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호

정부혁신 ‘전도사’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

“무임승차하는 공무원들, 결국 집으로 가게 될 것”

  •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5-02-22 18: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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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어카 끌고 올라가는데 뒤에 매달려 가는 공무원 많다
    • 과장을 두든 팀장을 만들든 장관들이 알아서
    • 일처리 스타일 바꾸면 업무량 3분의 1로 준다
    • 성과급·연봉제 도입하면 일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을 것
    • 중앙부처 1급은 ‘이사회 멤버’
    • 정무차관제는 내각제 산물, 검토한 적 없다
    • 장관 인터뷰한다고 답변서는 왜 만드나
    정부혁신 ‘전도사’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

    ● 1948년 충남 보령 출생 ●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 1972년 제12회 행정고시 합격 ● 상공부 수출진흥과장·공보관·중소기업국장, 통상산업부 산업정책국장, 산업자원부 무역정책실장·차관 ● KOTRA 사장 ● 2005년 1월∼ 행정자치부 장관

    1월 초단행된 6개 부처 개각에서 가장 관심을 모은 인물은 사퇴 파문을 일으킨 이기준 부총리에 이어 교육부총리로 임명된 김진표 부총리가 아닌 오영교(吳盈敎·57) 행정자치부 장관이다. ‘경제관료 출신의 교육부총리’ 못지않게 ‘경제관료 출신의 행자부 장관’이 선보일 정부혁신 방안에 관심이 모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혁신특보로서 노 대통령과 3개월여 동안 ‘혁신 코드’를 맞춘 뒤 장관으로 임명됐다는 점에서 그의 행보 하나하나에는 대통령의 의지가 실려 있다고 보는 이가 많다.

    이를 반영하듯 오 장관은 취임사에서부터 전시성 업무를 과감히 없애고 내무부나 총무처 시절의 영화(榮華)를 버리라고 주문하는 등 행자부의 강도 높은 개혁을 예고했다. 행자부의 개혁은 다른 부처, 나아가 공무원 사회 전체의 대수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정부 조직에 대한 일대 개편안을 담은 정부조직법이 마련돼 있다.

    특히 오 장관이 KOTRA 사장 시절에 시행한 팀제나 다면평가, 또는 성과 위주의 연봉 시스템을 정부에 도입할 경우 공무원 사회에는 연공서열을 통째로 뒤흔드는 ‘쓰나미’가 몰아칠 가능성도 있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오영교 장관은 ‘메스’를 손에 쥔 집도의가 된 셈이다. 설 연휴 직후인 2월11일, 취임 한 달을 갓 넘긴 오영교 장관을 만났다.

    -산자부 차관을 마지막으로 공직 생활을 마감한 것이 2001년인데, 그때와 비교해 요즘 공무원 사회에 변한 것이 뭐가 있던가요.

    “공무원 조직도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은 갖춰진 것 같아요.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즉 실행에 관한 부분은 아직 약합니다. 전체적으로 국민이 느끼는 공무원 조직의 변화는 과거에 비해 그렇게 크지 않다고 할 수 있겠죠. 체감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공무원들 중에는 행자부에 안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포상이나 조직개편 같은 권한을 행자부가 틀어쥐고 권한을 행사한다고 보는 거죠.

    “조직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내부 고객’이 중요합니다. 행자부, 기획예산처, 중앙인사위원회의 경우 내부 고객이 주고객이거든요. 물론 공무원 조직의 특성상 내부 고객 사이에서는 말이 잘 안 나옵니다. 하지만 만약 내부 고객에게 하는 것처럼 일반 고객에게 했다가는 아마 며칠 안 가서 난리가 날 겁니다. 앞으로 행자부에서는 내부 고객이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각 부처에서 요구하는 대로 인원을 늘려줄 수는 없잖습니까.

    “어느 부처건 간에 조직이나 정원을 늘리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안 해주면 서운하다고 하죠. 그러니까 이제는 행자부가 사전에 이런 것들을 심사하고 권한을 행사하는 기능을 없애야 합니다. 총인원의 범위만 주고 나머지는 각 부처가 알아서 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부처는 ‘국’이라는 명칭을 쓸 수 있고 다른 부처에는 ‘팀’이나 ‘본부’제를 도입할 수도 있는 겁니다. ‘팀’을 적게 두건 많이 두건, 또 본부를 한두 개만 두건 서너 개씩 두건 모두 리더가 결정할 일이죠.”

