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호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 수사 풀 스토리

용의자 3700명 DNA, 청바지 정액과 대조… 2인 이상 면식범, 보름달 아래 옷 벗겼다

  •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5-02-23 1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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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의 추억’의 재연인가. 2월3일로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100일이 됐다.
    • 실종된 여대생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지만, 범인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 그러나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범인 검거에 명운을 건 화성경찰서 수사본부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범인과 숨막히는 숨바꼭질을 벌이고 있다.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 수사 풀 스토리

    실종된 여대생 노양의 시신이 발견된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보통1리 태봉산. 유골이 발견된 자리엔 추모의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잠깐,건드리지 말아요. 사람의 머리카락과 뼈 같습니다. 얼른 신고합시다.”

    지난해 12월12일 오후, 부동산 거래를 위해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보통1리 태봉산 일대를 둘러보던 부동산업자 홍모(36)씨와 30대 치과의사 K씨의 눈에 섬뜩한 광경이 들어왔다. 마른 나뭇잎에 덮인 한 구의 시신. 머리와 다리는 이미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상태였다. 치과의사인 K씨가 아니었다면 사람의 유골인지도 몰라볼 뻔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화성경찰서 형사들이 시신 위에 덮인 마른 풀을 걷어내자 유골 밑에서 들쥐 한 마리가 재빨리 도망쳤다. 유골의 어깨 부분을 막 갉아먹던 참이다. 시신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듯 부패가 심했다. 35cm 길이의 머리카락을 본 순간, 출동 경찰관은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맨 실종 여대생 노모(21·K대 2년)양임을 직감했다.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가 노양의 과거 치료기록과 시신의 치아 모양을 대조한 결과가 일치한 것.

    노양은 시체로 발견되기 46일 전인 지난해 10월27일 집에서 3㎞ 가량 떨어진 화성복지관 수영센터에서 수영을 마친 뒤 곧 집에 들어가겠다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는 연락이 끊겼다. 다음날 그의 유류품이 실종지역 인근 도로변에서 발견됐다. 젊은 여성의 실종, 거리에 흩뿌려진 옷가지와 속옷. 화성은 순식간에 ‘살인의 추억’의 악몽을 떠올리며 공포에 휩싸였다.



    실종된 노양을 찾기 위해 뿌려진 전단만 14만장, 화성 일대에 걸린 플래카드도 60여개가 넘었다. 언론은 행방불명된 노양이 버스에서 하차하는 마지막 모습을 담은 CCTV 장면을 연일 보도하면서 그의 행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아직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수사 100일 그리고…

    화성경찰서 강력계는 물론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도 긴급 투입됐다. 윤성복(60) 화성경찰서장의 지휘하에 화성경찰서 정남지구대에 수사본부가 꾸려졌다. 실종 신고가 접수된 직후, 경찰은 기동대 3개 중대 400~500명을 동원해 노양의 시신을 수색했다. 두 달간 수색에 투입된 경찰관 연인원이 1만1000여명에 이르렀다. 유류품이 발견된 주요 지역을 살펴보기 위해 헬리콥터를 동원, 항공사진까지 찍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실종 여대생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2월3일로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이 벌어진 지 100일이 됐다. 사건 발생 직후 몰려들던 수많은 취재진의 발길도 이젠 뜸해졌다. 수사본부가 마련된 화성경찰서 정남지구대를 찾았을 때, 주변엔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윤성복 서장은 매일같이 이곳에 들러 아침 회의를 주재한다. 전날 진행한 수사결과를 공유하고, 향후 수사 계획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다. 임무를 받고 현장에 투입된 형사들이 일을 마치고 수사본부에 집결하는 시각은 밤 10시경. 회의가 끝나면 수사관리팀 경찰관 4명이 지금껏 나온 수사현황을 보고서로 정리한다. 70여명의 형사들은 석 달 동안 제대로 쉬어본 날이 거의 없다고 했다.

    화성경찰서에 파견된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소속 형사들은 현재 소속부서와 수사본부 일을 병행하고 있다. 새벽까지 조직폭력배 일당을 소탕하고 왔다는 10명의 광역수사대원이 오후 2시 수사본부로 몰려들었다. 이번엔 용의자 탐문 수색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 그중 한 형사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마누라 얼굴 제대로 본 지도 참 오래됐네. 그래도 어떡합니까. 범인은 잡아야지.”

