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호

한국인 최초 美 NBA 리거 하승진

“샤킬 오닐도 두렵지 않다, 3년 후를 기대하라!”

  • 최성욱 스포츠 평론가 sungwook777@hotmail.com

    입력2005-02-24 1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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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승진의 NBA 입성 과정은 눈물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 그러나 이제 하승진은 NBA 선수 중 세 번째로 키가 크다는 신체적 이점과 빠른 발로 NBA 관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각팀 코치들이 서로 ‘작품’을 만들어보겠다고 달려들 만큼 ‘예비스타’로 발돋움한 것. 하승진이 털어놓은 흥미진진한 NBA 뒷얘기.
    한국인 최초 美 NBA 리거 하승진
    사람들은 하승진(19·포틀랜드)이 미국 프로농구(NBA)에 거저 진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좋은 신체조건(키 223cm)을 갖췄으니 NBA에서 먼저 군침을 흘리고 적극적으로 접촉했을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승진이 키만 크다고 NBA에 입성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가 NBA에 진출하기까지는 피눈물나는 노력이 있었다. 드래프트를 위한 캠프를 차린 뒤 6개월여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하루 3차례씩 강도높은 훈련을 거듭한 것은 물론이고, 부상의 고통 속에서도 테스트를 강행하는 등 ‘하승진 신화’의 이면에는 남모르는 땀과 눈물이 흠뻑 배어 있다.

    지난해 6월 드래프트 3순위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뽑힌 날, 하승진은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하다가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하승진은 “드래프트를 준비하며 어려웠던 순간들이 머릿속에 스쳐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도대체 어떤 고생을 했길래 다 큰 사내가 눈물을 흘렸을까. 하승진의 말을 빌리면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한다. 어떻게 그러한 고통을 견뎌냈는지, 자신이 대견스럽기까지 하단다.

    하승진이 NBA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로스앤젤레스(LA)에 준비 캠프를 차린 것은 드래프트를 6개월여 앞둔 2003년 12월. 하승진은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에이전트사 중 하나인 SFX와 계약을 맺고 SFX 소속 다른 선수들과 함께 드래프트를 준비했다.



    NBA 드래프트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일단 농구는 엔트리가 다른 종목에 비해 훨씬 적기 때문에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가 좀체 쉽지 않다. 프로야구가 25명, 축구가 18명, 미식축구가 무려 45명으로 1군을 운영하는 데 비해 겨우 5명이 뛰는 농구는 엔트리 숫자도 고작 10명 안팎이다.

    더구나 미국에선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등 흑인 슈퍼스타의 등장으로 농구가 흑인들이 가난을 탈출하는 하나의 도구로 인식되면서 엄청난 수의 선수가 쏟아지고 있어 NBA 입성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가기보다도 힘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요즘엔 NBA가 유럽과 중남미의 유망주에게 눈길을 돌리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하승진이 키가 크다고 한들 NBA 팀이 그를 덥석 잡을 리가 없다. 하승진은 NBA가 요구하는 선수가 되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 오후, 저녁 세 차례 훈련을 해왔다. 주말이라고 해서 놀아본 기억도 거의 없다. 오전에는 주로 같은 SFX 에이전시 소속 선수들과 함께 실전을 치르며 본토 농구를 익혔고 오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했다. 하승진은 막상 미국에 와서 힘 좋고 체격 좋은 본토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하다 보니 체력 부족을 절감했다고 한다. 그래서 파워를 키우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적으로 시간을 투자했다. 또 저녁에는 개인훈련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나갔다.

    눈물의 입단 테스트

    하지만 미국에 온 지 4개월이 지나면서부터 강도 높은 훈련에 따른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상이었다. 오른쪽 정강이의 ‘피로골절’. 말 그대로 피로가 쌓여 생긴 병으로 쉬어야만 낫는 병이다. 하지만 하승진은 쉬지 않았다. 아니, 코앞으로 닥쳐온 드래프트를 앞두고 쉴 수가 없었다.

