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호

전라高 6회 홈페이지에 비친 ‘40後男’의 자화상

“안녕 사오정, 굿바이 오륙도… 얘들아, 우리는 ‘구구팔팔’ 이여!”

  • 최영록 성균관대 홍보전문위원 goodjob48@hanmail.net

    입력2005-08-29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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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년 만에 뭉친 150여 명의 고교 동창이 있다. 희끗희끗한 머리, 주름진 얼굴에 처음엔 서로 몰라봤지만, 까까머리 그 시절을 떠올리니 금세 하나가 됐다. 지천명을 앞둔 중년 남자들이 고교 동창 홈페이지를 통해 이야기꽃을 피운다. 일상에서 맛보는 사소한 기쁨부터 부부의 내밀한 섹스 스토리까지…. 대한민국 40대 후반 남성의 삶의 애환이 오롯이 담긴 그들만의 공간을 살짝 들여다보자.
    전라高 6회 홈페이지에 비친 ‘40後男’의 자화상

    전라고 6회 동창회 홈페이지 메인 화면

    어디선가유행가 소리가 들려온다. ‘한 구절 한 고비 꺾어 넘을 때 우리네 사연을 담는 울고 웃는 인생사 연극 같은 인생사….’ 어쩌면 나도 모르게 실실 흥얼거리고 있는 것도 같다. 아래턱을 주욱 내민 채 ‘꺾어’ 구절을 잘도 꺾어내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 송대관이다. ‘한계령’ ‘유리창엔 비’ 같은 노래나 좋아하는 우리 ‘마눌님(마누라의 인터넷 용어)’은 질색팔색이지만. 투박한 사투리에 제법 구성지고 감칠맛도 나는데, 아내는 그가 TV에 나오면 채널 돌리기에 바쁘다. ‘네박자’고 ‘유행가’고 잘도 넘어간다. 얼씨구, 이제 ‘우리 순이’를 부르고 있다.

    오늘같이 끄무레한 날씨에 이런 노래를 듣고 있으면 불현듯 우리 학교 동창 홈페이지(일명 홈피)에 들어가고 싶어진다. ‘전라고등학교 6회.’ 굳이 홈페이지 주소는 말하지 말자.

    전라북도의 수도, 교동의 한옥마을로 조선미(朝鮮美)가 물씬 풍기는 고풍의 소도시, 전주는 당시 전국에서 최고로 깨끗한 도시였다. 이곳엔 내로라하는 명문고가 있었다. 어찌어찌 그 학교를 가지 못한 우리 400여 명은 1973년 전라고의 멤버가 됐다. 딱 3년, 꿈 많고 고민 많은 청소년기를 함께 뒹굴었다. 1976년 2월 졸업. 좋거나 후지거나 거지반 대학을 갔다. 출세했거나 밑바닥을 기거나, 돈이 많거나 지독히도 없거나….

    전라高 6회 홈페이지에 비친 ‘40後男’의 자화상

    전라고 6회 3학년 학생들의 졸업 앨범용 단체사진

    그로부터 29년, 우리는 만났다. 나잇살을 훔친 게 죄가 되어 대부분 40대 극후반, 이름하여 ‘40후남(後男)’이다. 흰 머리, 잔주름에 몰라보거나 성이나 이름만 입에서 맴도는 친구도 많다. 그래도 같은 고등학교라고만 하면 ‘그놈의 동질감’이라니, 대한민국은 지연(地緣), 학연(學緣)사회일 수밖에 도리가 없다.

    어쨌거나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 반세기를 넘기고 있다. 만나면 정겨워 볼때기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감자를 먹이기도 하고, 아무 데서나 흉한 별명을 마음 놓고 불러대며, 어디서 그런 상말을 하랴, 있는 욕 없는 욕 해대며, 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열대야도 식히고, 삭풍도 이겨가며 한 계절 한 계절, 삶의 나이테를 더하고 있다.



    독수리 타법으로 쓴 글 1795개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 서울 인근지역에 둥지를 튼 졸업생 150여 명이 인터넷상에서 거의 날마다 만나고 있어 우리들 사이에 늘 잔잔한 화제다. 대체 우리들의 홈피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 땅에 사는 대한민국 ‘40후남’의 울고 웃는 자화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른바 페이소스(pathos·애수)다. 무슨 내용이 어떻게 담겨 있을까. ‘쥐손(마우스)’을 긁으며 들어가본다.

