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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高 6회 홈페이지에 비친 ‘40後男’의 자화상

“안녕 사오정, 굿바이 오륙도… 얘들아, 우리는 ‘구구팔팔’ 이여!”

  • 최영록 성균관대 홍보전문위원 goodjob48@hanmail.net

전라高 6회 홈페이지에 비친 ‘40後男’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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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년 만에 뭉친 150여 명의 고교 동창이 있다. 희끗희끗한 머리, 주름진 얼굴에 처음엔 서로 몰라봤지만, 까까머리 그 시절을 떠올리니 금세 하나가 됐다. 지천명을 앞둔 중년 남자들이 고교 동창 홈페이지를 통해 이야기꽃을 피운다. 일상에서 맛보는 사소한 기쁨부터 부부의 내밀한 섹스 스토리까지…. 대한민국 40대 후반 남성의 삶의 애환이 오롯이 담긴 그들만의 공간을 살짝 들여다보자.
전라高 6회 홈페이지에 비친 ‘40後男’의 자화상

전라고 6회 동창회 홈페이지 메인 화면

어디선가유행가 소리가 들려온다. ‘한 구절 한 고비 꺾어 넘을 때 우리네 사연을 담는 울고 웃는 인생사 연극 같은 인생사….’ 어쩌면 나도 모르게 실실 흥얼거리고 있는 것도 같다. 아래턱을 주욱 내민 채 ‘꺾어’ 구절을 잘도 꺾어내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 송대관이다. ‘한계령’ ‘유리창엔 비’ 같은 노래나 좋아하는 우리 ‘마눌님(마누라의 인터넷 용어)’은 질색팔색이지만. 투박한 사투리에 제법 구성지고 감칠맛도 나는데, 아내는 그가 TV에 나오면 채널 돌리기에 바쁘다. ‘네박자’고 ‘유행가’고 잘도 넘어간다. 얼씨구, 이제 ‘우리 순이’를 부르고 있다.

오늘같이 끄무레한 날씨에 이런 노래를 듣고 있으면 불현듯 우리 학교 동창 홈페이지(일명 홈피)에 들어가고 싶어진다. ‘전라고등학교 6회.’ 굳이 홈페이지 주소는 말하지 말자.

전라북도의 수도, 교동의 한옥마을로 조선미(朝鮮美)가 물씬 풍기는 고풍의 소도시, 전주는 당시 전국에서 최고로 깨끗한 도시였다. 이곳엔 내로라하는 명문고가 있었다. 어찌어찌 그 학교를 가지 못한 우리 400여 명은 1973년 전라고의 멤버가 됐다. 딱 3년, 꿈 많고 고민 많은 청소년기를 함께 뒹굴었다. 1976년 2월 졸업. 좋거나 후지거나 거지반 대학을 갔다. 출세했거나 밑바닥을 기거나, 돈이 많거나 지독히도 없거나….

전라高 6회 홈페이지에 비친 ‘40後男’의 자화상

전라고 6회 3학년 학생들의 졸업 앨범용 단체사진

그로부터 29년, 우리는 만났다. 나잇살을 훔친 게 죄가 되어 대부분 40대 극후반, 이름하여 ‘40후남(後男)’이다. 흰 머리, 잔주름에 몰라보거나 성이나 이름만 입에서 맴도는 친구도 많다. 그래도 같은 고등학교라고만 하면 ‘그놈의 동질감’이라니, 대한민국은 지연(地緣), 학연(學緣)사회일 수밖에 도리가 없다.

어쨌거나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 반세기를 넘기고 있다. 만나면 정겨워 볼때기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감자를 먹이기도 하고, 아무 데서나 흉한 별명을 마음 놓고 불러대며, 어디서 그런 상말을 하랴, 있는 욕 없는 욕 해대며, 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열대야도 식히고, 삭풍도 이겨가며 한 계절 한 계절, 삶의 나이테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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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과 고모라의 도시’ 서울 인근지역에 둥지를 튼 졸업생 150여 명이 인터넷상에서 거의 날마다 만나고 있어 우리들 사이에 늘 잔잔한 화제다. 대체 우리들의 홈피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 땅에 사는 대한민국 ‘40후남’의 울고 웃는 자화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른바 페이소스(pathos·애수)다. 무슨 내용이 어떻게 담겨 있을까. ‘쥐손(마우스)’을 긁으며 들어가본다.

무심한 세월은 참 죄가 많다. 변화무쌍한 일들을 잘도 만드니 말이다. 부모님 돌아가시는 거야 기본이다. 이미 유명을 달리한 친구도 두 자리 숫자를 넘었다. 외국으로 이민을 가 만나기 쉽지 않은 친구도 20여 명이 되고. 이혼하고 사별하고 재혼한 친구들, 벼락부자가 된 친구, 아직도 싱글인 친구, 거덜이 나 빌빌거리는 친구…. 사람 사는 텃밭이 으레 그렇듯 ‘생길 수 있는 것은 다 생긴’ 시공간이 있다.

외로움을 달래자고, 맨살을 맞대자고 1년에 한번 제대로 만나는 날이 송년회 아닌가. 대개 졸업 15년차쯤 되면 슬슬 고등학교 친구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언제나 말뿐이지 단결은 잘 안 된다. 다들 생업에 바쁘기 때문이다. 40대 초반쯤 되면 직장에선 중급 간부가 되고 사업을 하는 친구들도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어 꾸역꾸역 모여드는 게 30명 안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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