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호

페라리 마세라티|최첨단 기술력, 전통의 장인정신이 빚은 스포츠카의 전설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5-02-23 1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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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때 페라리와 함께 세계 스포츠카 시장을 주름잡던 마세라티.
    • 수작업 주문생산으로 유명한 이 고집스러운 차는 세계자동차경주대회에서 불멸의 우승신화를 남긴 후 스포츠카와 세단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 그리하여 또 하나의 신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페라리 마세라티|최첨단 기술력, 전통의 장인정신이 빚은 스포츠카의 전설

    마세라티 본사.

    이탈리아 중북부에 위치한 소도시 모데나는 고급승용차인 페라리(Ferrari)와 마세라티(Maserati)의 생산지, 그리고 테너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출신지로 유명하다.

    교육과 예술의 도시인 볼로냐에서 자동차 도시인 모데나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막힘이 없었다. 기자를 태운 폭스바겐은 줄곧 시속 180㎞대를 유지했다. 커브 구간이 별로 없어서인지 고속주행임에도 요동이 거의 없었다.

    모데나는 볼로냐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또한 세계적인 의류·섬유시장이자 패션의 도시인 밀라노에서는 남쪽으로 1시간 반 가량 달리면 닿는다. 모데나는 도로와 철도 접근성이 뛰어난 편이다. 밀라노-볼로냐 고속도로와 브레너 고속도로가 교차하며 밀라노-로마 철도노선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세계적 명차인 페라리와 마세라티의 생산지에 걸맞은 여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한때 페라리와 함께 세계 스포츠카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던 마세라티는 1997년 페라리 그룹에 합병된 이후 회사 이름이 페라리 마세라티로 바뀌었다. 페라리 그룹 총수인 루카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Montezemolo)씨가 마세라티 사장을 겸하고 있다.

    페라리와 마세라티는 한 지붕 두 가정과 비슷하다. 본사와 공장도 이웃해 있다. 마세라티의 본사는 모데나에, 페라리는 모데나 인근 마라넬로에 자리잡고 있다. 또 두 회사 모두 모데나와 마라넬로에 각각 1개씩 공장을 갖고 있다. 다만 마세라티는 모데나 공장에서, 페라리는 마라넬로 공장에서 주요 작업을 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이처럼 마세라티와 페라리는 형제 자동차다. 일부 생산공정의 경우 공동으로 작업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각각의 상표를 내세워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마세라티사는 공장과 생산라인을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차의 종류와 기능 면에서도 차이가 난다. 페라리는 오로지 경주용 차만 생산하며 고급 구매층을 겨냥한 만큼 대중성은 약하다. 반면 마세라티는 경주용에 세단의 성격을 가미한 차가 주종을 이룬다. 따라서 대중성 면에서 페라리에 앞선다. 페라리가 3억~4억원대인 데 비해 마세라티가 2억원 안팎인 것은 이런 차이에서 비롯한다. 이탈리아의 생활과 문화를 소개하는 잡지 ‘스타일’의 마케팅 담당인 알렉스(Alex)의 의견대로라면 페라리는 젊은층이, 마세라티는 장년층이 선호한다.

    마세라티는 페라리나 다른 승용차들과 달리 시장에 내놓고 파는 차가 아니다. 고객의 주문이 있어야 생산에 들어가는 맞춤주문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당연히 마세라티에는 대량생산이나 대량판매 개념이 없다. 오직 특별제작과 한정판매가 있을 뿐이다.

    게다가 모든 작업공정이 사람의 손으로 이뤄지므로 마세라티에서는 자동화시스템이라는 개념이 낯설다. 그러면서도 기능과 성능 면에서 마세라티는 최고급차 반열에 올라 있다. 기계에 의존하지 않는 장인정신과 최첨단 기술력의 완벽한 결합, 그리고 철저한 맞춤주문 제작, 이것이 바로 마세라티 애호가들의 자부심이다.

    고객 주문으로만 생산

    페라리 마세라티|최첨단 기술력, 전통의 장인정신이 빚은 스포츠카의 전설

    마세라티에서 생산되는 차종.