    무심한 세월은 참 죄가 많다. 변화무쌍한 일들을 잘도 만드니 말이다. 부모님 돌아가시는 거야 기본이다. 이미 유명을 달리한 친구도 두 자리 숫자를 넘었다. 외국으로 이민을 가 만나기 쉽지 않은 친구도 20여 명이 되고. 이혼하고 사별하고 재혼한 친구들, 벼락부자가 된 친구, 아직도 싱글인 친구, 거덜이 나 빌빌거리는 친구…. 사람 사는 텃밭이 으레 그렇듯 ‘생길 수 있는 것은 다 생긴’ 시공간이 있다.

    외로움을 달래자고, 맨살을 맞대자고 1년에 한번 제대로 만나는 날이 송년회 아닌가. 대개 졸업 15년차쯤 되면 슬슬 고등학교 친구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언제나 말뿐이지 단결은 잘 안 된다. 다들 생업에 바쁘기 때문이다. 40대 초반쯤 되면 직장에선 중급 간부가 되고 사업을 하는 친구들도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어 꾸역꾸역 모여드는 게 30명 안팎이다.

    누구누구 안부 묻기에 바쁘고 휴대전화가 불이 나기 시작한 게 불과 몇 년 전, ‘졸업 20주년’ 홈커밍데이 행사가 있고서부터다. 행사에 나온 친구 30여 명 중 회장을 뽑고 회장단을 꾸려야 했다. 이제야 송년회에 50여 명의 얼굴이 보인다.

    지금은 캐나다로 이민 간 2001년도 회장(노윤성)이 바야흐로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여 동창 홈페이지를 선보였다. 한때 사람들이 벌떼처럼 달려들던 ‘아이러브스쿨’이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우리들의 이야기꽃이 사이버상에서 화들짝 피어나기 시작한 게.

    게시판 1호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 시작은 미약하나 그 진로는 창대해지리라”(2001/1/14). 이야기마당인 ‘게시판’은 7월31일 현재 949번(무수한 댓글은 제외), ‘공지사항’ 564번, 지식과 정보의 어울림터인 ‘정보마당’ 36번, 그림과 재담이 담긴 ‘미디어게시판’은 246번을 기록했다. 게시물만도 모두 1795개에 달한다. 게시판의 조회 수만 합쳐도 5만7833. 1건 평균 60명이 본 셈이다. 태반이 독수리 타법인 데도 여기까지 온 것을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다. 여기에선 딱 사계절, 1년치 게시판을 뒤적여 우리들의 이러쿵저러쿵, 옴니암니를 엿보자.

    “오늘 저녁은 자네들이 전라여고 6회를 위해 저녁 된장찌개 좀 보글보글 끓여주면 어떻겠는가”(2004/8/1, Mr. J, 홈피에 대한 소감). 마침 이렇게 멋지고 건설적인 제안이 서두를 장식한다. 참고로 ‘전라여고’는 가상의 여자고등학교로 전라고 6회를 졸업한 남정네와 결혼하여 알콩달콩 살 섞으며 사는 어부인들을 지칭한다. 우리들의 게시판이 그녀들의 놀이마당이 된 지도 오래다. ‘여고생’이라는 약칭을 쓰자.

    “뜨거운 여름날/검게 그을은 얼굴에 검은 보리밥/이마에 솟은 땀을 닦기도 전에/눈물부터 흘리시던 당신//세월은 흘러도/당신 모습은 가슴 깊이 남습니다”(8/4 若水, 어머니). 뙤약볕 한여름. 시인친구의 사모곡이다. 불면의 밤에 친구들에게 힘을 내자며 갱년기 터널을 통과하는 방법을 여러 실례를 들어 일러준다(8/11 Kim H.J).

    영국 연수를 마치고 온 공무원 친구는 실용서와 교양서 20권의 목록을 늘어놓으며 찬바람 부니 책 좀 읽자고 한다(8/25 오규진). 자녀들 기(氣) 살리는 방법을 열거하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을 권한다(9/3 장준상). 벌초하며 새삼 부모의 은혜에 목이 멘다는 불효자의 일기(9/11 무명), 동창들과 실크로드를 다녀온 친구의 기행문(9/30 우보)…. 뭐 대충 이런 식이다.

