠 수 없다. 그래서 술병을 챙겼다. 그 술병을 들고 문경을 떠돌다가 진남교반에 이르렀다. 부산에서 서울로 이어지던 조선의 길 영남대로가 폭 50cm로 좁아지는 길목이다. 산과 산 사이로 강줄기가 태극문양으로 빠져나간다.
그곳에 토천(兎遷), 토끼비리(벼루)라고 부르는 좁은 길이 나 있다. 이곳에서 길을 잃은 고려 태조 왕건과 그의 부하들이 달아나는 토끼를 뒤따르다 개척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토끼비리는 고모산성 성벽과 연결되어 있다. 성벽에는 진남문이 있다. 남쪽을 제압하겠다는 뜻이다. 그 문루의 현판을 호산춘을 빚는 이가 썼다고 한다. 술 빚는 사람과 글씨 쓰는 사람, 둘 다 손놀림이 좋아야겠지만 한 사람이 글씨도 쓰고 술도 빚었다는 게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호산춘을 빚는 이를 만나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한때 경상도 최고의 비경으로 꼽혔던 진남교반을 벗어나, 문경새재로 가는 길목에 터를 잡은 도자기전시관을 찾아갔다. 관요(官窯)가 발달한 경기도 이천, 여주와 달리 문경은 민요(民窯)가 발달했다. 민요에서는 실용 도자기를 많이 만든다. 대표적인 상품으로, 근자에 이르러서 부상한 막사발이 있다. 일본인들이 귀하게 여긴 덕분이다. 전시관에는 막사발과 찻사발이 눈에 많이 띄었다. 차 마시는 방도 있었다.
500년 된 술잔에 술을 붓다
차를 한잔 마시면서 전시관 이종범 관장에게 막사발의 용도를 물었다. 막사발은 물도 마시고 밥도 담고 제기로도 쓰고 술잔으로도 썼다고 한다. 막 썼기에 막사발이라는 것인데, 문경에서는 그 용도가 다양해 개 밥그릇으로 사용할 정도였다 한다. 막사발에 막걸리가 들어앉으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막사발은 예전의 막사발이 아니다.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하는 고가의 상품이 된 지 오래다. 막걸리만 애잔하다. 그러고 보니 전시관에 주병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소문난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하면 주병들인데 다 어디 가고 찻사발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냐고 물었더니 관장은 나중에 조용히 따로 오면 좋은 술병을 보여주겠노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