    길쭉한 8각 원통형 건물의 마세라티 본사에 도착하자 맨 먼저 건물 꼭대기에 붙은 삼지창 엠블렘이 눈길을 끈다. 이 엠블렘을 고안한 사람은 창업주 알피에리 마세라티(Alfieri Maserati)의 동생 마리오(Mario) 마세라티다. 볼로냐의 마조레 광장에는 거대한 넵투누스(Neptunus·바다의 신) 조각상이 서 있다. 마리오가 디자인한 엠블렘은 바로 이 넵투누스가 들고 있는 삼지창을 본뜬 것이다.

    공장 견학에 앞서 쇼룸(show room)으로 향했다. 대외업무 책임자인 안드레아 치타디니(Andrea Cittadini)씨가 기자 일행을 맞았다. 안내는 조르조 마니카르디(Giorgio Manicardi)씨가 맡았다. 1966년 마세라티에 입사해 30여년간 수출파트에서 일했다는 그는 지금은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마세라티와 협력하고 있다.

    쇼룸에 들어서자 푸른빛이 감도는 거대한 탄소봉이 방문객의 머리를 휘어감는다.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케 하는 뒤틀린 타원형이다. 탄소봉 위에 마세라티에서 생산하는 차들이 웅크리고 있다. 흡사 사랑하는 순간의 여인처럼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입김을 내뿜으며. 그 고혹적인 자태라니.

    페라리 마세라티|최첨단 기술력, 전통의 장인정신이 빚은 스포츠카의 전설

    마세라티의 주력 차종인 콰트로포르테. 스포츠카에 세단의 성격을 가미했다.

    마니카르디씨는 이 독특한 쇼룸을 자랑하고 싶은지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가인 론 아라드(Ron Arad)가 설계한 것”이라는 말로 설명을 시작했다. 머리가 벗겨지고 나이도 지긋해 보였지만 그의 말투엔 쾌활함과 열정이 넘쳤다. 전시된 차를 하나하나 살펴보는 과정에 마세라티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마세라티의 고향은 볼로냐다. 볼로냐 태생인 알피에리 마세라티가 1914년 볼로냐의 한 시골마을에서 소치에타 아노니마 오피치네 알피에리 마세라티(Societa Anonima Officine Alfieri Maserati)라는 긴 이름의 간판을 내걸고 사무실을 차린 것이 시발점이다. 마세라티는 이 해를 회사 창립연도로 기념하고 있다. 오늘날 ‘오피치네 알피에리 마세라티’는 고객 맞춤주문 시스템을 가리키는 말로 통한다.

    자동차 디자이너와 레이싱 드라이버로 활약하던 알피에리는 1926년 삼지창 엠블렘을 단 Tipo 26을 제작, 발표했다. 이 차가 바로 마세라티의 최초 모델이다. 알피에리는 이 차의 레이서로 타르가 플로리오 대회에 직접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몇 차례 더 자동차경주대회에 출전하면서 마세라티의 성능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1929년엔 16기통의 초대형 엔진을 얹은 V4가 탄생했다. 시속 246㎞라는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속도를 선보인 V4는 이듬해 트리폴리 그랑프리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마세라티의 명성을 널리 떨쳤다.

    경주용차에서 GT로 변신

    1939년 마세라티는 본사를 볼로냐에서 모데나로 옮겼다. 그로부터 8년 뒤인 1947년 페라리사가 모데나에서 가까운 마라넬로에 설립됐다. 이후 마세라티와 페라리는 각종 자동차경주대회에서 불꽃 튀는 승부를 펼쳤다. 1957년 영광의 정점에서 마세라티는 모든 자동차경주대회에 더 이상 공식적으로는 출전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그때까지 마세라티는 23개의 챔피언십과 32개의 F1(Formula 1·국제자동차연맹이 정한 규격에 따른 세계적인 자동차경주대회) 그랑프리대회 등에서 500여회나 우승했다. 두드러진 점은 경주용 트랙 외에 일반 도로와 산악, 그리고 고속 모터보트 경주대회에서도 우승하는 전천후 성능을 과시했다는 점이다.