    노양의 유류품이 발견된 궤적을 따라 출근하는 것은 어느새 수사본부 형사들의 일과가 됐다. 범죄 해결을 위한 결정적 ‘영감’을 얻기 위해서다.

    노양의 시신을 신속하게 찾아내지 못한 경찰은 ‘허술한 수색’으로 이미 한차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시신이 발견된 야산은 유류품이 발견된 보통리 저수지와 불과 1~2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것. 그러나 “두 번의 실수는 없다”는 게 이들의 각오다.

    이원수(45)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지능수사팀장은 “범인은 화성 지리에 매우 익숙한 사람이며, 용의자의 DNA는 확보돼 있다. 검거는 시간문제일 뿐”이라며 굳은 의지를 내보였다. 1월 말 취임한 이택순 경기경찰청장 역시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화성 여대생 사건은 다른 미제사건에 비해 용의자의 유전자 분석이 진행될 정도로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했다.

    지난 100일간의 수사기록엔 경찰이 고뇌한 흔적이 담겨 있다. 노양을 납치한 범인은 누구이며, 왜 살해했을까.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경찰과 범인의 숨바꼭질을 추적했다.

    지난해 10월27일 밤 11시. 화성경찰서 태안지구대로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딸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노양 어머니 김모(44)씨의 걱정스러운 호소였다.

    “오후 7시에 수영 강습을 받으러 간 딸이 아직 안 돌아왔어요. 오후 8시25분 넘어서 ‘집에 곧 들어가겠다’고 동생에게 전화도 했는데…. 오후 9시5분엔 제가 직접 전화를 걸었는데, ‘전원이 꺼져 있다’는 음성만 나와요. 우리 딸 좀 찾아주세요.”

    태안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이 노양의 어머니와 함께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집 근처를 수색했지만, 사라진 여대생은 찾지 못했다.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그냥 잠든 건 아닐까. 휴대전화 배터리가 떨어져 전화를 받지 못한 건 아닐까. 가족들은 그에게 별 일 없을 거라는 한 줄기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K대 관광학부 2학년인 노양은 믿음직스럽고 성실한 맏딸이었다. 고등학교 땐 학생회장을 지낼 만큼 책임감이 강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중국에 관심을 갖고 6개월 동안 중국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일찍 귀가해 가족과 함께 지내는 걸 동아리 활동보다 더 좋아했다. 두 동생을 끔찍이도 챙기던 착한 언니고, 누나였다.

    친구들은 노양에 대해 “얄미울 정도로 자기 일을 똑부러지게 잘하던 아이”라고 기억했다. 노양의 아버지는 “우리 딸은 수영을 마치고 귀가할 때 꼭 화성지역을 표시하는 번호 ‘57’이 표기된 택시만 골라 탈 만큼 빈틈없는 아이였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가족에 충실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던 노양이 기별도 없이 귀가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노양의 가족은 밤새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도로변에 흩뿌려진 유류품

    수차례 시도 끝에 여대생의 휴대전화와 연결된 것은 10월28일 오전 7시40분. 그러나 전화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노양이 아닌 40대 중년 남성이었다.

    “저 이 동네 신문 배달하는 사람입니다. 협성대 근처 식당 앞 커피자판기 옆에 놓인 휴대전화를 주웠는데 주인이십니까?”

    노양의 소지품이 처음 발견된 순간이었다. 신문배달원이 내민 노양의 휴대전화는 흠집 하나 없었다. 경찰은 휴대전화가 발견된 지역을 중심으로 샅샅이 수색해 나갔다. 휴대전화는 신호탄에 불과했다.

    범인은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노양의 유류품들을 인근 도로변에 흩뿌려놓았다. 이날 수색에선 노양의 청바지와 티셔츠, 브래지어, 왼쪽 운동화와 양말 등 유류품이 집으로 향하는 도로에서 200~300m 간격으로 발견됐다. 30일에는 노씨 집에서 2km 가량 떨어진 정남면 보통리 저수지 둑에서 또 다른 속옷과 면 티셔츠, 가방, 화장품 등을 추가로 수거했다. 31일에는 보통리 저수지에서 정남면사무소 방향 1.2km 거리의 도로변에서 노양의 수영복과 수영모자 등이 나왔다. 노양의 팬티를 제외한 모든 소지품이 3일간의 경찰 수색에서 발견됐다.

