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영화를 선택한 대중도 그렇다. 2004년 한국 영화 박스 오피스 1, 2, 3위를 차지한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말죽거리 잔혹사’는 모두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하류인생’ ‘효자동 이발사’ ‘역도산’ ‘바람의 파이터’ ‘알 포인트’ ‘슈퍼스타 감사용’ ‘아홉살 인생’ ‘DMZ 비무장지대’ ‘도마 안중근’도 비슷한 부류의 작품들이다.
지난해 개봉한 74편의 한국 영화 가운데 과거를 다룬 영화가 12편이라면 적지 않은 비율이라고 할 수 있다(반면 미래를 다룬 영화는 애니메이션 ‘망치’ 단 1편뿐이다). 또 ‘그때 그 사람들’은 현재 상영중이며, ‘초승달과 밤배’ ‘엄마 얼굴 예쁘네요’ ‘웰컴 투 동막골’ ‘천군’ ‘청연’ ‘무등산 타잔’ ‘박흥숙’ ‘혈의 누’ ‘형사’가 개봉을 준비하고 있거나 촬영중이어서 올해도 과거를 다룬 영화가 적지 않을 듯싶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반만년의 기나긴 한국사에서 유독 현대사를 그린 영화가 많다는 점이다. 왜 한국 영화에서 갑자기 현대사가 중요해진 것일까. 물론 지금까지 한국 영화가 현대사에 아예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박광수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장선우의 ‘꽃잎’, 이창동의 ‘박하사탕’ 같은 영화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들은 작가적인 관심의 결과물이었을 뿐 대중적인 신드롬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아마도 현대사를 배경으로 해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은 최초의 영화는 2001년 개봉한 곽경택의 ‘친구’일 것이다. 전국에서 8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 당시 한국 영화의 흥행기록을 경신한 ‘친구’의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 말부터 1993년까지다. 영화에는 연기를 내뿜는 소독차부터 옛날 게임기, 롤러 스케이트장, 그리고 조오련이라는 이름에 이르기까지 주인공들이 통과하는 시대의 향수가 짙게 묻어난다.
향수만 있을 뿐 역사가 없다
자막을 통해 정확한 연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영화는 그러나 역사의 기억을 돌아보지 않는다. 우리는 주인공들이 살던 시대가 박정희와 전두환과 노태우와 김영삼의 시대였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영화는 그 시대에 벌어진 어떤 역사적 사건도 언급하지 않은 채 다만 억압과 폭력으로 얼룩진 그 시대로부터 향수만을 불러온다. 그러나 향수는 역사가 아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말을 유행시킨 ‘쉬리’와 ‘쉬리’의 흥행기록을 경신한 ‘공동경비구역 JSA’는 흥행에 크게 성공했음에도 비슷한 영화가 재생산되는 유행을 만들지는 못했다.
반면 ‘친구’는 신기하게도 다양한 유형으로 확대 재생산됐다. ‘조폭영화’의 원형을 제시하면서 조폭영화 붐을 일으킨 것. 조폭영화는 다시 다양한 변주를 통해 재생산됐다. 그러나 조폭영화는 ‘친구’의 정서가 향수라는 사실을 간과했기에 흥행성공을 재생산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가자 이번에는 ‘친구’의 ‘시대’가 재생산되기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 속에 가까스로 흥행에 성공한 ‘해적, 디스코왕 되다’(이하 ‘해적’)를 비롯해 ‘몽정기’ ‘품행제로’가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10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종의 하이틴 영화인데, ‘친구’의 영향이 아니라면 굳이 1980년대를 시대 배경으로 설정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 ‘해적’과 ‘품행제로’는 ‘친구’ 주인공들의 20대 시절을 따로 떼어내 패러디하는 전략을 구사한 영화처럼 보인다. 또한 ‘친구’의 ‘향수’를 다시 불러와 재미의 장치로 버무린다.
이 영화들은 누가 더 기억력이 좋은지 내기라도 하듯 그 시대를 표상하는 것을 더 많이 전시하려고 애쓴다. 남루한 달동네와 꼬불꼬불한 골목길, 쌓여있는 연탄재와 연탄아궁이, 쪼그려 앉아 일을 보는 ‘푸세식’ 변소, 이삿짐을 싣고 가는 리어카, 연탄 위에서 김을 내뿜는 호빵, 유리병에 든 우유, 발동기 붙인 딸딸이 자전거, 부채표 활명수 병, 녹색 포니 택시, 털실로 뜬 벙어리장갑과 판탈롱 바지, 디스코장과 롤러스케이트장, 나이키 신발과 커다란 뿔테안경, 핀컬 파마와 웰라폼, 화생방 훈련과 교련 수업, 하록 선장과 캔디, 오후 5시 정각을 알리는 국기 강하식, 클래식 기타 교습소와 ‘빽판’, 디스코장과 정독도서관, 김승진의 ‘스잔’과 박혜성의 ‘경아’까지.
기억의 혼란
그러나 기억은 종종 순서가 뒤바뀌거나 영화를 혼란에 빠뜨린다. 향수에 집착하다 보니 때로는 영화의 무대가 1970년대처럼 보인다. 또 1980년대와 1970년대가 뒤섞이면서 1970년대의 향수를 자극한다. 시대적 표상을 자질구레하게 재현하면서 1980년대라는 역사적 시간은 향수를 부르는 장치가 되지만 정작 역사는 기억 속에 묻혀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