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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취재

북한 어린이 돕기 자선 콘서트 연 가수 박강성

화산처럼 노래했고, 강물처럼 위로했다

  • 윤필립 在호주 시인 philipsyd@naver.com

북한 어린이 돕기 자선 콘서트 연 가수 박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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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요한 호주 동포사회에 한국발 ‘감동 폭풍’이 몰아쳤다. 교민들의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신 이는 ‘국민가수’ 조용필도, ‘문화대통령’ 서태지도 아니다. 오랜 무명시절을 거쳐 생의 아픔과 분노, 그리움을 화산처럼 노래하는‘라이브 황제’ 박강성이 그 주인공이다. 호주 교포들의 친목모임 ‘콰도쉬12’가 기획한 ‘북한 어린이 돕기 박강성 시드니 콘서트’는 최다 청중동원, 최다 성금모금 기록을 갱신하면서 뜨거운 ‘사랑 바이러스’를 전파했다.
북한 어린이 돕기 자선 콘서트 연 가수 박강성
1월22일 시드니 서북부에 위치한 카슬힐 언덕의 노을이 붉게 타고 있었다. 어느 호주 시인이 ‘빠져죽어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노을’이라는 헌사를 바친 바로 그 노을이었다.

나무들 사이로 감빛 노을이 타오르는 언덕길을 거닐며 ‘북한 어린이 돕기 박강성 시드니 콘서트’를 기다렸다. 공연장은 다운타운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힐스 센터(Hills Center). 카슬힐은 보큼힐, 세븐힐 등 힐스 타운(Hills Town)의 중심으로, 시드니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노을과 그 노을만큼이나 아름답고 고급스런 공연장 힐스 센터가 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카슬힐은 전통을 중시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아름다운 동네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보수적인 기질이 강한 호주 동포사회에서 ‘박강성 시드니 콘서트’는 전혀 예상치 못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예상외의 매진사례

감빛 노을에 취해, 시드니의 한가로운 저녁나절 기운에 취해 숲길을 천천히 걸어가 공연장 입구에 선 필자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풍경과 마주쳤다. 힐스 센터 앞에 깜짝 놀랄 만큼 많은 사람이 줄을 지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어르신네부터 철부지 어린아이까지 과연 저 사람들이 다 입장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길고 긴 행렬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총 좌석 수 1760석인 힐스 센터는 진작부터 ‘입석금지’를 선언하고, 안전사고에 대비해 긴장상태에 들어갔다.



주최측에 따르면, 자선공연이라 혹시 입장권을 구입하고도 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티켓을 정원보다 조금 더 풀었다는 것.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입장하지 못해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속출했다.

시드니 동포사회에선 흔치 않은 광경이라 필자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입장을 늦추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남들의 상황을 살필 처지가 아니었다. 필자는 공연 취재차 왔음을 설명하고 신분확인을 거친 후에야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극장 안은 4층까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제1부의 막이 올랐고, 호주 동포 그룹인 ‘메일 팀’ ‘J-디아즈’ ‘진이, 선이’ 등이 랩과 고스펠 곡들을 선보였다. 이어서 주최측을 대표해 진용씨가 ‘북한 어린이 돕기 박강성 시드니 콘서트 취지문’을 낭독했다.

“최근 북한은 핵개발 문제로 주변국들과 대립하고 있습니다. 문호는 닫혀 있고, 국제사회와의 인적, 물적 교류 또한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자유와 문화생활은 고사하고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습니다. 언론매체를 통해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비영리단체인 콰도쉬12(Qadosh12)는 이번에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한 ‘박강성 시드니 콘서트’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게 되었습니다. 비록 작지만 나눔의 첫발을 내디딘 것입니다.”

마침내 메인 이벤트인 제2부의 막이 올랐다. 박강성은 첫 곡으로 ‘새벽’을 불렀는데 어찌나 열정적인지 객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라이브 황제’ 박강성의 멋진 가창력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환호와 갈채 속에 이어진 그의 히트곡 ‘장난감 병정’을 들으면서, 필자의 그날 현장취재는 사실상 끝이 났다. 마치 전류에 감전되기라도 한 듯 감동이 밀려와 객석의 반응을 살피고 무대상황을 체크하는 일 등이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다.

그의 호소력 짙은 창법 때문만은 아니었다. 필자는 18년 동안 호주에 살면서 세계적인 가수들과 그룹의 라이브 공연을 섭렵했기에 어떤 상황에서 감동적인 무대가 연출되는지 잘 안다.

음악이 연주되는 순간과 현장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기에 연주 녹음을 무척 싫어했던 오케스트라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경우를 굳이 들지 않아도, 음악은 ‘지금’과 ‘여기’를 직조하는 ‘순간의 예술’이다. 그런 관점에서 박강성은 2005년 1월22일의 시간성과 시드니의 공간성을 절묘하게 아우르고 있었다. 악보에 그려진 대로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보다는 자신의 신산(辛酸)했던 젊은 날들을 절규하는 듯한 창법과 절절한 몸짓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4층까지 객석을 꽉 채운 관객들. 그들이 누구이던가. 낯설고 물 선 외국으로 떠나와 제2의 생을 뿌리내리느라 제대로 된 공연 한 번 감상할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들 아니던가.

박강성은 메마를 대로 메마른 호주 동포들의 강퍅한 가슴을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열정으로 녹여냈다. 강물이 흘러가는 듯한 정감 어린 노래로 그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셨다. 그의 공연은 마치 ‘감동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는 종교집회 같았다. 객석의 남녀노소는 숨을 죽이다 소리지르고,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가열 찬’ 박수를 치다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곤 했다. 그 순간의 박강성은 컬트집단의 교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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