    비록 경주대회 불참을 선언했지만 경주용 차 개발기술까지 중단한 것은 아니어서 마세라티는 이후에도 경주용 차를 제작했으며 F1 대회를 겨냥한 엔진을 개발해 경주에 참가하는 타 회사에 공급했다. 1971년 마세라티 엔진을 장착한 시트로앵 SM이 모로코 랠리에서 우승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도로용 자동차 생산에 초점을 맞추면서 마세라티는 GT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GT는 그랜드 투어링(grand touring)의 약자로 GT차라 하면 장거리 여행에 적합한 고성능 자동차를 뜻한다.

    경주용차는 성능이 뛰어나지만 일반 도로에서는 불편한 점이 많다. 이런 약점을 해결하기 위해 스포츠카의 승차감을 개선하고 장거리 여행에 필요한 짐 공간 등 일반 승용차의 기능을 덧붙인 것이 GT차다. 오늘날 마세라티는 ‘고성능 호화 GT’라는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쇼룸에 전시된 차종은 주력 모델인 콰트로포르테(Quattroporte)를 비롯해 쿠페(Coupe), 스파이더(Spyder), 그란스포르트(Gransport), MC12 5종류다. 이중 MC12를 빼고는 모두 8기통 엔진에 배기량 4200cc다.

    콰트로포르테는 세단의 성격이 가장 강한 차종이다. 1968년 시판된 첫 모델은 마세라티사에서 내놓은 차 중 가장 많이 팔렸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의 공식차량으로 선택되는 영예를 누렸다. 2003년 생산된 신형 콰트로포르테는 최대속력이 시속 275㎞에 이르면서도 세단의 안정감을 갖춘 것이 장점이다.

    2001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를 통해 선보인 스파이더는 페라리의 기술지원을 받아 탄생한 차로 스포츠카의 특성을 띠면서도 수납공간과 골프가방 2개가 들어가는 트렁크 공간을 확보하는 등 실용성을 갖추고 있다. 2도어 2인승이며 최대속력은 시속 285㎞.

    2002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등장한 쿠페는 그해 이탈리아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모빌리아’가 ‘2002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차’ 스포츠카 부문에서 페라리 575M 마라넬로에 이어 2위에 선정할 정도로 세련되고 우아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2도어 4인승으로 스파이더의 특성과 비슷하지만 편의 기능을 추가했다. 최대속력은 스파이더와 마찬가지로 시속 285㎞.

    페라리 마세라티|최첨단 기술력, 전통의 장인정신이 빚은 스포츠카의 전설

    모데나에 있는 마세라티 공장은 모두 3곳이다.<br>▲기계 제작, 소품 부착, 인테리어 ▲모터 시험 ▲차체 검사 및 최종 점검으로 작업이 구분돼 있다.

    최신 차종인 그란스포르트와 MC12는 아직 앞의 세 모델만큼 알려져 있지 않다. 둘 다 마세라티의 초창기 모델인 경주용 차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것으로 2도어 2인승이다. 그란스포르트의 최대속력은 시속 290㎞. 생김새만으로도 경주용차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MC12는 12기통 엔진에 최대속력이 시속 330㎞에 이른다.

    모데나에 있는 마세라티 공장은 모두 3곳으로 520명의 종업원이 일하고 있다. 마니카르디씨의 안내에 따라 처음 방문한 공장에서는 기계장치에 의해 공중으로 들린 자동차들이 내장을 드러낸 채 여기저기서 신음하고 있었다.

    작업장은 콰트로포르테, 쿠페, 스파이더 세 라인으로 구분돼 있는데 작업순서는 거의 같다. 콰트로포르테의 공정은 13단계, 쿠페와 스파이더는 12단계로 나뉘어 있다. 차체는 전기레일을 통해 U자형으로 돌면서 각 단계로 진입한다. 마세라티의 차체는 이탈리아 북서쪽에 위치한 토리노에서 페라리사의 하청업체들이 제작한 것이다.

