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호

말초신경 합병증은 경계경보, 무시하면 큰코다친다

  • 고경수 교수 인제대 의대 상계백병원 내분비내과

    입력2006-06-16 1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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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만 되면 쑤시고 저리고

    말초신경 합병증은 경계경보, 무시하면 큰코다친다
    하루 중 가장 괴로운 때를 물으면 ‘밤’이라고 답하는 당뇨 환자가 의외로 많다.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쉴 수 있는 밤이 괴롭다니 건강한 사람들이 듣기에는 의아하기만 하다. 그러나 일리가 있는 말이다. 소소한 것으로는 밤참, 군것질거리 등 긴긴밤을 먹는 낙 없이 지내야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여기에 당뇨합병증 중 하나인 성기능 장애까지 있다면 밤이 오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다수의 환자가 밤이 두렵다고 하는 이유는 바로 밤만 되면 나타나는 통증 때문이다. 통증의 형태는 발바닥이 화끈거리며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고, 저릿저릿한 경우도 있다. 밤새 이런 증상에 시달리니 잠을 제대로 잘 리가 없다. 고육책으로 온갖 민간요법에 매달리다가 결국 발에 상처를 만들어 뜻하지 않게 큰 화를 당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이는 바로 당뇨병의 합병증인 말초신경 합병증 때문에 생긴 통증이다. 많은 당뇨 환자가 고통 받고 있는 증상이지만 정작 관리가 소홀해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합병증이다.

    당뇨 환자라고 해서 모두 살이 마르고 환자 티가 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사가 권하는 대로 하다가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약물중독만 된다는 생각에 치료를 소홀히 하는 환자도 적지 않다. 문제는 당뇨병이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초기에는 혈당 조절 정도와 상관없이 잠잠하다가 수년이 흘러서야 그 흉악한 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중 가장 먼저 나타나는 당뇨병 합병증이 바로 ‘말초신경 합병증’이다. ‘말초신경’은 온몸에 퍼져 있어 여러 가지 감각을 느끼는 신경이다. 이 말초신경이 비정상적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나타나는 것이 말초신경 합병증인데, 그 증상이 다양하다. 당뇨로 인해 신경 자체가 마비돼 아예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또 신경세포 속에 당이 너무 많아지면 세포가 망가지는데, 이때는 심한 통증이 따른다. 처음에는 쿡쿡 쑤시거나 저리고 화끈거리는 증상이 발가락 끝에서부터 시작해 서서히 위로 퍼져 나간다. 이 통증은 유달리 밤에 더욱 심해진다. 낮에는 잘 느끼지 못하다 얄밉게도 늦은 밤 잠을 청하려고 하면 꼭 그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사람을 괴롭힌다.



    당뇨합병증 경고하는 ‘노란불 신호’

    말초신경 합병증은 고통스럽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건강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말초신경 합병증을 소홀히 했다간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말초신경 합병증성 통증은 다른 당뇨합병증이 오고 있다는 ‘경고등’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이는 본격적으로 당뇨병 합병증이 나타났다는 뜻이므로 눈, 신장 등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다른 합병증 검진을 서둘러야 한다. 또 말초신경 합병증이 있는 환자는 발 건강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발의 감각이 둔해져 상처가 나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잘 낫지 않아 발을 절단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통증의 경우, 처음 손발이 저리기 시작하면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서 그러려니 하고 엉뚱한 자가진단을 내리기 쉽다. 그러나 혈액순환이 원인인 경우에는 걷거나 움직이면 증상이 심해지고 가만히 쉬면 증상이 사라진다. 따라서 반대 증상이 나타나는 말초신경 합병증과는 쉽게 구분이 된다.

    말초신경 합병증의 종류는 매우 다양한데,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병을 오래 앓을수록, 혈당 조절이 잘 되지 않을수록 증상이 더 쉽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특히 혈당이 높으면 종류에 상관없이 신경 합병증이 나타나는 까닭에 고혈당을 신경 합병증의 주요한 원인으로 짐작하고 있다.

    체크

    이런 증상 땐 말초신경 합병증 의심
    1. 발 또는 다리에 감각이 없다.
    2. 발 또는 다리에 화끈거리는 통증을 느낀다.
    3. 욕조에 들어갈 때 뜨거운 물과 찬 물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4. 증상이 밤에 심해진다.
    5. 걸을 때 발의 감각을 잘 느끼지 못한다.



