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호

‘인물과 사상’ 종간호에 부쳐

  • 김현미 동아일보 미디어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입력2005-02-24 17: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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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과 사상’ 종간호에 부쳐

    8년의 세월을 뒤로한 채 지난 1월 종간한 ‘인물과 사상’.

    “지난 1997년 1월 제1권을 선보이며 출범한 저널룩 ‘인물과 사상’이 2005년 1월 제33권을 마지막으로 종간하게 됐습니다. ‘실명 비판’이란 원칙을 견지하며 우리 사회의 ‘성역과 금기’를 깨는 데 일조하고자 노력해온 지난 8년여의 세월 동안, 독자 여러분께서 보여주신 많은 관심과 사랑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인물과 사상’ 종간사를 읽으며 코끝이 알싸해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1997년 1월20일 창간호에서 강준만 교수는 ‘정권교체가 세상을 바꾼다!-김대중 집권이 그렇게 두려운가’라는 글로 ‘실명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양비론이 곧 언론의 중립인 것처럼 여겨지는 저널리즘 풍토에 식상한 사람들은 강 교수의 화끈한 ‘커밍아웃’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를 분열시키는 위험한 싸움의 시작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중립과 양비론의 모호한 경계만큼이나 실명비판과 인신공격의 구분도 자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강 교수의 공개적인 ‘김대중 지지 선언’과 도발적인 ‘서울대 망국론’이 실린 창간호는 대성공을 거뒀다(5만부가 팔린, ‘인물과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그 후 강 교수는 줄기차게 ‘대한민국 싸움닭’을 자처했다. 2권에서는 ‘왜 박정희 유령이 떠도는가-이인화의 ‘인간의 길’은 파시스트의 길’ ‘월간조선 조갑제를 해부한다-사실 물신주의를 숭배하는 광신도?’로 소설가 이인화와 ‘월간조선’ 편집장 조갑제를 실명 비판의 도마에 올렸고, 3권에서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이문열-시대와의 간통을 저지른 문화권력’에 도전했다.

    이렇게 해서 ‘인물과 사상’의 가시권에 들어온 인물이 총 168명이다(정확한 명단을 알고 싶다면 33호 마지막 쪽에 ‘인물과 사상’에서 다룬 인물 리스트를 참조하라).

    실명비판인가, 인신공격인가



    결론적으로 ‘인물과 사상’식 논쟁과 토론문화는 씨는 뿌렸을지언정 개화하지 못했다. 5만부로 기세 좋게 출발했지만, 종간호를 낼 무렵에는 초판 3000부도 소화하지 못해 출판사의 경영을 압박하는 상황이었다.

    출판사 개마고원 장의덕 사장은 “강 교수의 글은 ‘내가 옳다’는 게 아니라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니 한번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었는데, 제대로 된 반론은 거의 없고 인신공격으로만 받아들여진 것이 아쉽다”고 했다. 또 강 교수의 ‘조선일보 제몫 찾아주기’나 ‘서울대 비판’이 ‘안티 조선’ ‘서울대 폐지론’과는 차이가 있음에도 독자들이 이를 구분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강 교수의 문제제기는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애초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확산됐고, 나중에는 지지자들로부터도 비판받는 처지가 됐다. 판매부진으로 인한 경영난이 ‘인물과 사상’ 종간의 표면적인 이유지만, 그보다는 벽에 대고 외치는 것처럼 외부의 반응이 없고 그나마 우군이라 생각했던 사람들로부터 반격을 당하면서 강 교수가 ‘전의’를 상실했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강 교수의 심정은 종간호 머리말에 잘 나타나 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게 이른바 ‘개혁’을 지지하는 사람들 절대다수의 생각과 충돌할 때엔, 나의 ‘퇴출’만이 유일한 해법일 것이다. 그 경우의 싸움은 결코 가치 있는 싸움이 아닐 것이다. 나는, 내 역할은, 단지 거기까지였을 뿐이라고 보는 게 옳다는 쪽으로 내 생각을 정리했다.”

    ‘인물과 사상’이 걸어온 길이 진정 성역과 금기의 파괴였는지 아니면 공연한 평지풍파(平地風波)였는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다만 우리 사회의 발언대가 또 하나 사라지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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