    중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까, 사색의 글이 많다(8/11 김정권, 9/30 wkdthdtn, 10/8 marong, 12/22 Mr. L). 대학 진학을 앞둔 아이들 문제로 노심초사하는 학부모 심정도 읽을 수 있다(11/8 벽곡, 수능고시 대박꿈을 터트리며). 늦둥이 낳은 즐거움을 마치 괴로움처럼 이야기한다(4/7 이병운, 이 나이에 아기 젖 먹이다보니). 방학만 되면 몽골, 티베트 여행을 하자며 유혹하는 한문 선생도 있다(10/1 윤상천, 티베트기행 1-13). 처음에는 실명이 많더니 요즘에는 익명이나 필명으로 어지럽다. 누군지 알아맞히는 재미도 있다.

    6회니까 6월6일에 모여!

    한편 이들의 게시판 커뮤니케이션은 제법 밖으로도 소문날 만한 퍼포먼스를 여러 기록으로 남긴다.

    6월6일 동반파티 : 6회이므로 해마다 6월6일에 모인다. 2005년 대관령 목장과 오대산 월정사 산림욕. ‘6회 남녀고’ 40쌍이 참가, 관광버스 2대를 빌리는 등 성황이었다. 어디 이런 동창부부들 있으면 나와보라고 자랑할 만도 하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좀 망가지면 어떠랴. 율동을 곁들인 노래자랑도 갈수록 태산이다. 예전엔 우리 부모네 관광춤을 보고 입을 삐죽댔었지.

    여고생들의 끼리끼리 수다도 얼마나 볼 만한지, 자기네도 회장단을 만들자는 이색제안까지 나온다. 언론인 출신 친구는 “무조건 기삿감이다. 우리 한번 신문에 나보자”며 부추긴다. 유력 동문의 기념품 찬조도 풍성하게 이어졌다(6/7 무명, 아주 특별한 날의 일기). 그 전해에는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잔디밭에서 재즈댄스 교습이 있었다.

    툭하면 번개팅 : 서울 역삼동, 상계동, 철산동, 목동, 경기도 양평, 강원도 홍천 등지에서 ‘건수’가 있다 하면 당일 게시해도 보통 10∼15명이 모인다(7/22, 4/27, 10/20). 상을 받아서, 직장을 옮겨서, 우울하고 술이 당겨서한번 쏘겠다는 친구들 많다(7/5 장상수, 5/6 박재수). 참 놀라운 일이다. 젊은 네티즌 뺨친다.

    전라高 6회 홈페이지에 비친 ‘40後男’의 자화상

    1975년 수학여행지에서 찍은 전라고 3학년 2반의 단체 사진.

    경기도 부천에는 남녀고 7쌍이 번개팅을 즐긴다. 카리스마를 갖춘 ‘교주’가 있기 때문이다(6/1 이갑진). 그는 “이 나이에 무슨 재미로 사냐. 동창들 만나야 제 맛이지” 하고 말한다. 그러니 모임에 나가지 않을 방법이 없다고 한 친구는 투덜댄다.

    지역특산물 믿고 사고팔기 : 늙은 부모가 거둬들인 고향의 대봉시가 맛이 죽인다며 사라는 친구도, 장모님이 갈무리한 광천김을 사라는 착한 사위도 있고, 매실매실한 매실로 우려낸 진액으로 알코올에 찌든 위장을 달래라며 우정 어린 성화를 해대는 친구도 있다(9/25 최상, 12/3 변만덕, 6/1 최영록). 믿고 사는 통에 기분까지 좋다. 아예 어떤 친구는 두서너 개를 주문해 친구들에게 택배로 선물을 보내는 미담도 남긴다(10/5 전명우).

    취미활동 같이 하기 : 필명 산사나이. 우리나라 명산 300곳은 진작에 밟아본 ‘걸어다니는 등산인’이다. 그의 채근이 있기에 몇몇은 관악산 유명산 가리산 수락산 북한산 도봉산, 닥치는 대로 산에 오른다. 산에 대한 예찬을 몇 마디 듣다보면 주말엔 어느 산 밑에서 만나게 된다. 주초마다 올라오는 그들의 등산사진은 보기에도 좋다(1/4 이승호). 한의원 원장을 하는 한 동창의 유일한 취미는 암벽타기다. 그의 모험심에 겁을 내면서도, 동호인이 하나 둘 늘고 있다(2/22 이춘근).