    이를 악물었다. 드래프트 시즌이라 각팀의 스카우트, 코치 및 감독, 단장들이 훈련캠프를 찾아 선수 기량을 집중적으로 체크하는 시점이니 더더욱 앉아서 쉴 수가 없었다. 아픔을 무릅쓰고 뛰고 또 뛰었다. NBA의 여러 팀에서 테스트를 하자는데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훈련을 하면할수록 고통은 늘어만 갔다. 테스트 때는 이를 악물고 뛰느라 몰랐지만, 정작 경기 후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할 만큼 통증이 심해졌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계단을 제대로 올라서지 못할 정도였다.

    부상 때문에 포틀랜드와 인연을 맺지 못할 뻔하기도 했다. 하루는 포틀랜드에서 테스트를 하자고 해서 경기장으로 갔다. 연이은 강행군에 다리 부상이 한계점에 다달아 운동은 고사하고 제대로 서 있기도 어려울 때였다. 하지만 한 팀에라도 더 자신을 알리겠다며 하승진은 코트에 나섰다. 더구나 이번엔 포틀랜드 단장이 직접 와서 보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아픈 무릎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결국 하승진은 연습경기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너무나 억울해 눈물이 났다. 한 번의 테스트를 받기 위해 지난 6개월 동안 피눈물나게 고생했는데 막판 부상 때문에 기량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솟았다.

    하승진은 “이제 포틀랜드는 물 건너 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포틀랜드와의 인연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포틀랜드는 부상 때문에 자신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해 울분을 토하는 이 한국 젊은이의 근성과 정신력, 자세를 높이 산 것이다.

    한국인 최초 美 NBA 리거 하승진

    223㎝의 키를 자랑하는 하승진은 다른 장신 선수들과 달리 빠른 발을 겸비함으로써 성장 가능성이 더욱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통 키(173cm)의 필자가 팔을 한껏 뻗어올려도 그의 머리끝엔 닿지 않는다.

    이미 여러 차례 스카우트를 파견해 하승진의 기본 기량을 체크하며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포틀랜드는 이날 하승진이 보여준 불굴의 정신력과 뭔가 해보려는 강한 의욕에 매료돼 최종 영입을 결정했다.

    하승진에 대한 미국인들의 평가를 듣기 위해 존 내시 단장을 만나봤다. 무엇보다 왜 하승진을 뽑았는지가 궁금했다. 그에게서 나온 첫마디는 “가능성과 잠재력”이었다. “그만한 신체에 빠른 발을 갖춘 선수는 무척 드물다”는 것이다. 그는 하승진이 착실하게 성장하면 몇 년 뒤 공룡 센터 샤킬 오닐(마이애미)이나 중국의 야오밍(24·휴스턴) 못지않은 정상급 NBA 플레이어가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내시 단장은 특히 하승진의 성실한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대개 뛰어난 신체조건을 타고난 선수는 자기 계발에 게으르게 마련인데, 하승진은 열정(passion)이 있고 스포츠맨으로서 정신력(work ethic)도 갖췄고, 무엇보다 근면 성실한 것이 장점이라고 했다.

    그러나 내시 단장은 “몸집이 큰 선수들은 일반적으로 성장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강조했다. 큰 체구를 농구에 맞는 몸으로 만들려면 단신 선수보다 시간이 훨씬 더 걸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장 전력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하승진을 뽑지는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적어도 3~4년 이후를 내다보며, 그의 잠재력에 투자했다는 것이다.

    내시 단장은 하승진의 가능성을 거론하며 NBA 최고 스타로 떠오른 중국의 야오밍을 언급했다. “야오밍의 성공은 이제 아시아권 선수도 NBA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것. 하승진이 NBA에서 제2의 ‘야오밍 돌풍’을 일으켜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이번엔 좀더 전문적인 견해를 들어보기 위해 NBA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 라이남 코치를 만나봤다. 특히 센터 조련에 남다른 명성이 있는 그는 20년이 넘는 코치 경력에 LA클리퍼스, 워싱턴, 필라델피아 3개팀에서 감독을 지냈으며, 필라델피아 시절엔 찰스 바클리라는 슈퍼스타를 키워낸 베테랑 코치다. 그는 “하승진은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라고 단언했다. 라이남 코치의 표현은 한국 기자에게 던지는 립서비스만은 아닌 듯했다. 그만큼 하승진을 예리하게 관찰해온 그의 설명엔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다.