    말초신경 합병증은 경계경보, 무시하면 큰코다친다

    말초신경 합병증의 당뇨병성 통증 치료제로 새로 출시된 한국화이자제약의 리리카.

    말초신경 합병증의 원인이 모두 당뇨는 아니다. 증상은 같아도 원인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증상을 일으키는 다른 원인들도 생각해봐야 하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음주에 따른 신경손상, 비타민 결핍이다. 이 외에도 갑상선 기능저하증, 중금속 중독이 원인이 돼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병원을 방문하는 당뇨병 환자 10명 중 6~7명이 ‘말초신경 합병증성 통증’을 겪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들 중 90% 이상이 고통의 원인이 말초신경 합병증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발 좀 저린다고 병원까지야…” 하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치료하지 않은 탓이다. 고통을 잊기 위해 잠 대신 발만 계속 주무르는 괴로운 밤을 수년씩 보낸 환자가 허다하다.

    말초신경 합병증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으나 분명한 치료법은 있다. 혈당을 철저하게 조절하고 약을 꾸준히 먹으면 대부분 증상이 사라진다. 일단 증상이 나타나면 혈당 조절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나 혈당이 잘 조절되더라도 통증이 없어지려면 길게는 수개월씩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빠른 통증 치료를 위해 적절한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약물치료를 받은 신경병증 환자의 80% 이상에서 통증이 크게 줄어드는 결과를 보였다. 약물은 진통제, 항우울제, 항경련제, 비타민, 항산화제 등 종류가 다양하다. 최근에는 효과는 키우고 부작용은 줄인 약제들이 속속 개발돼 약물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지고 안전해졌다.

    감각 대신 눈을 믿고, 찜질방 대신 병원 찾아라

    말초신경 합병증을 앓는 환자 중에는 저린 발을 낫게 한다고 미지근한 물에 발을 담갔다가 큰 화상을 입고 업혀오는 경우가 있다. 발의 감각이 일반인보다 떨어지는 당뇨병 환자들은 뜨거운 물을 미지근하다고 착각하기 십상인 탓이다. 뜨거움뿐 아니라 고통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상처가 나도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당뇨 탓에 가뜩이나 상처가 잘 아물지도 않는데 다친 것도 모르고 계속 내버려두니 작은 상처도 큰 후유증을 남기기 일쑤. 따라서 뜨거운 물에 오랫동안 몸을 담그지 않도록 하며, 부엌칼을 사용할 때에도 매우 주의해야 한다. 상처가 난 줄 모르고 그냥 넘어가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일을 마친 후, 또는 수시로 상처가 날 만한 곳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습관을 기른다.

    말초신경합병증을 악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술이다. 사회생활에서 술자리를 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건강해야 사회생활도 잘할 수 있는 법. 술, 안주 등은 신경합병증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혈당 조절까지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반드시 피해야 한다. 술과 안주를 먹지 않더라도 술자리를 즐길 수 있도록 주위사람들이 배려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증상만 낫게 하겠다는 생각에 찜질방만 찾고 병원은 뒷전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통증이 나타났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확한 검진으로 말초신경합병증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말초신경 합병증은 다른 합병증의 신호탄이 될 수 있으므로 방치하지 말고 서둘러 병원을 찾아야 한다.

    말초신경 합병증 증상이 심해지면 당장 겪는 통증 때문에 불안하고 우울해진다. 그러나 의사의 지시만 잘 따라도 통증이 쉽게 가라앉을 수 있으므로 마음을 편히 먹고 적극적인 치료 의지를 갖도록 한다. 또 소홀했던 혈당 조절에 다시 박차를 가하도록 한다. 과식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영양을 골고루 규칙적으로 섭취할 수 있도록 식단에 공을 들인다. 알맞은 운동 또한 큰 도움이 된다.

    高京秀
    현재 인제대 의대 상계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당뇨병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와 학술 활동 진행. 대한당뇨병학회 홍보간사로 활동하면서 당뇨병과 합병증 예방을 위한 대국민 홍보 활동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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