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일선\' 1932년 7월호에 실린 박희도의 춤추는 모습.
키스내기 화투?
밤늦게 돌아온 남편은 아내에게 “이년! 내가 무섭지? 하늘이 무섭지?” 하며 버럭 호통을 친다. 아무리 술이 취했고 또 개화가 덜된 시절이었다지만, 아내에게 ‘이년’이라니! 엄청나게 간 큰 사내임에 틀림없다. 요즘 같으면 당장에 도장 찍자고 덤벼들겠지만 착한 아내는 꾹 참고 남편의 몸을 부축한다. 그러나 남편의 태도는 예전에 술 취했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남편은 “고만두어! 다 귀찮다!” 하고 당황해 서 있는 아내를 밀치더니 드디어 가슴에 품은 말을 꺼낸다.
“흥! 너도 키스내기 화투한 년이지?”
어안이 벙벙해 서 있는 아내에게 남편은 연이어 비수를 날린다.
“너 어느 학교 졸업했니?”
“그건 왜 새삼스레 물어보세요?”
“알 필요가 있으니 말이지!”
남편은 방바닥에 펄썩 주저앉아 외투, 양복, 저고리, 넥타이를 마구 벗어던진다. 취중에 한 행동이라도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한 아내는 반격에 나선다.
“비록 하늘의 이치가 남자는 수염이 나게 하고 여자는 핸드백을 가지고 다니게 했기로 그 수염 값 못하는 행태를 어디다 한단 말이에요? 기생이나 여급이나 창부나 술 파는 계집 같으면 몰라도 그 아내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지거리를 하다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이에요?”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그러나 남편은 자기행동을 반성하기는커녕 또다시 쏘아붙인다.
“무슨 큰소리야? 제자와 선생이 모여 앉아 키스내기 화투한 것이 잘한 노릇이란 말이냐? 너의 학교의 교장이란 자가 …에 취해 …키스하고 …에 취해…”
교장과 제자가 키스내기 화투를 쳤다니, 도대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자세한 내막은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일단 계속해서 읽어보자.
“영자!” 남편은 아내의 이름을 연극배우가 대본을 외우는 것같이 부르더니 “영자는 찔리는 구석이 없나?” 하고 묻는다. 어이없는 질문에 아내는 “찔리기는 무엇이 찔리어요?”라고 답한다. 술 취한 남편은 “영자는 그래 교장과 키스내기 화투는 안 했느냐는 말이야?” 하며 의처증에 걸린 사람처럼 횡설수설한다.
“왜 대답이 없어? 침묵은 모든 사실을 시인하는 말이지?”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무엇이야? 누가 영자의 몸이 순결하다고 변명해줄 것이야? 결혼 전 영자의 처녀성을 보증할 사람이 누구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