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호

고혈압 합병증 투병 개그맨 이용식

“우황청심환만 믿지 말고, 가슴 아프면 병원부터 찾으세요”

  •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5-01-26 17: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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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혈압 합병증 투병 개그맨 이용식
    “아무생각도 없었어요. 외동딸 시집가는 날 손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갈 때까지는 어쨌든 살아야 한다는 것밖에….”

    ‘뽀식이’ 이용식(李龍植·52)씨는 8년 전 일을 잊지 못한다. 1997년 5월, 회식을 마친 다음날 아침 목욕탕에서 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긴 송곳으로 가슴을 찌르는 듯한 엄청난 고통이 엄습했다. 숨을 들이마시기조차 힘들었고, 온몸은 이내 땀범벅이 됐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2주 전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 어머니 역시 2년 전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터였다.

    문득 자신에게도 심근경색이 닥쳐왔다고 직감한 이씨는 매니저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서울 홍은동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신촌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달려갈 수 있었다. 마침 이씨가 신촌세브란스병원과 서울대병원 홍보대사로 활동한 까닭에 두 병원간 연락도 잘 이뤄져 이씨의 응급조치 준비 시간이 단축될 수 있었다.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도중 이씨는 온몸의 힘이 빠지는 가운데서도 의식만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지방 갈 때는 병원 위치부터 챙겨

    “인간이 이렇게 떠나는 거구나 하는 허무감과 공포에 사로잡혔어요. 한 번만 더 삶의 기회를 달라고 하나님께 빌고 또 빌었죠. 그런데 앰뷸런스가 사이렌을 울리는데도 앞차들이 어찌나 비켜주질 않던지…. 지금도 저는 방송에만 나가면 운전자들에게 앰뷸런스 길 좀 터주라고 신신당부해요. ‘지금 거기 바로 당신 가족이 타고 있을 수도 있다’면서.”



    응급실에 도착한 이씨는 곧바로 수술실로 옮겨졌다. 수술 받다가 죽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에 안절부절못하는 이씨의 귀에 그를 진찰하던 심장내과 전문의의 속삭이는 듯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용식씨, 오늘이 녹화 날인데 왜 여기 누워 있는 거요?”

    그 전문의가 바로 지금껏 이씨의 주치의를 맡고 있는 연세대 의대 심장내과 정남식(52) 교수다. 그날 녹화할 프로그램의 담당PD가 공교롭게도 정 교수의 친동생이었던 것. 하늘이 도운 인연이라 생각하니 그때부터 다소 안심이 됐다고 한다.

    당시 관상동맥(심장혈관) 스텐트 삽입술(Stent Insertion·좁아진 혈관 부위에 볼펜심 스프링 모양의 금속 그물망인 스텐트를 넣어 혈관을 넓혀주는 시술)을 통해 좁아진 혈관을 넓힌 그는 ‘하늘이 다시 한 번 삶의 기회를 준 것’이라 여기고 이후 각종 환자들을 위한 선행활동을 꾸준히 펼친 끝에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29일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쓰러져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당시는 혈압이 높은지조차 몰랐어요. 심근경색이 고혈압의 합병증인 줄도 전혀 몰랐죠. 건강검진 한 번 안 받았고, 그때까지 아픈 증상도 없었으니까요. 지금은 제 몸 상태에 대해 나름대로 ‘베스트(best)’라 생각해요. 가끔 가슴이 편치 않고 기분이 찜찜할 때가 있는데 그건 불안해서 그런 것 같아요. 스텐트 삽입술을 받고 나서 3년 가량은 불안증세가 심해 지방공연이나 야외녹화를 나갈 때면 비상약은 물론 심장내과가 개설된 인근 병원의 위치와 전화번호, 의료진 등의 정보를 미리 확보하고 있어야 안심이 되곤 했어요.”

    그뿐인가. 한때 이씨는 저녁 무렵 가슴이 좀 뻐근하다 싶으면 신촌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부리나케 달려가곤 했다. 열대여섯 번은 족히 갔는데, 막상 거기서 5분 정도만 있으면 괜찮아졌다고 한다. 그게 다 불안증세 때문이었다는 얘기다.

    이씨가 고혈압과 심근경색을 앓게 된 원인은 무엇보다 가족력이 있는 데다 비만 탓도 컸다. 그는 쓰러지기 전까지 끼니마다 기름진 음식과 맵고 짠 음식을 즐겼다.

    “솔직히 짜고 매운 건 제 전문이에요. 라면을 끓이는 법부터 다르죠. 물이 끓으면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요. 그럼 물이 뻘개지잖아요. 거기에 면과 스프를 넣고 청양고추와 후춧가루까지 넣어요. 그게 제대로 된 맛이지.”