    한 친구는 홍탁삼합을 먹는 게 유일한 취미다. 집에서 멀고 가깝고를 따지지 않고 광명시청 앞 단골집에서 항아리 동동주를 기울이는 재미가 쏠쏠하다(11/30 박치원).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러가자며 꼬드기는 ‘연극파’ 중학교 선생도 있다(11/30 정영우). 늙어가며 여고생들과 함께할 운동은 배드민턴밖에 없다며 원고지 100여 장의 독촉칼럼을 긁어대는 친구도 있다. 신새벽 라켓을 들라(11/10 불별).

    고락을 같이하는 영원한 어깨동무 : 기쁘거나 즐거운 일을 같이하기는 쉬운 일이다. 수상소식에, 영전소식에, 사무실 오픈 소식에 ‘축하한다’는 말이나 글귀는 언제나 넘쳐난다(5/7 김종진). 그러나 진심으로 친구의 아픔이나 괴로움, 슬픔을 함께 나누기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데도, 우리들은 뭔가 좀 유별난 데가 있다.

    경찰관 친구의 “야, 보냈다”는 허탈한 전화다. 직감적으로 ‘부인이 기어이 가셨구나’ 생각했다. 이틀간 병원 영안실에는 전국에서 온 100명의 동창이 다녀갔다(여고생 포함). 시인은 애도시를 남겼다.

    “우리는 당신을 보내지 아니하고 가슴에 묻어두겠습니다.”(11/11 원탁희, 아픔이다 슬픔이다)

    “금슬 좋던 그들 부부/집착의 끈을 절대자가 놓으라고 합니다/부디 가을 시린 들판에서 맑은 눈길로 자주자주 만나뵙기를 기원합니다”(11/10 최영록, 우리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백수생활을 하는 친구가 있다. 일부러 불러내 점심도 사고 사우나 티켓도 건네고 격려도 해준다. 암 투병 중인 친구의 병실엔 문안인파가 몇 달간 이어졌다(12/23 노진규, 힘내라 힘). 항암치료를 끝낸 친구를 축하하는 번개팅엔, 행사를 당일 고지했음에도 17명이나 모였다(1/19 김택수). 보통 이 정도다. 그러니 우리들끼리도 신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는 재미로 사는 것 같다.

    ‘전라여고’ 6회생의 미덕

    그런데 ‘전라여고’ 6회생을 보라. 바가지는커녕 모임을 장려하고 본인들이 참석 못해 안달이다. 남다른 미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4/30 전라여고six). 어느 여고생이 서울 대방동에 삼겹살집을 냈다. 남고생도 기흥IC 근처에 그럴듯한 한식당을 냈는데, 모였다 하면 그곳이다(4/3 무명, 수와 얼과 씨). 약속 잡기도 편하고, 맛도 있다. 식당 주인에게 불경기에 10여 명의 단체손님이 어디랴. 주말에 드라이브 삼아 기흥에 가는 친구도 많다고 한다.

    호(號)의 생활화 : 여고 한문 선생이 있다. 가끔씩 멋들어진 한시를 지어올린다(1/21 오기방). 채근담 인터넷 특강도 친절히 해준다. 그 친구가 동창들 호 짓기에 나섰다. 약수(若水).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본떠 물처럼 구름처럼 사는 시인친구에게 선사했다. 자신의 호는 우보(牛步). 소 발걸음이다. 못난 대로 뚜벅뚜벅 살겠다는 심사다. 계상(繫桑), 주역 풀이가 일품이다.

    전라高 6회 홈페이지에 비친 ‘40後男’의 자화상

    고교를 졸업한 지 30년이 다 된 지금, 전라고 6회 동문들은 종종 부부동반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갖는다. 지난해 6월6일에 있었던 무주구천동 야유회(왼쪽)와 지난해 9월12일 지하철 과천종합청사역 근처에서 열린 관악산 하산식.

    우천(愚泉), 어느 어르신이 한 자를 주고 자기가 고향마을 이름에서 한 자 따 지어놓고는 불러주지 않는다고 성화다. 대우(大愚)는 대현(大賢)이라나 뭐라나(11/2 우천). 점잖은 처지에 언제까지 별명을 부를 것인가? 확실히 ‘선비틱’하지 않은가. 이런 멋스러운 별명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머지않아 호 모음집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기발한 제안 : 우리들이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고 사회에 대한 공헌도는 어떤지 제대로 알려면 모모한 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하듯이, 10여 명이 돌아가면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자신의 직업세계를 자세히 30여 분 동안 브리핑하는 모임을 갖자는 거다(10/17 최규록). 1년이면 12개의 직업에 대한 지식, 정보, 경험을 공유하는 것 아니겠냐는 얘기인데, 모두 ‘굿 아이디어(good idea)’라 해놓고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이런 소모임이 활성화하면 사회가 그만큼 밝아지지 않을까.