    공교롭게도 유류품들은 도로의 한쪽 방향에 버려져 있었다. 차를 타고 도망가던 범인이 숨진 노양의 소지품들을 하나씩 차창밖으로 던진 모양새였다. 경찰은 2인 이상의 남성이 노양을 차량으로 납치했다고 판단했다. 혼자 운전하면서 유류품을 조수석 차창 밖으로 던지는 일은 쉽지 않다고 여겼다.

    경찰은 이후 유류품이 발견된 곳을 중심으로 매일 400~500명의 기동대원을 동원해 집중 수색했다. 경찰수사에 혼선을 주려는 것일까, 성적 쾌감에 도취돼 저지른 행동일까, 그것도 아니면 ‘잡아볼 테면 잡아봐라’는 자만심의 표현일까. 유류품을 길가에 버린 범인의 심리를 두고 수사본부 관계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범인의 대담한 ‘도전’에 형사들은 독이 오를 대로 올랐다. 뒤늦게 노양의 시신을 발견한 경찰은 실종 당일부터 찬찬히 노양의 행적을 짚어나갔다.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 수사 풀 스토리
    엇갈리는 목격자 진술

    10월27일, 노양은 마지막 중간고사를 치렀다. 오전 10시 중국어 시험을 보고, 오후 3시경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왔다. 두 동생과 근처 분식집에서 사온 떡볶이와 김밥을 나눠먹으며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시험공부 때문에 며칠 건너뛴 수영 강습을 위해 집을 나선 것이 오후 6시 무렵이었다.

    오후 7시, 노양은 초급반 수영 강습을 받았다. 남자 강사의 지도로 한창 자유형을 배우던 중이었다. 평소 노양의 어머니는 그를 집에서 복지관까지 승용차로 태워다주고 수영이 끝나면 다시 승용차로 데려오곤 했다. 수영을 마치고 혼자 귀가할 경우엔 버스와 택시를 이용했다. 그날 따라 노양의 어머니는 집안 일로 외출중이었다.

    노양은 수영 강습을 받기 직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강습 끝나면 데리러 올 수 없느냐”고 물었고, 어머니는 “볼 일이 늦게 끝나 못 갈 것 같다”고 했다. 이것이 노양과 어머니의 마지막 통화다.

    172cm의 키에 긴 생머리를 한 노양의 모습은 어디서든 눈에 띄었다. 버스정류장 주변 상점 주인들이 기억할 만큼 또렷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노양은 이날 청바지에 연보라색 면 티셔츠, 검은색 카디건을 입었다. 어깨엔 2개의 작은 가방을 둘러멨다. 채 물기가 마르지 않은 긴 머리카락에선 상큼한 샴푸향이 풍겼다.

    수영을 마친 노양은 오후 8시25분 태안읍 화성복지관 정류장에서 경진여객 34번 버스에 올라탔다. 앞에서 세 번째 의자에 앉은 그는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누나 금방 (집에) 갈게”라고 했다. 어머니와 여동생에게도 “늦어지면 두 사람이 함께 귀가하라”며 차례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노양이 집에서 2km 가량 떨어진 와우리공단 정류장에 내린 시각은 오후 8시35분. 버스 안의 CCTV는 하차하는 노양의 마지막 모습을 찍었다. 이곳에서 ‘화성’ 택시를 타면 봉담읍에 있는 집까지 5~10분 걸린다. 그런데 이후 노양의 행적은 묘연해졌다.

    누가 노양을 차에 태웠을까. 범행에 사용된 차종은 무엇일까. 범행 장소는 어디일까. 이 모든 의문을 풀기 위해선 목격자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노양이 행방불명된 와우리공단 정류장은 200여개의 상점이 밀집한 번화가다. 납치행각을 벌이기엔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지역인 것. 한편 노양의 귀갓길과 유류품이 발견된 곳은 43번 국도로 향하는 도로로, 이곳 역시 보통리 저수지를 둘러싸고 카페와 식당 등이 들어서 있어 일반인이나 아베크족 차량의 왕래가 적지 않다. 경찰은 목격자 진술에 큰 기대를 걸었다.

