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고 6회 동창회 홈페이지 메인 화면
오늘같이 끄무레한 날씨에 이런 노래를 듣고 있으면 불현듯 우리 학교 동창 홈페이지(일명 홈피)에 들어가고 싶어진다. ‘전라고등학교 6회.’ 굳이 홈페이지 주소는 말하지 말자.
전라북도의 수도, 교동의 한옥마을로 조선미(朝鮮美)가 물씬 풍기는 고풍의 소도시, 전주는 당시 전국에서 최고로 깨끗한 도시였다. 이곳엔 내로라하는 명문고가 있었다. 어찌어찌 그 학교를 가지 못한 우리 400여 명은 1973년 전라고의 멤버가 됐다. 딱 3년, 꿈 많고 고민 많은 청소년기를 함께 뒹굴었다. 1976년 2월 졸업. 좋거나 후지거나 거지반 대학을 갔다. 출세했거나 밑바닥을 기거나, 돈이 많거나 지독히도 없거나….

전라고 6회 3학년 학생들의 졸업 앨범용 단체사진
어쨌거나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 반세기를 넘기고 있다. 만나면 정겨워 볼때기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감자를 먹이기도 하고, 아무 데서나 흉한 별명을 마음 놓고 불러대며, 어디서 그런 상말을 하랴, 있는 욕 없는 욕 해대며, 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열대야도 식히고, 삭풍도 이겨가며 한 계절 한 계절, 삶의 나이테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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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과 고모라의 도시’ 서울 인근지역에 둥지를 튼 졸업생 150여 명이 인터넷상에서 거의 날마다 만나고 있어 우리들 사이에 늘 잔잔한 화제다. 대체 우리들의 홈피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 땅에 사는 대한민국 ‘40후남’의 울고 웃는 자화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른바 페이소스(pathos·애수)다. 무슨 내용이 어떻게 담겨 있을까. ‘쥐손(마우스)’을 긁으며 들어가본다.
무심한 세월은 참 죄가 많다. 변화무쌍한 일들을 잘도 만드니 말이다. 부모님 돌아가시는 거야 기본이다. 이미 유명을 달리한 친구도 두 자리 숫자를 넘었다. 외국으로 이민을 가 만나기 쉽지 않은 친구도 20여 명이 되고. 이혼하고 사별하고 재혼한 친구들, 벼락부자가 된 친구, 아직도 싱글인 친구, 거덜이 나 빌빌거리는 친구…. 사람 사는 텃밭이 으레 그렇듯 ‘생길 수 있는 것은 다 생긴’ 시공간이 있다.
외로움을 달래자고, 맨살을 맞대자고 1년에 한번 제대로 만나는 날이 송년회 아닌가. 대개 졸업 15년차쯤 되면 슬슬 고등학교 친구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언제나 말뿐이지 단결은 잘 안 된다. 다들 생업에 바쁘기 때문이다. 40대 초반쯤 되면 직장에선 중급 간부가 되고 사업을 하는 친구들도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어 꾸역꾸역 모여드는 게 30명 안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