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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책하고 놀자

우리는 왜 일 하는가 ‘일의 발견’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우리는 왜 일 하는가 ‘일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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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서 자유롭기 위해 일한다”

일을 통해 얻는 소득이 없다면 생존을 지탱할 수 있는 최소한도의 물질적 필요를 충족할 수 없고, 그럴 때 사람은 불행해진다. 행복은 작게는 오감(五感)의 만족에서 느끼고, 크게는 사회적 관계의 평화와 일의 만족감에서 비롯된다. 자본주의 사회체제에서 사람들은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광고를 통해 소비가 삶의 더 큰 의미와 행복을 보장해줄 것이니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라는 자극을 받는다. 실제로 사람들이 여가도 반납한 채 일에 몰두하면서 잃어버린 시간과 꿈을 보상받기 위해 ‘소비욕구와 구매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에 빠진다. 그런 사람들은 더 많은 물건을 구매하는 데 여가시간을 보내고, 소비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다시 일에 매달린다. 주변에서 ‘일과 여가, 그리고 소비주의’의 악순환에 갇힌 사람을 찾아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고도소비사회로 진입한 뒤 사람들의 소비 욕망은 더욱 다양해지고 고급스러워진다. 그 욕망의 충족을 위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려면 더 많이 일해야 한다. 과도한 업무로 내몰린 사람들은 누적된 피로에 절지만 휴식과 충전을 위해 쉴 시간이 부족하다. 여가 없이 일에 매인 사람은 일하고 싶어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불행하다. 사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데는 일에서 놓여나 자유로운 여가활동을 누리려는 동기도 크게 작용한다. 달리 말하면 사람은 일에서 자유롭기 위해 일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일과 여가의 황금비율

우리는 일하는 사회에 산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당한다. 일은 ‘돈과 지위, 소속감, 자존감’을 주지만, 반대로 시간과 에너지를 뺏어간다. 일찍이 알베르 카뮈는 “일하지 않는 영혼은 타락한다”고 말했지만, 일에 매여 자기를 돌볼 시간이 없는 사람의 영혼도 마찬가지로 타락한다. 일은 분명 소득을 보장하고 소비활동에서 얻는 만족감을 주며 사람을 의미 있는 존재로 고양시키는 측면이 있지만 행복이 오직 일을 통해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일이 삶의 목적과 의미의 전부가 아니다. 사람은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지만, 정말 잘 살기 위해서는 일과 놀이에 조화를 이뤄야 한다. 일과 여가활동 사이에 균형과 조화가 무너질 때 피로가 쌓이고 삶은 비속해진다. 사회학자 세바스티안 디 그라치아는 일이 사람을 고상하게 하고 부유하게 하지만, 정작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여가라고 말한다. 여가는 인간을 더욱 더 완전하게 만드는 ‘존재의 상태, 인간의 조건’이다.



구약성경에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는 구절이 있다. 인류 최초의 노동은 타락과 신을 배신한 데 따르는 혹독한 대가인 셈이다. 군대에서 일정한 크기로 땅을 파게 한 뒤 다시 그것을 메우게 하는 벌이 있다고 한다. 결국 몇 시간의 노동이 ‘쓸모없고 헛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쓸모없고 헛된 노동보다 더한 벌은 없다. 일은 소득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의미를 줄 때 비로소 보람 있는 것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적 가치와 의미를 보장받는 일을 갖기 위해 경쟁한다. 그러나 좋은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점점 더 많은 젊은이가 실업에 내몰린다. 보수도 좋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좋은 일자리를 획득하는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보수와 가치의 위계에서 더 낮고 비천한 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버트런드 러셀은 일에 대해 “일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지표면 혹은 지표면 가까이에 놓인 물질의 상대적 위치를 바꾸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시키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일은 인간 활동의 전부를 포괄한다. 일의 그 광범위한 범주를 생각할 때 러셀의 정의는 너무 단순하고 좁은 것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일은 사회적 존재로서 자기를 표현하고, 나와 남을 위한, 인간 본성과 인간의 조건에서 발현하는 모든 활동을 뜻한다.

일과 삶은 하나다. 건강한 사회는 일하려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주고, 일을 통해 더 나은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얻게 해야 한다. 일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일이 주어져야 한다. 그게 자유와 평등, 정의를 추구하는 민주사회의 기본적인 조건이다. 일 자체가 삶의 목적은 아니겠지만 일은 삶의 필연적 부분이며, 자아실현의 수단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신동아 200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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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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