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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23

사형수 심종성의 ‘프리즌 브레이크’

“영하 20도! 잔인무쌍한 살인자는 뭘 먹고 어디 숨었는고?”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사형수 심종성의 ‘프리즌 브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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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원20전을 위한 살인

사형수 심종성의 ‘프리즌 브레이크’

1931년 10월 살인 혐의로 체포된 직후의 심종성과 김봉주.

임극환 부부를 잔인하게 살해한 후 두 괴한은 집과 상점을 샅샅이 뒤져 쇠고기, 옷가지, 담배 등 돈 나갈 만한 물건은 죄다 끌어 모았다. 140점이나 되는 물건을 훔쳐 커다란 보따리 두 개에 가득 채웠건만 부피만 컸지 실속이 없었다. 강탈한 물건을 다 합쳐봐야 100원에도 못 미쳤다. 평범한 월급쟁이 두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100원은 두 사람의 목숨과 맞바꿀 만큼 큰돈이 아니었다. 괴한들은 부엌에 내려가 찬장에 놓여 있던 떡을 배불리 먹은 후에야 보따리를 한 짐씩 짊어지고 유유히 범행 현장을 빠져나왔다.

두 괴한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느긋하게 평양 중심가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대동교를 건너 파출소 앞을 지날 때, 마침 순사가 다가와서 물었다. 순사는 험상궂게 생긴 두 사내가 꼭두새벽에 커다란 보따리를 지고 가는 것을 미심쩍게 여겼다.

“등에 진 것은 웬 짐이냐?”

“아, 이거요. 이삿짐이에요.”



순사는 꼭두새벽에 남자 둘이서 이사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어수룩하지 않았다. 보따리를 풀어볼 것을 요청하자 아니나 다를까 두 괴한은 보따리를 집어던지고 줄행랑을 놓았다. 순사는 곧장 추적해 식칼을 들고 침입했던 괴한을 붙잡았다. 일본도를 들고 침입한 괴한은 동료가 체포된 틈을 타 가까스로 탈출했다. 파출소로 연행해 문초하니 괴한은 순순히 범행을 자백했다.

붙잡힌 괴한은 강도전과 3범인 심종성이라는 자다. 그의 자백에 의해 당일 오전 공범인 평양부내 대찰리에 사는 살인 전과자 김봉주마저 체포했다. 그와 동시에 평양지방법원 검사국에서는 즉시 검사가 출동하여 현장 검증을 했다. 사체는 당일 오후 자혜의원으로 보내 부검에 들어갔다. (‘동아일보’ 1931년 10월27일자)


김봉주는 공범인 심종성이 검거되는 광경을 목도하고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 천연덕스럽게 자고 있다가 정보 수집차 출동한 경관에게 체포됐다. 경관은 김봉주의 대담무쌍한 행동에 범인을 거저 잡고도 어이가 없어 혀를 내둘렀다. 검사가 현장검증에 나섰을 때, 혈흔이 낭자한 범행 현장은 피 냄새가 코를 찔렀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안태준의 어머니가 외동딸의 죽음을 원통해하며 대성통곡해 피와 곡성이 낭자한 살풍경을 이루었다.

범인이 자백한 범행은 이번 살인강도 외에 강도 네 건, 강도 미수 다섯 건, 절도 다섯 건이 있다. 김봉주는 살인폭행강간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경성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은전(恩典)을 입어 12년으로 감형돼 작년 6월에 가출옥한 자요, 심종성은 강도죄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역시 경성형무소에 복역하다가 금년 1월 가출옥한 자다. 경성형무소에서 복역할 때 출옥한 후에는 강도단을 조직하여 돈벌이를 하자는 약속을 맺었다가 심종성이 가출옥한 후 이행한 것이다.

금년 6월 김봉주와 심종성은 용강군 진지동 금융조합을 습격할 계획을 세웠다가 모의 도중 발각돼 경찰의 문초를 받았으나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둘은 한 번의 실패에 굴하지 않고 형무소 동무 두 명에게 10월27일 밤 한천금융조합을 습격하자는 편지를 발송하는 한편 남산정에 사는 간수 이와모토(岩本)의 집에 대낮에 침입해 습격에 사용할 일본도를 절취했다. 그러나 하루 전날 임극환 부부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는 바람에 한천금융조합 습격 계획은 미수로 돌아갔다. (‘조선일보’ 1931년 10월28일자)


일주일 후 심종성과 김봉주는 강도살인절도죄로 예심에 회부됐고, 예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공판에 회부됐다. 이듬해 12월 평양지방법원은 가출옥 기간에 무고한 부부를 잔혹하게 살해한 심종성과 김봉주에게 나란히 사형을 선고했다. 두 피고인은 범행사실은 인정하지만 사형은 지나치다고 즉각 항소했다.

사형수 탈주

심종성과 김봉주의 항소심 공판은 1933년 1월16일 오전 평양복심법원에서 열렸다. 심종성은 집에서 차입해준 흰 저고리, 검정 바지 차림에 짚신을 신고 법정에 나타났다.

개정 직후 심종성은 재판장에게 관선 변호사를 믿을 수 없어 다른 변호사를 선임하겠으니 공판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뚱딴지 같은 요구였다. 심종성이 사형을 선고받은 것은 변호사가 무능했기 때문이 아니라 죄질이 나빴기 때문이다. 강도전과 3범이 가출옥 기간에 겨우 현금 3원20전, 물품 100원어치를 강탈하려고 선량한 양민 두 사람을 극악무도하게 살해했는데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을 리 없었다. 재판장은 꺼림칙했지만 피고인의 목숨이 달린 공판인지라 심종성의 요청을 받아들여 공판을 21일로 연기하고 폐정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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