    -행자부로서는 많은 권한을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데요. 정부 조직에 대한 조정 및 심사를 담당하던 부서는 또 어떻게 되겠습니까.

    “(권한을 내놓는다고 해서) 그것을 업무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사전에 건별로 들어오는 것을 심사하고 (권한을) 행사하는 즐거움은 없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힘이라고 생각하고 붙잡고 있으면 머지않아 침몰할 수밖에 없어요.”

    KOTRA식 정부혁신

    노무현 대통령이 상공부와 통상산업부, 산업자원부를 거치면서 28년간 경제관료로만 일해온 오영교 전 산자부 차관을 ‘번짓수’가 다른 행자부 장관에 임명한 것은 잘 알려진 대로 그가 KOTRA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보여준 경영혁신 수완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오 장관은 공기업 평가에서 늘 최하위를 맴돌던 KOTRA 사장으로 취임한 직후 과감한 조직 개편과 성과 위주의 평가시스템 도입으로 KOTRA의 위상을 서너 단계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사례를 전해들은 노 대통령이 그를 대통령 직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에 참여시켰고, 지난해에는 아예 대통령 혁신특보로 위촉했다. 결국 오 장관이 어떤 밑그림을 갖고 정부조직을 수술할 것인지를 점치기 위해서는 KOTRA 사장 시절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중소기업 고객들이 KOTRA의 서비스를 받은 직후 서비스의 질을 평가해서 이메일로 보내면 곧바로 해당 직원에 대한 평가에 반영하는 시스템이 무척 인상적이더군요. 정부 부처에서도 그런 서비스가 가능합니까.

    “예를 들어 산자부가 우리에게 포상 신청을 해서 협의를 마쳤다고 합시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형태로든 의견을 보낼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그 서비스에 대해 산자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메일을 보낼 것이고, 산자부는 거기에 대해 (객관식으로) 답변만 하면 됩니다. 대략 ‘만족스럽다’ ‘불친절하다’ ‘서비스가 엉망이다’는 식의 평가가 나오겠지요. 그렇게 되면 이 평가는 자동적으로 이 업무를 처리한 부서의 성적으로 반영되는 것입니다.”

    -‘KOTRA 시스템’을 언제부터 행자부에 도입할 생각입니까.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시스템을 가동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략 6월 말이면 기본 설계가 끝나고 하반기부터 시험 가동에 들어갑니다.”

    -다른 부처들은 언제부터 실시합니까.

    “일단 행자부가 가장 멋있는 모델을 만듦으로써 다른 부처들이 행자부를 벤치마킹하게 만들겠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행자부에 가서 배우라는 이야기가 나오게끔 말이죠.”

    “공무원 수보다 서비스 품질이 중요”

    -정부 혁신사례 중에는 이런 것도 있더군요. 문화관광부가 사무관 한 사람을 대학로에 열흘 정도 내보내서 연극인들과 매일 저녁 술 마시면서 엄청 ‘깨지고’ 오게 했다는 거예요. 고객 위주의 행정이라면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거죠. 만약 행자부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행자부에서는 국민이 고객인 경우가 다른 부처에 비해 한결 적은 편이거든요. 일반 국민과 접점을 형성하는 곳은 바로 지방자치단체들입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의 혁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행자부가 지방자치단체의 혁신센터로 기능하면서 잘하는 곳과 못 하는 곳에 차등을 두어 인센티브를 적용하면 지자체는 선의의 경쟁체제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김대중 정부 당시에는 ‘작은 정부’를 지향했습니다. 하드웨어에 초점을 맞췄죠. 그러다 보니 국민의 눈에도 ‘뭔가 줄어드는구나’ 또는 ‘공무원도 이제 철밥통이 아니구나’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업무 프로세스 혁신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눈에 띄는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금까지는 본격 실행을 위한 사전 준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참여정부는 일 잘하는 정부를 통해 양질의 정책을 만들어 품질 좋은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공무원 한 사람에게 드는 비용보다 산출되는 서비스의 품질이 휠씬 좋다면 투입보다 산출이 많으니까 결국 잘된 것 아닙니까.”