    백수일기, 자유인일기, 직딩일기

    이쯤에서 ‘처사(處士)’를 자처하는 무명(無明)이라는 친구 이야기를 하자. 40대 중반에 그 어려운 직장 옮기기가 벌써 세 번째다. 친구들은 역마살이라고 빈정대지만,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지 않겠냐며 제법 의연하게 백수생활을 했다. “산전, 수전, 공중전 다 겪었다”며 낄낄거리는 친구다. 지금이야 옛 직장에 재입사하여 재미나게 다니지만, 당시 그 친구 실력이 썩고 있다고 생각한 동문들은 너도나도 속상해했다.

    1년여를 놀며 쉬며 지난해 9월부터 게시판에 1주일에 두세 번 ‘백수일기’라는 제목의 글로 도배질을 시작했다. 술도 잘 먹고 말도 잘하는 친구인지라 글도 역시 매끄럽다. 어떤 주제로든 썼다 하면 보통 5000∼6000자니 읽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지만, 워낙 구수한 입말로 일필휘지한 까닭에 술술 읽힌다. 구어체의 달인이다. 날로 달로 우리들끼리 화제가 됐다. 아는 친구야 알지만 모르는 친구들은 “무명이 누구야?” “우리 동창 맞아?” 한동안 소문이 요란했다(11/3 X맨, 네가 혹시?).

    그런데 이 친구, 갈수록 글 내용이 장난이 아니다. 솔직하다 못해 너무 까발리는 것 아닌가 싶게 속내를 드러낸다. 이 땅의 40대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주요 테마다. 거기에 백수가 된 본인의 애로사항을 줄줄이 읊어댔다. 우려의 댓글도 있는가 하면(3/6 장준상, 이래도 되나). 통쾌하다는 댓글도 있었다(3/7 김종태, 괜찮아). 여고생들의 환호성도 여러 차례 들렸다(12/30 여고6회생).

    어떤 친구는 일기를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하고, 어떤 친구는 아침 밥상머리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듣는 것 같다고도 했다(6/15 윤경래). 심지어 공무원 친구는 ‘그대가 누구인지는 모르나 리버럴한 사상가 같다’며 극찬 했다. 어느 날부턴가 ‘백수일기’ 문패를 ‘자유인일기’로 바꾸어 달았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일기글이 점점 농익는 느낌을 주었다. 글도 칼럼마냥 점점 짧아졌다. 한 일주일 글이 올라오지 않으면 아프거나 신변에 무슨 일이 있냐며 근황을 묻는 댓글도 생겼다.

    이제는 ‘직딩(직장인) 일기’를 쓰고 있는데, 최근에 올라온 ‘하얀 나비’라는 별명의 친구는 댓글에서 그의 매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7/23 그의 글은?).

    “처사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 그대로(우리의 일이기도 하고), 느낀 그대로 자연스럽게 상대방에게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구태여 꾸밀 일도 없고, 구태여 미사여구를 동원할 필요도 없이…(중략)… 채근담 102편 ‘문장주지극처 무유타기 지시흡호(文章做至極處 無有他奇 只是恰好)’ : 문장이 경지에 다다르면 다른 기이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꼭 알맞을 뿐이다. 참으로 큰 재주는 별달리 교묘한 재주가 있는 것이 아니다. 재주를 부리는 것은 곧 재주가 서툴기 때문이다. 경지에 이른 사람은 그저 평범할 뿐이다.”

    2등 콤플렉스

    전라고 6회 수준이 보통 이 정도다. 채근담 한두어 줄 제대로 소화해 인용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그런데도 명문고를 떨어지고 후기고에 진학했다는 콤플렉스는 오래 남았다. 이른바 ‘2등 콤플렉스.’ 살다보니 행복은 성적순도 아니고 뭣도 아닌데, 주입식 교육과 입시경쟁에 찌든 우리 아이들의 삶을 보면 가슴이 짠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날마다 “공부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안절부절못하는 게 또한 현실이다.