    수사 결과, 이날 밤 노양을 본 것으로 추정되는 4명의 목격자가 나왔다. 그러나 이들의 진술은 모두 엇갈렸다. 정류장에서 그를 목격한 시각도, 주변에서 봤다는 차량의 종류도 다 달랐다. 버스에서 노양과 함께 내린 승객조차 그가 어디로 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허위 제보와 역술인의 예언

    와우리공단 버스정류장 맞은편에서 마트를 경영하는 30대 손모씨는 평소 과일을 사러 자주 들르던 노양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가 노양을 목격한 시점이 실종 당일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 여대생이 버스정류장 옆의 콘크리트 받침대에 앉아 있었어요. 앞뒤로 다리를 흔들면서…. 오후 8시40분에서 9시 사이쯤 되려나. 에스페로나 세피아 같은 승용차가 근처에 있었던 것 같아요.”

    또 다른 목격자, 대리운전기사 김모씨의 진술은 약간 다르다.

    “차를 몰고 정류장을 지나다가 봤는데, 머리 긴 여학생이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주변에 RV차량이 있던 걸로 기억해요. 그게 오후 8시55분에서 밤 9시12분 사이쯤일 겁니다.”

    국과수는 11월5일, 노양과 함께 버스에서 내린 여성 Y씨(31)와 당시 노양이 탑승한 버스의 운전기사 김모(48)씨에 대해서도 최면수사를 벌였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실낱 같은 희망은 무거운 절망으로 내려앉았다.

    경찰은 우선 목격자들이 지목한 승용차 및 RV 차량을 모두 수사대상에 올렸다. 노양의 부모는 “딸이 택시를 탄 것이 틀림없다”며 지역택시 운전기사들을 중점 수사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지역 일대의 렌트카 차량 이용자, 지역 택시운전기사 등도 모두 용의선상에 올랐다. 수사대상이 된 차량만 무려 2154대였다.

    목격자들의 엇갈린 진술로 수사는 답보상태에 빠졌다. 경찰은 시민 제보전화를 기다렸지만 수사본부가 설치된 화성경찰서 정남지구대로 100일간 걸려온 제보전화는 고작 80여통. 다른 사건에 비해 턱없이 적을 뿐 아니라 걸려온 전화도 대부분 신빙성 없는 것이었다.

    “여기 서울인데요, 우리 헬스클럽에 다니는 한 남자가 수상해요. 노양이 실종된 이후 몸에 상처가 생겼거든요. 한 번 수사해보세요.”

    “우리 동네에 의심스러운 사람이 최근 귀국했는데, 평소 행동도 불량스럽고 행적도 의심스러우니 잡아가이소. 여기 어디냐고예? 부산입니더.”

    전국 각지에서 날아든 엉뚱한 제보들은 ‘혹시나’ 하는 수사팀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개인적인 원한을 풀고자 자신의 영업권을 침해하며 불법으로 렌트카 영업을 해온 업체를 신고하기도 했다.

    게다가 ‘연쇄살인의 도시’로 악명 높은 화성지역 주민들이 마음을 닫아버리면서 수사는 더욱 어려워졌다. 경찰이 탐문수사를 벌일라치면, 주민들은 “남편이(혹은 아버지가)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말랬다”며 대답을 피하기 일쑤였다.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 수사 풀 스토리

    경찰이 시체 발견 장소 및 유류품 발견 지역을 촬영한 항공 사진.

    ‘제보 가뭄’과 주민의 소극적 협조로 수사가 난항에 빠진 상태에서 역술인의 예언은 솔깃한 유혹이었다.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1980년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던 형사들이 점쟁이의 말을 듣고 경찰서 정문을 옮긴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수사본부에는 지금껏 30~40통에 이르는 역술인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 역술인은 다급한 목소리로 “여대생이 두 남성에게 납치돼 의정부 룸살롱에 잡혀갔다”고 했고, 한 기공수련자는 “보통리 저수지에 시신이 버려진 것 같다.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다.

    경찰은 역술인의 예언을 참고로 활용하기로 했다. 노양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갑갑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술인들의 예언은 모두 빗나가고 말았다. 노양이 인근 야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명리학자로 잘 알려진 수원과학대 김태균 교수(사회복지학) 역시 1월12일 대학동기인 주상룡 경기지방경찰청 제2부장(현 서울지방경찰청 수사부장)의 부탁을 받고 살인사건 현장 검증에 나섰다. 화성살인사건 수사에만 골몰하던 친구를 보다못해 내린 결정이었다.