    -하지만 지금도 ‘창가족(族)’이니 ‘인공위성’이니 하는, 일 안 하는 공무원이 적지 않습니다. 또 부처간 통폐합 과정에 자연스레 발생하는 잉여인력도 있습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이런 사람들도 모두 구제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더군요.

    “조직을 줄이려고만 하지 말고 현재 갖고 있는 인력 활용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합니다. 국민이 원하는 서비스는 엄청나게 고급화·다양화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공급 능력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공급자 위주의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력 문제만 해도 현재의 조직편제상 경직된 울타리를 허물어서 유동성 있는 조직만 만들어주면 얼마든지 수요에 맞춰나갈 수 있습니다.”

    “결재단계 확 줄여야”

    -표현이 좀 그렇습니다만 ‘재활용’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군요.

    “그렇습니다. 둘째로는 손쉬운 것부터 바꿔주면 똑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투입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류 하나를 결재하려면 사무관이 만들어서 과장 결재를 받은 뒤 과장이 국장에게 결재를 받지 않습니까. 또 1급, 차관, 장관 결재를 받아야 하니까 대략 6단계를 거칩니다. 이렇게 결재하는 데 1주일에서 열흘이 걸립니다. KOTRA 시절 저는 모든 결재를 한두 시간에 끝냈습니다. 전부 전자결재를 하니까요. 지금 공무원들은 줄 서서 장관 결재를 기다리는 데만 며칠을 허비합니다. 그래서야 무슨 생산적인 일을 합니까. 기다리는 시간만 없애도 나머지 시간에 새로운 정책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오 장관은 공보관실에서 만들어준, 두툼한 ‘장관님 신동아 인터뷰용 답변서’를 집어들고 말을 계속 이어갔다.

    “이런 것 만드는 데도 시간이 얼마나 듭니까. 이럴 필요가 없어요. 내가 잘 모르는 통계가 있으면 그것만 주고 참고하라고 하면 되거든요. 이런 불필요한 일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사실은 저도 공보관실에 서면 답변자료를 만들지 말자고 했습니다.

    “이런 식의 업무 스타일을 완전히 바꿔 빠르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작동시키라는 거예요. 그러면 현재 들이는 노력의 3분의 1이나 4분의 1만으로도 똑같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나머지 시간을 활용해 새로운 업무를 발굴하면 되는 겁니다.”

    -새로운 업무 수요가 생겨나고 일을 줄여야지, 일부터 먼저 줄여놓으면 노는 공무원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요?

    “그것은 간단해요. 리더가 동기부여만 제대로 해주면 됩니다.”

    -계속 과제를 준다는 얘기군요.

    “과제만으로도 안 돼요. 안 하면 자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모든 업무가 투명하게 처리되면 고객이 동시에 평가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보상을 받는 거죠. 평가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보상과 연결되지 않을 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KOTRA를 예로 들면 상위 10%는 2호봉이 올라가고 중간은 1호봉이 올라가지만, 하위 10%는 동결입니다. 그러면 호봉 차이가 점점 누진 형태로 나타나 같은 직급에서도 대략 1000만원까지 연봉 차이가 생깁니다. 그러면 눈이 뒤집히죠. 똑같이 입사해서 똑같은 직급인데 아무개 연봉은 4000만원이고 나는 3000만원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도 일을 안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공무원 사회에 연봉제를 도입하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물론 정부에서 이렇게 하려면 제도 때문에라도 금년 내에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또 하나의 보상 방안이 바로 인사 아닙니까. 인사 역시 철저하게 실적 평가에 기초해서 다면평가를 할 겁니다. 그러면 일을 안 하는 사람은 도저히 대접받고 등용될 수 없을 겁니다. ‘나는 돈 많으니까 고액 연봉도 필요없고 승진도 안 하겠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죠. 포기한 인생이니까. 그러나 공무원 중 99%는 이 시스템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인사권자인 장관과 눈 마주치면서 대면결재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공무원이 적지 않을 겁니다. 공무원들에게 ‘인사’는 ‘만사(萬事)’ 아닙니까.

