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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 분석

박주영, 박주영, 아! 박주영

  •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부장 mars@donga.com

박주영, 박주영, 아! 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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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축구에 오랜만에 공을 둥글게 차는 선수가 나왔다. 그는 툭툭 콧노래를 부르듯 쉽게 찬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공을 둥글게 차는 건 기본이다. 박주영은 어린 나무다. 무럭무럭 자라도록 물을 주라. 자꾸 가위질하지 말라. 나무는 무르익을 때까지, 모르는 척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
박주영, 박주영, 아!  박주영
‘우물 안엔큰 고기가 없다(井水無大魚). 오직 넓은 바다에만 큰 고기가 산다. 구만리장천에서만 비로소 붕새가 날 수 있다. 개 한 마리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머지 수백 마리의 개가 덩달아 짖는다. 맨 처음 짖는 개는 그림자라도 보고 짖지만 나머지 개들은 자신이 왜 짖는지도 모른 채 울부짖는다.

강호에 또 고수가 나타났다. 불세출의 천재가 출현했다. 혹자는 100년에 한번 나타날까 말까한 ‘물건’이라고 수군댄다. 혹자는 답답한 강호무림을 구할 메시아가 왔다고 말한다. 바야흐로 세상은 온통 그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그는 머리가 갑골상(甲骨相)이다. 머리 골격이 거북의 몸통처럼 잘생겼다. 아이큐 150의 천재이지만 ‘짱구머리 천재’가 아니다. 입술도 매혹적이다. 나비 두 마리가 꽃잎에 사뿐히 내려앉은 봉접형(逢蝶形) 입술이다. 입이 헤벌어지지 않아 온몸의 기가 입술로 모인다. 약간 내리깐 두 눈의 총기도 결코 입술 언저리를 벗어나는 법이 없다.

한마디로 그의 포인트는 입술이다. 코와 입술을 잇는 삼각지대에서 섬광 같은 에너지가 번쩍인다. 그 에너지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집중력이 강하다. 그래서 그는 킬러다. 단 한 방에 목숨을 건다. 맞거나 말거나 ‘눈감 땡감’ 무차별 내지르는 기관총 사수가 아니다.

‘축구 천재’ 박주영. 그가 뜨고 있다. 그러나 그가 진정한 천재인지 일과성 바람인지 검증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강호엔 늘 천재나 고수가 나타나지만 금세 잊혀진다. 꽃은 한번 피우기는 어렵지만 지는 것은 금방이다. 봄날 벚꽃처럼 바람 한번 불면 우수수 떨어진다.



박제가 된 천재들

박제가 된 천재들을 아는가. 고종수, 이동국, 이천수, 정조국, 최성국도 한때는 강호에서 대단한 천재였다. 호나우두나 지단은 몰라도 차범근은 쉽게 뛰어넘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그렇고 그런 선수가 됐다. 게으른 황소가 되어 느릿느릿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운동장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왜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하나같이 병든 닭처럼 시들었을까. 왜 빨갛게 멍이 든 채 동백꽃처럼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을까.

고종수(27)가 누구인가. 지금 박주영 나이인 스무 살 때 ‘98 프랑스월드컵’에서 펄펄 날았다. 대선배들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판에 그는 ‘월드컵이 뭐 별거냐’는 듯 겁없이 뛰었다. 통통 튀는 개구쟁이 천재. 슛할 듯하다가 패스하고, 패스할 듯하다가 갑자기 슛을 날리는 능글맞은 늑대. 브라질 선수급의 유연한 왼쪽 발목 스냅으로 툭 떨어지는 ‘드롭 골’을 넣을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선수. 상대 골키퍼의 움직임을 끝까지 지켜보며 슛을 날릴 줄 아는 국내 몇 안 되는 스타였다.

그는 프랑스월드컵에서 멕시코와의 1차전 때 선발로 70분 동안 뛰었고 네덜란드와의 2차전, 벨기에와의 3차전에서도 교체멤버로 나갔다. 프랑스월드컵이 끝난 뒤 그는 갑자기 ‘젊은 태양’이 됐다. ‘앙팡 테리블’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축구실력보다 더 톡톡 튀는 행동으로 잊을 만하면 언론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히딩크는 2001년 부임 초기 그를 한번 뽑아 써 보더니 그 후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동국(26)은 또 어떤가. 고종수보다 한 살 어린 19세 때 프랑스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마지막 벨기에전 후반에 교체멤버로 들어가 벨기에 골키퍼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강슛을 날렸다. 벼락같은 그의 슛은 팬들의 답답한 가슴을 확 뚫어줬다. 탄탄한 유럽 수비수들과의 몸싸움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 건장한 체격도 믿음직스러웠다. 거기에 골 결정력까지 높아 수십 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한 대형 골잡이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청소년 대표시절에도 박주영 못지않았다. 1998년 10월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에서 한국이 우승할 때 5골을 넣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1999년 나이지리아 세계청소년축구대회선 3경기에서 1골을 넣은 데 그쳤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이다.

2001년 독일 분데스리가 브레멘에 진출하기 위해 테스트를 받았지만 실패했다. “골 결정력은 좋지만 볼 트래핑이 나쁘고 수비 가담과 위치 선정 등 팀플레이에 약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세계 축구 전문가들의 눈은 냉정했다. 끝내 히딩크마저 그를 2002년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물론 최근 이동국은 되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천재 소리를 듣기엔 아직 멀었다.

이천수(24)는 1999년 18세의 나이로 강호에 홀연히 나타났다. 새 천년을 휘어잡을 ‘밀레니엄 특급’으로 불리며 그라운드를 휘저었다. 또한 그에 못지않은 ‘좌충우돌 입심’으로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빠른 스피드에 유연한 드리블, 그리고 송곳 같은 슈팅은 사람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게다가 떨어지는 각도는 예리하지 못해도 고종수 못지않은 프리킥 능력도 있었다. 2002 월드컵에서도 펄펄 날았다. 이어 스페인 프로무대로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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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부장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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