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호

‘알람시계’에서 ‘代父’까지, 연예인 매니저의 세계

“‘분칠한 사람’에겐 정 주지마라, 뒤통수 맞는다”

  •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입력2005-02-23 18:0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매니저에게 외제차 선물한 배용준의 신의
    • 톱스타·소속사 수익배분율 8 대 2
    • 소속사가 CF 따오자 계약 해지, 광고주와 직접 계약한 얌체 연예인
    • 톱스타는 사세 과시용, 수익에는 큰 도움 안 돼
    • 배신 막으려 성관계 맺어 연예인 약점 잡기도
    • 월 30만원 박봉에 시달리는 로드매니저
    ‘알람시계’에서 ‘代父’까지, 연예인 매니저의 세계
    “배용준씨요!”“정말, 배용준씨만한 사람 없죠.”

    취재중에 만난 매니저들(연예 매니지먼트사의 실장, 팀장, 로드매니저 포함)에게 “함께 일하고 싶은 스타가 누구냐”고 묻자 한결같이 배용준을 꼽았다. “요즘 잘나가는 한류 스타인데다 ‘큰돈’을 벌어들이기 때문이냐”고 되묻자 약속이나 한 듯 죄다 고개를 내저었다.

    “배용준씨가 오랫동안 함께 일한 두 매니저와 코디네이터에게 외제차와 고급승용차를 선물하고 강남에 집을 얻어줬다고 한다. 매니저에게 고가의 선물을 건넸다고 해서 그와 함께 일하고 싶다는 건 아니다. 스타 연예인 중에 배용준씨만큼 매니저를 귀하게 여기고 대접하는 사람이 없다. 그와 일하고 싶은 첫째 이유는 매니저를 인격적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매니저 생활 7년차에 접어든 대형 매니지먼트사 황모씨의 말이다.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은 한류 열풍 등에 힘입어 외형적으로는 규모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매니저들은 “배용준의 매니저가 부럽다”면서 “우리는 스타의 ‘일회용 종이컵’에 불과하다”고 털어놓았다.



    매니지먼트 산업의 주요 업무는 매니저가 스타의 활동을 돕고 관리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산업은 스타와 매니저의 관계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한국의 매니지먼트 산업은 연기자(영화·TV)와 가수에 치중돼 있다. 이번 취재는 연기자 매니지먼트사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전설 같은 ‘배용준의 선물’

    매니저의 사전적 의미는 ‘지배인, 경영자, 관리인’ 등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훈련하고 지배하고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이에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매니지먼트 산업에 종사하는 매니저는 연예인의 활동을 전반적으로 기획, 관리하는 사람을 뜻하지만 막상 ‘현실’은 이런 ‘이론’과 동떨어져 있다. 이어지는 황씨의 이야기.

    “이 바닥에서 처음 일을 배울 때 선배들이 ‘분칠한 사람(매니저 업계에서 연예인을 일컫는 은어)’에게 정 주지 말라, 뒤통수 맞는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오랫동안 여러 연예인을 겪으면서 자연히 그 뜻을 알게 됐다. 대부분의 연예인은 매니저의 노력이 자신의 인기관리와 수입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잘하는 척’하는 것일 뿐,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이 나타나거나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냉정하게 돌아선다.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신인의 경우 계약기간이 남아 있어도 계약을 파기할 만한 구실을 찾아 소속사를 박차고 나가는 것도 여러 차례 봤다. 나도 그런 경우를 여러 번 당했다.”

    지난해 4월 배용준이 소속사 한신코퍼레이션과 전속계약을 해지하자 많은 매니지먼트사가 영입경쟁에 나섰다. 이들은 거액의 계약금을 제시하면서 요구조건을 100% 받아들이겠다는 단서까지 붙였지만 하나같이 거절당했다. 배용준은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4년 넘게 동고동락하며 자신의 매니저로 일해온 배성웅·양근환씨의 (주)BOF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주)BOF는 배씨와 양씨가 자본금 1억원으로 설립한 신생기획사.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영화, 방송과 마케팅을 전공한 이동훈씨를 대표이사로 영입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배용준이 별도의 계약금을 받지 않고 전속계약서에 사인했다는 사실이다. 배용준은 양근환씨를 비롯한 4명의 이사가 회사 지분을 균등 분할하는 데도 합의했다.