    “전자결재만으로도 볼 것은 다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자신의 성적을 오늘 리얼타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가장 좋습니다. 가령 KOTRA의 경우 현시점에 해외 무역관들의 성적순위가 그대로 나옵니다. 오늘 1등이나 2등이지만 내일 순위는 또 바뀝니다. 이런 시스템으로 들어오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행자부에는 얼마 전부터 ‘정책조정회의’라는 것이 생겨났다. 장·차관 외에 차관보 및 기획관리실장, 정부혁신본부장 등 3명의 1급 공무원, 그리고 해당 안건과 관계 있는 국·과장이 참석하는 일종의 정책협의체다. 과장-국장-차관보-차관-장관으로 이어지는 단선형 결재 시스템을 더 이상 가동하지 않고 정책조정회의에서 토론을 거쳐 결론을 내겠다는 것이 오 장관의 구상이다. 행자부의 한 공무원은 오 장관이 이런 구상을 내놓았을 때 “한마디로 쇼킹했다”고 전했다.

    “토론 끝내면 결재 난 셈”

    -정책조정회의를 만든 배경이 있을 텐데요.

    “이전에는 과장이 안을 만들면 국장, 차관보나 기획관리실장, 차관, 장관까지 결재가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과장이 안을 만든 직후에 국장하고 대충 얘기해서 올리기만 하면 됩니다. 1급과 국장들에게도 ‘과장이 기안한 것을 먼저 봐야겠다고 덤비지 말라’고 했어요. 정책조정회의에서 1급이 자기 밑에 있는 과장이 만든 안에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해서 전혀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정책조정회의에는 기안자의 상관으로서가 아니라 이사회 멤버로서 참석하는 거니까요. 그러면 안을 만든 사람으로서는 국장, 1급과 차관을 거쳐 장관까지 오는 과정에 3명을 설득해야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그냥 수직 라인으로만 가지 옆을 보지 않아요. 그러니 옆사람의 업무를 더 모릅니다. 그런데 정책조정회의를 거치면 1급들이 전체적 시각에서 봐주지 않습니까. 그러면 딱 하루에 끝납니다. 회의 끝나면 바로 장관 결재 난 것으로 갈음하거든요.”

    -그렇게 모여도 자기 분야가 아니면 발언을 잘 안 하잖습니까. 남의 밥그릇은 안 건드리는 것이 속 편할 텐데요.

    “그건 운영하는 사람에게 달렸어요. 말을 많이 하게 만들어줘야 되거든요. 그렇게 해서 합의제 형식으로 가야 합니다. 만약 종전 방식대로 과장이 내게 들고 왔다고 해봅시다. 나는 바빠 죽겠는데 결재서류를 놓고 계속 설명하고 있으니 무조건 따라가야 합니다. 생각할 겨를도 없어요. 바쁘니까 대충 ‘알았다’고 하고 사인해줍니다. 그런데 (정책조정회의를 앞두고) 전자결재를 통해 기안 내용을 미리 보면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미리 생각할 수가 있거든요. 토의하면서 문제 제기도 하고 옆에 있는 1급이나 차관이 ‘이런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해주면 문제점에 대해 ‘그렇구나’ 하고 수긍할 수도 있고요. 혼자 결정하는 위험을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죠.”

    -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공무원 사회를 조폭 문화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또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신동아’ 2월호 인터뷰에서 “행정조직이 군대보다 더 상명하복이더라”고 했어요. 공무원 사회 전체를 관장하는 행자부의 복무 규율이 강하면 강했지 다른 부처보다 덜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 공무원 사회가 ‘토론식 결정’에 익숙할 정도로 리버럴한 것 같지는 않은데요.

    “내가 리버럴하게 만들 겁니다. 그건 리더의 책임이에요. 토론에 따라 결정하게 하고 상하간 커뮤니케이션도 완벽하게 만들 겁니다. 행자부는 이제 회의자료도 안 만들기로 했어요. 노트북 컴퓨터 보면서 하면 됩니다.”

    -초대 행자부 장관인 김정길 전 의원은 ‘공무원은 상전이 아니다’는 책을 내면서까지 공무원 사회의 관행을 비판했지만 정작 행자부 내에서는 ‘저질 장관’이라는 비난까지 받았다더군요. 오 장관에 대한 평가는 어떨 것 같습니까.

