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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기지촌의 그늘을 넘어’

여성과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다시 쓴 한국현대사

  •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out67@chol.com

‘기지촌의 그늘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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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책의 주인공들은 근대국가의 모순을 극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국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배제, 추방과 포섭의 정치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우리는 재미동포나 재일동포를 ‘조선족’이라고 하지 않는다. 재중동포만 조선족이다. ‘같은 세포’라는 의미의 해외 ‘동포(同胞)’가 모두 한국인은 아닌 것이다. 한국 사회는 ‘잘나가는’ 동포만 한국인으로 간주하고, 그들이 자신을 얼마나 한국인으로 정체화하고 있는지에 목숨을 건다. 하인즈 워드 선수가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아닌지에 온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상처받았다가 열광했다가 하는 식이다.

기지촌 여성이나 미국으로 이주한 군인 아내에 대한 혐오와 비하는 단일 민족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열망이 실은 우리 사회 안팎의 다름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균질적인 국민으로 구성됐다고 상상되는 국민국가 내부의 성별, 인종, 계급의 차이로 인한 갈등과 고통은 군인 아내들의 몸에 고스란히 체현됐다. 저자는 심층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민간외교관’과 ‘양공주’라는 이중 메시지에 시달렸던 이들 군인 아내들의 삶을 소수자에 대한 애정과 여성주의와 탈식민주의라는 날카로운 정치적 감각으로 재현하는 어려운 작업을 최초로 해냈다.

변화하는 한미관계와 한국의 남성성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기지촌은 더 이상 ‘민족 모순’의 공간이 아니라 성산업 종사자의 95%가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 여성인 국제적인 성매매 시장이 되었다. 이제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소위, “여자 팔아 나라를 지키지 않아도 될 만큼” 정치 경제적으로 성장했다. 노무현 정부의 자주국방론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자주국방 정책이 “미국의 도움 없는 대북 단독 방어”를 의미한 데 반해, 2000년대 자주국방론은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자신감을, ‘보호자’였던 미국에 대해서는 “동북아 균형자로서” “팍스 코리아나를 꿈꾸며” 한국을 인정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자주국방의 양대 프로그램인 한국군 현대화와 전시 군작전권 환수는 실제 미국의 필요에 의해 미국이 먼저 제안한 것이다. 냉전 이후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한국 방위에 발이 묶이는 현재의 한미연합사 체제 해체와 한국의 방위비 분담(미국산 무기 구매)을 요구한다. 즉, 자주국방은 미국 중심의 집단 안보 체제에 편입되는 과정으로, 미국의 용병 국가화 요구다.



요컨대 한국은 여전히 미국의 식민지다. 문제는 이러한 식민화 과정이 점점 더 한국 사회 자신이 ‘선택’하는, ‘주체적 종속’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기지촌의 어둠을 넘어’를 ‘넘어’, 변화하는 한미관계에서 한국 사회의 남성성을 분석해야 할 때다. 이 책은 언제나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 자신을 설명해왔던 한국현대사를 성찰하는 작업의 정초(定礎)를 제공한다. 여성학과 영문학에 두루 능통한 옮긴이의 번역이 돋보인다.

신동아 200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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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out67@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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