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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盤上)의 표범’ 이세돌

노회한 실리 탐색전 끝, 일격에 급소 꿰뚫는 ‘프로 킬러’

  • 서정보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suhchoi@donga.com

‘반상(盤上)의 표범’ 이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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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盤上)의 표범’ 이세돌

1995년 입단 무렵 서울의 한 고궁에서. 당시 이세돌은 만 12세였다.

이세돌이 입단한 과정은 이창호 9단과 크게 대비된다. 이창호는 말하자면 정식 ‘사관학교’ 출신이다. 전북 전주에서 가장 유명한 시계점을 운영하는 아버지 덕에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부모의 전폭적인 후원 아래 조훈현 9단의 내제자가 됐다. 그는 입단하자마자 1년 만에 각종 본선에 올라 활약을 펼쳤다. 이창호가 엘리트 코스의 ‘직행 엘리베이터’를 탔다면 이세돌은 들판의 잡초처럼 바닥에서부터 힘겹게 한 계단씩 밟아 올랐다고 볼 수 있다.

형 상훈씨가 제대하고 그의 형제들이 함께 서울에 올라와 모여 살면서 그의 생활도 차츰 안정을 찾았다. 1998년 아버지의 운명은 큰 충격이었지만 승부사 이세돌에겐 좋은 보약이 됐다. ‘20세 이전에 타이틀을 따야 한다’는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그는 ‘경솔한 손놀림’을 자제하고 비로소 제한시간을 다 쓰는 신중한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변신에 성공한 이세돌은 2000년이 시작되자마자 연승 행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막혔던 화산이 폭발하듯 10연승, 20연승의 ‘잭팟’을 터뜨렸다. 비록 32연승 후 입단 동기 조한승 8단에게 졌지만 한번 탄력을 받은 그는 멈출 줄을 몰랐다.

이세돌은 그해 말 유재형 4단을 이기고 천원전에서 첫 우승한 데 이어 맹장 유창혁 9단을 누르고 배달왕전마저 차지했다. 이로써 ‘유망한 신예 중 한 명’에서 일약 ‘포스트 이창호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2000년은 이세돌의 해였다. 이창호가 건재하고 있었지만 그해 최우수 기사상을 수상했다. “한번 자신감이 붙자 거칠 것이 없었다. 누구와 둬도 이길 것 같았다”는 것이 당시 그의 소감이었다.



2000년 이세돌의 활약으로 바둑계는 혁명전야와 같은 분위기에 휩싸였다. 1986년 입단한 이창호는 1988년 KBS 바둑왕전을 획득한 뒤 10년 넘게 1인자로 군림해 왔다. 그의 선배 기사는 물론 최명훈 9단, 김승준 8단 등 동년배 기사나 후배기사인 조한승, 안조영, 목진석 8단도 발군의 성적을 올렸지만 이창호에게는 번번이 패퇴했다. 이런 상황에서 혜성과 같이 출연한 이세돌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전광석화 같은 수읽기, 막강한 전투력, 뜻하지 않은 곳에서 전단을 찾아내는 능력, 마치 전성기 시절의 조훈현을 보는 듯한 파격적인 기풍에 팬들은 열광했다. 바둑 팬들은 이창호의 장기 독주 체제를 무너뜨릴 인물로 이세돌을 지목하기 시작했다.

넘지 못한 벽, 이창호

두 사람의 대결은 의외로 빨리 다가왔다. 2001년 LG배 세계기왕전. 바둑 전문가들은 이세돌(당시 3단)의 기세가 아무리 거세다 해도 이창호는 넘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승전 다섯 판 중 한 판 정도 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세돌은 전문가의 예상을 뒤엎고 1, 2국에서 완승을 거뒀다. 그는 먼저 실리를 차지한 뒤 이창호의 공격을 유도했다. 공격은 이창호의 주특기가 아니었다. 실리 부족에 허덕이던 이창호는 무리한 공격에 나섰고, 이세돌은 정확한 카운터펀치를 터뜨리며 두 번 모두 대마를 잡고 승리했다.

이세돌이 천하의 이창호를 두 판 연속 KO시키자 바둑계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창호의 신화’를 믿는 이들은 ‘아직 반반 승부’라고 했지만 1, 2국의 완벽한 반면 운영을 본 팬들은 이세돌의 우승에 비중을 뒀다.

이세돌도 우승은 ‘떼어놓은 당상’이라고 여겼다. 그는 2국이 끝난 뒤 형제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자신의 우승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고 한다. 그는 3국에서도 완승의 형세를 만들었다. 하지만 갑자기 난조를 보이다 지고 말았다.

이세돌에겐 여전히 두 개의 화살이 남아 있었지만 3국에서 진 부담감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세돌은 4, 5국에서 승부를 서두르며 무리수를 남발하다 모두 패하고 말았다. ‘역시 이창호’라는 칭송 속에 패자의 아픔은 묻혀버렸다. 그는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당시 심정에 대해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졌다는 사실보다 왜 졌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자신의 바둑 실력이 가장 뛰어났을 때로 2001년 LG배 세계기왕전 당시를 꼽는다.

“그때는 바둑에 균형이 잡혀 있었어요. 내가 생각해도 바둑 내용이 훌륭했죠. 지금은 외려 초반에 무리하다가 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둑 실력은 20세 이전에 절정에 오른 것 같아요. 그 이후론 경험이 더 붙을 뿐 실력은 더 이상 늘지 않습니다.”

그는 이창호보다 자신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졌을까. 그가 내린 결론은 경험 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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