    내시 단장이 지적한 것처럼 라이남 코치도 ‘큰 체구에 비해 빠른 발’을 하승진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보통 키가 큰 선수들은 발이 느린데, 하승진은 웬만한 파워포워드 못지않게 발이 빠르고 몸놀림이 좋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그는 현역 NBA를 통틀어 3번째인 하승진의 키를 강점으로 들었다. 그는 “하승진처럼 키가 큰 센터의 경우 개인 성적도 중요하지만, 골밑에 버티고 서서 상대 공격의 맥을 끊는 임무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다시 말해 농구에선 키가 큰 선수가 골밑에 서 있으면 상대팀에게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위협이 된다는 얘기다.

    라이남 코치가 강조한 하승진의 세 번째 장점은 성실한 훈련자세다. NBA 선수들의 경우 드래프트에 뽑혀 계약서에 서명하고 거액의 돈을 받게 되면 과거의 헝그리 정신은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하승진은 드래프트 이전은 말할 것도 없고 포틀랜드에 뽑힌 이후에도 변함없이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하승진이 NBA에서 성공하기 위해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라이남 코치는 그냥 웃기만 했다. 그리고는 “하승진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experience)뿐”이라고 했다. 코트에 자주 나가서 뛰면 NBA 무대에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면 자신의 타고난 체격조건을 활용해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NBA 팀은 보통 8~9명으로 경기를 운영하는데, 스타팅 멤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뽑혀 (교체 멤버로라도) 자주 경기에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하승진이 NBA 무대에 데뷔했을 때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돼 고생했지만 갈수록 전문적인 훈련 용어에도 익숙해지고,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늘어나면서 잘 적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센터 키우려면 인내도 필요”

    하승진이 언제쯤이면 주전급으로 뛸 수 있겠냐는 질문에 그는 “센터를 키우는 데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한때 워싱턴팀에서 뛰었던 유럽 용병 뮤레산의 예를 들었다. 뮤레산(232cm)은 하승진(223cm)보다도 키가 더 큰 선수였지만, 3년을 기다린 뒤 4년째부터 주전으로 뛰기 시작했다고 한다(그러나 뮤레산의 경우 하승진과 달리 큰 키에 비해 몸동작이 느려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하승진도 앞으로 2~3년 착실히 경험을 쌓은 후에야 NBA에서 센터다운 센터로 뛸 수 있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내시 단장도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내시 단장은 “보통 NBA에서 뛰는 정상급 선수들의 경우 대학 4학년 때(23~24세)부터 절정의 실력을 보여주기 시작한다”며 하승진도 3~4년 후면 제 기량을 선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포틀랜드의 동료 선수들이나 현지에서 취재하는 기자들의 하승진에 대한 평가도 비슷했다. 최근 들어 포틀랜드팀에서 가장 잘나가는 선수 중 한 명인 프리즈빌라를 붙잡고 얘기를 붙여봤다. 그는 “농구에선 덩치가 정말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하승진은 좋은 신체조건을 갖췄고, 발도 빨라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하승진을 치켜세웠다. 하승진을 보는 현지 기자들의 시선에도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들은 하승진이 포틀랜드의 미래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승진의 경기 내용에 대해서도 “19세라는 나이를 감안할 때 그 정도면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이번엔 하승진 본인에게 “언제쯤 NBA 정상급 선수가 될 것으로 목표를 잡고 있냐”고 물어봤다. 그는 3년을 꼽았다. “일단 구단과 3년 계약이 돼 있으니까(4년째는 구단 옵션) 3년차부터 뭔가 본격적으로 보여줄 계획”이라는 것.

