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골퍼들이 가장 난코스로 꼽는 12번홀.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시에 자리잡은 이 골프클럽은 20세기 최고의 아마추어 골퍼이자 그랜드슬럼(4대 공식 경기의 4관왕)을 달성한 보비 존스가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뉴욕의 부유한 금융가이던 클리포드 로버츠와 함께 1932년 만든 곳이다. 두 사람은 겨울에도 날씨가 포근한 이 지역의 울창한 산림과 포도원을 매입,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골프코스 설계사이자 변호사인 앨리스타 매켄지 박사에게 의뢰해 혼과 정열을 쏟아부어 골프코스를 완성시켰다.
보비 존스는 이후 1934년, 세계적인 유명 프로들을 초빙해서 ‘보비 존스 인터내셔널 골프 토너먼트’를 개최했는데, 그것이 바로 미국 마스터스 대회의 시작이다. 대회는 매년 4월 둘째 주에 열린다.
이 클럽은 오직 이 대회를 위해 1년 중 5개월 이상을 휴장하면서 코스 관리에 만전을 기한다. 클럽 회원은 300명 이내. 미국 최상류층 남자만이 엄격한 절차를 거쳐 가입할 수 있다. 때문에 여성단체 등으로부터 남녀차별과 특권의식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클럽은 ‘최고의 전통과 명예를 지킨다’며 그 비난을 감수한다.
비회원이 이곳에서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원과 동행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행운의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다. 회원이 비회원을 동반할 수 있는 횟수가 1년에 4회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클럽은 이처럼 배타적으로 운영된다.
이 클럽에서 열리는 마스터스 대회의 출전자격도 무척 까다로워서 참가 자체가 선수들에겐 영광으로 받아들여진다. 우선 전년도 PGA 투어 상금랭킹이 40위 이내에 들어야 하고 세계 골프랭킹 50위까지만 출전할 수 있다. 나머지는 메이저 대회 우승자, 미국 3대 아마추어 대회 우승자, 브리티시 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자 또는 메이저 대회 상위 입상자(마스터스 16위, US오픈 8위, PGA 챔피언십·브리티시 오픈 4위 이내) 등 선별 기준도 엄격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역대 챔피언은 평생 출전이 가능하다. 한국의 최경주 선수가 올해 이 대회에 초청받아 3년 연속 출전하게 된 것은 대단한 영예가 아닐 수 없다.
올해로 69회를 맞는 이 대회는 그래서 ‘선택받은 자들의 명인열전 또는 별들의 전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총상금 600만달러(약 68억원)에 우승 상금만 117만달러(13억원)로, 메이저 대회 가운데 상금액수가 가장 크다.
긴장과 흥분의 첫 티샷
필자가 오거스타 골프클럽을 찾은 것은 지난해 12월11일 토요일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애틀랜타까지 비행기로 14시간 반, 그곳에서 다시 오거스타시까지 자동차로 4시간을 더 달려 골프클럽에 도착했다. 필자는 그린 재킷 회원과 함께 경비초소를 지나 울창한 매그노리아 숲을 통과, 클럽하우스에 도착한 뒤 라커룸에서 골프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오거스타 클럽하우스는 존스와 로버츠 두 사람이 코스를 세울 땅을 처음으로 내려다봤던 바로 그 언덕 위에 서 있다.
클럽하우스 내부는 아주 청결했고 비품들은 군대 내무반처럼 반듯하게 정리돼 있었다. 종업원은 매니저급 외에는 모두 흑인인데 아주 친절하고 공손했다.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연습볼을 치고 있는데 필자에게 배속된 키 큰 흑인 캐디가 다가와 “한국에서 온 골퍼를 모시게 되어 기쁘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12월 중순이었지만 날씨는 매우 화창했다. 약간 찬 기운이 감돌았지만 골프를 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였다. 필드의 잔디도 푸르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그 넓은 페어웨이에 라운딩을 하는 팀은 한두 팀에 불과했다.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칠 뿐 고요했다. 대회가 열리면 구름처럼 모려든 갤러리들의 환호와 탄성으로 가득한 곳이지만.
필자 일행은 1번홀(티 올리브-365야드 파4홀) 티샷 지점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마스터스 티가 아닌 멤버 티에서 긴장과 흥분 속에 티샷을 힘차게 날렸다. 마치 마스터스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신바람이 났다. 하지만 첫 홀에서 두 번째 샷이 그린을 넘고 어프로치한 것이 또다시 그린을 오버해 트리플 보기를 범하고 말았다. 혹독한 환영인사를 받은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