    전라高 6회 홈페이지에 비친 ‘40後男’의 자화상

    29년전 까까머리 고교생은 이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어깨가 무겁다.

    아무튼, 그는 마눌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정도로 일상사를 드러내는데, 사실 그게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공감하는 게 아닐까. 일상에서 맛보는 작은 기쁨이나 환희를 말하는가 하면(7/5 바이오리듬 따봉), 김장김치(11/11 어느 가족의 오케스트라), 오랜 친구와의 갈등(10/9 친구야), 형제 등 대가족의 불화(12/11 형 쿨하게 삽시다), 불량주부 남편의 고충(1/20 남편의 바가지), 고령사회의 부모봉양 문제(9/4 고향에 갔더란다), 아내와의 무수한 성격다툼(2/15 배가 배밖으로 나온 남편), 아이들과의 대화 두절(7/16 여차하면 파업한다), 가장으로서의 경제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4/4 친구야 고맙다), 구직의 어려움(4/5 일어선다), 노후 문제 등 앞날에 대한 걱정(12/25 나는 어떡하라고?), 내밀한 섹스 스토리(6/20, 너의 부부관계가 궁금한 걸), 바람피운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책을 읽자, 종이편지를 쓰자, 일기를 쓰자며 우격다짐을 놓기도 한다. 죽을 때까지 직업을 ‘학생’으로 하자며 뒤늦게 학구열을 자극하기도 한다(11/7 나는 학생이다).

    우연의 일치로 그의 ‘자유인 일기’는 108회로 막을 내렸다(4/24 역사속으로). 그 친구는 “남세스럽다”고 겸연쩍어하는 글이지만 원고지 3000장을 웃돈다고 한다. 에세이집 같은 단행본으로 책 3권의 분량이다. 이 글은 어느 출판사 대표의 눈에 띄어 조만간 책으로 묶여 나온다고 한다. 무조건 축하할 일이다. 요즘에는 이런 사소설 같은 글쓰기가 트렌드라며 잘하면 출판 ‘대박’이 날지도 모르겠다고 너스레까지 떨어대 우리를 기쁘게 한다.

    그러나 전라고 멤버는 모두 아마추어다. 아마추어면 어떤가. 진솔한 속내만이 감동을 줄 수 있다. 무명의 글 편편에는 ‘40후남’의 눈물과 고독이 어려 있다. 할일이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의 엄청난 차이를 깨달으며 ‘백수의 월요병’을 이야기한다. 지나간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후회와 아름다운 추억 그리고 앞으로의 마음다짐도 있다.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더 아름답지 않은가. 아마가 없으면 프로가 어찌 있을 것인가.

    어느 친구는 “너 같은 동문이 있어 우리 학교가 자랑스럽다”고까지 칭찬을 해댔다(?). 그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나 다름없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

    부정적인 면도 약간은 있지만, 인터넷 세상은 좋은 것이다. 문자메시지도 보낼 줄 알아야 하고 휴대전화 컬러링 바꾸는 법도 배워야 한다. 전혀 주눅들거나 망설일 필요는 없다. 흐름에 몸을 맡기고 치명적인 질병이 달라붙지 않는 한, 우리는 부지런히 세상을 따라가고 배워야 한다. 시간은 너무 없고 할일은 한강만큼 많다.

    홈피는 우리가 살아가는 마당이다. 어찌 그 마당에서 놀고 뛰고 얘기하고 즐기지 않겠는가. 이만큼 사람 사는 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데가 어디 있는가. ‘사오정’은 가라. ‘오륙도’가 웬말이냐. 우리는 ‘구구팔팔(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최근 유행하는 건배 구호)’이다. 의학이 발달하여 이제 100살까지 사는 친구도 많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바람은 또 끊임없이 불 것이다. 그만큼 열심히 살아봐야 할 일이다.



    앞으로도 전라고생의 끈끈한 우정과 전라여고생과의 진한 애정은 이 홈피를 통하여 오래도록 이어질 것이다. 송대관의 노래가 한 바퀴 다 돌았는지 다시 ‘네박자’로 이어진다. ‘니가 기쁠 때 내가 슬플 때 누구나 부르는 노래… 어차피 쿵짝이라네 쿵짝쿵짝 쿵짜자 쿵짝 네 박자 속에….’

    전라고 6회 만세! 전라여고 6회 만세! 40후남 만세! 대한민국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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