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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책하고 놀자

우리는 왜 일 하는가 ‘일의 발견’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우리는 왜 일 하는가 ‘일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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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일 하는가 ‘일의 발견’

‘일의 발견’ 조안 B. 사울라 지음/안재진 옮김/다우

여름으로접어들면 양보리수 열매가 홍보석처럼 빨갛게 익는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한 크기다. 나뭇가지가 찢어질 듯 열매가 다닥다닥 달린다. 성숙한 열매는 떫은맛이 엷고 달콤함은 깊다. 양보리수 열매는 새들의 훌륭한 먹잇감이다. 마침 내가 일하는 방 창 밖에 양보리수가 있어 종일 새들이 들락날락하면서 이 열매를 따먹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양보리수를 두고 새들의 먹잇감에 대한 지배권 쟁탈도 치열하다. 새들 나름의 순서가 정해진다. 까치와 물까마귀, 멧비둘기와 박새들이 차례로 날아든다. 까치가 있을 땐 다른 새들은 날아오지 않는다. 박새는 다른 새들이 없을 때만 날아온다. 새들이 앉으면 그 하중으로 가지가 활처럼 휜다.

양보리수가 익을 무렵 그 나무 주변은 새들의 활기찬 날갯짓 소리로 시끄럽다. 나는 일을 멈추고 양보리수 가지에 곡예하듯 매달려 붉은 열매를 따먹는 새들의 노동을 눈여겨본다. 새들은 수렵도 하고 채취도 하며 먹이를 구하고 새끼를 낳고 키운다. 아마도 그 두 가지 일은 새들의 생존에 부과된 가장 중요한 목적일 것이다. 새들은 먹잇감이 있는 곳을 부지런히 찾아다니고 다른 새들과 경쟁하며 먹잇감을 확보한다. 쉼 없이 일하는 새들을 보며, 나는 노동이 “밤낮의 삶의 템포”이며, “원자의 진동이며 별들과 태양을 움직이는 힘”이란 걸 새삼 깨닫는다.

일과 삶의 관계에 대한 고찰

사람은 평생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하며 보낸다. 과연 일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자기 삶을 돌아보려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일의 의미를 물어본다. 조안 B. 사울라가 쓴 ‘일의 발견’이란 책은 인문학·사회과학·경영학적 관점에서 일과 일 뒤에 숨어 있는 여러 의미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사울라의 책은 20여 년 전에 읽은 D. 미킨이 쓴 ‘인간과 노동’(이동하 옮김, 한길사)보다 덜 무겁고 덜 학술적이다. 그만큼 대중적으로 쉽게 읽히는 미덕을 갖고 있다. 사울라는 인류 역사 속에서 일의 개념과 본질이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과연 일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일과 삶의 관계에 대해 매우 깊이있게 고찰했다.

동물이나 사람에게서 먹이를 구하는 노동은 삶의 기본적인 전제 중의 하나다. 오랫동안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빈곤의 고통과 함께 사회로부터의 소외감에 따른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일은 나와 사회를 매개하는 요소이며 나아가 삶의 의미와 지위, 그리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규정하고 지배한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일을 통해 “규율, 소속감, 규칙성, 자기 효능감 같은 다양한 심리적·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일을 하는 사람은 대체로 태도가 당당하다.



일은 물질적 필요와 같은 보상뿐만 아니라 자기가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윤리적 자긍심을 드높이고, 정체성과 자기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근거인 것이다. 실직(失職)에 따른 고통의 가장 큰 부분은 한 사회 내에서 자기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내밀한 느낌과 도덕적 동기 상실에 따른 고통이다.

현대에 와서 일은 행복의 추구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 사이의 균형과 평화로운 조화야말로 행복의 기본적인 전제다. 일의 가치는 그것이 바로 나와 세계 사이에 균형과 조화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일이 행복의 추구와 무관한 것일 때 그것은 무거운 의무로 전락한다. 가치와 사회적 의미를 생산하지 못하는 일은 사람의 시간과 자유를 속박하고 결국은 불행하게 만든다.

행복의 추구는 생명이나 자유가 그렇듯 천부의 권리에 속한다. 하지만 사람은 일을 통해 먹고 입고 사는 것, 그리고 직업과 같은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충족된 뒤에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제 밥벌이도 못한다고 비난할 때 그것은 사람으로서 최소한도의 의무도 다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비난이며 인격을 무시하는 모멸적 평가다. 이것은 우리가 인격적 존재로 대우받기 위해서는 일을 통해 최소한도의 자기 부양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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