    “지금은 장관이 혁신한다고 와서 자꾸 몰아붙일 것 같으니까 행자부의 전통에서 볼 때는 불안한 요소들이 나올 겁니다. 그래서 저는 수시로 메일도 보내고 쌍방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합니다. 연말쯤 되면 분명 행자부가 완전히 달라져 다른 부처나 지자체, 그리고 국민들에게서 존경받는 부처가 될 겁니다.”

    ‘국장급 팀장’ ‘과장급 팀장’

    오영교 장관이 선보인 KOTRA 경영혁신을 이야기할 때마다 단골로 언급되는 것이 공기업에 ‘팀제’를 도입한 것이다. 직급에 관계없이 능력 있는 직원이 팀장을 맡는 방식이다. 오 장관이 KOTRA 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처장급 팀장은 20%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 부장급 팀장이었다. 오 장관은 이날 인터뷰에서도 “모든 정부 조직에 팀제를 도입하도록 지원하고 유도할 생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대원칙은 각 부처의 실정에 맞게 자율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오 장관의 구상대로라면 산자부에는 자원정책본부 밑에 가스팀이나 석유팀이 만들어져 이사관급 팀장과 서기관급 팀장이 함께 일할 수도 있고, 외교통상부의 경우 현재의 북미 1·2·3과를 합쳐 북미팀을 두고 국장급 팀장 1명만 남겨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해당 부처의 장관이 결정하면 된다는 것.

    “현재 정부조직법에는 국 단위까지 아예 명시돼 있습니다. ‘행정자치부에는 1급으로 차관보와 기획관리실장을 둔다. 의정관리국은 어떤 일을 하고 국장은 이사관으로 한다’는 식이죠. 그래서 장관이 자기 부처의 조직을 바꾸려면 반드시 행자부와 협의해야 하고 대통령령도 바꿔야 합니다. 무슨 놈의 조직을 그런 식으로 만든단 말입니까. 조직은 결국 장(長)의 책임이거든요. 장관이 국을 두든지 과를 두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겁니다”

    -팀제를 도입하든 기존 조직을 그대로 두든 재량껏 하게 한다는 말씀이군요.

    “물론 행자부가 먼저 바꿔서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생각입니다. 앞으로는 국장 보직에 1급이 임명될 수도 있고 팀장 보직에 국장급이 임명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각 부처의 혁신과정에서 조직에 따른 제약 요인은 없어질 겁니다.”

    -결국 국장급 팀장도 나올 수 있고 과장급 팀장도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요. 행시 기수로도 한참 차이가 나는 국장급과 과장급이 마주앉아서 업무를 협의하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만약 내가 국장급 팀장인데 ‘새까만 후배와 무슨 놈의 협의를 하냐’며 ‘마이웨이’했다고 칩시다. 아마 곳곳에서 장벽에 부닥칠 겁니다. 우선 업무협의가 잘 됐어도 실적이 안 나오면 손해를 봅니다. 또 다른 팀 업무에 협조를 안 해주면 다면평가에서 나쁜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면평가가 나빠지면 당연히 급여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죠. 결국 협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 팀을 거느린 본부장 처지에서도 팀 간에 잘 협조해서 사업을 추진해야 자신의 점수가 올라가거든요. 결국 본부장 자신의 점수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조정해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떤 공기업에서는 그런 식으로 팀제를 가동했더니 후배 팀장 밑에 있는 고참 팀원에게는 예우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쉬운 일만 맡기더랍니다. 임금은 많이 받으면서 쉬운 일만 하니까 오히려 더 좋아하더래요.

    “그건 팀제를 잘못 시행해서 그런 겁니다. 문제아 한 명을 끌어안고 있으면 그 부담이 결국 다른 사람에게 가게 돼 있어요. 각자의 능력이 팀의 실적과 함께 평가되거든요. 그러니까 한 사람이 놀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정부혁신 ‘전도사’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

    오영교 장관은 취임 직후 모든 결재 시스템을 전자결재로 대체하라고 지시했다. 그 후 행자부의 결재 시스템은 ‘정책조정회의’에서 토론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결국 서로 부담이 되겠군요.

