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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 현지 취재

한국인 최초 美 NBA 리거 하승진

“샤킬 오닐도 두렵지 않다, 3년 후를 기대하라!”

  • 최성욱 스포츠 평론가 sungwook777@hotmail.com

한국인 최초 美 NBA 리거 하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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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승진의 NBA 입성 과정은 눈물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 그러나 이제 하승진은 NBA 선수 중 세 번째로 키가 크다는 신체적 이점과 빠른 발로 NBA 관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각팀 코치들이 서로 ‘작품’을 만들어보겠다고 달려들 만큼 ‘예비스타’로 발돋움한 것. 하승진이 털어놓은 흥미진진한 NBA 뒷얘기.
한국인 최초 美 NBA 리거 하승진
사람들은 하승진(19·포틀랜드)이 미국 프로농구(NBA)에 거저 진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좋은 신체조건(키 223cm)을 갖췄으니 NBA에서 먼저 군침을 흘리고 적극적으로 접촉했을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승진이 키만 크다고 NBA에 입성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가 NBA에 진출하기까지는 피눈물나는 노력이 있었다. 드래프트를 위한 캠프를 차린 뒤 6개월여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하루 3차례씩 강도높은 훈련을 거듭한 것은 물론이고, 부상의 고통 속에서도 테스트를 강행하는 등 ‘하승진 신화’의 이면에는 남모르는 땀과 눈물이 흠뻑 배어 있다.

지난해 6월 드래프트 3순위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뽑힌 날, 하승진은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하다가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하승진은 “드래프트를 준비하며 어려웠던 순간들이 머릿속에 스쳐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도대체 어떤 고생을 했길래 다 큰 사내가 눈물을 흘렸을까. 하승진의 말을 빌리면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한다. 어떻게 그러한 고통을 견뎌냈는지, 자신이 대견스럽기까지 하단다.

하승진이 NBA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로스앤젤레스(LA)에 준비 캠프를 차린 것은 드래프트를 6개월여 앞둔 2003년 12월. 하승진은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에이전트사 중 하나인 SFX와 계약을 맺고 SFX 소속 다른 선수들과 함께 드래프트를 준비했다.



NBA 드래프트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일단 농구는 엔트리가 다른 종목에 비해 훨씬 적기 때문에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가 좀체 쉽지 않다. 프로야구가 25명, 축구가 18명, 미식축구가 무려 45명으로 1군을 운영하는 데 비해 겨우 5명이 뛰는 농구는 엔트리 숫자도 고작 10명 안팎이다.

더구나 미국에선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등 흑인 슈퍼스타의 등장으로 농구가 흑인들이 가난을 탈출하는 하나의 도구로 인식되면서 엄청난 수의 선수가 쏟아지고 있어 NBA 입성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가기보다도 힘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요즘엔 NBA가 유럽과 중남미의 유망주에게 눈길을 돌리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하승진이 키가 크다고 한들 NBA 팀이 그를 덥석 잡을 리가 없다. 하승진은 NBA가 요구하는 선수가 되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 오후, 저녁 세 차례 훈련을 해왔다. 주말이라고 해서 놀아본 기억도 거의 없다. 오전에는 주로 같은 SFX 에이전시 소속 선수들과 함께 실전을 치르며 본토 농구를 익혔고 오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했다. 하승진은 막상 미국에 와서 힘 좋고 체격 좋은 본토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하다 보니 체력 부족을 절감했다고 한다. 그래서 파워를 키우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적으로 시간을 투자했다. 또 저녁에는 개인훈련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나갔다.

눈물의 입단 테스트

하지만 미국에 온 지 4개월이 지나면서부터 강도 높은 훈련에 따른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상이었다. 오른쪽 정강이의 ‘피로골절’. 말 그대로 피로가 쌓여 생긴 병으로 쉬어야만 낫는 병이다. 하지만 하승진은 쉬지 않았다. 아니, 코앞으로 닥쳐온 드래프트를 앞두고 쉴 수가 없었다.

이를 악물었다. 드래프트 시즌이라 각팀의 스카우트, 코치 및 감독, 단장들이 훈련캠프를 찾아 선수 기량을 집중적으로 체크하는 시점이니 더더욱 앉아서 쉴 수가 없었다. 아픔을 무릅쓰고 뛰고 또 뛰었다. NBA의 여러 팀에서 테스트를 하자는데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훈련을 하면할수록 고통은 늘어만 갔다. 테스트 때는 이를 악물고 뛰느라 몰랐지만, 정작 경기 후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할 만큼 통증이 심해졌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계단을 제대로 올라서지 못할 정도였다.

부상 때문에 포틀랜드와 인연을 맺지 못할 뻔하기도 했다. 하루는 포틀랜드에서 테스트를 하자고 해서 경기장으로 갔다. 연이은 강행군에 다리 부상이 한계점에 다달아 운동은 고사하고 제대로 서 있기도 어려울 때였다. 하지만 한 팀에라도 더 자신을 알리겠다며 하승진은 코트에 나섰다. 더구나 이번엔 포틀랜드 단장이 직접 와서 보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아픈 무릎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결국 하승진은 연습경기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너무나 억울해 눈물이 났다. 한 번의 테스트를 받기 위해 지난 6개월 동안 피눈물나게 고생했는데 막판 부상 때문에 기량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솟았다.

하승진은 “이제 포틀랜드는 물 건너 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포틀랜드와의 인연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포틀랜드는 부상 때문에 자신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해 울분을 토하는 이 한국 젊은이의 근성과 정신력, 자세를 높이 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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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욱 스포츠 평론가 sungwook77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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