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호

나쁜 여자로 살아가는 법 ‘비치 : 음탕한 계집’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입력2005-02-24 17: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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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여자로 살아가는 법 ‘비치 : 음탕한 계집’

    ‘비치 : 음탕한 계집’ 엘리자베스 워첼 지음/ 양지영, 손재석 옮김/ 황금가지

    ‘비치(bitch)’는 고분고분하지 않고 독립적인 여성에게 남성들이 퍼붓는 욕이다. 우리말로는 ‘암캐’ ‘헤픈 계집’ ‘음탕한 년’쯤 될 것이다. 비슷한 말로 뱀프, 팜 파탈도 있다. 마돈나, 조디 포스터, 샤론 스톤, 섀넌 도허티 등 도발적이고 섹시한 이미지의 여성 스타에게 남자들이 침을 뱉듯 던지는 욕이다. 그러면서도 남자들은 그 여자들에게 열광한다. 요부들은 남성의 지배 욕구를 확실히 충족시켜주고 환상으로나마 “찢고 삽입하는 짜릿한 경험”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저자 엘리자베스 워첼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을 시정하려는 계몽주의자가 아니다. 단지 이 책은 ‘나쁜 년’, 즉 ‘비치’로 산다는 것의 가치를 발견한 씩씩한 ‘비치’ 옹호자의 진솔한 고백서다. 저자 워첼은 하버드대를 나와 ‘뉴요커’와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편집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바 있는 똑똑한 여성이지만, 심한 우울증 때문에 약물중독에 빠지기도 했다.

    이 책은 신화와 갖가지 서사물, 수없이 많은 미국 영화와 드라마들을 뒤져 ‘악녀’의 발흥과 발생론적 배경을 더듬고, 남성 중심사회의 문화와 역사가 어떻게 그들을 몹쓸 ‘악녀’와 ‘요부’로 조작해냈는가를 밝힌다. 또 여성에 대한 번뜩이는 저자의 통찰력이 책 읽는 흥미를 북돋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그렇다. “여성들이 성적 대상물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것만큼이나 이를 상쇄하는 힘, 즉 여성들의 공모 속에서 여성을 오로지 성적 대상으로만 만들어버리려는 힘이 존재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산다”

    세상의 모든 서사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캐릭터는 ‘사악한 여성’, 즉 ‘나쁜 년’이다. 현대의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나쁜 년’이 나오지 않으면 드라마가 안 되기라도 하듯 작가들은 ‘나쁜 년’ 캐릭터 창조에 골몰한다. 그녀들은 육체적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며 그래서 라이벌을 쓰러뜨리기 위해 이미 열 살 전후부터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등의 교활한 테크닉을 개발한다. 어른이 되어서는 ‘가십과 비방’으로 경쟁자들을 거꾸러뜨리는데, 이 간접적인 공격은 희생자를 감정적으로 황폐화한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그녀들은 늘 “공범이며 간교하고, 유혹적이며 언젠가는 배신”을 해 남자들을 곤경에 빠뜨리거나 파멸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그녀들에게 부당하게 덧씌워진 남근 우월주의적 편견과 고정관념을 벗겨내면 그녀들은 그냥 “다른 사람의 욕구와 필요와 욕망을 공유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코드니 러브의 “광포한 분노”, 제니스 조플린의 “끔찍한 고통”, 마릴린 먼로의 “숭고한 연약함”, 앤 섹스턴의 “현란한 광기”, 샤론 스톤의 “차가운 매력”이 혁명적으로 도드라지는 것은 남자들은 늘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지만 여성들은 대부분 매사를 조용히 해결하는 선택을 해왔기 때문이다. 광기와 창조적인 천재, 영웅적 행동은 결코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메리 월스턴크래프트, 시몬 드 보부아르, 버지니아 울프, 글로리아 스타이넘, 수전 팰루디 등과 같은 선도적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적, 남성중심적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한 “올바른 행실” 속에 숨은 음모를 폭로하고, “여성의 꺾이지 않는 강한 의지”를 예찬했다. 그래서 여성들은 제 본능과 충동을 억제하고 “연애와 구애의 모든 과정에서 자신을 통제”해야 한다는 불필요한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워첼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다시 말해 여성 스스로 남자들이 여성을 비하하며 내뱉는 ‘비치’가 되라고 선동하는 것. 회사에서 생리 휴가를 꼬박꼬박 챙기는 여자를 마초들은 끔찍한 전염병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비치 되기는 남성들이 오랫동안 끔찍한 것으로 규정해온 여성의 욕망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해방의 환각이자, 방탕한 쾌락에 대한 환영”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워첼은 비치의 철학을 온몸으로 전파하기 위해 “이제 나는 울부짖고 소리지르며 시동을 걸어 질주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삼손을 해방시킨 데릴라

