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 프란스 드발 지음/박성규 옮김/ 수희재/1만5000원
마쓰자와 교수는 방문 첫날부터 나를 이끌고 야외사육장에 데려가 ‘또 한 인간이 왔구나’라며 시큰둥한 것 같은 표정의 침팬지 14마리를 소개하고 각기 다른 특징을 일러주었다.
마쓰자와 교수의 말을 수첩에 받아 적고는 있었지만, 난생 처음 침팬지 무리 속에 섞인 나로서는 누가 누구인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혼미한 나를 바짝 긴장하게 만드는 한마디.
“침팬지도 사람처럼 각자 개성이 있답니다. 아마 1주일 내로 14마리 전부를 구분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그때부터 14마리 침팬지의 사진과 이름, 관계를 그려놓은 그림을 구해서 틈날 때마다 ‘공부’했다. 틀림없이 1주일 후에 시험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닷새가 지난 오후, 나는 마쓰자와 교수의 손에 이끌려 야외사육장으로 갔다. 테스트가 이어졌다. 결과는 반타작, 참담했다.
문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쨌든 그후로 3주가 더 지나서야 침팬지에게도 개성이 있다는, 영장류학의 진실을 체득할 수 있었다. 예컨대 ‘판’이라는 암컷은 방문자들을 늘 ‘더럽게’ 맞이한다. 방문자는 그녀의 침 세례를 받고 나야만 친해질 수 있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침팬지의 개성이 도드라져 보였다. 실제로 1년 이상 체류한 연구자들은 그곳에 있는 모든 침팬지의 생김새, 행동 특성, 관계 등을 모조리 꿰고 있었다. 표정만 봐도 그날 실험이 성공할지가 대충 짐작된단다.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의 저자 프란스 드발은 미국 에모리대의 저명한 영장류 학자로 침팬지의 개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이미 네덜란드 아넴 동물원의 침팬지 사회를 장기간 관찰하여 ‘침팬지 폴리틱스’라는 문제작을 펴낸 바 있는 베테랑 연구자다. 그는 그 책에서 침팬지의 시각을 통해 인간의 정치 행동 기원을 다시 생각해볼 것을 주문했다.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에서는 침팬지의 개성을 이야기하는 수준을 넘어 침팬지를 비롯한 여러 동물의 문화에 관해 논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크게 세 가지 물음을 던진다. 첫째, 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을 어떻게 보는가. 둘째, 우리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 셋째, 문화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중국, 일본, 핀란드, 네덜란드를 80일간 여행하며 인간과 동물의 행동 연구에 큰 영향을 끼친 몇몇 선구자(오스트리아의 로렌츠, 일본의 이마니시, 핀란드의 웨스터마크)를 조사했다.
첫째 물음에 관해 저자는 사람들이 동물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의인화하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영장류를 접할 기회가 없었고 그 때문에 인간이 유일무이한 영장류라는 생각이 조장돼왔다. ‘의인화’란 사고나 감정을 동물에 투영하여 실제 이상으로 그것을 인간다운 존재로 파악하려는 방식인데, 서양에서는 데카르트 이래로 이를 안 좋게 보는 풍토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깊은 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의인화를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꼭 바람직한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의인화는 동물과의 유사성을 발견하기 위한 지적 통로이기 때문이란다. 그는 모차르트 같은 위대한 작곡가도 찌르레기 같은 작은 애완동물의 ‘노래’에 탄복했던 사례를 든다.
둘째 물음은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인간론은 동서양에 차이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서양의 연구자들은 동물과 인간을 근본적으로 구분하는 오류에 쉽게 빠진다. 반면 동양의 연구자들, 특히 일본 학자들에게선 이런 이원론이 발견되지 않는다. 일본 사람들은 서양과는 달리 오래 전부터 원숭이와 매우 친숙했다. 지금도 일본의 어떤 시골 동네에선 원숭이들이 길거리를 활보하며 인간과 평화롭게 공존한다. 저자는 동양의 자연철학이나 불교적 관점이 인간과 동물의 이원론을 배격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영장류학이 꽃피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