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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의 酒黨千里 ③

퇴락해가는 ‘한국의 술’ 막걸리

미국 밀가루, 일본 누룩으로 빚는 국적불명 혼혈주

  • 허시명 여행작가, 전통술품평가 soolstory@empal.com

퇴락해가는 ‘한국의 술’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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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한국을 대표하는 술이 뭐냐고 물을 때 첫 번째나 두 번째에 튀어나오는 술이 막걸리다. 일본에 오니 진로소주를 알아주더구나. 막걸리는 명성만 알고 있고. 그래 막걸리,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막걸리를 우리 술이라고 말하지. 그런데 그 막걸리가 일본식 누룩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내가 이곳에서 일본 사람들에게 한국의 전통 술이 막걸리라고 시원스레 말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 3대 누룩 제조장인 송학곡자를 끼고 있던 금천양조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곳에서 만든 막걸리도 일본 누룩 코오지로 빚는다.

금천양조장에서는 아침 일찍 술을 짜서 팩에 담아, 우유처럼 배달한다. 그 광경이 보고 싶어 아침 6시에 양조장을 찾아가려 했다. 그런데 양조장에서 “아침 6시는 너무 이르니 8시에 오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하는 수 없이 아침 시간을 배회하다가 시간에 맞춰 갔다. 그런데 이미 막걸리 배달은 나간 뒤더라고. 내가 갔을 때 양조장엔 술 빚는 사람 2명, 배달하는 사람 3명이 일하고 있었는데, 잘 나갈 때는 직원이 50명이 넘었다고 하더라.

‘다국적’ 막걸리

금천양조장 주인은 서흥빈(60)씨다. 아버지 서남철(1917~1993)씨의 뒤를 이어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때 송정리에서 잘 나가는 유지였으리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터. 그런데 지금 형편은 별로다. 흥빈씨는 심장이 좋지 않아 수년간 병원 신세를 진 탓인지, 건강이 안 좋아 보였다.



하지만 오래된 양조장이고, 술맛도 좋아서 주인에게 뭔가 희망 찬 소리를 듣기를 바랐다. 헌데 첫마디가 “막걸리? 우리 대에서 끝났다”는 거였다. 왜냐고 물었더니, 단속 때문이란다. 방충망 없으면 걸리고, 술 빚고 남은 재료 양이 정확하지 않아도 걸리고, 위생검사 나오면 걸리기 십상이란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검사하는데 그 등쌀에 술도가 해먹기 어렵다는 거다. 그래서 언제든지 문 닫을 각오로 공장을 돌린다고 한다.

이웃한 도시의 한 양조장은 조껍데기 술을 만들다가 색소를 넣어서 영업정지를 당하고, 또 다른 양조장은 사카린을 넣어서 3개월 영업정지를 당하고, 또 다른 양조장은 조만간 문을 닫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위법행위를 비호할 생각은 없지만,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는 생각이 들더라. 모두들 올 한 해를 넘길 수 있을지 걱정이라더군.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의 전통 술, 막걸리가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고 있어야 하니 말이다.

막걸리 값은 10년째 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750ml들이 20병이 들어가는 막걸리 한 짝에 1만6000원이란다. 쉽게 말해 생수보다 더 싼 게 막걸리인 셈이다. 그러니 800개가 넘는 국내 막걸리 양조장 중에 형편 좋다고 얘기하는 곳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을 수밖에. 정부는 정부대로 속수무책이고.

나는 양조장 주인의 우울한 얘기를 듣고만 있을 수가 없어 마당으로 나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제조장으로 들어갔다. 공장장과 직원 한 명이 한창 술밥을 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술밥은 미국에서 온 밀가루로 만들어진 것이고, 그 술밥으로 일본식 코오지를 만들고, 코오지에 다시 밀가루를 쪄 넣어 술을 만들더라. 미국 농산물에 일본식 기술과 한국의 노동력이 가세해서 만든, 우리도 모르는 새에 다국적화된 술이 바로 지금의 막걸리인 것이지.

물론 우리의 전통 막걸리는 밀가루 막걸리가 아니다. 밀은 누룩을 만들 때만 쓰고, 쌀로 막걸리를 만들었다. 1965년 무렵 먹고살기 어렵던 시절에 나라에서 쌀 막걸리를 금지했다. 그때 대체된 게 미국산 밀가루다. 하루아침에 재료가 변하니, 술을 망치는 양조장이 많아진 것이지. 그때 전국적으로 확대된 게, 찐 밀가루에 백국균(Aspergillus kawachii)을 뿌려 만든 일본식 누룩이다. 백국균을 사용하면 향과 맛은 거칠지만, 유산균 생성능력이 좋아 잡균 오염의 걱정을 덜면서 술을 빚을 수 있거든. 그 백국균으로 일본은 지금 소주를 만드는데, 우리는 막걸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 술 마시러 버스타고 온다네”

금천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만드는 공장장은 정종(66)씨다. 그 이름을 듣고 “공장장님은 천상 술도가에 있어야 할 분이군요”라고 말하면서 한참 웃었다. ‘정종(正宗)’은 한 시절, 우리 땅에서 일본 청주의 대명사로 불리던 이름이야. 일본인들이 ‘마사무네’라고 부르는데, 지금도 일본 술도가의 이름으로 많이 쓰이지.

정종씨는 스물두 살에 광주 학천주조장에서 일을 시작해 지금껏 양조장밥을 먹고 살아왔다더라. 광주의 합동양조장을 빼고서, 전라남도에서 가장 많은 봉급을 받고 일하는 공장장이라더군. 그만큼 솜씨가 좋아서 양조장을 돌아다니면서 술맛을 바로 잡아주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자부심도 강해.

양조장 마당에 눈이 내려 공장장이 거처하는 방에 들어가 얘기를 나누면서 막걸리 한잔을 마셨다. 막걸리는 좀 거친 듯하지만 목에 맺힌 것 없이 부드럽고, 혀를 간질이면서 목구멍을 유연하게 타고 넘어가더군. 내가 마셔본 여느 막걸리보다는 가볍고, 은근한 향에 맛이 구수했다. 공장장 왈, “그 술을 먹으려고 멀리서 버스 타고 술 받으러 오는 충성스런 고객도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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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 여행작가, 전통술품평가 soolstory@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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