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호

꿈의 PGA 마스터스 무대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라운딩記

깊은 숲, 곳곳에 도사린 벙커… ‘신이 만든 최악의 난코스’

  • 김맹녕 대한항공 상무

    입력2005-02-24 15: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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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최고의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 73년의 세월 동안 이곳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었던 사람은 내로라하는 미국의 최상류층 남성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미국 PGA 마스터스 대회가 열리는 이 클럽에서 라운딩을 해본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영예다.
    꿈의 PGA 마스터스 무대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라운딩記

    프로골퍼들이 가장 난코스로 꼽는 12번홀.

    골퍼라면누구라도 일생에 한번쯤은 미국 PGA투어 마스터스 대회의 무대인 오거스타 내셔널 GC(파 7290야드)’에서 플레이를 해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시에 자리잡은 이 골프클럽은 20세기 최고의 아마추어 골퍼이자 그랜드슬럼(4대 공식 경기의 4관왕)을 달성한 보비 존스가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뉴욕의 부유한 금융가이던 클리포드 로버츠와 함께 1932년 만든 곳이다. 두 사람은 겨울에도 날씨가 포근한 이 지역의 울창한 산림과 포도원을 매입,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골프코스 설계사이자 변호사인 앨리스타 매켄지 박사에게 의뢰해 혼과 정열을 쏟아부어 골프코스를 완성시켰다.

    보비 존스는 이후 1934년, 세계적인 유명 프로들을 초빙해서 ‘보비 존스 인터내셔널 골프 토너먼트’를 개최했는데, 그것이 바로 미국 마스터스 대회의 시작이다. 대회는 매년 4월 둘째 주에 열린다.

    이 클럽은 오직 이 대회를 위해 1년 중 5개월 이상을 휴장하면서 코스 관리에 만전을 기한다. 클럽 회원은 300명 이내. 미국 최상류층 남자만이 엄격한 절차를 거쳐 가입할 수 있다. 때문에 여성단체 등으로부터 남녀차별과 특권의식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클럽은 ‘최고의 전통과 명예를 지킨다’며 그 비난을 감수한다.

    비회원이 이곳에서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원과 동행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행운의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다. 회원이 비회원을 동반할 수 있는 횟수가 1년에 4회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클럽은 이처럼 배타적으로 운영된다.



    이 클럽에서 열리는 마스터스 대회의 출전자격도 무척 까다로워서 참가 자체가 선수들에겐 영광으로 받아들여진다. 우선 전년도 PGA 투어 상금랭킹이 40위 이내에 들어야 하고 세계 골프랭킹 50위까지만 출전할 수 있다. 나머지는 메이저 대회 우승자, 미국 3대 아마추어 대회 우승자, 브리티시 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자 또는 메이저 대회 상위 입상자(마스터스 16위, US오픈 8위, PGA 챔피언십·브리티시 오픈 4위 이내) 등 선별 기준도 엄격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역대 챔피언은 평생 출전이 가능하다. 한국의 최경주 선수가 올해 이 대회에 초청받아 3년 연속 출전하게 된 것은 대단한 영예가 아닐 수 없다.

    올해로 69회를 맞는 이 대회는 그래서 ‘선택받은 자들의 명인열전 또는 별들의 전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총상금 600만달러(약 68억원)에 우승 상금만 117만달러(13억원)로, 메이저 대회 가운데 상금액수가 가장 크다.

    긴장과 흥분의 첫 티샷

    필자가 오거스타 골프클럽을 찾은 것은 지난해 12월11일 토요일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애틀랜타까지 비행기로 14시간 반, 그곳에서 다시 오거스타시까지 자동차로 4시간을 더 달려 골프클럽에 도착했다. 필자는 그린 재킷 회원과 함께 경비초소를 지나 울창한 매그노리아 숲을 통과, 클럽하우스에 도착한 뒤 라커룸에서 골프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오거스타 클럽하우스는 존스와 로버츠 두 사람이 코스를 세울 땅을 처음으로 내려다봤던 바로 그 언덕 위에 서 있다.