    “팀 체제로 가면 성과를 나눠먹게 되죠. 그런 경우 성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인사할 때도 팀의 문제아들, 이른바 무임승차 직원들은 다른 팀에서 안 받잖아요. 그러니까 결국 이 사람들은 낙오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되면 별도로 모아놓고 격리해서 그냥 수당도 없이 기본급만 줍니다. KOTRA에서는 작년에 ‘재택(在宅)’제도를 만들었습니다. ‘하위 10%’ 평가를 2회 연속 받으면 ‘재택’으로 들어가고 그렇게 되면 나중에는 봉급도 70%밖에 못 받아요.”

    -공무원 사회에도 ‘재택제도’를 도입할 생각입니까.

    “나중에 해야죠. 그런 쪽으로 가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정말로 짐이 되는 사람들, 무임승차 직원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라인에서 빼줘야 합니다. 리어카를 끌고 죽어라고 언덕을 올라가는데 밀어주지는 못할망정 매달려서 가는 사람은 없어야 하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이죠.

    “공무원 사회에 어디든지 있어요. 어디엔 많고, 어디엔 적을 뿐이지.”

    오 장관이 2월 임시국회에 내놓겠다고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큰 줄기는 조직 개편 권한의 각 부처 이양과 복수차관제 도입이다. 전자는 그렇다고 치고 후자는 ‘작은 정부’와도 배치되는 일인데다 야당의 반대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임시국회에서 뜨거운 논란으로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복수차관제에 대해 국회 행자위의 야당 의원들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신문에 피상적으로 나온 걸 보고 이야기하다 보니 그렇겠지요. 직접 설명하면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봅니다.”

    -복수차관제에 반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재경부, 산자부, 외교부, 행자부 4개 부처를 선정한 데 대해서는 말이 많습니다. 결국 힘있는 부서만 하나씩 챙긴 것 아니냐는 거죠.

    “(내가 취임하기 전에) 이미 행자부가 분석해왔더라고요. 차관 신설 1순위인 재경부 외교통상부와 2순위 4개 부처 중 행자부와 산자부가 대상에 든 것이죠. 건교부와 교육부가 빠진 까닭은 이렇습니다. 건교부는 철도청이 민영화하니까 우선순위 면에서 별도로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고, 교육부는 그렇지 않아도 조직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니까 역시 나중에 보자고 한 겁니다. 제가 와서 보니까 4개가 선택돼 있었어요.”

    -농림부엔 1970~80년대에나 필요하던 조직이 그대로 있고 산자부는 국민의 정부 시절 존폐론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것들을 덜어내거나 개편하는 게 먼저 아닐까요.

    “보는 시각에 따라 문제 제기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한 가지 면만 보면 ‘왜 행자부냐’고 할 수 있는 부분도 당연히 있습니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판단해줬으면 합니다.”

    -복수차관제가 결국은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정무차관을 신설하는 쪽으로 가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부로서는 아직 고려해본 적 없어요.”

    -결국은 그렇게 가기 위한 사전 포석이 아니냐는 거죠.

    “대부분 정무차관들은 내각제에서 나옵니다. 내각제에서는 집권당이 국정을 책임지기 때문에 정무차관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중심제에서는 정무차관을 두지 않습니다.”

    행시 치를 때도 경영학 고집

    오영교 장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무역 전문가다. 상공부 시절 무역정책과장을 지냈고 산자부에서 1급 무역정책실장을 역임했다. 일본 상무관으로 근무한 후엔 ‘일본 통산성의 실체’라는 책을 펴내는 등 일본 경제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런데 이런 경력만을 놓고 살펴보면 지금 행자부가 추진하는 정부혁신이나 조직개편과 직접 맞닿아 있는 부분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산자부 시절 오 장관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기 위해 당시 그를 지켜본 출입기자 몇 사람에게 의견을 구해보았다. ‘전형적인 관료체질’이라는 평가와 ‘그래도 뭔가 다르다’는 평가가 엇갈려 나왔다. 그렇다면 오 장관을 ‘혁신의 전도사’로 만들어준 전환점이 있지 않았을까.