    하승진은 포틀랜드의 미래

    결론적으로 말해 하승진의 성공 가능성은 무척 높다. 단, 3~4년 이상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이런 점에서는 NBA에 들어간 것이 무엇보다도 다행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다릴 줄 알기 때문이다. 당장 전력에 보탬이 될 선수보다 3~5년 앞을 내다보고 선수를 뽑고 가르치는 곳이 바로 NBA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 팬들도 올해 하승진이 출전하는 게임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 그보다는 좀더 인내를 갖고 지켜보자.

    포틀랜드 지역은 미국에서도 매우 조용한 곳이다. 범죄율도 다른 도시들에 비해 훨씬 낮다. 운전을 하다 보면 양보도 잘해준다. 길에서 만나면 누구나 “하이!” 하고 웃어줄 정도로 착한 사람들만 모여 사는 곳으로만 보인다. 트레일블레이저스 농구팀은 포틀랜드에 있는 유일한 프로스포츠 팀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성공한 프로 스포츠 선수는 청소년들의 우상이자 역할 모델(role model)이다. 그런데 그렇게 청소년과 어린이들의 역할 모델이 되어야 할 포틀랜드 블레이저스 선수들이 최근 잇따라 마약 흡연과 범죄 등 각종 스캔들에 연루돼 점잖은 포틀랜드 팬들로부터 외면당해왔다. 오죽 말썽이 많았으면 사람들이 ‘트레일블레이저스(Trail Blazers, ‘서부 개척자’란 의미)’라는 팀 이름을 빗대 포틀랜드 ‘제일(Jail) 블레이저스’ 또는 ‘트러블(Trouble) 블레이저스’라고 비아냥대겠는가.

    최근에만 해도 주전 스타팅 멤버인 자크 랜돌프, 스타더마이어가 대마초 사건에 연루된 바 있고, 지난해에는 오랫동안 지역 팬들의 사랑을 받아오던 라시드 윌리스가 “NBA가 젊은 흑인 선수들을 착취하고 있다”고 맹비난해 구설에 오른 뒤 결국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됐다. 뿐만 아니라 본지 웰스는 감독에 항명해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됐고, 최근엔 우즈라는 선수가 집에서 사설 개싸움을 시키고 개를 내다버리는 등 문제를 일으켜 결국 마이애미 히트로 트레이드됐다. 또 지난달에는 다리우스 마일스가 훈련 도중 감독에게 대들어 2게임 출장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점잖고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지역 팬들에게 하승진의 예의바른 태도는 그야말로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서고 있다. 하승진은 만나는 사람들에게마다 인사를 잘하는 데다 훈련에는 제일 먼저 나와 가장 많은 땀을 흘릴 뿐 아니라, 훈련을 빼먹는 일이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포틀랜드팀의 모범생 중 모범생인 것이다.

    “하승진을 배워라”

    이미 구단에서도 그의 성실한 생활자세와 예절바른 태도에 매료됐다. 지역신문 ‘오레고니언(Oregonian)’은 하승진의 예의바름을 칭찬하며 ‘다른 선수들도 이런 점을 배워야 한다’고 썼다. 존 내시 단장은 하승진을 “다른 사람을 존경할 줄 아는 선수”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하승진은 이에 대해 “아마 다른 한국 선수가 NBA에 오더라도 똑같이 모범생 소리를 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훈련이나 경기에 임할 때 감독, 코치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은 기본이고, 정해진 훈련 시간에 맞춰 착실히 훈련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자신은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을 그대로 실천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간 많은 선수를 지켜본 필자가 보기에도 하승진은, 조금만 유명세를 탄다 싶으면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곧잘 다른 길로 빠지는 일부 비뚤어진 스타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승진의 NBA 성공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는 미덕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성실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프로 스포츠의 규모는 세계적이다. 선수의 연봉도 엄청나다. 가끔 유럽 축구에서 천문학적인 이적료나 연봉이 화제가 되곤 하지만 미국의 프로 스포츠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웬만큼 잘하는 선수다 싶으면 연봉 100억원대는 우습게 뛰어넘는다.