    성경의 삼손과 데릴라 이야기에 등장하는 데릴라는 일찍이 비치의 한 ‘원형’이었다. 삼손을 유혹해 그의 괴력의 원천인 머리카락을 잘라버린 데릴라는 “화려하고 퇴폐적이며 불온하고 문란한” 여자다. 삼손은 터미네이터이자 테러리스트이고 행동하는 인간형이자 시나이반도의 ‘체 게베라’였다. 달리 보면 삼손은 자신의 “남근과 변덕스러운 힘자랑의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삼손을 유혹한 데릴라는 매춘부이거나 블레셋 방백들이 데리고 놀던 고급 창녀였을 것이다. 하지만 데릴라는 누구의 아내나 누구의 딸이 아니라 그냥 데릴라, 결혼 관계나 가족 관계가 전혀 언급되지 않은 독립적인 여성이다. 삼손과 데릴라의 이야기는 “‘그들의 규칙’을 따르기에는 너무나 자유분방한 영혼”을 지닌 한 여자가 “일생 동안 육체적 혼돈 속에 지냈던” 한 남자를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켜 진정한 감성과 정신적 성숙으로 이끈 윤리적인 이야기로 읽혀야 한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여성들은 사회화 과정에서 ‘자기’를 잃어버린다. 사춘기의 성적 징후들이 나타나는 시기에 “자기 자신, 혹은 자기의 정신을 육체와 분리함으로써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알지 못하게 만들며, 내면에서 나오는 음성을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서 분리시킴으로써 남들로 하여금 자신이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 아울러 자신을 “이상적인 여성, 이상적인 사람 같은 특권적인 이미지들”에 붙들어매둠으로써 진정한 자아는 지하로 숨어버리고 내면적인 요구와 외부적인 관계 사이에 모종의 타협을 하면서 사회적 페르소나를 갖는다. 그렇게 되면 타고난 원초적 힘들은 무의식 저 밑바닥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얌전한 자아, 즉 “죽어가는 쾌활함, 잃어버린 활기 그리고 투쟁하는 영혼의 소멸”뿐이다. 그러나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진정한 자기의 느낌과 경험에 충실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 이 세상 비치들은 박멸해야 할 마녀가 아니라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며 사는 여성에 대한 또 다른 호칭이다.

    독신 여성을 주장하는 이유

    일부일처제를 근간으로 삼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독신 여성들은 “통제 불가능한 변수요, 호르몬이요, 떠돌아다니는 페로몬”으로 의심받는다. 그녀들은 세상의 질서와 균형을 깨뜨리고 가정을 해체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 인자다. 물론 그것은 덜 떨어진 남자들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워첼도 “남자 없는 인생, 아이 없는 인생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느님이 외로운 아담에게 이브라는 동반자를 만들어 주었으며, 그리하여 “생식을 공통의 경험이자 상호 배제의 경험”이 되게 만들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아울러 여자는 남자와 달리 “나이를 먹을수록 의미 없는 존재”가 되어 동반자, 배우자를 찾을 가능성이 점점 더 줄어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워첼은 독신 여성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워첼은 이렇게 쓴다.

    “남자들은 도망가려는 충동에 따르지만 여자들은 그 속으로 뛰어들어가려는 충동의 노예가 된다. 남자들은 계속해서 성실한 관계를 피하라는 충동을 받고, 여자들은 성실한 관계를 절망적으로 찾으라고 배우며 자라는 한 두 성은 서로 어색할 뿐이며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남자들이 육체적이고 성적인 유혹에 더 충동을 받는다는 점이나 그들을 지옥으로 이끄는 여자들에게 끌려가는 바보라는 점은 여기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인 앤 섹스턴은 ‘오 혀들이여’에서 ‘그녀가 위험한 언덕이기 때문에 등반가들은 길을 잃으리라’고 경고했는데, 섹스턴은 남자에 대한 환상과 공포를 동시에 갖고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여자들에게 유혹이란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것, 번지 점프를 하는 것, 또는 좀더 예측 가능한 모험인 고속도로에서 시속 120km 이상으로 차를 모는 것과 같다. 그 유혹은 순간마다 잠재하는 위험이며, 그 순간은 출산이나 빵 굽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순간이다. 하지만 곧 사라져버린다. 고통을 감당해봤자 아기도 없고 따뜻한 빵 한 조각도 없다. 내가 가끔 어떤 남자에게 매달리고 싶어하는 것 같은 일편단심이 남자들에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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