    양씨는 “국내외 팬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지금처럼 가족과 같은 분위기를 유지해달라는 것이 형(그는 배용준을 형이라 불렀다)이 요구한 유일한 조건이었다”고 밝혔다. 매니지먼트 업계에 널리 알려진 ‘배용준의 선물’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형은 자신이 쇠고기 먹을 때 우리가 돼지고기 먹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함께 일하는 매니저를 소중한 존재로 여겼고, 자신이 활동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늘 추켜세웠다. 2년 전쯤 배성웅씨는 외제차를, 나와 코디네이터는 개인적으로 외제차를 선호하지 않아 국산 고급승용차를 선물로 받았다. 그리고 가족(소속사 식구들을 지칭)이 집을 얻거나 금전적으로 필요한 일이 생기면 말없이 도움을 줬다. 형은 ‘너희가 먹고 사는 데 궁핍하면 나와 일할 때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자주 했다. 지금도 말단 직원부터 챙기고 그들과 함께 운동하는 것을 즐긴다.”

    우리나라 매니지먼트 산업의 시초는 영화와 악극단이 자리잡고 방송이 막 등장한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영화사와 음반사의 제작부장이 배우와 가수의 기본 일정을 관리하는 정도였다. 먼저 활성화된 것은 가수 쪽이었다. 개인 매니저가 한두 명의 가수를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최봉호(하춘화, 나미) 길영호(남진) 김영민(윤수일)씨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당시 매니저는 심부름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자동차를 소유한 연예인이 거의 없을 때라 짐 들고 따라다니는 수준이었고 매니저라 불리지도 않았다. 1970년대 들어 가수의 주 수입원이 전국을 떠돌며 공연하던 악극단에서 ‘밤무대’로 이동했다. 짧은 시간에 여러 업소를 뛰기 위해서는 운전 잘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운전기사가 곧 매니저였던 셈이다.”

    악극단장 출신으로 매니지먼트사 형태를 갖춘 국내 최초의 연예프로덕션 ‘삼호기획’을 운영한 최봉호(68)씨의 말이다. 그는 현재도 ‘최 회장님’으로 불리며 ‘연예계의 대부’로 통한다. 리버사이드호텔과 롯데월드, 뉴월드호텔, 북악파크의 나이트클럽을 운영할 정도로 사업수완도 뛰어나 연예인들 사이에서는 “최 회장에게 인정받으면 인기는 보장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널리 퍼져 있다.

    김지미·최무룡의 ‘간통 합의금’

    최씨는 서울 종로통 극장가에서 암표장사를 하며 연예계를 기웃거리다 1950년대 말 군부대 예술위문공연단을 쫓아다니면서 연예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60년대에 악극단장으로 활동하면서 영화배우·가수 등을 사귀고 이를 바탕으로 프로덕션업계에 진출했다. 1970년대 초에는 인기연예인들이 처음으로 출연한 밤업소인 ‘서울구락부’를 경영하며 야간업소의 대부로 군림,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모았다.

    연예인들의 출세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최씨가 키운 스타로는 고(故) 이주일, 하춘화, 나미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어지는 최씨의 말이다.

    “1960~1970년대는 명동 국립극장 근처에 있는 은하수다방 등이 매니지먼트사 사무실 노릇을 했다. 그곳에 영화와 방송에 출연하고 싶어하는 배우와 캐스팅하려는 감독이 모여들었다. 내로라하는 연예관계자는 다들 그곳에 죽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연계약도 거기서 이뤄졌다. 다방은 스타를 배출하는 통로였다. 우리나라 영화계 거물급 여배우로 성장한 한 배우가 명동 다방의 마담 출신이다. 그곳에 출입하던 감독의 눈에 띄어 배우로 데뷔한 것이다. 충무로에 명보극장과 스카라극장이 들어선 이후엔 많은 ‘사무실’이 명동에서 충무로 ‘다방’으로 옮겨갔다.”

