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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손길승 전 SK 회장 부인 박연신씨

청각장애 아들 서양화가로 키우고,13년째 장애인 잡지 만드는 아름다운 어머니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손길승 전 SK 회장 부인 박연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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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길승 전 SK 회장 부인 박연신씨

인사동 초입 낡은 건물 2층에 박연신씨가 만드는 장애인 잡지 ‘열린지평’ 편집실이 있다.

‘열린지평’은 30년 넘게 사귄 고향친구이면서 자원봉사자로 함께 일해 온 주부 5명이 흘린 땀의 결실이다. 전북 전주시의 한동네 출신이다. 복지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해오던 박연신(50) 조수련(50) 최선례(56) 허영배(56) 박정수(56)씨는 지난해 7월 자신들의 힘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하자며 이 이일을 선택한 것.

편집장이자 시조시인이기도 한 박연신씨는 ‘자녀들이 다 커 가사부담이 없고 우리들의 미력한 힘이나마 생활하기 힘든 장애인들에게는 정신적인 힘이 될 것 같아 시도했다’고 했다.…”

“회장은 회장, 나는 나”

서울 종로구 경운동 15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국판 크기 60쪽 분량의 ‘열린지평’을 만들기 시작한 다섯 사람 중 최선례씨가 현재 발행인이고, 나머지 창간 멤버도 운영위원으로서 매달 정기적으로 모여 회의를 한다. 그러나 창간 때부터 지금까지 기획, 취재, 편집, 인쇄에서 발송, 회원 관리에 이르기까지 ‘열린지평’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건 박연신씨다.

13년째 한결같이 잡지를 만들고, 장애인 복지를 위해 애쓰고 있지만 그는 창간 초기 외엔 언론에 자신을 노출한 적이 없다. 손길승씨가 1998년 SK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뒤에는 더더욱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2001년 ‘한겨레 21’에서 장애인 필자에게만 원고료를 주고 비장애인 필자에게는 원고료를 주지 않는 ‘열린지평’의 운영방식, 장애인 기자들의 열의와 애환을 기사화했지만 박연신씨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발행인과 운영위원들은 대부분 여고동창인 아줌마들”이라며 “88장애인올림픽 때 봉사활동을 나갔다가 이른바 선진국 장애인들의 밝은 표정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던 이들은 장애인은 온정의 대상이 아니라 연대의 대상임을 깨달았다. ‘밥해다 줄 생각 말라. 우리는 돼지가 아니다. 우리도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우리의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절절한 육성을 듣고 나서 창간 준비에 들어가, 1993년 정기간행물로 등록시켰다”고만 씌어 있다.

박씨가 주위 사람들에게 “회장은 회장이고, 나는 나이며 나는 손 회장의 부인이 아니라 박연신”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히고 입단속을 시킨 터라 ‘열린지평’에 글을 기고하는 장애인이나 직원 대부분이 그가 대기업 회장의 부인임을 알지 못했다.

“서점에선 한 권도 안 팔려요”

정식 인터뷰는 아니었지만 그는 찾아온 사람을 내치지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열린지평’에 대한 애정과 점점 더 각박해져가는 인심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열린지평’은 여느 잡지처럼 광고료와 구독료에 의존한다. 권당 2500원이고, 1년회원은 1만원, 평생회원은 20만원이다. 이외에 잡지가 발행될 때마다 20만원씩 내는 후원회원이 있고, 1년에 10만원을 내는 찬조회원도 있다. 그는 평생회원에게 20년치 구독료만 받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줬다.

“‘열린지평’을 자식처럼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우리가 아이를 낳아 키울 때 부모가 돌봐줘야 할 나이를 스무 살까지로 보잖아요. ‘열린지평’도 20년 정도 도와주시면 그 다음엔 알아서 잘 해나갈 수 있지 않겠나 하는 마음으로 평생회원에게 20만원을 받고 있어요.”

이렇게 답지한 돈으로 잡지를 제작하고, 장애인들에게 재활비, 연구비, 활동비, 생활비 등을 지원한다. 만들어진 책은 대부분 정기구독자에게 발송하고, 일부를 서점에 배포하는데, 13년째 서점에서 책이 팔린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책의 내용이 허술하지 않을까 싶은가. 이번 가을호 목차를 살펴보자. 책 맨 앞에 실린 명사 초대석엔 손길승 회장의 죽마고우 손병두 서강대 총장이 어디서도 하지 않은 가족의 아픔을 털어놓았다. 안양 라자로마을을 후원하는 등 여러 봉사활동에 참여했지만 가톨릭 신자로서의 의무감에서 그랬을 뿐 장애인에 대해 무관심하게 지내왔는데, 시각장애를 가진 외손녀가 태어난 뒤로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는 것.

“…첫 아기라 꿈에 부풀어 여러 가지 인형도 미리 만들어 놓고, 아기 옷도 예쁘게 수를 놓아 장만해 두었던 막내딸은 너무나 낙심하여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 우리 집사람도 가슴이 아파서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아기를 데리고 다니며 검사를 해보았지만 결과는 절망적일 뿐이었다. 더욱이 사위는 도무지 이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하느님께서는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장애인 아기를 주시는가’ 하며 하느님을 원망하는 소리를 할 때마다 답답한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다.

…이때부터 나는 관심을 갖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의외로 많은 장애인이 있었고, 많은 봉사 단체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이런 아이들을 훌륭히 키워낸 성공 사례도 많음을 발견하게 되었다.…이런 장애인의 뒤에는 어머니나 또 다른 누군가의 특별한 헌신과 사랑이 있었고, 그것들 때문에 장애를 딛고 인간 승리를 일구어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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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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