    연봉에 관한 한 NBA는 결코 다른 종목에 뒤지지 않는다. 일단 다른 빅 스포츠 못지않게 인기도 높고 장사도 잘되는 데 비해 선수 숫자가 적어 그만큼 선수 개개인이 받는 연봉은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 최초 美 NBA 리거 하승진

    하승진은 포틀랜드 구단과 3년 계약을 맺으면서 20억원의 연봉에 사인했다. NBA 연봉 수준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3~4년만 NBA에 적응하면 프리 에이전트(FA) 선수로서 ‘대박’ 찬스를 맞을 수도 있다.

    올시즌 NBA에서 최고 연봉을 받은 선수는 샤킬 오닐(마이애미 히트)인데, 그의 연봉은 무려 280억원에 이른다. 또 NBA 최고 연봉서열 30위까지가 모두 120억원대 이상을 받는다.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도 연봉이 100억원을 넘는 선수가 5명이나 된다. 샤리프 압둘라힘이 약 150억원으로 가장 많고, 스타더마이어(130억원), 닉 반 엑셀(120억원), 테오 라틀리프(110억원) 등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지난해 구단과 장기계약을 맺은 자크 랜돌프는 올 시즌 연봉이 약 18억원이지만 내년부터는 140억원으로 뛰어오른다.

    농구가 5명으로 하는 경기다 보니 포틀랜드에서도 주전 자리만 차지하면 연봉 100억원은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포틀랜드에는 연봉 60억원이 넘는 선수도 3명이나 된다. 데릭 앤더슨이 약 85억원, 루벤 패터슨이 60억원, 다리우스 마일스가 59억원이다. 이렇게 한국 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준스타급 선수들조차 연봉이 50억원대를 넘으니, NBA에서 성공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부를 쌓을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하승진도 메이저리거 야구선수 박찬호 못지않은 스포츠 재벌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연봉 ‘고작’ 5억원

    물론 하승진의 연봉은 아직은 미미하다. 하승진은 올해 포틀랜드 구단과 4년 계약을 했다. 3년은 보장된 계약이고 4년째는 구단이 선택권을 갖는다. 금액은 3년간 약 20억원이며 4년째엔 구단이 계약을 원하면 10억원을 받기로 했다. 즉 포틀랜드에서 2007~2008시즌까지 4년을 뛰게 되면 약 30억원을 손에 쥐게 되는 것이다.

    하승진은 NBA 1년차인 올해 ‘고작’ 5억원 정도를 받는다. 물론 이 금액은 팀내 다른 선수들에 비해 높은 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승진은 지난해 NBA에 갓 신고한 루키가 아닌가. 포틀랜드 루키 중에서도 드래프트 3순위로 뽑힌 하승진의 연봉은 사실상 NBA 최저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하승진은 이런 계약조건에 전혀 불만이 없다. 사실 그는 돈이 많고 적은 것보다 최소 3년간 계약이 보장됐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당장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3~4년간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준비해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하승진이 앞으로 4년간 NBA에 잘 적응해 정상급 선수로서의 가능성만 보여준다면 연봉 대박 찬스는 자연스레 찾아오게 돼 있다. 프리 에이전트(FA)가 되기 때문이다. ‘FA 대박’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예가 바로 가까운 곳에 있다.

    포틀랜드에서 뛰는 파워포워드인 자크 랜돌프의 올 시즌 연봉은 앞서 얘기한 대로 약 18억원이다. 하지만 내년부터 2011년까지 6개 시즌 동안 랜돌프는 총 850억원, 연평균 약 140억원을 받게 된다. 지난 시즌 NBA 기량 발전상을 받는 등 기량이 크게 향상되고 있는 그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구단측이 향후 6년간 장기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하승진에게도 이런 기회가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하승진은 벌써 나이키코리아와 2008년까지 5년간 50억원의 후원 계약을 맺었다.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를 통해 엄청난 부를 쌓았듯이, 하승진이 한국인 최초의 NBA 리거로 맹활약하게 된다면 각종 스폰서십과 광고만으로도 엄청난 부를 쌓을 수 있다. 본인만 잘하면 이래저래 돈방석에 앉는 것은 시간문제인 셈이다.