    종업원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았다. 일손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기자 일행에게 미소를 보내는 여유를 갖고 있었다.

    단계마다 3~4인이 한 조를 이뤄 일하는데 그중 한 명이 조장 노릇을 한다. 또 인접한 몇 개의 소작업장을 관리하는 대표조장이 있다. 각 조는 앞조의 작업내용을 철저히 점검, 이상이 없을 때에만 작업에 들어간다. 또 평균 10개월에 한 번씩 조 임무를 교대하기 때문에 종업원들은 생산공정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 공장에서 진행되는 작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기계 제작으로 차체에 전기장치를 설치하고 모터와 엔진, 변속기 등을 장착한다. 다른 하나는 각종 소품 부착과 인테리어다. 차문을 달고 시트를 깔고 도색을 하고 내부 장식을 한다.

    이 모든 공정은 수작업이다. 수작업의 오류 가능성에 대해 묻자 마니카르디씨는 “실수보다는 수량이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자동화 작업에 비해 작업속도가 떨어지므로 최대한 생산해봐야 연간 1500대를 넘기 힘들다는 것이다. 현 시스템으로는 일일 최대생산량이 콰트로포르테는 18대, 쿠페와 스파이더는 9대씩이다.

    마니카르디씨는 소품제작 공정을 소개하면서 마세라티 모델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철저한 맞춤주문 제작이므로 고객의 주문에 따라 천차만별의 사양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좌석시트만 하더라도 가죽과 색상, 바느질 땀을 어떤 것으로 주문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델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마세라티의 모터는 마라넬로에 있는 페라리 공장에서 제작된다. 두 번째로 들른 공장은 모터를 점검하는 곳이었다. 이 공장에서는 페라리사에서 넘긴 모터를 다양한 방법으로 점검하는 한편, 세계 어느 곳에서든 통하는 모터를 만들기 위해 고객이 사는 나라의 기후환경에 맞춰 모터 작동을 시험한다.

    마세라티의 특징 중 하나는 여느 승용차와는 달리 무게중심이 뒤쪽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어변속기를 액슬과 더불어 차 뒤쪽에 설치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트랜스액슬(Transaxle)로 불리는 이러한 배치구조는 회전하거나 급제동할 때 차가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막아준다.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것으로 마세라티 외에 페라리, 아우디와 메르체데스의 일부 사양 등 극소수 차종에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돌아본 공장은 토리노에서 운송돼 온 차체에 이상이 없는지 검사하는 한편 완성단계에 이른 차의 각종 성능을 최종 점검하는 곳이었다. 차체 요동과 브레이크 기능, 속도, 수압 저항력, 광택, 흠집 등 그야말로 차의 모든 것을 검사한다. 여기서 통과한 차량은 마지막 단계로 옥외 주행검사를 거친다. 시내, 고속도로, 언덕 등지에서 시험주행을 전문적으로 하는 운전사가 늘 같은 조건에서 점검한다. 고객이 원할 경우 판매하기 전 시운전에 동참할 수 있다.

    국내에서 마세라티가 판매된 것은 2003년 5월부터. 수입자동차 판매에 관한 건설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2005년 1월 현재 모두 15대가 팔렸다. 쿠페가 10대, 스파이더가 5대다. 지난해 소개된 콰트로포르테는 현재 12대가 주문되어 그중 2대가 2월 중 고객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이에 비해 페라리는 지금까지 25대가 팔렸다. 그중엔 4억5000만원짜리인 페라리 612 스카글리에티도 1대 포함돼 있다. 한편 가격이나 성능에서 마세라티보다 한 등급 아래로 평가되는 포르셰는 242대나 팔렸다.

    마세라티와 페라리의 국내 공식 수입업체인 쿠즈 플러스 관계자는 마세라티의 ‘저조한’ 판매량에 대해 “도입시기가 얼마 안 되고 주문생산에 따른 한정판매임을 감안하면 양호한 실적”이라며 “주문이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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