    1970년대 초, 국내 매니지먼트 업계 최초로 사무실과 전화기를 갖췄다는 최씨는 당시의 일화를 소개했다.

    “영화배우 김지미씨와 최무룡씨가 간통사건으로 구속됐다. 지금 같으면 그런 일이 발생할 경우 매니지먼트사가 나서서 일처리를 도와줄 텐데 그때는 매니저가 따로 없어 곤욕을 치렀다. 내가 나서서 (간통)고소를 취하하는 데 필요한 합의금을 건넸다. 개인적인 친분으로 도와준 건데, 두 사람은 출소한 후 전국 극장을 돌며 가진 ‘최무룡·김지미 쇼’의 수익금을 내게 건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야간업소의 출연섭외와 일정관리에 필요한 운전기사 형태의 ‘가수 매니저’가 활발히 활동한 반면, 연기자 매니지먼트는 1980년대만 해도 보잘것없었다. 가족이나 지인 등이 일정을 챙기는 정도였다. 연기자 매니지먼트가 가수 매니지먼트보다 늦게 자리잡은 것은 연기자의 수입이 가수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연기자의 주 수입원이자 활동무대는 영화가 아닌 TV였고, TV 출연 수익금은 등급제와 전속제의 영향을 받았다. MBC 프로덕션 제작2부장 배한천 PD는 당시 연기자의 수입이 가수보다 적을 수밖에 없던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1970년대에 TV 보급이 늘어나면서 방송사는 예전에 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했다. 방송 제작에 가장 필요한 인력은 다름아닌 연기자였다. KBS와 MBC가 공채 탤런트 제도를 마련한 것도 연기자 수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였다. 방송사는 선발된 연기자들을 ‘전속계약’으로 묶어뒀고 이들은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는 타 방송사에 출연할 수 없었다.

    전속제로 묶인 연기자의 출연료는 등급제라는 또 다른 제도로 결정됐다. 등급제는 연기자의 인기에 상관없이 연공서열에 따라 등급을 조절하고 출연료를 지급하는 것이다. 요즘처럼 방송사와 연기자가 출연료를 협상하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방송사가 자사 소속 연기자를 관리하고 출연료 지급기준도 방송사가 정한 등급에 따라 일괄적으로 적용했으므로 연기 활동을 하는 데 매니지먼트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알람시계’에서 ‘代父’까지, 연예인 매니저의 세계

    지난해 일본에서 ‘용사마’ 열풍을 일으킨 배용준은 매니저들 사이에서 인간미 넘치는 연예인으로 통한다.

    1991년 민영방송 SBS의 등장은 매니지먼트 산업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방송사가 하나 더 생겼으니 연예인 수요가 느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SBS는 방송국의 인지도를 높이고 기존 지상파 방송사와 시청률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유명 연예인 영입에 적극 나섰다. 그 바람에 스타급 연기자의 몸값이 치솟기 시작했다.

    SBS가 내세운 무기는 돈, 즉 고액의 출연료였다. 등급제로 지급하는 MBC와 KBS의 출연료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이때부터 매니저 수요가 늘었다. SBS와의 출연료 협상 테이블에 ‘앉힐’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SBS는 타 방송사에 비해 2~3배 높은 출연료를 제시했다. 연기자는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려고 애썼다. 문제는 협상 테이블에 앉는 SBS 관계자 중에 이전에 다른 방송사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많다는 점이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인 만큼 면전에서 높은 출연료를 요구할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대리인을 내세웠는데 이들이 자연스럽게 매니저 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현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 여성연기자 김모씨의 말이다. 매니지먼트사의 기본 목표는 소속 연예인의 인기와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기획, 홍보 마케팅은 연예인의 지명도를 높여 다양한 형태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과정이다.