    게다가 혈액형이 A형이라 그런지 시청자에게 비치는 모습과는 달리 무척 스트레스를 잘 받는 편이라고 한다. 방송에 들어가기 전 ‘스탠바이’ 한마디에도 항상 긴장하는데 누가 조금이라도 싫은 소리를 하면 보름 정도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성격도 예민하다.

    현재 이씨는 매일 혈압약과 콜레스테롤 저해제, 혈전 용해를 위한 어린이용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일을 빠뜨리지 않는다. 하지만 예전처럼 병원을 자주 찾지는 못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이젠 석 달에 한 번쯤 주치의를 찾고, 약 처방전도 매니저가 대신 받아온다며 겸연쩍어한다. 스스로 생각해도 인간처럼 간사한 존재가 없는 것 같다고.

    이씨는 무엇보다도 체중 때문에 주치의로부터 “살을 빼라”는 호통을 듣곤 한다. 키 168cm인 이씨의 현재 체중은 100kg. 1997년 당시(98kg)보다 오히려 더 나간다. 허리둘레는 무려 43인치.

    “제가 원래 체중이 좀 나갔어요. 1988년에 88kg였죠. 88올림픽 때 몸무게까지 ‘88’이라고 농담한 적도 있어요. 그러나 이젠 진짜로 살을 빼야 돼요. 그래서 올해 목표를 ‘많이 먹지 않기’와 ‘운동하기’로 정했어요. 지금보다 10kg 정도 감량하려고요. 보세요. 지금 먹는 이게 아침식사예요.”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주문한 꿀생강차 한 잔에다 김밥 1인분을 먹었다.

    담배를 못 끊는 것도 그의 건강관리에 크나큰 장애물이다. 하루 한 갑씩 피우는데 신정 때 끊으려다 실천하지 못해 설날(구정) 때부터 끊겠다며 너스레를 떤다. ‘개그맨을 웃기는 개그맨’으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답다. 하지만 사실 심장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금연은 필수다. 술은 보름에 한 번 마시는 정도. 다음날 몸이 부대끼기 쉬워 폭음은 피한다.

    이씨는 운동과도 거리가 멀다.

    “3년 동안 헬스클럽에 회원으로 등록해놓고 5번 가량 갔나? 종로구 평창동으로 이사한 지 5년 됐는데, 거기로 간 이유가 인근에 산이 있어서였어요. 산에 다니며 운동하려고요. 그런데 그동안 산에 간 적은 딱 두 번뿐이에요. 한번은 이사한 바로 다음날 산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또 한번은 개를 잃어버려서 찾으러 갔고….”

    하지만 그런 이씨도 이번 겨울엔 바쁜 스케줄을 쪼개 사냥을 다니며 운동에 재미를 붙이려 한다.

    “금은보화를 준다고 해도 산 봉우리 하나를 못 넘을 정도인 제가 이상하게도 사냥개랑 같이 다니면 산을 4개나 넘어요. 2월28일까지 사냥철이니 열심히 다녀야죠.”

    만병통치약은 없다

    이씨는 끝으로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했다.

    “농어촌 등 시골에 계신 노인들 가운데 심근경색을 가진 분이 특히 많은데, 우황청심환에 너무 의지하는 경향이 있어요. 마치 불로장생약이나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합니다. 그게 만일 진짜 만병통치약이라면 저라도 아침저녁으로 먹겠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잖아요.

    그런데도 노인 환자들은 그걸 먹고 그냥 아랫목에 누워 있는 거예요. ‘왜 그러세요?’ 하고 물으면 ‘가슴이 답답해서, 숨이 차서 그렇다’고들 하시죠. 그러다 잘못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심장에 통증이 올 땐 무조건 병원부터 찾아야 해요. 얼마나 빨리 병원으로 가느냐에 따라 병의 예후가 달라지니까요. 우황청심환을 절대 과신하지 마세요. 먹을 때 먹더라도 바로 병원으로 가세요.”

    1975년 MBC 코미디탤런트 공채 1기로 데뷔해 올해로 방송경력 30년을 맞는 이씨는 여전히 공중파TV와 라디오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 집안의 가장인 40∼60대 시청자들이 퇴근 후 웃음꽃을 피우며 피곤을 풀 만한 코미디 프로그램이 없는 현실이 아쉽다는 그의 꿈은 돈을 모아 코미디 전문방송국을 차리는 것. 그리고 그의 표현대로 ‘성별만 다를 뿐 자신과 똑같이 생긴’, 첼리스트를 꿈꾸는 딸 수민(중1)을 잘 키우는 일이다.

    비만과 흡연, 운동부족을 떨치지 못한 이씨가 2005년엔 그 꿈의 기초를 튼실하게 닦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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