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러한 저자의 평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한 사람의 행동을 평가할 때는 그의 의도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역사가는 드러난 행동으로 말을 판단해야 한다. 즉 선의라는 이유로 책임을 면제해줘서는 안 된다. 역사가에게는 면책 특권이 없다.
물론 마오의 업적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정확하다. 마오는 중화제국을 근대적 국민국가로 만들었으며, 국민에게 정체성과 사회적 목적의식을 주입했다. 중국의 공업 생산은 1952년부터 1977년까지 연평균 11.3%나 증가했고, 농업국에서 비교적 공업화된 국가로 성장했다. 덩샤오핑 시대의 발전은 마오의 유산 덕분에 이룩될 수 있었다는 저자의 주장은 아직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꽤나 흥미롭다. 마오는 경제적 근대화를 이룩한 지도자였으나, 동시에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관료정치의 지배를 받는 중국을 남겨놓았다.
덩샤오핑에 대한 분석도 명쾌하다. 어릴 때부터 공산주의자였던 덩샤오핑은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고 싶었다. 동시에 그의 마음속에는 ‘부강한 중국’이라는 내셔널리즘적인 비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 방법이 근대화를 신속히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하고, 무역활동과 외국인 투자유치 등을 통해 중국 자본주의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덩샤오핑 식의 근대화는 환경파괴, 부정부패, 대량 실업의 위협, 범죄의 증가, 사회경제적 격차의 증가라는 심각한 사회적 모순과 도덕적 문제점을 낳았다. 이는 마오가 그토록 지양하려 했던 것이다. 물론 덩샤오핑은 자신이 만들어낸 제도가 사회주의 초기 단계라 믿고 싶어했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중국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기억될 것이다.
정치적 요구 투영하면 안 돼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심화된 관료의 부패는 대중의 혐오감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1989년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이후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국가와 당의 독재 권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경제 발전을 가속화하기 위해 시장개혁을 빠르게 추진했고 이를 통해 대중의 불만을 누그러뜨렸다. 그 결과 중국의 정치와 지적 생활은 훨씬 더 억압적으로 변했지만 경제사회 활동은 빠르게 정상으로 돌아왔다. 또 정치적, 도덕적 열정 대신 소비주의와 국가주의의 물결이 사회를 뒤덮었다.
문제는 중국공산당이 여전히 사회주의의 성취를 중요한 과제로 내걸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1949년 혁명에서 정통성과 합법성을 확보하려 하고, 민주집중제(民主集中制·광범한 ‘인민민주주의의 바탕 위에서 권력을 집중 행사하는 제도로 민주적 중앙집권주의라고도 한다)를 다시 강조하면서 당내 민주주의와 지방 선거라는 개선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조치가 결코 민주주의 성장을 가져올 보편적 절차의 시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까지 잘 나아가던 저자가 책 마지막 부분에서 갑자기 정치평론가가 된다. 마이스너는 현재 중국의 부르주아는 공산당 관료와 연결된 계급이자 기득권층이기 때문에 공산당 체제에 대한 도전자가 될 수 없다고 본다. 진정한 사회주의의 근원은 중국 내부에서 자본주의의 사회적 파괴에 반대하는 투쟁이 필연적으로 나타나면서 자연스럽게 발전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 대표적인 모습은 당의 통제를 받지 않는 조직, 특히 노동조합이다. 따라서 공산당 지도자에게 가장 심각한 위협은 도시의 노동계급이라고 주장한다.
역사학자도 시민인 이상 당연히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있고, 그것을 피력할 자유도 있다. 또 자신의 정치적 기준에 따라 과거 사실을 평가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의 자유다. 하지만 저자가 자신의 정치적 요구를 연구대상에 그대로 투영하면 오류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중국의 미래는 중국인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다. 중국인들에게 행동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리라는 전제하에 그들의 미래를 예측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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