    국내 매니지먼트사는 연예인을 발굴, 육성하고 관리하는 일보다 연예인을 대신해 방송, 영화출연과 CF 계약을 대행하는 업무에 더 치중하고 있다. 방송사(또는 외주제작사), 영화제작사, 광고주와 협상해 고액의 개런티를 받아내는 것이다. 즉 소속 연예인의 몸값을 얼마나 받아내느냐가 매니저 능력을 가늠하는 잣대인 셈이다.

    탤런트, 영화배우 등 연기자의 매니지먼트가 처음 선보인 것은 1990년대 초다. 처음에는 가족 매니지먼트가 많았다. 고현정은 어머니가, 한석규는 친형 한선규씨가 매니지먼트를 맡았다. 특히 한씨는 시나리오를 고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1990년대 말 한석규를 최고 몸값을 받는 배우로 만들었다.

    가족에 의존하는 매니지먼트 형태는 지금도 남아 있다. KBS 주말드라마 ‘부모님 전상서’에서 자폐아 아들을 둔 어머니로 열연하고 있는 김희애가 대표적인 예다. 톱스타가 소속사 없이 활동하는 이유에 대해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이런 견해를 밝혔다.

    “톱스타의 경우 매니지먼트사의 힘을 빌리려 하지 않는다. 애쓰지 않아도 방송사나 PD가 ‘알아서’ 찾아주기 때문이다. CF 계약도 마찬가지다. 광고주가 먼저 요청해오기 때문에 매니지먼트사의 ‘영업’이 필요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돈 문제가 개입돼 있다.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도 돈맛을 알기 때문이다. 예컨대 5억원짜리 광고출연계약을 맺었다고 치자. 톱스타의 경우 연기자와 소속사 수익배분율은 통상 8(연기자) 대 2(소속사)다. 계약금이 5억원이면 소속사 몫이 1억원이란 얘긴데, 어느 연예인이 그걸 뚝 떼어주고 싶겠는가.”

    현재 활동을 중단한 모 여성 연예인은 전성기에 매니지먼트사들이 영입을 꺼리는 ‘1순위’ 연예인이었다. 그녀에게 당한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는 모 매니지먼트사 대표 오모씨의 증언이다.

    “청순한 이미지를 무기로 광고 한 편에 수억원씩 받는 스타였다. 신인에서 스타로 발돋움한 이후 소속사 없이 활동해온 그녀를 영입하기 위해 매니지먼트사가 접근하자 그녀는 계약금을 안 받는 조건으로 ‘가계약’을 하자고 제안했다. 몇 달 동안 매니지먼트사가 ‘영업’하는 것을 지켜본 뒤 본계약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수억원짜리 CF를 따왔더니 가계약 해지를 통보하고는 직접 광고주측과 계약을 맺었다. 매니지먼트사와 나눠먹기 싫어 그런 편법을 동원한 것이다.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당한 회사가 몇 군데 더 있다.”

    여배우 광고료 빼돌린 소속사 사장

    이와는 반대로 매니지먼트사가 소속 연기자의 수익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분쟁이 생긴 사례도 많다. 지난해 12월30일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는 유명 여배우 장모씨의 광고 출연료를 빼돌린 혐의(업무상 횡령)로 모 매니지먼트사 대표 이모(45)씨를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해 4~5월 장씨가 광고모델 활동 등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금 중 장씨 몫으로 돌아가야 할 3억2000여만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조사결과 재작년 6월 한 매니지먼트사를 인수한 이씨는 회사의 누적된 적자 때문에 고심하다 회사 경비로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장씨의 수익금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그에 앞서 지난해 12월24일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는 수십억원대 회사 돈을 빼돌려 여자 연예인에게 외제차를 사주는 등 개인 용도로 사용한 모 매니지먼트사 전 대표 정모(35)씨를 횡령혐의로 구속했다.