    클럽하우스 내부는 아주 청결했고 비품들은 군대 내무반처럼 반듯하게 정리돼 있었다. 종업원은 매니저급 외에는 모두 흑인인데 아주 친절하고 공손했다.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연습볼을 치고 있는데 필자에게 배속된 키 큰 흑인 캐디가 다가와 “한국에서 온 골퍼를 모시게 되어 기쁘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12월 중순이었지만 날씨는 매우 화창했다. 약간 찬 기운이 감돌았지만 골프를 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였다. 필드의 잔디도 푸르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그 넓은 페어웨이에 라운딩을 하는 팀은 한두 팀에 불과했다.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칠 뿐 고요했다. 대회가 열리면 구름처럼 모려든 갤러리들의 환호와 탄성으로 가득한 곳이지만.

    필자 일행은 1번홀(티 올리브-365야드 파4홀) 티샷 지점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마스터스 티가 아닌 멤버 티에서 긴장과 흥분 속에 티샷을 힘차게 날렸다. 마치 마스터스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신바람이 났다. 하지만 첫 홀에서 두 번째 샷이 그린을 넘고 어프로치한 것이 또다시 그린을 오버해 트리플 보기를 범하고 말았다. 혹독한 환영인사를 받은 셈이었다.

    꿈의 PGA 마스터스 무대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라운딩記

    ① 클럽하우스에 전시된 창설자 보비 존스와 역대 챔피언 초상화.<br>② 역대 우승자 이름을 새겨놓은 클럽하우스 모양의 은제 트로피.<br>③ 지난해 우승자 필 미켈슨의 사진과 그린 재킷.

    전반 9개 홀은 비교적 평탄하고 페어웨이도 꽤 넓은 편이다. 하지만 그린의 언듀레이션(코스의 높고 낮은 기복 상태)을 파악하기 어렵고 공이 많이 굴러, 스코어의 성패는 퍼트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실감했다.

    10번홀 좌측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즐겨 머물렀다는 흰색 콘도가 보였다. 골프광이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오거스타 클럽을 29회나 방문했고 8년 동안 210차례나 라운딩을 즐겼다고 한다. 오거스타의 모든 멤버들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골프를 부흥시킨 공헌을 인정해 이 흰색 산장을 ‘아이젠하워 코티지(Eisenhower Cott- age)’라 부른다.

    공포의 ‘아멘 코너’

    후반 9개 홀에는 일명 ‘아멘 코너’인 11, 12, 13번홀이 포함돼 있다. 이 3개 홀은 ‘아무리 지혜를 짜내도 신의 도움 없이는 무사히 통과할 수 없다’는 난코스다. ‘아멘 코너’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붙인 사람은 미국의 유명한 골프 작가 허브위렌 윈드시아다.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지 않고는 3개 홀을 무사히 통과할 수 없다는 의미다.

    아멘 코너의 시작인 11번홀(파4)은 지난해 4월12일 최경주가 220야드의 거리를 5번 아이언으로 친 두 번째 샷이 깃발을 향해 곧장 날아가 5m를 구른 후 컵인, 환상적인 이글을 기록한 홀이다. 때문에 필자에게는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이 홀은 길고 하향 경사인 데다 그린이 고구마처럼 길쭉한데 특히 왼쪽에 연못이 있어 여간해선 온 그린이 어렵고, 게다가 그린도 착시현상이 있어 두 번의 퍼팅으로는 마무리하기 어려웠다.

    아멘 코너의 본 홀인 파3의 12번홀에 도착하니 저절로 온몸에 긴장감이 돌았다. 그린까지의 거리는 145야드밖에 되지 않았고, 주변 경치 또한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앞쪽에 작은 냇물이 흐르고 그린 앞에는 벙커 한 개, 뒤에는 벙커 두 개가 버티고 있다. 여기에 그린은 전체적으로 뒤가 높은 후방형이다.

    바람과 딱딱한 그린, 그리고 빠른 그린 스피드. 누가 봐도 최고의 난코스였다. 마스터스 대회 이래 가장 많은 스코어를 기록한 프로골퍼는 위스코프로 그는 무려 10오버, 즉 13타를 기록했다.