    그렇다면 NBA 선수들의 일상생활은 어떨까. 전용기를 타고 다니고 최고급 호텔에 묵는 것만이 NBA 생활의 전부는 아니다. 하승진은 NBA에 올라오기 전 4개월여 동안 마이너리그 격인 ABA리그에서 ‘거지 같은’ 생활을 해봤다. 그래서 NBA가 어떤 곳인지를 더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하승진은 당초 지난해 여름 드래프트에 뽑힌 직후 유럽으로 갈 예정이었다. 팀에서 하승진을 유럽 리그에 보내 1~2년 동안 경험을 쌓게 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드래프트를 준비하며 당한 다리 부상이 채 낫지 않아 유럽으로 가지 못하고, 대신 포틀랜드 구단에서 운영하는 하위 리그 팀인 포틀랜드 레인(Reign)팀으로 가게 됐다. 레인팀 시절의 생활에 대해 묻자 하승진은 얼굴을 찡그렸다.

    “재정 부족으로 구단 버스조차 없어 장거리 이동 때마다 미니밴에 끼어타기 일쑤였고, 장소를 못 구해 훈련을 건너뛸 때도 적지 않았다. 물론 선수들의 열의도 부족하고….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느슨한데 무엇보다 선수들의 자기관리능력이 부족해 보였다.”

    하위 리그 소속 선수들은 언제 NBA로 올라갈지 모르는 막막한 심정에 훈련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아예 빼먹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 심지어 코치가 많지 않아 훈련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NBA는 ‘천국’이다. 일단 돈이 많으니 궂은 일을 해주는 전담 스태프도 많고, 피지컬 전담코치가 있는가 하면 훈련담당 코치는 한 팀 선수보다도 많은 6명이나 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하승진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는 코치들이 저마다 하승진을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서로 경쟁적으로 훈련을 시키고 있는 점이다. 통역 배요한씨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어떤 선수를 키웠다’는 것이 높게 평가되기 때문에 코치들이 이런 경쟁에 나서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NBA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일상생활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루에 한두 차례 훈련이 있고, 원정 경기가 열릴 때마다 따라다니는 것이 전부이다. 하승진은 포틀랜드에 이사온 지 4개월이 다 돼가지만 아직 제대로 여행을 가본 곳이 없다. 훈련에 훈련이 이어지는, 그야말로 단조로운 생활의 연속이다.

    여기에다 신인들은 팀에서 더욱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루키들은 선배들보다 일찍 나와 훈련을 시작하고 훈련 강도도 훨씬 더 세다.

    마이너리그와 가장 뚜렷하게 대비되는 점은 원정 갈 때마다 구단 전용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항상 일등석만 이용한다는 것이다. 120석 규모의 전용기에 구단 임직원, 코칭스태프, 선수들, 미디어 관계자, 통역 등이 한꺼번에 타고 이동하지만 그래봐야 40명밖에 되지 않아 늘 자리가 텅텅 빈다고 한다. 항상 최고급 호텔에서 묵어 좋기는 하지만 간단한 룸서비스조차 너무 비싸 불만이다. 물 한 병에 12달러를 받는 데는 혀를 내둘렀다고도 한다.

    짧으면 짧다고 할 NBA 생활에서 하승진은 무엇을 배웠을까. 일단 정상급 NBA 선수들과 함께 연습하며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동료들이 모두 NBA 선수들인데 연습경기에서 붙어보면 해볼 만하냐”고 물었더니 하승진의 대답은 “예스(Yes)!”였다. “아직 부족한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지만 선수들과 직접 부딪혀 보니 충분히 해볼 만했다”고 한다.

    샤킬 오닐, 르브론 제임스 등 NBA 스타들과 함께 뛰는 것에 대해 남다른 느낌이 있느냐는 질문도 던져보았다. 그랬더니 하승진의 대답이 걸작이다.

    “사실 특별한 느낌은 없어요. 나도 이제 NBA 선수인데요 뭐. 같이 코트에 서면 그냥 상대편 선수 중의 한 명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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