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은 이슈들이 제기된 배경은 무엇일까. 왜 굳이 이 시점에 이러한 쟁점들이 불거졌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크게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선 북한의 위협에 대한 평가기준을 놓고 한미간에 커다란 시각차이가 생겼다. 둘째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고, 한반도 주변정세 역시 변했다. 끝으로 한국 정치환경의 변화, 즉 정부의 자주·주권의식이 강하게 대두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한미동맹의 근거는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당시 미국은 휴전에 반대하는 이승만 대통령을 무마하기 위해 이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이 5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발전하리라고 예상했던 것은 아니었다. 6·25전쟁 당시 미국의 참전은 형식상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따른 것이었으므로, 비록 미국의 주도로 이뤄졌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동맹이란 우방 또는 우호관계보다 차원이 높은 군사적 개념이다. 동맹은 ‘유사시 함께 싸운다’는 정치적 의지와 군사적 준비태세를 전제로 한다. 처음부터 한미동맹의 방어대상은 북한이었다. 한미동맹의 본질적인 의도는 지금도 북한의 침략을 억제하고, 만약 그 억제력이 무너질 경우 침략군을 격퇴한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양국관계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북한 문제를 제외한 한미관계 논의란 상당부분 의미를 잃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양국의 군사 당국자들은 북한의 군사위협을 평가할 때 우선 군사력의 양적인 규모를 중시했다. 즉 병력의 수, 무기체계 및 장비의 보유현황, 전투력 배치 등을 중심으로 하고, 여기에 훈련교육의 수준 등 질적인 측면을 포함하는 ‘전쟁준비 태세’를 기준으로 삼았다. 노농적위대를 포함하여 200만명에 달하는 병력 동원력, 휴전선에 전진 배치되어 서울은 물론 중부권까지 사정거리 안에 둔 1만1000여 문의 화력체계, 자폭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8만~12만명의 특수부대 병력(SOFs), 4000~5000t으로 추산되는 생화학무기와 미사일 등은 방어임무를 맡고 있는 한미연합사의 처지에서 볼 때 가공할 만한 위협이다.
더욱이 지난 2월10일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고 자신을 방어하기에 충분한 핵 무기고를 확보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고 보면, 북한의 군사위협은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분명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역대 주한미군 사령관은 해마다 미 의회 예산청문회를 통해 북한의 군사위협 평가를 공개적으로 증언해왔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언제부터인가 군사위협 측정의 패러다임을 전통적인 물리적 기준에서 북한의 남침 의도 유무에 대한 심리적 기준으로 전환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이러한 평가기준의 전환은 남북관계의 피상적인 변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5년간 남북간 화해와 교류를 추진하면서 상당한 양의 대북지원이 이뤄졌고, 이를 통해 남북간 이해가 어느 정도 증진됐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과연 김정일 정권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겠냐는 식으로 북한의 의도에 대해 관심이 커졌고, 이에 따라 미국측의 전통적인 군사접근 방법에 제동을 걸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한국군이 군사력의 양적 평가기준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 정부 지도부의 안보 문제 접근방법이 달라진 것만은 확실하다.
지난 수년 동안 여러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된 한국 국민의 심리를 들여다보면, 북한보다는 미국이 전쟁을 일으킬 위험성을 우려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국민 다수의 인식도 노무현 정부가 북한의 위협에 대한 평가기준을 전환하게 한 정치적 환경이 아닐까 생각한다.
노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한국의 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라 규정하고 이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수차례 공언한 바 있다. 한편 그를 지지하는 상당수 국민은 설마 북한이 한국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하겠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통일이 되면 북한이 개발한 핵무기가 우리 것’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노무현 정부가 북한의 위협에 대한 평가를 전환한 데에는 지지층의 이러한 인식이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한국의 386세대를 비롯한 중심세력이 미국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음을 잘 안다. 사정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미국의 책임도 상당히 크다.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은 미 의회 증언에서 “지금까지 키 큰 농구 선수들이 작은 선수들의 머리 위로 자기들끼리만 공을 주고받아왔으므로” 작은 선수 처지의 한국 젊은이들이 화가 날 만도 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노 대통령의 지도력 발휘에 기대를 걸고 있다. 노 대통령이 정치적인 부담을 무릅쓰고서라도 동맹유지 및 강화 차원에서 미국의 정책에 협력할 것을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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