    필자는 운 좋게도 이 홀에서 7번 아이언으로 온 그린을 시킨 후 투 퍼팅으로 마무리해 파를 잡았다. 동반 캐디의 설명에 의하면 이 홀은 토너먼트 때 그린 스피드가 유난히 빨라 퍼팅한 공이 그린 밖이나 연못으로 빠지는 일이 다반사라고 했다.

    13번홀은 파5홀로, 좌측 도그레그 홀인데 그림처럼 매혹적인 코스다. 아멘 코너의 마지막 홀인 이 홀은 그린까지 상당히 먼 거리인데도 그린을 향해 곧바로 치도록 골퍼들을 유혹해 결국 낭패를 보게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1998년 마스터스 마지막 날 우승을 눈앞에 뒀던 프레드커플스(미국)는 욕심을 낸 나머지 러프에서 투 온을 시도하다가 개울에 빠트려 더블보기를 기록, 결국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17번 파4홀 티샷 그라운드에 서서 언덕 왼쪽을 바라보면 키 큰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게 보인다. 이 소나무에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골프광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티샷할 때마다 이 소나무로 공이 날아가 나무 밑에 떨어지거나 옆으로 튕겨나가자 참다 못해 클럽 이사회 때 소나무를 베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회장인 로버츠는 “클럽의 재산보호를 위해 회의를 종료한다”며 회의시작 1분 만에 종료를 선언해버렸다는 것. 그 이후 이 소나무는 아이젠하워의 애칭을 따 ‘아이크의 나무(Ike’s tree)’로 명명되어 지금도 골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비용은 회원만 지불할 수 있어

    마침내 18번 파4홀. 일행 중 한 사람이 필자에게 프로처럼 마스터스 티에서 샷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465야드의 오른쪽 도그레그 홀로 TV중계 때나 신문에도 자주 등장하는 난이도 높은 홀이다. 홀 언덕 왼쪽에는 흰색 벙커가, 오른쪽에는 소나무 숲이 있어 드라이버를 어떻게 치느냐가 관건이었다. 필자는 드라이버 샷을 왼쪽 벙커 방향으로 날렸다. 공은 그린에서 200야드 가량 못 미친 곳에 떨어졌다. 그곳에서 4번 우드로 두 번째 샷을 했다. 캐디에게 “타이거 우즈는 이 홀에서 두 번째 샷을 몇 번으로 치냐?”고 물어보자 캐디는 싱긋이 웃으면서 “피칭웨지”라고 했다. 타이거 우즈의 골프실력이 어느 정도 대단한지 새삼 실감했다.

    꿈의 PGA 마스터스 무대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라운딩記

    17번 티샷 그라운드 왼쪽에 버티고 선 소나무.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관련된 일화로 ‘아이크의 나무(Ike’s tree)’로 불린다.

    오거스타 클럽은 그린 스피드가 빠른데다, 도처에 벙커와 울창한 숲 같은 장애물이 숨어 있어 결코 쉽게 정복할 수 없는 곳이다. 특히 대회가 열리는 4월 중순에는 바람과 비가 잦아 프로골퍼들을 괴롭힌다. 그러니 단 한 번의 실수라도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보비 존스는 오거스타 코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생각만 깊이 한다면 버디를 기록하지 못할 홀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생각을 멈춰버리면 모든 홀을 더블 보기에 빠트릴 홀이다.”

    18홀을 돌면서 TV 생중계에서 본 3만5000명이나 되는 갤러리들의 함성과 탄복을 떠올렸다. 한 타 한 타에 환희와 좌절이 교차하는 세기의 대결에서 신이 점지한 사람만이 우승할 수 있다는 마스터스의 전설도 끊임없이 뇌리를 스쳤다. 경치에 매료되어 주위를 돌아보는 순간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우승의 주인공이 어디에선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12월 중순이라 그린 주변의 갖가지 아름다운 꽃, 특히 오거스타의 명물인 철쭉꽃을 못 본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필자의 스코어는 83타. 핸디캡이 3인 필자에게는 불만족스런 결과였다. 캐디에게 그린피와 캐디팁을 물어보자 캐디는 “규정상 대답할 수 없다”면서 “이곳에서의 모든 비용은 멤버만이 지불할 수 있다”고 말했다. 클럽하우스를 지나 클럽 정문을 나서니 12월의 석양이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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