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호

결과보다 의도를 중시하며 바라본 중국현대사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 임상범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 lim1919@sungshin.ac.kr

    입력2005-02-24 1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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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보다 의도를 중시하며 바라본 중국현대사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전2권)<br>모리스 마이스너 지음/김수영 옮김/ 이산/각권 416쪽/각권 1만9000원

    2005년전세계의 ‘돈’이 중국으로 몰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공산혁명에 성공한 사회주의 국가라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이미지는 흐릿해져만 간다. 21세기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다. 따라서 중국 자본주의의 기원과 특징, 그리고 이에 따른 사회적 결과의 해명은 오늘날 중국을 알기 위한 중요한 과제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의 목표다.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의 저자 모리스 마이스너는 ‘인간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며, 혁명의 성공을 위해서는 객관적 역량뿐 아니라 주관적인 역량도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중국 현대사를 쓰면서, 결과 이상으로 의도를 중요시하는 역사적 평가를 내린다.

    이 책은 다양한 중국학의 성과를 읽기 쉽게 정리했다. 예컨대 중화인민공화국 초기 10여년에 대한 그의 설명은 기존의 견해와 큰 차이가 없지만 명쾌하다.

    혁명을 통해 정권을 잡은 중국공산당은 군사력과 경찰력을 이용해 국가 질서를 급속히 확립했다. 토지개혁을 통해 사회혁명을 완수했고 농업 부문의 잉여를 산업화에 투자했으며, 도시에서는 관료에 의지한 ‘국가 자본주의’를 실시했다. 그러나 공업화로 도농(都農)간 격차가 더욱 심해졌고 공산당원은 대중과 유리된 관료로 변해갔다.

    그 과정에서 마오는 죽어가는 사회주의의 목표와 혁명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대다수 농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급진적인 집단화를 추진했다. 이에 중국공산당은 공업의 근대적 발전에서 사회주의의 미래를 찾는 도시화된 당 지도자들과, 자신을 농민 대중과 동일시하면서 농촌의 사회주의적 개조에 더 큰 기대를 거는 ‘마오주의자’들로 분열됐다.



    마오에 대한 새로운 시각

    저자의 장점은 사실 설명과 원인 분석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감각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덩샤오핑 시대가 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대약진운동은 마오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경제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엄청난 경제적 재앙을 불러왔으며, 문화대혁명은 마오의 불타는 권력욕과 정치적 암투가 야기한 사회와 인간 파괴의 비극이었다는 것이다. 즉 근대적 산업화를 거스르는 시기였던 마오쩌둥의 시대는 극복과 거부의 대상일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런 생각은 ‘패왕별희’나 ‘인생’ 같은 영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러나 저자는 이와 대조적으로 마오의 날카로운 현실감각과 합리성에 눈길을 돌린다. 마오는 국내 자본이 극도로 빈약한 상황에서 소련의 원조마저 끊기자, 인간의 의식과 의지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혁명적 변혁을 추구하는 대약진운동을 선택했다. 이러한 노동력 위주의 경제 정책은 중공업에 투자하는 자본을 줄이지 않고 농촌과 경공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 위해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현실적 방안이었다.

    그런 대약진운동이 1959년에 발생한 경제위기와 대기근으로 중단된 후, 류사오치가 일선에서 후퇴한 마오를 대신해 경제를 회복시키기는 했지만 동시에 당과 국가의 관료화를 가져왔다. 이에 마오는 관료화된 당 기구가 사회주의의 성취를 방해하는 보수적인 장애물이 됐다고 확신하고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다시 혁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도 문화대혁명이 폭력과 보복의 끝없는 악순환을 가져왔다는 비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문화대혁명의 의도와 그것을 왜곡시킨 상황을 분리하는 것, 그리고 그토록 비이성적인 운동이 어떻게 그 많은 중국인을 움직일 수 있었는가에 있다.

    이에 대한 그의 분석은 남다르다. 마오는 당 관료들이 혁명동지였기 때문에 그들을 개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비폭력적인 개혁운동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점점 더 커가는 사회적 불평등, 사회주의 비전의 점차적인 소멸, 새로운 관료 엘리트의 공고화, 특히 관료의 특권에 대한 대중의 불만 팽배 등으로 인해 엄청난 폭력이 발생했다고 본 것이다.

