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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몸 공부, 마음 이야기 ⑥

‘형님’ ‘아우님’…술과 품 나누는 부처 같은 산골 이웃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형님’ ‘아우님’…술과 품 나누는 부처 같은 산골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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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적당히 거리 두기

‘형님’ ‘아우님’…술과 품 나누는 부처 같은 산골 이웃

서광철 아저씨와 이복순 아주머니. 저 작은 몸으로 자식 넷을 모두 대학까지 공부시켰다.

아저씨는 지난해 또 큰 수술을 받았다. 경운기 사고 후유증으로 척추에 결핵균이 침입해 허리 아래가 마비됐다. 또다시 배를 가를 수 없어 옆구리를 갈라 수술을 했단다.

“그동안 들어간 치료비가 5000만원은 될 거야. 더는 병원에 있을 수가 없었어. 그 돈을 자식들이 다 낸 거야. 허리가 다 낫지는 않았지만 안 되겠더라고. 의사에게 퇴원시켜달라고 하고 집에서 악착같이 운동했지. 죽어라 하고 걸으려 하니까 걸어지더라고. 이제는 운동 삼아 농사일을 조금씩 하는데 자식들이 자꾸 말려. 땅을 팔라고 하는데 팔 수가 있나. 여가 고향이고 집이 있응께. 사는 한, 팔 수 없지.”

시골에 살아 보니 이웃도 갈래가 많은 것 같다. 옛날 마을은 대부분 물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마을을 나타내는 한자가 동(洞)이다. 물수(水) 변에 한 가지 동(同). 먹는 물은 물론 농사짓는 물을 함께 쓰면서 마을을 이어온 셈이다.

보메기 역시 그런 마을 문화의 연장이다. 지금 논에서 나온 쌀을 먹고 사는 한, 물을 함께 쓰고 관리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비라도 적당히 와주면 이웃 사이 웃을 일이 많으리라. 하지만 가뭄이 들면 달라진다. 제 논에 서로 물을 대려고 얼굴을 붉히고 때로는 감정이 폭발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며칠 지나 다시 만나면 허허 웃는다. 뻔한 속을 서로 다 안다. 외면하고는 살 수 없는데 웃어야지. 보메기할 때는 이웃이 자리를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광철이 아저씨도 빨리 건강해져 다시 함께 보메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웃 이야기가 나온 김에 우리 마을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앞에서 이야기한 보메기꾼은 내 논과 이웃해 농사짓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마을 이웃은 따로 있다.

대가족처럼 어울려 산 이웃

우리 마을은 새로이 만들어졌다. 내가 예전에 살던 마을에서 조금 더 산으로 들어간다. 이곳도 원래는 마을이 있어 한창때는 10가구 이상 살던 곳이란다. 그러다가 마을 전체가 비었던 곳인데 도시를 떠나온 젊은이들이 한두 가정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빈 집 수리해서 사는 사람도 있고, 터를 새로 닦아 집을 짓기도 하면서 열 집 가까이 되자 산촌마을을 이루었다. 어느덧 지금은 열댓 집으로 늘어났다.

마을 이야기를 하자니 새삼 조심스럽다. 마을이 새로 생긴 데다가 도시 살다 온 사람들이라 개성이 강하다. 이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조용히 자유롭게 살고 싶은 사람도 있다. 농사도 텃밭 정도 일구는 사람부터 몇천평을 짓는 사람까지 모두 다르다. 나이도 20대부터 60대까지. 신혼부부도 있고, 혼자 사는 사람도 있다. 젊은이가 많으니 아이도 많다.

마을 역사는 10년이 채 안 되지만 그 사이 나름대로 우여곡절도 많았다. 처음 마을이 생기던 때는 경운기가 다니던 산길이 있었을 뿐이다. 큰길에서 마을길로 들어서자면 자동차 기어를 1단으로 놓고 크게 숨 한번 몰아쉬어야 할 만큼 길이 험했다. 게다가 비포장길이라 장마 때면 흙이 쓸려가 바위가 들쭉날쭉 드러났다.

길도 험했지만 물도 만만치 않았다. 먹을 물은 산 여기저기에 옹달샘이 있으니 그걸 끌어다 먹는다. 샘 하나를 한 집이 쓰는 경우가 많고, 두세 집이 함께 쓰는 경우도 있다. 장마가 끝나면 수도관이 막히기 일쑤고, 가뭄 때는 물이 말라버리기도 했다. 길과 물을 해결하고자 이웃들과 자주 만났다.

농사일이나 집짓기는 서툴지만 되도록 손수 하자는 분위기다. 마음 맞는 이웃끼리 품앗이를 했다. 자주 어울려 놀기도 했다. 누구네 아기 돌이라면 당연히 모여 놀았고 심지어 생일날을 핑계로 모였다. 새로 이사 오면 집들이, 집을 지으면 상량식. 어울리자고 하면 핑계도 많았다. 가을에는 어른 아이 다 모여 추수감사제를 열기도 했다. 겨울에는 주제를 정해 함께 공부도 하고 토론을 벌였다.

돌이켜보면 대가족처럼 어울려 살려고 했던 거다. 그런데 이웃과 자주 어울리다 보니 좋은 점도 많았지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고받았다. 한두 집이 떠나는 걸 지켜보면서 이웃 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뿌리를 더듬어 가 보니, 이웃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지나친 데 이유가 있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서로 얼굴조차 모르던 사람들이다. 단지 귀농을 했으니 정서가 비슷하리라 생각했고, 서로 좋은 이웃이어야 한다는 기대가 컸다. 그리고 버려진 땅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도 있었고, ‘자발적 가난’이라는 가치를 서로 확인하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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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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