    “명상과 기수련을 오래한 사람은 ‘백회’가 열려 간절히 집중하면 자신이 원하는 현상을 봅니다. 그래서 이름난 기공수련자들을 주 부장에게 소개해주려고 했죠. 그런데 모두들 ‘나쁜 기운을 피하고 싶다’며 수사 참여를 거부하더군요. 할 수 없이 제가 나섰습니다. 매일같이 사건현장을 답사하는 친구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었고…. 저는 지금껏 경찰수사에 참가한 적은 없지만, 오랫동안 기수련을 해온 사람입니다. 프랑스에서 흔히 수맥이나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데 이용하는 추를 갖고 검증에 나섰지요.”

    오전 11시40분, 김 교수는 수사본부 관계자들과 현장에 도착했다. 출발지점은 노양의 시신이 발견된 태봉산.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김 교수는 2주 전부터 강도 높은 기수련을 해왔고, 점심식사도 거른 상태였다. ‘범인이 간 방향을 알려달라’고 마음속으로 강력히 기원하자, 추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추가 가리키는 방향은 경찰이 예측한 범인의 도주로와 거의 일치했다. 한참 움직이던 추가 멈춘 곳은 바로 노양이 수영을 배우던 화성복지관 부근이었다.

    “살인용의자는 화성복지관과 관련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근 PC방에서도 강한 기운을 느꼈어요. 머릿속에선 용의자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떠올랐습니다. 한 사람은 피부가 몹시 검고 마른 체형인 것 같았어요. 또 한 사람은 키가 작고 땅딸막한 체구의 남자였는데, 인상이 험했습니다.

    100% 신뢰할 수는 없어도, 내 감이 그리 틀리는 편은 아닙니다. 추 실험이 수사에 혼선을 가져오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하나의 가능성으로 참고할 수는 있을 겁니다.”

    경찰은 김 교수의 제안을 받아들여, 복지관 인근 PC방에 자주 드나드는 성범죄 전과자 등에 대해 탐문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노양이 실종된 직후 이미 화성, 수원, 영통, 오산 지역에 거주하는 동종범죄 전과자 중 10월27일 이후 행적이 모호한 사람들을 유력 용의선상에 올려놓았다.

    마지막 단서, 정액 속 DNA

    사면초가이지만, 경찰에게는 ‘믿는 구석’이 하나 있다. 도로변에 버려진 노양의 청바지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정액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국과수는 극소량의 정액에서 용의자의 DNA를 추출해냈다. DNA는 범인을 밝혀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서다.

    정액에서 검출된 용의자의 DNA에 대해 묻자 윤성복 서장은 난색을 표했다. 수사기밀이던 DNA에 관한 사항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사건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이 있다면 만일의 가능성에 대비해 그들의 입안 상피세포를 채취해 왔습니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DNA를 추출하는 방법이지요. 그중 유력한 용의자의 상피세포는 우선 국과수에 제출했고요. 그런데 ‘경찰이 용의자의 DNA를 보유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가자, ‘나는 범인도 아닌데 인권침해하지 말라’며 수사요청을 거부하는 사람이 늘어납디다. 범인과의 게임에서 일단 불리한 상황이 된 겁니다.”

    현재 국과수는 경찰이 넘겨준 3700여명의 상피세포 중 1900여명의 DNA를 추출해 용의자의 것과 대조작업을 벌였다. 용의자의 것과 일치하는 조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포기하기엔 이르다. 3000여명 중에는 노양과 함께 학교를 다닌 선후배와 동료들, 화성복지관 관계자, 인근 지역의 전과자, 심지어 노양의 인척까지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강덕지 국과수 범죄심리과장은 “살인범의 70%가 평소 잘 알고 있거나 과거 꼼꼼하게 답사를 마친 장소에 시체를 유기한다”며 “노양의 시신이 유기된 야산은 평소 인적이 드문 장소인 만큼 범인은 화성지역의 지리를 꿰뚫고 있는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노양과 평소 알고 지내며, 화성의 지리에 밝은 젊은 남성. 노양의 옷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하는 유전자를 가진 인물. 용의자에 대한 수사망은 점차 좁혀지고 있다. 아울러 시신 부검을 통해 범행수법과 노양의 사인(死因)이 일부 드러났다. 경찰은 범인의 동선(動線)을 예측,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통해 범행 완료 시각까지 측정했다.

    12월13일 국과수에서 노양의 시신이 부검됐다. 그의 머리와 팔다리는 손상돼 백골이 드러났고, 목 부위는 살점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머리에 골절된 흔적도, 가슴과 배에 뚜렷한 외상도 없었다. 부검을 맡은 양경무 법의관은 “갑상연골과 설골(舌骨)에 골절 징후는 없지만, 노양이 경부압박 질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결론을 내렸다.