    관료가 지배하는 중국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마오와 중국혁명으로 인해 야기된 폭력에 대한 평가다. 저자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전에 경험한 우파의 반혁명 테러로 인한 고통이 토지개혁 시기의 혁명적 테러를 야기했다고 본다. 또 대약진운동으로 인해 수천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했지만 이는 마오가 의도하지 않은 것일 뿐 아니라 예측하지 못했던 정치적 행위기에 히틀러나 스탈린의 계획적이고 고의적인 대량 학살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이러한 저자의 평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한 사람의 행동을 평가할 때는 그의 의도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역사가는 드러난 행동으로 말을 판단해야 한다. 즉 선의라는 이유로 책임을 면제해줘서는 안 된다. 역사가에게는 면책 특권이 없다.

    물론 마오의 업적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정확하다. 마오는 중화제국을 근대적 국민국가로 만들었으며, 국민에게 정체성과 사회적 목적의식을 주입했다. 중국의 공업 생산은 1952년부터 1977년까지 연평균 11.3%나 증가했고, 농업국에서 비교적 공업화된 국가로 성장했다. 덩샤오핑 시대의 발전은 마오의 유산 덕분에 이룩될 수 있었다는 저자의 주장은 아직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꽤나 흥미롭다. 마오는 경제적 근대화를 이룩한 지도자였으나, 동시에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관료정치의 지배를 받는 중국을 남겨놓았다.

    덩샤오핑에 대한 분석도 명쾌하다. 어릴 때부터 공산주의자였던 덩샤오핑은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고 싶었다. 동시에 그의 마음속에는 ‘부강한 중국’이라는 내셔널리즘적인 비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 방법이 근대화를 신속히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하고, 무역활동과 외국인 투자유치 등을 통해 중국 자본주의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덩샤오핑 식의 근대화는 환경파괴, 부정부패, 대량 실업의 위협, 범죄의 증가, 사회경제적 격차의 증가라는 심각한 사회적 모순과 도덕적 문제점을 낳았다. 이는 마오가 그토록 지양하려 했던 것이다. 물론 덩샤오핑은 자신이 만들어낸 제도가 사회주의 초기 단계라 믿고 싶어했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중국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기억될 것이다.

    정치적 요구 투영하면 안 돼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심화된 관료의 부패는 대중의 혐오감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1989년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이후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국가와 당의 독재 권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경제 발전을 가속화하기 위해 시장개혁을 빠르게 추진했고 이를 통해 대중의 불만을 누그러뜨렸다. 그 결과 중국의 정치와 지적 생활은 훨씬 더 억압적으로 변했지만 경제사회 활동은 빠르게 정상으로 돌아왔다. 또 정치적, 도덕적 열정 대신 소비주의와 국가주의의 물결이 사회를 뒤덮었다.

    문제는 중국공산당이 여전히 사회주의의 성취를 중요한 과제로 내걸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1949년 혁명에서 정통성과 합법성을 확보하려 하고, 민주집중제(民主集中制·광범한 ‘인민민주주의의 바탕 위에서 권력을 집중 행사하는 제도로 민주적 중앙집권주의라고도 한다)를 다시 강조하면서 당내 민주주의와 지방 선거라는 개선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조치가 결코 민주주의 성장을 가져올 보편적 절차의 시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까지 잘 나아가던 저자가 책 마지막 부분에서 갑자기 정치평론가가 된다. 마이스너는 현재 중국의 부르주아는 공산당 관료와 연결된 계급이자 기득권층이기 때문에 공산당 체제에 대한 도전자가 될 수 없다고 본다. 진정한 사회주의의 근원은 중국 내부에서 자본주의의 사회적 파괴에 반대하는 투쟁이 필연적으로 나타나면서 자연스럽게 발전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 대표적인 모습은 당의 통제를 받지 않는 조직, 특히 노동조합이다. 따라서 공산당 지도자에게 가장 심각한 위협은 도시의 노동계급이라고 주장한다.

    역사학자도 시민인 이상 당연히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있고, 그것을 피력할 자유도 있다. 또 자신의 정치적 기준에 따라 과거 사실을 평가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의 자유다. 하지만 저자가 자신의 정치적 요구를 연구대상에 그대로 투영하면 오류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중국의 미래는 중국인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다. 중국인들에게 행동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리라는 전제하에 그들의 미래를 예측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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