    정씨는 2001년 연예기획사의 고문, 대표로 있으면서 같은해 4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유명 여자 연예인 A씨에게 고급 외제차 구입 비용과 생활비 명목으로 8000만원을 주고, 자신도 외제 승용차를 구입하는 등 회사 돈 25억여원을 횡령해 개인용도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씨는 유명 남자 연예인 J·S·K, 신인 여자 탤런트 S 등과 전속계약을 맺는다는 명목으로 회사 돈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또 자동차 운전면허가 없으면서도 고급 외제차를 5대나 구입해 운전하는 한편, 유흥비로 10억여원을 탕진하는 등 초호화판 생활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씨가 횡령한 것으로 추정되는 회사 돈은 모두 70억원에 이른다. 그가 호사스러운 생활에 빠져 있는 동안 회사가 체납한 세금은 약 7억원이나 됐다. 결국 2001~2002년 업계 정상권으로 평가받던 이 회사는 최근 사실상 폐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가 되면 부(富)와 귀(貴)를 한꺼번에 손에 쥐게 된다. 연예인 지망생은 모두 톱스타를 꿈꾼다. 이들은 ‘어떤 매니저가 누구누구를 톱스타로 키웠다’는 소문에 민감하다. 자신도 ‘키워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 이름만 내걸라”

    앞서 언급한 최봉호씨가 1960~1970년대 ‘스타 제조기’였다면 1990년대에는 백남수씨를 비롯해 정훈탁, 정영범, 고 배병수씨가 그 뒤를 이었다. 이들은 음반과 가수 매니지먼트사의 로드매니저에서 출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훈탁씨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박신양과 정우성의 매니저를 맡은 이후 수많은 스타를 기획·관리했다. TV드라마 대본 및 영화 시나리오 분석력과 스타 기획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 그는 스타급 연예인과 신인을 적당히 조화시켜 영화, 드라마 분야의 매니지먼트 업무를 체계화했다.

    가수 솔리드의 매니저로 매니지먼트 업계에 뛰어든 정영범씨는 심은하 장동건 이승연 김지수 등을 키워냈다. 특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KBS 미니시리즈 ‘가을동화’에 원빈이 전격 출연하는 데 기여했으며 이후 원빈을 최고 스타로 키운 주역이다.

    백남수씨는 개인 매니저 경력을 바탕으로 1989년 ‘백기획’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연기자 매니지먼트 사업을 시작했다. 이영애 황수정 김원희 김현주 등을 스타로 키운 그는 ‘캐스팅의 귀재’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신인 연기자를 스타로 급부상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이들은 1990년대 후반 매니지먼트 사업의 ‘과학화’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정훈탁씨는 싸이더스 HQ(전지현 최지우 정우성 전도연 김혜수 박신양 임수정 차태현 god 등 소속)를, 정영범씨는 스타J엔터테인먼트(이나영 수애 최강희 양동근 이정진 등 소속) 대표로 활약중인데, 매니지먼트사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세력으로 자리잡게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한편 매니지먼트 업계 관계자들은 “톱스타는 매니지먼트사의 얼굴마담”이라고 주장한다. 사세(社勢) 과시용일 뿐 수입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 업계 관계자의 말.

