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밀착 취재

‘알람시계’에서 ‘代父’까지, 연예인 매니저의 세계

“‘분칠한 사람’에겐 정 주지마라, 뒤통수 맞는다”

  •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알람시계’에서 ‘代父’까지, 연예인 매니저의 세계

2/6
우리나라 매니지먼트 산업의 시초는 영화와 악극단이 자리잡고 방송이 막 등장한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영화사와 음반사의 제작부장이 배우와 가수의 기본 일정을 관리하는 정도였다. 먼저 활성화된 것은 가수 쪽이었다. 개인 매니저가 한두 명의 가수를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최봉호(하춘화, 나미) 길영호(남진) 김영민(윤수일)씨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당시 매니저는 심부름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자동차를 소유한 연예인이 거의 없을 때라 짐 들고 따라다니는 수준이었고 매니저라 불리지도 않았다. 1970년대 들어 가수의 주 수입원이 전국을 떠돌며 공연하던 악극단에서 ‘밤무대’로 이동했다. 짧은 시간에 여러 업소를 뛰기 위해서는 운전 잘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운전기사가 곧 매니저였던 셈이다.”

악극단장 출신으로 매니지먼트사 형태를 갖춘 국내 최초의 연예프로덕션 ‘삼호기획’을 운영한 최봉호(68)씨의 말이다. 그는 현재도 ‘최 회장님’으로 불리며 ‘연예계의 대부’로 통한다. 리버사이드호텔과 롯데월드, 뉴월드호텔, 북악파크의 나이트클럽을 운영할 정도로 사업수완도 뛰어나 연예인들 사이에서는 “최 회장에게 인정받으면 인기는 보장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널리 퍼져 있다.

김지미·최무룡의 ‘간통 합의금’

최씨는 서울 종로통 극장가에서 암표장사를 하며 연예계를 기웃거리다 1950년대 말 군부대 예술위문공연단을 쫓아다니면서 연예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60년대에 악극단장으로 활동하면서 영화배우·가수 등을 사귀고 이를 바탕으로 프로덕션업계에 진출했다. 1970년대 초에는 인기연예인들이 처음으로 출연한 밤업소인 ‘서울구락부’를 경영하며 야간업소의 대부로 군림,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모았다.



연예인들의 출세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최씨가 키운 스타로는 고(故) 이주일, 하춘화, 나미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어지는 최씨의 말이다.

“1960~1970년대는 명동 국립극장 근처에 있는 은하수다방 등이 매니지먼트사 사무실 노릇을 했다. 그곳에 영화와 방송에 출연하고 싶어하는 배우와 캐스팅하려는 감독이 모여들었다. 내로라하는 연예관계자는 다들 그곳에 죽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연계약도 거기서 이뤄졌다. 다방은 스타를 배출하는 통로였다. 우리나라 영화계 거물급 여배우로 성장한 한 배우가 명동 다방의 마담 출신이다. 그곳에 출입하던 감독의 눈에 띄어 배우로 데뷔한 것이다. 충무로에 명보극장과 스카라극장이 들어선 이후엔 많은 ‘사무실’이 명동에서 충무로 ‘다방’으로 옮겨갔다.”

1970년대 초, 국내 매니지먼트 업계 최초로 사무실과 전화기를 갖췄다는 최씨는 당시의 일화를 소개했다.

“영화배우 김지미씨와 최무룡씨가 간통사건으로 구속됐다. 지금 같으면 그런 일이 발생할 경우 매니지먼트사가 나서서 일처리를 도와줄 텐데 그때는 매니저가 따로 없어 곤욕을 치렀다. 내가 나서서 (간통)고소를 취하하는 데 필요한 합의금을 건넸다. 개인적인 친분으로 도와준 건데, 두 사람은 출소한 후 전국 극장을 돌며 가진 ‘최무룡·김지미 쇼’의 수익금을 내게 건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야간업소의 출연섭외와 일정관리에 필요한 운전기사 형태의 ‘가수 매니저’가 활발히 활동한 반면, 연기자 매니지먼트는 1980년대만 해도 보잘것없었다. 가족이나 지인 등이 일정을 챙기는 정도였다. 연기자 매니지먼트가 가수 매니지먼트보다 늦게 자리잡은 것은 연기자의 수입이 가수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연기자의 주 수입원이자 활동무대는 영화가 아닌 TV였고, TV 출연 수익금은 등급제와 전속제의 영향을 받았다. MBC 프로덕션 제작2부장 배한천 PD는 당시 연기자의 수입이 가수보다 적을 수밖에 없던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1970년대에 TV 보급이 늘어나면서 방송사는 예전에 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했다. 방송 제작에 가장 필요한 인력은 다름아닌 연기자였다. KBS와 MBC가 공채 탤런트 제도를 마련한 것도 연기자 수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였다. 방송사는 선발된 연기자들을 ‘전속계약’으로 묶어뒀고 이들은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는 타 방송사에 출연할 수 없었다.

전속제로 묶인 연기자의 출연료는 등급제라는 또 다른 제도로 결정됐다. 등급제는 연기자의 인기에 상관없이 연공서열에 따라 등급을 조절하고 출연료를 지급하는 것이다. 요즘처럼 방송사와 연기자가 출연료를 협상하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방송사가 자사 소속 연기자를 관리하고 출연료 지급기준도 방송사가 정한 등급에 따라 일괄적으로 적용했으므로 연기 활동을 하는 데 매니지먼트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2/6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목록 닫기

‘알람시계’에서 ‘代父’까지, 연예인 매니저의 세계

댓글 창 닫기

2021/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