    -경영혁신에 대해 외부에서 조언해준 전문가나 지인이 있었습니까.

    “저는 대학 시절부터 경영학을 좋아했어요. 행정고시 볼 때도 선택과목으로다른 사람들이 기피하는 경영학을 선택했습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도 정작 중요한 시험에서 선택하지 않는 것은 경영학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공무원 시절에 과 운영부터 재미있게 했어요. 조직 경영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보다 관심이 많았던 것 같고요. 차관 시절에도 실험해보려고는 했지만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사실 차관이라는 직위가 제일 더러운 자리거든요.”

    이 대목에서 2년 가까이 산자부 차관을 지낸 그의 ‘차관론’이 이어졌다. 인터뷰 주제와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었지만 재미있는 대목이라 소개한다.

    “차관이라는 자리는 속된 말로 정말 ‘더러운’ 자리예요. 과장과 국장은 ‘한 끝’ 차이니까 아주 가깝잖아요. 서로 얘기도 잘 하고요. 그런데 한 끝 차이면서도 엄청난 차이가 있는 곳이 장관과 차관입니다. 제도를 개선하거나 뭔가 해보려고 하면 처음에는 괜찮게 봐주다가도 금방 장관 쪽에서 ‘어퍼컷’이 세게 들어옵니다. ‘왜 너 혼자 마음대로 하냐’고 견제하는 거죠. 한번은 총무과장이 오더니 ‘앞으로 차관님 방에는 못 들어오겠다’고 하더라고요. ‘장관님이 차관 방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는 거죠. 차관 전결로 돼 있던 사무관 인사도 장관이 직접 한다고 했다더군요.”

    -말씀을 듣다 보니 민간기업 CEO 마인드로 무장한 듯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관료 시절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장관이 못 되고 공기업으로 나가면서 위기의식 때문에 ‘오영교 브랜드’를 만들어 변신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경영 방식에서도 다른 사람과는 달랐습니다. 과장 시절에도 다른 과장과는 일하는 방식이 틀렸어요. 즐거움을 갖고 일했거든요. 물론 내 스타일을 완성한 것은 KOTRA에서 본격적으로 실험한 후라고 보면 되겠죠.”

    경영자로서의 장관像

    오 장관과의 인터뷰는 어렵게 이뤄졌다. 인터뷰 요청은 오래 전 해놓았지만 설 연휴 때문에 ‘신동아’ 3월호 마감 기일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 서면으로 개괄적 질문서를 보내놓고 실제 인터뷰에서는 그 부분을 모두 건너뛰기로 했다. 그러나 오 장관이 워낙 달변이라 서면 답변 내용을 하나도 인용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이야기를 나눴다.

    독자들이 정작 궁금해할 내용은 도표와 수치가 잔뜩 나열된 서면 답변보다는 오 장관의 육성에서 나온다는 생각에 서면 답변 내용은 인용하지 않기로 했다. “인터뷰용 답변자료 같은 것 만들지 말라”는 오 장관의 지적이 옳았던 셈이다. 옆자리에 배석한 공보관이 ‘시간이 다 됐다’는 암시를 줬지만 오 장관이 “너무 그러지 말라”며 말렸다.

    -개인적으로는 산자부 장관과 행자부 장관 중 어떤 자리가 더 좋습니까.

    “지금이 더 좋아요. 젊을 때부터 산자부에 몸담아서 차관까지 했으니 거기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는 건 거의 없어요. 하지만 행자부는 완전히 새로운 분야 아닙니까. 새로운 분야에서 일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죠. 가능성이 많고 새로운 맛이 있으니까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퇴임 후에는 어떤 행자부 장관으로 남기를 바랍니까.

    “권위를 갖추고 폼잡는 장관이 아니라 경영자로서의 장관상(像)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행정이란 결국 정부를 경영하는 겁니다. 그래서 ‘GE에 잭 웰치가 있다면 정부에는 누가 있다’는 식의 모델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장관직 마치면 강연만 다녀도 수입이 많을 것 같습니다.

    “KOTRA에서도 (강연 다니면서) 돈 좀 벌었어요.”

    -장관직 떠난 다음에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죠.

    “그냥 오래 좀 하게 놔뒀으면 좋겠어요. 하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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