    “톱스타는 수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2~3년 동안 계약관계를 유지한다. 소속사와 톱스타는 8(연예인) 대 2(소속사)로 계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9대 1, 심지어 ‘내 이름만 내걸라’면서 수입 전체를 요구하는 톱스타도 있다. 솔직히 말해 톱스타는 소속사에 큰 이익을 안겨주는 ‘상품’은 아니다. 이미 거액의 계약금을 지불한데다 활동 유지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소속사는 톱스타에게 고급 밴 차량은 물론 A급 코디네이터와 메이크업, 미용실 이용료, 차량 유지비, 각종 식비를 제공한다. 거기에 운전기사 겸 로드매니저, 팀장급 매니저 등이 따라 붙기 때문에 관리비용이 수입을 웃도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톱스타에겐 고개를 숙이는 매니지먼트사가 연기자 지망생 앞에서는 강자로 둔갑한다. 얼마 전 국내 최대 매니지먼트사의 문을 두드린 모 대학 연극영화과 4학년 여학생은 망설이다 결국 계약서에 도장 찍기를 포기했다. 매니지먼트사가 계약조건으로 계약기간 7년에 8 대 2의 수익배분율을 제시한 탓이다. 여기서 ‘8’은 연기자가 아닌 소속사 몫이었다.

    “진짜 노예로 전락할 것 같았다”

    “매니지먼트사를 여러 군데 돌아다녔는데 회사의 ‘이름값’ 때문인지 대형 매니지먼트사의 횡포가 더 심했다. 대형 매니지먼트사를 제외한 일반 매니지먼트사의 경우 수익배분율 7(소속사) 대 3(연예인)에 계약기간 5년을 제시했다. 세부적인 계약조건에도 불리한 점이 많았다. 매니지먼트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갖가지 단서조항을 붙였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면 진짜 노예로 전락할 것 같아 차라리 연예계로 진출하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 계약을 포기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신인 연예인이 스타가 되기까지는 많은 비용이 따른다. 무엇보다 위험부담이 높아 일종의 도박을 하는 것이므로 소속사의 몫이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2002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25개 연예기획사를 포함한 28개 사업자 및 (사)한국연예제작자협회 등에 시정조치를 내리고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의결했다. 이 시정조치는 연예부문에 대해 처음으로 직권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연예산업에서의 경쟁·거래질서를 확립하고 경쟁규범을 확산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거래 사안으로 꼽는 행위로는 불공정한 전속계약, 불공정한 약관,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부당한 공동행위, 사업자 단체의 경쟁제한 행위, 부당한 광고행위 총 6가지다.

    불공정한 전속계약과 관련, 공정거래위원회는 연예인 전속계약서의 경우 대부분 기획사에게는 권리·의무 조항이 있으나 연예인에게는 의무조항만 있고, 과도한 손해배상, 손해배상 청구권 제한, 계약의 일방적 양도·해지 및 일방적 계약해석 조항 등 연예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규정돼 있다고 해석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주)싸이더스, (주)지엠기획, (주)도레미 미디어 등 18개 기획사에 시정권고 조치를 내렸다.

    매니지먼트 사업의 핵심은 연예인이다. 연예인 수급은 능력 있고 끼 있는 연기자 지망생을 발굴하는 것과 이미 활동중인 연예인을 스카우트하는 것으로 나뉜다. 발굴한 신인이 스타가 되는 경우 기획사는 큰돈을 벌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원빈이다.

    무명이던 원빈은 매니지먼트사의 관리와 기획에 의해 단기간에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는 억대의 몸값을 받는 톱스타 반열에 들어선 이후에도 ‘연기자 지망생 신분’의 계약기간이 만료되지 않아 소속사에 큰 수익을 가져다준 것으로 알려졌다.

    가끔 잊혀질 만하면 불거지는 사건이 있다. 매니지먼트사 관계자와 연예인 지망생 간의 ‘부적절한 관계’다. 여성 연예인 지망생이 매니지먼트사의 비리로 정신적, 육체적 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는 연예뉴스의 단골 메뉴 중 하나다. 연예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발생하는 연예인과 매니저, 매니지먼트사의 부적절한 관계는 일반인도 웬만큼 아는 사실이다.

    매니저가 신인 연예인과 성관계를 맺는 이유 중 하나가 훗날 그 연예인이 스타가 될 경우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한 제동장치라는 것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연예인에게, 특히 신인에서 톱스타로 등극한 이에게 배신당하지 않으려면 그들의 약점을 최대한 많이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기업화, 과학화를 추구하는 매니지먼트사의 조직 및 구성은 크게 경영기획실, 매니지먼트팀, 영업·관리 및 홍보팀 등으로 나눈다. 경영기획실은 매니지먼트의 실무라 할 수 있는 연예인 발굴, 연예 상품 기획 등 기업 전체의 장기적인 사업계획 및 전략을 주로 담당한다.

