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여성들은 사회화 과정에서 ‘자기’를 잃어버린다. 사춘기의 성적 징후들이 나타나는 시기에 “자기 자신, 혹은 자기의 정신을 육체와 분리함으로써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알지 못하게 만들며, 내면에서 나오는 음성을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서 분리시킴으로써 남들로 하여금 자신이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 아울러 자신을 “이상적인 여성, 이상적인 사람 같은 특권적인 이미지들”에 붙들어매둠으로써 진정한 자아는 지하로 숨어버리고 내면적인 요구와 외부적인 관계 사이에 모종의 타협을 하면서 사회적 페르소나를 갖는다. 그렇게 되면 타고난 원초적 힘들은 무의식 저 밑바닥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얌전한 자아, 즉 “죽어가는 쾌활함, 잃어버린 활기 그리고 투쟁하는 영혼의 소멸”뿐이다. 그러나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진정한 자기의 느낌과 경험에 충실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 이 세상 비치들은 박멸해야 할 마녀가 아니라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며 사는 여성에 대한 또 다른 호칭이다.
독신 여성을 주장하는 이유
일부일처제를 근간으로 삼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독신 여성들은 “통제 불가능한 변수요, 호르몬이요, 떠돌아다니는 페로몬”으로 의심받는다. 그녀들은 세상의 질서와 균형을 깨뜨리고 가정을 해체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 인자다. 물론 그것은 덜 떨어진 남자들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워첼도 “남자 없는 인생, 아이 없는 인생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느님이 외로운 아담에게 이브라는 동반자를 만들어 주었으며, 그리하여 “생식을 공통의 경험이자 상호 배제의 경험”이 되게 만들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아울러 여자는 남자와 달리 “나이를 먹을수록 의미 없는 존재”가 되어 동반자, 배우자를 찾을 가능성이 점점 더 줄어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워첼은 독신 여성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워첼은 이렇게 쓴다.
“남자들은 도망가려는 충동에 따르지만 여자들은 그 속으로 뛰어들어가려는 충동의 노예가 된다. 남자들은 계속해서 성실한 관계를 피하라는 충동을 받고, 여자들은 성실한 관계를 절망적으로 찾으라고 배우며 자라는 한 두 성은 서로 어색할 뿐이며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남자들이 육체적이고 성적인 유혹에 더 충동을 받는다는 점이나 그들을 지옥으로 이끄는 여자들에게 끌려가는 바보라는 점은 여기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인 앤 섹스턴은 ‘오 혀들이여’에서 ‘그녀가 위험한 언덕이기 때문에 등반가들은 길을 잃으리라’고 경고했는데, 섹스턴은 남자에 대한 환상과 공포를 동시에 갖고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여자들에게 유혹이란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것, 번지 점프를 하는 것, 또는 좀더 예측 가능한 모험인 고속도로에서 시속 120km 이상으로 차를 모는 것과 같다. 그 유혹은 순간마다 잠재하는 위험이며, 그 순간은 출산이나 빵 굽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순간이다. 하지만 곧 사라져버린다. 고통을 감당해봤자 아기도 없고 따뜻한 빵 한 조각도 없다. 내가 가끔 어떤 남자에게 매달리고 싶어하는 것 같은 일편단심이 남자들에게는 없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