    복부의 상처는 기억한다

    법의학팀은 특히 배 양쪽 부위, 세로 방향으로 긁힌 5~7cm 정도의 상처 7군데에 주목했다. 상의가 벗겨진 채 땅바닥 위로 끌려가며 생긴 미세한 상처였다. 표피 박탈 정도로 보아 노양이 사망한 뒤 옮겨진 것으로 보였다. 가슴, 등, 옆구리에서는 긁힌 상처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시체를 운반한 거리가 그리 길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원수 지능수사팀장은 “노양의 복부에 긁힌 상처를 보면 적어도 두 명의 용의자가 시신을 옮겼음을 알 수 있다. 한 명은 두 팔을, 다른 한 명은 두 다리를 잡고 옮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범인이 노양의 시신을 땅에 묻었다면 살인행각은 영원히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인적이 뜸한 야산에 시신을 유기할 만큼 주도면밀한 범인이 굳이 시체를 나뭇잎으로 덮어 방치한 이유는 뭘까. 또 자신의 흔적이 남아 있을지 모를 노양의 소지품들을 국도변에 버린 까닭은 무엇일까.

    수사팀 관계자는 “용의자는 노양의 유류품을 불에 태우고, 시신을 묻을 시간이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집안 어른의 차를 몰래 갖고 나온 20대 청년들이 범행 후 빨리 귀가해야 하는 상황을 떠올려볼 수도 있을 법하다.

    다음은 용의자의 범죄행각에 대한 수사본부 관계자의 종합적 설명이다.

    “2명 이상의 용의자가 와우리공단 버스정류장에서 노양을 차에 태웠을 겁니다. 그 일대가 번화가인 만큼, 강제로 태우긴 어렵습니다. 평소 노양의 성품을 고려할 때, 분명 아는 사람의 차를 탔어요.

    용의자들은 노양의 집 방향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그를 제압하고, 차 안 혹은 차 주변에서 성폭행을 시도했습니다. 강력하게 반항하는 노양을 우발적으로 목 졸라 숨지게 했거나, 의도적으로 살해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10월27일 밤, 보름달이 떴습니다. 시신 처리를 고민하던 범인들은 옷을 벗겨 시체를 유기하는 편이 안전하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달빛에 비친 나뭇잎과 살색이 비슷하게 보였을 테지요.

    이들은 7~8m 정도 이동해 인적 드문 야산에 노양의 시신을 유기하고, 차를 돌려 나가면서 사망한 노양의 휴대전화와 옷가지, 소지품을 도로변에 띄엄띄엄 버렸습니다. 오후 8시35분 버스에서 내린 노양의 휴대전화가 오후 9시5분에 꺼져 있던 걸로 보아 범행은 그 시간에 신속히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은 범인의 동선을 따라 차량을 타고 실제 범행 종료시각을 추정해보았다. 와우리공단 버스정류장에서 시체가 발견된 태봉산 자락까지 5.4km 거리를 평균시속 40~60km로 달리자 14분40초가 걸렸다. 이어 태봉산에서 휴대전화가 발견된 협성대 부근까지는 3.6km. 자동차로 11분50초가 걸렸다. 다시 휴대전화 발견지점부터 유류품이 발견된 도로를 따라 세마교까지 12.4km를 달리는 데 걸린 시간은 19분33초. 차량을 타고 총 21.4km를 달리는 데 46분이 걸리는 셈이다.

    노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하는 데 소요된 시간을 1시간30분으로 가정할 때, 이들이 모든 범행을 마치고 도주로인 세마교를 통과한 시각은 대략 밤 10시55분으로 추정됐다. 범인이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하기까지 약 2시간 넘게 소요된 것이다.

    수사본부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

    유가족에게 아픔만 남겨준 채 화성 여대생 살해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그러나 수사본부의 불빛은 좀처럼 꺼질 줄을 모른다.

    사건발생 100일에도, 설연휴에도 마찬가지였다. 쌓인 수사자료를 정리하던 수사본부의 한 관계자는 이글거리는 분노와 간절함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물이 가는 길이 곧 법이지요. 물길을 찾아가는 것이 곧 수사입니다. 세상의 이치대로 우리는 지금 범인을 쫓고 있습니다. 한 생명을 무참히 살해한 그들을 내 손으로 꼭 잡고 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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