    매니지먼트사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스타의 기획과 관리를 담당하는 부서는 매니지먼트팀이다. 매니지먼트팀은 실장, 팀장, 과장과 대리, 그리고 매니저 견습생에 해당하는 로드매니저(현장 매니저)로 구성돼 있다. 매니지먼트 업계에 발을 내디딘 지 8년차라는 김모씨는 “차마 입 밖에 내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쥐꼬리만큼 받는다”며 매니저들의 급여실태를 공개했다.

    “로드매니저는 한마디로 운전기사다. 매니저라기보다는 연예인이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를 알려주는 ‘알람시계’ 같은 존재다.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대부분 30만~60만원을 월급으로 받는다.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 이 돈을 받고 일한다. 4대 보험? 어림도 없는 소리다. 계약서도 없이 말 한마디로 채용하는 판에 보험은 무슨 보험인가. 2년차에 접어든 로드매니저는 월 90만~100만원을 받는다. 대리라는 직책도 주어지는데 대부분 이때 계약직원이 된다. 과장(경력 3~4년차)은 120만원, 5년차의 경우 팀장이면 150만~180만원을 받는다. 실장은 200만원대인데, 규모가 큰 매니지먼트사의 경우 연봉이 3000만원 가량 된다.”

    매니지먼트 업계 관련자와 매니저들에게 확인한 결과 김씨의 얘기가 틀리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톱스타 출연 미끼로 신인 끼워넣기

    매니지먼트 업계에서 고학력자는 찾기 힘들다.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쌓은 후 업계에 뛰어든 사람보다는 호기심이나 연예인과의 친분에 의해 로드매니저가 된 사람이 대부분이다. 1990년대 이후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고급인력이 영입되었지만 아직 각각의 전문분야를 맡아 이끌어갈 전문 매니저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 1월5일 서울 여의도 MBC 본사 4층 흡연실 앞. 드라마국의 한 PD가 나타나자 의자에 앉아 있던 서너 명이 우르르 몰려갔다. 그들은 소속사 연기자 전원의 사진이 담긴 프로필을 건네며 깍듯하게 인사했다.

    PD가 자리를 떠난 후 그들 중 두 명과 얘기를 나눠봤다. 한 사람은 중소 규모 매니지먼트사의 실장이고 다른 한 사람은 비슷한 규모의 회사에서 일하는 팀장이라고 했다.

    “톱스타를 보유한 회사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드라마나 영화 출연 섭외가 줄을 잇지만, 우리는 매일 방송3사를 돌아다니면서 ‘영업’을 뛴다. 대규모 매니지먼트사의 실장과 팀장은 회사에 앉아서 근무하지만 우리는 발로 뛰지 않으면 안 된다. PD 등 방송관계자를 만나 안면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PD가 새 작품을 준비한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배역을 따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우리가 힘들게 조연이나 단역 배역을 따내더라도 대형 기획사가 톱스타 출연을 미끼로 신인연기자를 끼워넣는 걸 보면 허탈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기업형 매니지먼트사는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매니지먼트사가 얼마나 되는지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2002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어림잡아 1974개사 정도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음반제작사, 영화제작사, 모델 에이전시를 제외한 순수 연기자 매니지먼트사는 500여개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대다수 매니지먼트사의 구조와 경영은 부실한 편이다. 업계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도 전무하다.

    최근의 한류열풍은 스타를 통한 부가가치가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를 새삼 실감케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 매니지먼트 산업은 현재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조직적 역량이 부족하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전문교육과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계획적이고 과학적인 매니지먼트를 이끌 능력을 갖춘 전문 매니저의 육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